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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평] 이 한 장의 사진: 벤야민, 손택, 바르트와 함께하는 사진읽기


사진 세미나를 같이 했던 학인들과 함께 사진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상가들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사진이론에서 고전격에 해당하는 발터 벤야민, 수잔 손택,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를 언급하면서, 더불어 이들이 특별히 애정을 보였던 "이 한장의 사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벤야민과 아제: 사진과 거리의 청소부(1)’ 




신광호/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아제가 지니는 비견할 수 없는 의의는 그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1900년경의 파리 거리를 포착했다는 점에 있다. 그가 마치 범행 현장을 찍듯이 파리의 거리를 찍었다고 한 말은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다. 범행 장소에는 사람이 없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사진촬영은 아제에 와서 역사적 사건의 증거물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사진의 드러나지 않는 정치적 의미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17p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비롯하여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벤야민은 아제에 대해 남다른 비중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1900년경의 파리 거리와 같이 공허하고 비어 있으며 아무런 정취도 없는 대상만을 사진에 담아 내었던 아제가 어떤 연유로 하여 벤야민의 저서에서 언급된 수많은 사진가 가운데 이토록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생산조건의 변화에 따른 예술의 발전 경향에 대해 서술하였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아제는 보다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아제가 지니는 의의를 파악하자면 사진의 등장으로 인한 예술 자체의 변화를 예견하였던 벤야민의 논의를 따라가 보아야 한다. 그러한 과정 이후에야, 언뜻 무미건조하게 여겨질 수 있는 아제의 사진에서 벤야민이 보았던 영향력이 온전히 드러나게 될 터이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개념은 아우라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 상태에 있는 자에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지평선의 산맥이나 나뭇가지를 따라갈 때,이것은 우리가 산이나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숨 쉰다는 뜻이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109p


기술적 복제의 가능성 사진술 전승된 예술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만들고앞으로의 예술의 작업방식에 독자적인 자리를 점유하게 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벤야민은 이러한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위축되고 있음을 진단한다. 그렇다면 아우라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아우라는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된다. 또 다른 정의를 보자면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이와 같은 아우라의 두 정의를 도식적으로 살펴보자면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란 예술작품이 여기가까이 있음을 의미하고,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란 그럼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지금나타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복제기술은 예술작품을 대량화하는 동시에 수용자로 하여금 복제품을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예술작품을 또한 현재화한다. 이러한 대량화와 현재화의 과정은 예술작품의 여기지금으로서의 가치를, 다시 말해 아우라를 뒤흔든다. (진품성의 경우로 이야기하자면, 물질적 지속성이 흔들림으로써 거기에 기대고 있던 역사적 증언 가치 또한 사물로부터 풀려나게 된다) 복제기술이 아우라를 붕괴시킨다고 말할 때에, 예술작품을 이전까지 묶여 있던 물질적 족쇄로부터 해방시켜 대량화 그것이 지니고 있던 역사성을 무너뜨림을 현재화 이야기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위의 아우라적 존재방식이 의식(儀式)적 기능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이어서 지적한다. 이는 아제와 그의 작품이 지니는 의의에 들여다보는 데에 있어서 중요하다. 최초의 예술작품은 주술적 종교적 의식을 위해 생겨났다. 이후 르네상스 때에 형성되어 300년간 지속되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세속적 추구 또한 세속화된 의식이란 점에서 제의(祭儀)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하여 진정한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가치는, 예술작품이 그 속에서 원래적이고 최초의 사용가치를 가졌었던 제의에 근거를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아우라에 대한 위의 정의와도 연관되어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상이란 제의적 가치에서의 시공간적으로 범접할 수 없음이란 속성과 결부되어 있다) 이런 제의적 가치는 예술작품을 은밀한 장소에 숨겨 두기를 요구하는데, 이를테면 어떤 신상(神像)들은 밀실에서 승려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고 있고, 어떤 성모상은 거의 일 년 내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으며 또 중세 사원의 어떤 조각들은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앞서 논하였던 아우라의 붕괴가 예술작품이 그간 존재의 기반으로 삼고 있던 제의적 가치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음은 물론인데, 아우라의 붕괴, 즉 대량화와 현재화는 예술작품으로 하여금 제의적 기능을 위해 특정한 장소에 숨겨질 필요성을 제거하는 효과를 낳았다. 예술작품은 최초로 여기저기에 전시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기술적 복제 가능성으로 인해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흔들리게 되었다. 동시에 아우라가 자신의 존재 기반을 두고 있던 제의적 가치 또한 무의미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해방으로 하여 예술작품의 제의가치전시가치로 대체되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의 지점에서 이러한 해방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는데, 바로 복제기술 자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에서이다. 사진의 경우, 제의가치는 인간의 얼굴을 마지막 보루로 삼아 아우라의 붕괴로 인한 자신의 소멸은 방어하였다. 그리고 이를 제압한 사람이 바로 아제이다.

 




아제에 대한 이야기는 "벤야민과 아제: 사진과 거리의 청소부(2)"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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