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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맑스코뮤날레 리뷰]



일상으로서의 데모스, 일상속에서의 주체화

-연구협동조합 데모스, "일상의 조건: 노동, 작업 그리고 사랑"-

 

 

 

장 희 국/수유너머N 회원

 

 

 


토론의 리뷰 


사랑, 노동, 웰빙, 취미 등 우리의 일상은 다양한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너무나 익숙하기에 종종 우리의 관심사에서 벗어난다. 그 제각각의 활동들이 모두 다양한 변화의 계기들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이끌어 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채로 말이다. ‘연구협동조합 데모스’는 새삼스럽게 이러한 주제를 꺼내고 있다. 그들이 맑스 코뮤날레라는 혁명적(?) 잔치에서 조금은 색다른 혹은 조금은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주제들을 굳이 이야기 하고자함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주제를 ‘일상’이라는 키워드 이외의 한가지 단어로 정리하자면 ‘주체화’와 관련된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이 시대의 일상의 관습, 용어들은 맑스 시대와도 다르며, 수십년전의 우리와도 다르다. 웰빙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고 있으며, 사랑과 이성, 섹스를 논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이동수단으로서가 아닌 레저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는 자들이 늘었다. 굳이 맑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변화된 토대가 주체에 유발하는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해 본다. 아무튼 일상의 작은 변화들을 포착하고 그 속에서 이미 스스로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목격하고자 하는 것이 ‘연구협동조합 데모스’의 이번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데모스 4개의 발표 중 두 가지 ‘일하는 이들의 일상, 안전을 넘어 건강으로’(정하나)와 ‘작업의 귀환 : 자전거와 일상의 기술’(장훈교)을 간략하게 정리해 본다.

 


Well-being의 주체화


웰빙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상당히 오래된 이야기이다. Well하게 being한다는 이 말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잘 산다~’정도일텐데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지, 제각기 천차만별이기에 쉽게 정의되지 않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웰빙이란 단어를 사용 할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신체를 관리하고, 취미활동을 가지며, 맛있는 것을 먹으려 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나은 형태로 구성하려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발표를 맡은 정하나(데모스 조합원)는 이 웰빙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사각지대로 ‘노동’에 주목한다.

정하나는 ‘노동’현장에서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따질 때에 여전히 ‘죽지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가’의 낮은 담벼락을 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현장은 삶의 절반(활동하는 시간의 절반-8시간)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Well-being의 대상으로부터는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지적은 ‘노동현장’이 웰빙을 달성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윌리엄 허버트 하인리히가 주창한 하인리히법칙에 의하면 위험은 일상의 누적임을 통계적으로 반증한다. ...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미한 사상자가 29명, 그리고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29:300의 법칙으로도 불리는 이 하인리히법칙은 노동자들이 웰빙 이전, 최소한의 ‘안전’조차 적극적인 권리 요구 속에서만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결과’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생산의 과정은 불투명하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신체에 주어지는 ‘위험’을 직시해야하며, 노동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는 노동자에게 주어진 몫이며, 최소한의 ‘안전’에 대한 요구부터 ‘웰빙’에 대한 요구까지 적극적인 권리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 정하나가 짧은 글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지점은 분명 우리의 ‘노동하는 일상’은 언제나 최소한의 권리요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노동자 주체 탄생 계기를 품고 있으며, 이는 웰빙이라는 현 시대의 특별한 가치체계와 맞물릴 때 일련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노동과 삶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해 하나의 연속적 구도속에서 사유하기를 요구한다.


 

하인리히법칙은 노동현장의 사소한 나쁜 징후도 놓치지 말고 보완요구해야함을 의미한다. 자료: 네이버까페, 윌슨러닝코리아

 

 


자가 수리(제작), 노동 소외를 넘어서


정하나의 발표가 일상에서 괴리된 노동을 다시 일상과 연결시키려는 시도였다면, 장훈교의 발표는 반대방향으로 일상에서 발견된 ‘자가 수리’라는 작업을 통해 ‘노동’까지 고민해보려는 시도였다. 그가 발표의 아이디어를 얻은 계기는 단순하다. “자전거 타는 사람이 늘었고, 자신도 동참하게 되었으며, 그러다 어느날 고장난 자전거를 스스로 고치려하고 있더라” 라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그에게 의문점을 안겨준 것이다. “나는 왜 이 자전거를 스스로 고치려 하고 있을까.” 비록 수리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직접 고치려고 마음먹게 된 순간을 경험하며, 그는 일상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을 움직이게 한 이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동차가 고장나면 우리는 전문가에게 맡긴다. 휴대폰에 고장이 발생해도 우리는 전문가에게 맡기며, 맡겨야만 다시 쓸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는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바로 그 어떤 다른점이 우리를 능동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이끌고 있는 어떤 원인을 잘 보여줄 것이다.

