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리뷰입니다!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의 에너지

-김이듬, 히스테리아, 문학과지성사, 2014.

 

 

하얀/수유너머N 회원

 

 

                                                          

 

 

 김이듬 시인의 본명은 향라(香羅).  그녀는 차연(差延)이라는 뜻의 우리말을 찾다가, ‘바로 다음의’, ‘다시’, ‘거듭’, ‘두벌이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인 이듬을 시인의 이름으로 얻게 되었다. 2001포에지』에서 등단한 후, 별 모양의 얼룩(천년의 시작, 2005),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 2007),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사, 2011),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를 시집으로 출간하였다.

 

1.평범하다는 것과 상처의 재발견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쓰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재능 같은 것일까. 우리는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엄청난 자의식의 자장을 마주하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범인에게 없는 시인만의 능력, 그래서 시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일상과는 다른 어떤 곳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한다. 그런데 김이듬의 히스테리아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시가 존재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정서는 시인이 평범한 일상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먼저 시인이거나 화자인 가 스스로 "평범" 속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 여파난초를 더 주세요에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나만 특별하다는 생각을 버렸다/어마어마한 보균자들처럼/자기가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 모르는 채 사는 행운이 살짝 비껴갔을 뿐/발병했을 뿐(여파」중)

 

웃기지 마라 트라우마는 없다 비상구다 평소에는 앞머리로 커튼처럼 가리고 다니지만 기분 좋은 날엔 향기로운 동양란처럼 생긴 흉터를 밀고 내 마음의 정원으로 들어간다(난초를 더 주세요」중)

   

여파에서는 폐결핵의 증세를 다시 보이는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폐결핵의 증세를 보일 때마다 자신을 불쌍한 것이라 부르던 외할머니의 음성도, 피 한 방울조차 보이는 일조차도 싫었다. 내가 남들과 다르며, 그렇기에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자는 다시 발병한 폐결핵 앞에서 그것이 어떤 가능성이 살짝 비껴나고 다른 가능성이 도래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가능성의 흐름, 혹은 평범함의 흐름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평범의 흐름 속에서 병 역시 평범한 것이 되었듯 마음의 상처 역시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새로운 일상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변모한다. 난초를 더 주세요에서 화자는 이마에 상처가 있다. 이 상처는 어머니가 떠나던 날, 어머니를 따라 뛰쳐나갔다가 생긴 상처이다. 하지만 화자에게 상처는 트라우마가 아니며 어머니와 연결 짓는 통로, “내 마음의 정원이 된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보내던 시절이 있으며, 어머니의 자장가가 있다.

 

2.지금-여기라는 시공간이 직조해내는 아우라

 평범한 것과 상처에 대한 재발견은 소재적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히스테리아글쓰기 방법론으로 확장된. 아우라보다 아오리는 사과 파는 노파 옆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시작된다. 이 시는 노파의 일상을 그릴 듯 시작하다가 불현듯 신의주에 내려 애인을 만나는 꿈속으로 진입하다 잠을 깬다. 눈을 뜬 화자는 버스 안에서 굴러가는 아오리를 보면서 자신의 꿈이 노파와 아오리라는 일상성과 분리된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오히려 현실 자체가 꿈 없는 예외적 시간으로 지금-여기에서 시적인 것이 직조됨을 목격한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벤야민은 아우라’(Aura)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우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과 시간으로 짜인 특이한 직물로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인 현상이다.” 김이듬의 시세계는 이 아우라가 무엇인가를 묻거나, ‘아우라를 받아쓰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우라를 직조해내는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에 주목하며 동시에 그것이 직조해내는 아우라의 순간을 포착한다.

 

  나는 변하겠다/아무도 날 못 알아보게/…//손님에게만 화장실 열쇠를 주는 카페가 싫다/수만 마리 구더기가 되어 주방을 허옇게 뒤덮고 싶다///맹인 안마사의 부모는 젖소를 키웠다고 한다/형편이 어렵지 않았다는 뜻이겠지/나와 동갑에 미혼/3 때부터 나빠지기 시작한 시력으로 이젠 거의 형체만 어슴푸레 보인다는 말을/왜 내가 길게 들어주어야 하나/인생 고백이 싫다/시력 대신 다른 감각이 발달되었다는 말을 믿어주어야 하나//그의 눈앞에서 나는 손을 흔들어보고 혓바닥을 날름거려보지만 웃지 않는 사람/자신의 굽은 등을 어쩔 수 없는 /논산에서 순천 가는 길의 서른 개도 넘는 터널에 짜증낼 수 없는/언제나 캄캄할 낮과 대낮/들쭉날쭉하는 내가 싫다//이미 누군가 다 말해버렸다 쓸 게 없다/가슴이 아프다/작아서//금천동 사거리 금요일 저녁 봄날 /아무도 안 오는데 명성은 무슨/명성부동산 위층 명성지압원 간이침대에 엎드린 신세/잠들면 어딜 만질지 모르니까 정신 차리고 /시를 쓴다/(화분에 씨를 심고 뭐가 될지 모르는 씨앗을 심고 흙에다 눈물을 떨어뜨려요/눈물로만 물을 주겠어요 그런데 씨가 그러길 바랄까요, 까지 쓰는데)//뭐합니까 돌아누우세요/씨알도 안 먹힐 시도 되지 않고 /야하게 꾸며 나가고 싶은 저녁이 간다/지압사에게 나를 넘긴다/눈멀어가는 남자가 인생에 복수하듯 나를 때리고 비틀고 주무른다 이러다/변신은 못되고 병신 되는 거 아닐까-변신」중

