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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코기토

-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 김정환 옮김 (문학동네, 2014)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지난 2014년 말 김정환 시인의 번역으로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Zbigniew Herbert, 1924-1998)의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냉전 이데올로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와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이름을 반반씩 섞어 놓은 듯한 이름의 시인은 폴란드 출신이다. 폴란드 문학이라고 하면 곰브로비치의 <페르디두르케> 밖에 읽어본 것이 없다. 엉덩이에 집착하는 익살맞은 인물들과 기괴한 사건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폴란드어는 한 마디도 모르지만 아우슈비츠의 폴란드어 이름이 오슈비엥침이라는 것은 들어봤다. 열 권의 시집과 그 밖의 작품들을 총 934쪽에 모은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의 시전집을 처음 보았을 때 여러 가지 희한한 인상들이 겹쳤다.


목차를 훑어보면 재미있어 보이는 시집의 제목들이 눈에 띈다. <시적인 사물들>, <사물 연구>, <()>, <코기토 씨>, <폭풍의 에필로그> 등등.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은 <코기토 씨 (Pan Cogito)>(1974). 그 코기토가 맞나 싶어 원어를 찾아 보니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의 코기토가 맞다. ‘코기토 에르고 숨의 뜻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니까 이 시집의 제목은 나는 생각한다 씨가 된다. 혼자 방에 앉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되뇌는 데카르트는 감각기관들을 하나씩 잘라내고 자기 존재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생각으로만 남았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초승달 같은 검은 눈썹도, 목을 감싸고 있는 하얀 칼라도 필요 없다. 그는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한다. 헤르베르트는 이 생각-존재에게서 존재를 떼어내고 생각만 가져와 ‘~라고 불러버린다. 생각을 존재로 귀결시키는 논증은 나오지 않고 나는 생각한다라는 말은 어떤 아저씨가 되어 있다. (폴란드어로 ‘Pan’미스터를 뜻한다고 한다.)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순수 생각 달성

동구권의 사회주의리얼리즘을 겪은 헤르베르트 씨가 50살이 되던 해에 낸 시집인 <코기토 씨> <어머니>라는 시로 시작한다. 코기토 씨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태어나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내며 삶을 시작했다.



그가 떨어졌다 그녀 무릎에서 털실 꾸러미처럼. 서둘러 자신을 풀고 도망쳤다 무턱대고. 그녀가 붙잡았지 생의 시작을. 감았다 그것을 손가락에 친근한 반지처럼, 보호해주고 싶었다. 그가 굴러내렸다 가파른 경사를, 어떤 때는 올랐다 산들을.     ( <어머니> 부분)

 

어머니가 감던 털실에서 태어난 코기토 씨는 이상한 짓을 많이 한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뜯어보며 이마, , 귀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나는 졌다 내 얼굴과의 마상 시합에서그는 산초 판자를 닮은 왼쪽 다리와 틀린 기사’(돈키호테)를 닮은 오른쪽 다리, 그러니까 짝짝이 다리로 비틀거리며 세계를 꿰뚫고 간다. 아버지 생각, 누이 생각도 조금 하다가 미용실에서 많이 보는 여성지에 시도 써 본다. 그러다가 코기토 씨는 순수생각에 닿아 보려고 한다


코기토 씨와 순수 생각

 

시도한다 코기토 씨

순수 생각 달성을

최소한 잠들기 전까지

 

그러나 시도 바로 그 자체가

배고 있다 좌절의 싹을

 

하여 그가 접근중인 것이

생각이 물 같은 상태

거대하고 순수한 물

무심한 해변 바다 같은 그것일 때

 

주름 잡힌다 갑자기 그 바다

그리고 파도가 데려온다

양철 깡통

나무조각

누군가의 더부룩한 머리카락을

 

사실을 말하자면 코기토 씨가

전혀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떼어낼 수 없었다

자기 내면의 눈을

 

우편함에서

콧구멍에서 들어 있었다 바다 냄새가

귀뚜라미가 간지럽혔다 그의 귀를

그리고 그가 느꼈다 갈비뼈 아래 그녀 손 없음을

 

그는 평범했다 다른 이들처럼

비치했다 생각에

의자 팔걸이 위 손 살갗을

정다움의 골,

뺨에 난 그것을

 

어느 날

어느 훗날

차분할 때

그가 달하리라 돈오에

 

그리고 선사들이 이른 것처럼

텅 비고

굉장하리라



순수 생각만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몽상하곤 한다. 아프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념과 논리로 깨끗하게 정돈하여 살면 정말 순수할 것 같다. 코기토 씨도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처럼 들리기도 하는 순수 생각 달성은 아무런 조사도 달고 있지 않아 다림질한 듯 말끔하다. “거대하고 순수한 물같은 상태를 지향하는 순수 생각의 시도는 곧 좌절된다. 알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생각의 수면에는 파도가 일고 지저분하게 주름이 잡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도는 쓰레기들도 가져온다. 무엇이 코기토 씨의 순수 생각 달성을 방해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코기토 씨의 콧구멍이다. 코에 바람이 들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하기 어렵다. 우편함이 된 콧구멍은 바다 냄새를 막지 못하고 역시 우편함이 된 귀도 귀뚜라미에게 끌린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어떤 결핍을 느꼈다는 것이다. “순수 생각 달성에는 결핍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생각들이 쌓인 틈에는 칼날도 들어가지 못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의 물에 잡힌 주름들, 파도들은 그에게 갈비뼈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갈비 한 대와 다른 한 대 사이에는 골이 나 있다. “순수 생각 달성을 위해서는 이 골들도 바싹 붙여야 하지만 이미 밀려오기 시작한 파도는 갈비뼈의 골들을 더욱 벌려 놓고 코기토 씨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 손의 빈자리를 더욱 넓게 만든다.