장훈교는 자전거가 자가수리의 대상으로 즉각 인식된 계기는 “기본적으로 자전거라는 사물의 구조 자체가 수리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장점은 아주 효율이 높은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는 점”이라고 판단한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의 구조가 수리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데, 이런 사물은 우리를 단순한 생산자-소비자의 구조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즉, 생산하는 자가 따로 있고, 그것을 소비하는 자가 따로 있는 노동시장의 소외가 흐트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자가수리 가능여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자전거는 핵심기관이 드러나있고, 간단한 공구로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수리가 상당히 용이하다. 사진: 부평구 공식블로그

 


사실 필자는 발표를 듣는 당시 자전거는 자가수리가 가능하고 자동차는 자가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발표자의 구분법에 불만이 있었다. 군대 운전병 등 자동차 수리의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황이라면 자동차 역시 수리대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사전 경험 혹은 사물에 대한 지식의 보유여부이지 사물의 기계적 특성이 아닌 것이 된다. 특히 발표자가 자가수리의 경험은 자가제작(DIY)으로 쉽게 이어진다고 설명할 때, 필자는 자동차를 개조하는 카 매니아들을 쉽게 동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오히려 ‘자가수리 가능여부’는 사물과 만나는 인간의 관계마다 모두 다른 것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이에게는 자전거 역시 전문가의 수리를 요하는 대상이며, 어떤이에게는 컴퓨터나, 에어컨도 자가수리의 대상일 수 있다. 다만 기계가 단순하다는 것은 ‘자가수리’를 위해 요구되는 지식의 양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에 따라 ‘자가수리 가능여부’를 결정하는 허들이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에는 동의를 표한다.


기계의 특성이 ‘자가수리’를 유발한다는 그의 경험적 분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가수리’와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가제작’이 이 시대의 특징적인 활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그의 분석은 흥미롭다. 산업사회 이전 “결핍의 시대에 자가제작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행위였지만, 풍요의 시대에 자가제작은 경제적으론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지금은 자가제작에 필요한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서 배운다.” 이와 같이 현대의 ‘자가제작’은 단순히 필요에 의한 생산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으며, 부정적으로만 그려졌던 디지털화가 ‘자가제작’과 만나면서 긍정적인 계기도 함께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넘쳐나는 다양한 물건들을 선택하기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인터넷 등의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어디서든 쉽게 그러한 물건구매에 접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가 수리’와 ‘자가제작’은 이 시대의 새로운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집중하여 발표자는 단순한 노동, 소외와 구분되는 작업의 영역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20세기를 경유하면서 노동은 점점 수단이 되어갔다. ... 노동은 오직 생계와 수입을 얻기 위한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 그러나 노동과 달리 작업은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 무엇에 대한 열정인가? ... 뭔가를 만들고, 구성하고, 재구성하고, 수리하고 개조하는 과정은 노동 과정에서 충족될 수 없거나 혹은 분출될 수 없는 열정이었다.”

 

경제인으로서의 생산활동이 아닌 순수한 제작인으로서의 활동 욕구가 있음이 ‘자가수리’, ‘자가제작’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자가수리’에 대한 자각은 생존을 위한 노동을 벗어난 활동욕망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작업은 우리가 상실했던 자신의 세계를 빚어내는 권한을 다시 우리 자신에게 부여한다.”

다소 낙관적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자가수리’라는 사건을 통해서 경제적 생산과 분리된 활동욕구를 읽어내고, 그것이 끝없이 주변세계를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가진 주체화가 가능하다는 그의 말이 현실화되길 희망해 본다.


 

가구 등에서 DIY(자가제작)의 요구는 일찍부터 발생하였다. 자료: 위키트리

 

 

일상속의 주체화


정하나와 장훈교의 발표처럼 ‘데모스’에서는 일상에서 발견되는 주체화의 계기들을 세심한 감각으로 짚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스치듯이 무시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의외로 많은 주체화의 계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들이 보여주듯 노동현장에서 사소한 사고를 놓치지 않을 때, 자전거를 수리하는 자신을 궁금해하며 되돌아 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발표는 매우 흥미롭고, 일상을 경유한 만큼 재미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들의 발표에서 다소 아쉬웠던 점을 한가지만 말하고 싶다. 노동자들이 사소한 사고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말해도 소용이 없는 어떤 구조적 한계가 더 우선하는 것은 아닐까, 자전거는 자가수리를 하면서도 자동차는 자가수리대상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역시 어떤 사회구조적 환경이 만들어 준 고정관념은 아닐까 하는 의문. 즉, 일상속의 주체화를 가로막는 선재하는 구조적 계기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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