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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우리들의 언더 철학자

              -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

 




한샘 / 수유너머N 회원




 

오늘날 누가 니체주의자인가? <유목적 사유>라는 글에서 들뢰즈는 이렇게 물었다. 들뢰즈가 활동하던 당대 프랑스에서도 니체는 잘 팔렸던 것 같다. 저 질문은 니체주의자라 자부하는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그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으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니체는 꽤나 잘 팔린다. 니체의 저작에 대한 번역뿐만 아니라 그의 경구와 잠언들을 모아놓은 책들도 많다. 니체의 유명한 글귀들은 여기저기서 시도때도 없이 인용된다. 사람들이 철학이라는 것에 갖고 있는 거리감을 생각해볼 때, 한 철학자가 이렇게 인기를 얻는 현상은 분명 낯설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다. 니체는 과연 제대로 읽히고 있을까?


무엇보다 니체의 책은 퍽이나 어렵다. 아무리 읽어도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모호한 경구와 아포리즘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니체의 책은 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걸까? 여기다 대고 니체는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경구, 그것은 힘들의 놀이이자, 언제나 서로 간에 외적인 힘들의 상태이다. 경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니!




         




 

심연을 본 자, 니체


여기 고병권이 니체를 읽은 하나의 독법이 있다. 우선 고병권은 『언더그라운드 니체』에서 온갖 기원을 뒤집어 엎는 니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이런 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상식으로 받아들여져 온 우리의 도덕은 사실 동물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도덕은 마치 진화의 법칙처럼, 그것이 인간에게 유용한 형태로 발달해왔다는 것이다.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는 도덕은 선한 마음의 발현이 아니라, 서로 도운 종들이 서로 돕지 않은 종들보다 더 잘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런 식의 도덕이 우리에게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인간과 동물을 나누며 인간의 도덕에 모종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우리의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비슷한 방법으로 니체는 기독교의 윤리란 절망과 자책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 자유의지란 사실은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는 것, 자아란 가면이라는 것 등을 차례차례 밝힌다.


이런 비판들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들과는 정확히 반대되는 것이다. 니체는 우리의 철학, 우리의 사고, 우리의 생활 양식들이 근거하고 있는 전제들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판들, 우리가 상식이라고 받아들여온 근거들을 모두 지우는 과정을 통해 니체가 이른 곳은 어디인가? 고병권은 말한다. 그 곳은 ‘심연’이라고. “바닥, 근거까지 비판을 밀어붙이는 것. 니체는 이때 심층이 아니라 심연Abgrund에 다다랐다.” 심연은 깊은 곳이 아니다. ‘심연은 깊지 않다.’ 심연은 모든 근거를 와해시키는 지점이다. 그렇게도 공고해 보이는 모든 근거들을 뿌리까지 추적하여 그 근거들의 근거-없음(Ab-grund)이 드러나는 곳이다.

 





새로운 것은 심연으로부터 온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경구들로 채워놓은 책, 그것은 아마도 심연에 다녀온 니체가 ‘피로 쓴’ 글귀들일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니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심연이란 바로 근거-없음이며, 우리의 믿음이 깨지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기존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그것을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경구들을 통해 니체가 말하려고 한 것이 기존의 의미를 답습하는 것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기존의 의미를 해체함으로써만 우리는 새로운 의미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근거-없음의 자리에서 길어올린 의미-없음의 언표들, 그것이 바로 니체의 글이다. 고병권이 이 책에서 심연에 주목한 것은, 니체의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다름아닌 이 심연을 볼 줄 아는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심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해체의 공간, 부재의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고병권은 심연에 주목하는가? 그곳은 무엇이든 해체되어버리는 장소이고, 그런 점에서 우리가 다시 사유하기 시작해야 하는 곳이다. 그곳은 지금의 언어 체계로 표현될 수 없는 곳이며, 새로운 언어가 출현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곳으로서의 심연, 그런 곳으로서의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모든 것을 파헤친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근거들의 근거-없음을 계속해서 파헤침으로서, 심연과 계속해서 눈을 마주침으로서 무엇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무언가가 도래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심연을 거쳐서, 심연과 함께 온다.




 


떠나라, 그러나 돌아오지 마라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시 물을 수 있다. 니체의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것을 통해 지금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읽어내면 되는 걸까? 그것을 원동력 삼아 또 일상을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니체의 책을 기존의 가치에 따르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엇보다 잘못된 니체 읽기일 것이다. 심연이 심연인 이유는, 그것과의 대면이 삶의 방향을 전적으로 돌려놓기 때문이다. 심연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 흔히 예찬되는 니체의 키워드 ‘긍정’과 ‘창조’는, 그것이 이런 심연을 거친 것이라는 점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주의해야 한다. 니체는 긍정의 철학자인가?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니라 심연 이후의 삶에 대한 긍정이고, 그런 점에서 당나귀의 거짓 긍정이 아니라 이탈의 결과로 발생하는 폭력과 잔혹마저 포함하는 긍정이다. 니체는 창조의 철학자인가? 그렇다. 하지만 그 창조는 더 세련된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마지막까지 부여잡고 있던 것까지 망치로 때려부순 뒤에만 나타나는 창조다. 그러므로 긍정하려는 자, 창조하려는 자라면 심연과 대면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갈 데까지 가야’ 한다고 니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누가 진짜 니체주의자인가? 니체의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인가? 니체를 빌어 강연을 하는 연사들인가? 아니면 니체의 잠언들을 곁에 두고 읽는 이들인가? 이들도 니체주의자일 수 있지만, 니체의 철학이 심연과 마주한 뒤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자신이 본 심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 자가 진짜 니체주의자 아닌가?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웃으며, 묵묵히 갈 뿐이다. 모든 근거가 사라진 심연의 자리에서 웃음을 지으며 니체는 우리에게 손짓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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