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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을 찍는다, <트루맛쇼>

수유너머웹진 2011.06.09 14:47 조회 수 : 10



2010년 일산의 한 번화가에 ‘맛(Taste)’이라는 식당이 문을 연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음식점인 ‘맛(Taste)’은 ‘광고와 다를 바 없는’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들의 실태 고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세트다. 영화 <트루맛쇼>는 ‘맛(Taste)"이 맛집 프로그램에 방영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과정 중에 ‘맛집 전문 브로커 임선생’이 등장한다. 그는 ‘향기 나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텔레비전 미디어의 속성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맛집 프로그램과 맛집에 출연을 원하는 식당을 이어주고, 맛집 프로그램용 메뉴를 개발하며, 맛집 사장으로 분장해 연기까지 한다. 임선생이 대박을 터뜨린 ‘캐비어 삼겹살’ 텔레비전 영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기극에 방송과 시청자가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뿐 아니다. 영화 속에는 실제 활동 중인 연예인이 자신의 맛집인 양 거짓으로 맛집 프로그램을 찍는 모습이 고스란히 등장하고, 제작진이 맛집 프로그램 가짜손님으로 출현한 에피소드도 등장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조작을 일삼고 있는 맛집 프로그램 이름을 완전히 노출시킨다. 객석에서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연신 터지는 한편 묘한 긴장의 순간도 있었는데, 이 긴장감은 거칠 것 없이 다 드러내 놓는 <트루맛쇼>의 노출수위에 기인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루맛쇼>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맛집 프로그램 인용 장면들이 영화의 다른 장면들과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루맛쇼>는 한편의 잘 짜여진 주말오락 프로그램 같이 느껴지는데, 이는 <트루맛쇼>의 형식 때문이다. 그 형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주로 쓰이는 빠르고 화려한 화면 편집과 CG의 사용 같은 것이다. <트루맛쇼>는 그가 고발하고자 하는 텔레비전 미디어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궁금증이 발생한다. <트루맛쇼>의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텔레비전 미디어와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실제 방송국 PD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트루맛쇼>의 제작진 상황 상 자연스럽게 텔레비전과 같은 형식이 만들진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영화 초반부의 한 장면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식당 ‘맛(Taste)"이 꾸려지고 방송출연을 위해 방송협찬대행사에 연락을 돌리는 장면에서 뒷면 벽에 붙어 있는 플랭카드는 세 번 바뀐다. 첫 번째는 ‘맛(Taste), 소비자 고발’ 두 번째는 ‘맛(Taste), 불만제로’ 세 번째는 ‘맛(Taste), 그것이 알고 싶다’. 이는 <트루맛쇼>가 세 가지 방송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트루맛쇼>가 하고자 하는 것은 맛집 프로그램의 거짓과 조작을 폭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와 그들이 잃어버린 저널리즘의 집요함으로 그들을 찍어내는 것이다. ‘방송은 시청자를 속이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트루맛쇼>는 방송을 속인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트루맛쇼>는 TV 프로그램들이 가지는 한계 또한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트루맛쇼>는 TV 맛집 프로그램의 조작 실태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고발과 비판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관객들이 보기 편하게 정리하여 전달하는 차원에 머문다. <트루맛쇼>는 관객의 몫에 해당하는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 대신에 커다란 하나의 선택지를 내민다. ‘당신은 트루맛쇼를 계속해서 볼 것인가?’ <트루맛쇼>는 영화를 다 보고 돌아가는 관객들에게 ‘TV를 계속 볼 것인가, 끌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빨간약을 먹을 것인가.’ 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트루맛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트루맛쇼>는 ‘역지사지 퍼포먼스 미디어 3부작’ 중 첫 번째 퍼포먼스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을 촬영해 보기’로 제작되었다. 아직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어서 나올 두 번째 세 번째 퍼포먼스도 <트루맛쇼> 못지않게 파격적인 작품들이 될 것이다(되기를 바란다). 또한 <트루맛쇼>에 등장하는 연예인이나 인용된 맛집 프로그램들의 이름이 그대로 노출된 것은 이로 인해 빚어질 소송과 피해를 감내하겠다는 감독의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4월 29일, 전주영화제에서의 <트루맛쇼>의 첫 영화 상영이 있었다. 그날 이미 많은 방송관계자들이 다녀갔고, 인터넷 포털과 신문, 블로그들에 <트루맛쇼>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종편 4사의 방송이 브라운관을 점령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미디어에 대한 강도 높은 고발을 담고 있는 <트루맛쇼>가 방송사들은 물론이고 한국사회에 전체에 던진 충격이 크고 오래가길 기대해 본다.




글 / 권은혜(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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