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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평] 이 한 장의 사진: 벤야민, 손택, 바르트와 함께하는 사진읽기


사진 세미나를 같이 했던 학인들과 함께 사진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진이론에서 고전격에 해당하는 발터 벤야민, 수잔 손택,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언급하면서, 더불어 이들이 특별히 애정을 보였던 "이 한장의 사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수잔 손택, 정치를 위한 사진을 비판하다




조지훈/수유너머N 회원 





카메라가 기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알게 되리라, 사진이 함축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46p


좌우간 사진은 무엇인가를 경험하거나 무슨 일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주는 데 꼭 필요한 장비가 됐다. 

-같은 책, 27p


 1930년대 말 미국 농업안정국은 당시 일급의 사진가들에게 자국 내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의 사진을 찍게 했다.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농민들에 대한 재정 지원을 위한 사진자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최초의 공공사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러한 작품을 찍기 위해서 워커 에반스, 도로시아 랭과 같은 당내 내노라하는 사진작가들은 많은 시간을 소작농과 함께 보냈다. 경제적으로 빈곤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는 소작농의 표정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 무수한 촬영이 필요했던 것이다(1942년 해체될 때까지 이들은 무려 27만2천점을 찍어댔다). 과연 일류 사진가들의 작품은 훌륭했다. 사진 속의 소작농들은 당시 미국인들에게 농민 지원을 위해 호소할 수 있을 만큼 딱 알맞은 표정과 포즈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농업안정국의 사진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고, 사진은 빈곤을 구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수잔 손택은 1977년에 발간한 『사진에 관하여』에서 이러한 미국 농업안정국의 성공사례에 대해서 비판적 논평을 한다. 농업안정국 프로젝트의 사진작가들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달리 인도적이라기보다는 공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들이 원하는 소작농의 모습을 얻기 위해 수차례 카메라를 들이미는 행위 자체가 이미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소작농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피사체를 변형시키기까지 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애당초 농민구제라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손택이 보기에 농업안정국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진작가들은 카메라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믿음을 이용해서 사람들의 호소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비판적이다. 즉, 농업안정국의 사진이 효과적이었던 것은 특정한 의도로 변형된 피사체의 모습(빈곤하지만 존엄한 농민의 모습)이 사진을 통해서 마치 있는 그대로를 담아낸 것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는 기만적이다. 더불어 손택은 포토저널리즘에서 사진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이 기만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적 목적으로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지 기만적이기 때문에만 문제는 아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마치 상습적인 관음증 환자처럼 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건의 의미를 대동소이하게 취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28p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도 사건인데, 그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일으키는 사건인 것이다. -같은 책, 28p



 오히려 손택이 보기에 사진의 정치적 활용은 이미지를 끊임없이 소비한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사진 속에 담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드러낼 수 있는 윤리적인 격분은 사진이 갖고 있는 힘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미지에 얼마나 익숙한 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농업안정국의 사진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미지는 분명 효과가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에 익숙해지게 된다면 효과는 미미해진다. 그 일례로 1973년 모든 잡지에 실렸던, 기아로 죽어 가던 사하라 남단의 투아그레 족을 찍은 사진은 (농업안정국의 사진과 달리)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끔찍한 이미지를 지겹게 반복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없었다. 마치 포르노그라피를 처음 접하게 된 이후의 충격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감소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잔혹한 사진을 보고나서 느낀 충격도(그리고 이와 함께 수반한 윤리적 분노도) 사그라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이미지의 충격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하면서 더 많은 이미지를 보기 위해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게 된다.



    



 손택은 이처럼 사진을 통해서 현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통해서 경험을 고양하려는 욕구는, 오늘날의 모든 이들이 중독 되어 있는 심미적 소비주의의 일종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사람들을 충격적인 이미지로 중독 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손택의 말마따나 이러한 이미지로 인한 정신적 오염에 우리는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단지 거부해버리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을 때,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여전히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선한 의도로 찍어진 사진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진 이미지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농업안정국 프로젝트의 사진작가들처럼 우리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꾀하면서 사진을 찍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손택은 더욱 난감한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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