 

코기토 씨의 시도는 비범했지만 그 역시 코와 귀를 가져서 평범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을 대하는 태도의 평범함을 이야기하는 연의 논리 구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7연을 언뜻 보면 의자 팔걸이 위에 손을 얹었다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코기토 씨는 의자 팔걸이 위에 얹은 손의 살갗을 생각에 얹는다. 사물과 살은 서로 포개져서 하나의 갈비뼈가 된다. 그리고 사물과 살이 만들어낸 골은 뺨에 난 주름, 정다움의 고랑으로 이어진다. 연속적으로 평평하게 깔려 있던 것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주름 잡히고 코기토 씨는 이 주름을 생각에 비치한다”. 이로써 그는 순수 생각 달성시도를 내팽개치고 평범한 다른 이들처럼 생각하기로 마음 먹는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 그러니까 선사(禪師)들처럼 그가 돈오(頓悟)에 이르지 않는 이상 생각의 주름을 펼 수 없다. 시의 마지막 두 행 텅 비고 / 굉장하리라는 아이러니하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되어 순수 생각 달성의 위업을 이룬다면 정말 어마어마하겠지만 그 장엄함은 텅 비어 있음의 어마어마함이다.

 


사기꾼 코기토

시집 <코기토 씨> 전체에 걸쳐 생각의 모티프는 변주된다. 코기토 씨의 생각들은 배고픈 왜가리들 모양으로 슬픔에 잠겨 낟알들을 찾는다. ( <코기토 씨와 생각들의 움직임>) 왜가리들은 낟알들이 보이지 않아 걷지 못한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왜가리들은 걷지 않는다 / ‘어디로가 없으니까”. 홀로 존재하는 생각들은 움직이지 못하고 접 붙을 건덕지들을 찾지만 생각들 사이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른 시에서 결국 코기토 씨는 생각들이 거하는 머리를 가만 놔두고 자신은 석회 시트 속으로갈라져 들어가 버린다. ( <코기토 씨의 소외>)


 

코기토 씨 되돌려놓는다

그 잠자는 머리를

섬세하게

남지 않도록

뺨에

지문이 말이다

     ( <코기토 씨의 소외> 부분)

 

폴란드어 원문의 어순을 그대로 살린 이 번역에는 긴장감이 있다. 단번에 읽히는 문장이었다면 코기토 씨의 섬세한 움직임에 주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코기토 씨는 배고픈 왜가리들에게 먹이를 찾아주지 않고 그대로 헐벗은 물가에 놓아두고 그것들이 사는 머리에 그 어떤 주름도, 지문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가 머리를 놓아주는 장면을 읽을 때는 꼬인 어순 때문에 최대한 생각을 활발하게 작동시켜야 한다. “코기토 씨의 소외라는 제목과 다르게 읽는 사람은 코기토 씨를동원해야 한다. 코기토 씨는 무엇을 위해 사라지면서 자신을 활용하게끔 하는 것일까?


 

사물들을 각자의 그 군왕다운 침묵에서 나오게 하려면, 속임수를 쓰거나, 죄를 지을밖에.

얼어붙은 목재 판벽널 녹인다 배반자의 노크 소리가,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 비명 지르지 다친 새처럼, 그리고 방화한 집 수다 떤다 말 많은 불의 언어, 헐떡이는 서사시 언어, 그것으로, 오랫동안 말이 없던 침대, , 커튼에 대해.      ( <사물들을 나오게 하려면> 전문)

 

코기토 씨는 텅 비고 굉장한순수 생각 상태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사물들에 달라붙어 어떻게 하면 그 사물들이 말을 할 수 있게 할지 머리를 쓴다. 그는 평평한 수면 같던 생각의 순수한 상태, 가만히 서서 멍 때리던 배고픈 왜가리들의 머리는 고스란히 놓아주었다. 코기토 씨는 속임수를 써서 사물들의 말없는 위엄을 깨부순다. 점잖은 사물들의 권위에 도전한 코기토 씨는 사물들을 수다쟁이로 만들고 헐떡이게만든다. 움직이지 않는 잠자는 머리는 가만히 놓아두고 코기토 씨는 비틀비틀 걸어 다니며 평평한 세계를 주름잡고 다닌다. 그의 깡패짓거리에 유리잔은 비명 지르고돈오의 경지에 이른 선사들도 화를 낼 것이다. 시인은 코기토 씨의 소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기도 한다. “코기토 씨 / 되고 싶다 자유의 중개자가” ( <코기토 씨의 게임>) 코기토 씨는 자신의 기지로 세계에 골을 내어 사물들이 자유롭게 변신하고 숨을 수 있는 구석들을 마련해 준다. 그는 순수 생각이 아닌 한갓 속임수가 되지만 이 속임수야말로 시의 궁극에 남는 것이다.



담대하라 이성이 너를 실망시킬 때 담대해야 한다

궁극에 가서는 그거 하나다
[...] 

그것들 필요로 하지 않는다 네 따스한 숨을

그것들 거기 있다 이 말 하기 위하여: 아무도 너를 위로하지 않을 것이다 

     (시 <코기토 씨가 보냄> 부분)

 


시에서 이성과 생각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말라르메처럼 시가 순수이념이 되도록 무한히 말들을 무두질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시인은 옳은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온몸으로 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걸까? 시집의 마지막 시는 코기토 씨가 보내는 전보다. 코기토 씨는 사물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도 않고 자신을 사물에 투사해서 사물이 그를 위해 말하게끔 하지도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존재의 부분이 빠지고 난 반토막으로 쓰는 시는 충직하라 가라라는 코기토 씨의 마지막 말처럼 사물들에게 꾸준히 시비를 거는 생각의 행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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