 

 시 변신은 명성지압원에서 맹인 안마사에게 지압을 받는 화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김이듬 시의 묘미는 이 일상적인 것이 직조해내는 시적인 순간의 포착이다. 인생에 복수하듯 화자를 주무르는 맹인 안마사와 시도 되지 않는 시인의 겹침이 변신을 만들어낸다. 이질적 인물들이 보이지도 않고, 시도 안 되는 검은 터널에서 만나며 웅성거린다. 이 시는 맹인 안마사의 목소리도 아닌, 시인의 목소리도 아닌 이질적인 것들의 공명을 만들어낸다.

 

3.히스테리아-이질적인 것들과의 공명

 앞서 폐결핵이 보균자들의 가능성의 표식이듯, 상처가 잃어버린 일상성의 통로이듯, 히스테리아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히스테리아는 공명하는 이질적인 것들의 힘의 표출이다.

 

이 인간을 물어뜯고 싶다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널 물어뜯어 죽일 수 있다면 야 어딜 만져 야야 손저리 치워 곧 나는 찢어진다 짖어질 것 같다 발작하며 울부짖으려다 손으로 아랫배를 꽉 누른다 심호흡한다 만지지 마 제발 기대지 말라고 신경질 나게 왜 이래 팽팽해진 가죽을 찢고 여우든 늑대든 튀어나오려고 한다 피가 흐르는데 핏자국이 달무리처럼 푸른 시트로 번져가는데 본능이라니 보름달 때문이라니 조용히 해라 진리를 말하는 자여 진리를 알거든 너만 알고 있어라 더러운 인간들의 복음 주기적인 출혈과 복통 나는 멈추지 않는데 복잡해죽겠는데 안으로 안으로 들어오려는 인간들 나는 말이야 인사이더잖아 아웃사이더가 아냐 넌 자면서도 중얼거리네 갑작스런 출혈인데 피 흐르는데 반복적으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큰 문이 달린 세계 이동하다 반복적으로 멈추는 바퀴 바뀌지 않는 노선 벗어나야 하는데 나가야 하는데 대형 생리대가 필요해요 곯아떨어진 이 인간을 어떻게 하나 내 외투 안으로 손을 넣고 갈겨쓴 편지를 읽듯 잠꼬대까지 하는 이 죽을 놈을 한 방 갈기고 싶은데 이놈의 애인을 어떻게 하나 덥석 목덜미를 물고 뛰어내릴 수 있다면 갈기를 휘날리며 한밤의 철도 위를 내달릴 수 있다면 달이 뜬 붉은 해안으로 그 흐르는 모래사장 시원한 우물 옆으로 가서 너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히스테리아전문

 

 히스테리아는  시적화자가 다층적으로 읽히는 시이다. 표층적으로는 복잡한 지하철 속 곧 생리혈이 터질 것 같은 여자가 시적화자로 나타난다. 이 여자는 스스로의 몸의 목소리 뿐 아니라 자신과 접촉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또한 이 시의 화자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을 받아내는 지하철이 되기도 하다. 더불어 시집 전체의 텍스트들과 맞물릴 때, 시적화자 시인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하는 시인의 모습이 지하철 속 여자와 지하철과 겹치기 때문이다. 혼종적이면서도 그렇기에 곧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 이야말로 김이듬의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하는 글쓰기가 가닿은 지점이다.

 시인이 공명하는 이 이질적인 것들의 정체가 무엇일까. 파수에서 짐작하건데, 그것은 어둠이 오면 밝아지는 너/주변이 잠잠해지는 순간에 깨어나는 너/시련이나 고통을 환대하는 너늙고 병든 이민자와 같은 것, 낮의 시간에 추방당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시인은 쓸데없고 주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이 이질적인 것들을 낮의 시간, 질서의 시간으로부터 지킨다. 김이듬은 일상적인 것들 속에 도래하는, 이 이질적인 것들의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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