▶review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리뷰입니다!


빵집 주인의 경제학, 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4.10.08 11:52 조회 수 : 12

빵집 주인의 경제학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정문주 역, 더숲, 2014.

 

이진경/수유너머N 회원

 

 

나는 빵을 대단히 좋아해서, 한때는 하루에 두 끼 정도는 빵으로 먹어도 충분했다. 그렇지만 앙꼬 없는 찐빵이란 표현처럼, 내게 빵이란 무엇보다 앙꼬였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껍질은 이차적인 것이었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그건 껍질이 아니라 이라고 말한다. 빵이란 무엇보다 그 을 뜻한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빵의 그 살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균들이었고, 그 균들이 가장 발효되기 좋은 조건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곰팡이를 직접 먹어보기도 하고, 낡은 고택을 찾아다니기도 하며, 균이 좋아할 물을 찾아 이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그는 균의 목소리를 듣고 그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존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게 하이데거의 가장 중요한 호소임을 안다면, 이 책에서 언급된 적이 없는 하이데거를 여기서 떠올리는 게 뜬금없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균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그들의 부름을 받고멀리 가쓰야마라는 촌구석의 낡은 집을 찾아간다. 에도시대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그곳은 또한 염직, 양조, 죽세공 등 다양한 장인들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빵을 만드는 장인으로 살고자 한다. 소생산자/소상인으로서, 이웃한 소상인과의 유대로 요약되는 소상인의 공동체를 어느새 실험하고 있다. 어쩌면 아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일 이런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을 갖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터넷과 SNS로 멀리 떨어진 이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소상인의 시대가 아닐까?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정비되어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소셜 미디어를 통해 탄생한 유대관계는 고독한 싸움이 되기 십상인 소상인들에게 용기를 준다.”(186~187) 소생산자의 연합이라고 요약될 이런 공동체적 전망은, 최대한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이른바 DIY(Do It Yourself!)의 정신과 이어진다. 이런 관계 속에서, 이런 정신으로 생산하는 것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과는 근본에서 다름을 강조한다.


빵과 균과 빵집, 그리고 돈과 장인과 인간에 대한 책인 이 책이 제목처럼 <자본론>에 대해, 이윤과 착취에 반하는 경영에 대해 말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 책은 저자의 부친이 권해서 빵집을 시작하며 읽어보았다는 <자본론>에 대해, 상품과 가격, 임금과 이윤, 노동력과 기술혁신에 대해 명시적인 강의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자본론>을 쓴 맑스보다는, 기계제 대공업에 반대하여 장인적인 문화를 예찬했던 윌리엄 모리스와 가깝고, 베를린 대학의 초청에 대해 우리는 왜 시골에 거주해야 하는가?”라는 방송연설로 거절의 뜻을 표현했던 하이데거와 가까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이 글을 쓴 저자보다는 오히려 균임을 안다면, 생명체란 균이라고 불리는 미생물들의 공생체고, 지구란 미생물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임을 주장했던 린 마굴리스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순환이라는 말이다. “자연계에서는 균의 활약을 통해 모든 물질이 흙으로 돌아가고,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의 균형은 이 순환속에서 유지된다.”(85) 이를 그는 부패하는 경제라는 말로 표현한다. “자연계의 부패하는 순환 속에서우리는 필요한 먹거리를 얻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발효내지 숙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패하는 순환의 흐름을 따라 가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바로 부패하는 경제고 순환의 경제다. 달리 말하면, 필요한 자원과 물자가 돌고 돌아 적절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자연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것이 익어가는 것을 기다리며 그 생명의 흐름을 따라 생산하는 것이 그것이다. 농사지은 사람이 계속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제값을 주고 재료를 사고, 노동력이나 상품가격을 억지로 낮추지 않으며, 생산한 빵 역시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하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이는 부패할 줄 모르는 돈, 이윤을 위한 생산과 대비된다. 많이 팔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그 가격에 맞추기 위해 재료값, 임금을 깎고, 재료나 상품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를 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점에서 이 책은 빵집 주인의 경제학이라고 할만한 것을 담고 있다. 빵을 만들기 위해 들여다 본 균들로부터 그는 빵집의 경영이나 경제 전반을 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그것은 그저 소박하다거나 몽상적이라는 말로 묵살할 수 없는 단단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가 점점 생산에서 분리되어 파생상품의 구름을 타고 모든 활동을 이윤으로 빨아들이는 시대에, 그래서 자본의 성장이 더 이상은 생존조건의 성장과 무관하게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직접적인 삶에서 얻어낸 이런 공동체의 경제학이야말로 자본의 구름에 올라타지 못한 우리들에겐 진지하게 숙고해보아야 할 어떤 걸 담고 있는 게 아닐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3 [책리뷰]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file Edie 2017.06.30 917
122 [전시리뷰] 피에르 위그, After ALife Ahead [4] 장한길 2017.06.27 2735
121 [영화리뷰] 도나 해러웨이 "Story Telling for Earthly Survival" [4] file compost 2017.06.07 1511
120 "있음"의 존재론-불교를 철학하다 수유너머웹진 2016.12.29 94
119 자, 다시한번 마르크스 -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수유너머웹진 2016.11.25 44
118 [과학기술리뷰] 21세기에 현상학을 한다는 것 [현대 기술미디어 철학의 갈래들] 수유너머웹진 2016.11.08 42
117 [풍문으로 들은 시] 잘 모르는 사이에(서) - 박성준 『잘 모르는 사이』(문학과지성사, 2016) 수유너머웹진 2016.07.11 58
116 우주, 어디까지 가봤니? -박영은, [러시아 문화와 우주철학] 수유너머웹진 2016.07.01 81
115 [풍문으로 들은 시] 인양에서 은유로, 은유에서 인양으로 -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2015, 창비) 수유너머웹진 2016.05.13 107
114 [책리뷰] 사건의 상징화를 넘어서 수유너머웹진 2016.01.11 22
113 [책리뷰]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에 대한 논의 수유너머웹진 2015.12.02 37
112 [풍문으로 들은 시] 빛과 법 - 송승언, 『철과 오크』(문학과 지성사, 2015.2.) 수유너머웹진 2015.11.09 20
111 [영화리뷰] 사건을 해결하는 남성적 연대의 헛된 상상 수유너머웹진 2015.11.03 16
110 수유너머N 교토 방문 스케치 수유너머웹진 2015.09.18 76
109 [풍문으로 들은 시] 몸이라는 예배당-성동혁, 『6』(민음사, 2014) 수유너머웹진 2015.09.07 28
108 [개봉영화 파해치기] 끝나지 않을 매국의 문제: 영화 <암살>에 대하여 수유너머웹진 2015.08.12 6
107 [풍문으로 들은 시] 어찌할 바 모르겠으니 서둘러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 이순영, <학원가기 싫은 날>(2015) 수유너머웹진 2015.07.31 24
106 [개봉영화 파해치기] 영화-세계의 정치적 가능성: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수유너머웹진 2015.07.02 8
105 [2015 맑스코뮤나레 리뷰] 불안정노동체제의 종식, 어떻게 할 것인가. 수유너머웹진 2015.06.24 15
104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일상으로서의 데모스, 일상속에서의 주체화 -연구협동조합데모스, "일상의 조건: 노동, 작업 그리고 사랑- 수유너머웹진 2015.06.22 24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