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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미나_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수유너머웹진 2019.04.25 13:44 조회 수 : 15

 

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김민경(문학세미나 회원. 설치미술 작가)

 

 

 

 

 

 

감각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다양한 존재 만들어낸다. 가령, 오늘 같이 봄바람이 이마를 스칠 때 단순히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는 게 아니라 리카르두 레이스라면 어떻게 느꼈을까, 꼽추 소녀라면 창가에 앉아 이 바람을 어떻게 감각하고 표현했을까 생각해본다. 감각을 내가느낀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독히 세밀하고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존재를 쪼개고 시점을 대입해 그 순간을 관찰한다. 페소아가 글쓰기이자 예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페소아의 창작물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어떤 이명은 위대한 예술가로 칭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녀와 같은 작고 연약한 존재를 창조하는 부분이었다. 꼽추 소녀가 나는 온통 눈물이에요라고 표현한 문장을 잊을 수 없는데,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나올 수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페소아의 이런 존재 창조를 통한 이성적인 감정 대입에서 1인칭 시점의 초월이 발생한다. 응시하는 대상을 향한 소실점 뒤바꾸기가 일어난다. 페소아는 응시하는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데 그 다시점은 회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선형원근법을 전복한다. 놀랍게도, 선형원근법의 위상을 처참히 몰락시키고 있는 동시대의 유동하는 이미지와 맞닿는 지점이다.

 

히토 슈타이얼 (Hito Steyerl) ,< 스크린의 추방자들 >

 

2017, 영국 아트리뷰 의 파워 미술인 100(The Power 100)’ 1위를 차지한 예술가이자 이론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그의 저서 <스크린의 추방자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형 원근법은 몰락했다.” 선형원근법이란 소실점이 한 개로 모이는 원근법으로 르네상스 시기 이후 회화의 기본 약속이자 법칙으로 작용한 투시법이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하학적인 기초 위에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시점을 체계화시킨 일종의 공식이다. “투시가 틀렸잖아.” 미술학원에서 정물화를 그릴 때,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지적인데 원근법은 관찰자를 한 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확고한 소실점이 생긴다. 때문에 선의 방향이 조금만 틀려도 어색하게 느껴져 틀린시점인지 아닌지 바로 드러난다.

 

선형 원근법은 수학적이고 평평하고 무한하며 등질적인 공간을 산출하고 이를 현실이라 가정한다. 아래는 히토 슈타이얼이 그의 저서에서 선형원근법의 몰락을 설명한 부분이다. 선형 원근법은 마치 이미지의 평면이 실제세계로 열린 창인 것 마냥, ‘외부에 대한 유사-자연적 조망의 환영을 창조한다. 선형 원근법으로 설정된 공간은 계산, 항해, 예측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것은 미래의 위험을 계산하여 예측하고 따라서 관리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계산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리는 안정된 바닥 위에 서서 편평하고도 사실 상당히 인공적인 지평선 상의 소실점을 주시하고 있는 관찰자를 상정할 수밖에 없다. 몇 백 년간 과학적 토대 위에서 권위를 지켜온 선형 원근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론에 기초하는 안정된 관찰자를 상정한다는 깊은 모순을 갖고 있다. 역동하는 동시대 이미지들은 이 예측 가능한-기하학적-시선을 가볍게 무너뜨린다.

 

동시대 실제 관찰자는 예측 불가능하다. 바닷가에 빨간 등대가 있고 그것을 바라본다고 가정해 보자. 현대 사회 관찰자는 이 붉은 등대를 넘실대는 배 위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흔들리는 케이블카 위에서 볼 수도 있으며, 달리는 차에서 목격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달리는 기차에서 영상으로 찍은 등대를 프랑스에 있는 친구에게 전송하여 그 친구가 저녁을 먹을 때 식탁에서 다시 꺼내볼 수도 있다. 빨간 등대는 액정 속 픽셀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복제되는 등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타난다.

 

동시대 이미지는 고정된 캔버스가 아닌, 이 화면에서 저 화면을 떠다닌다. 작은 픽셀로 쪼개지고 폴더나 휴지통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등 불안한 매체로 재현된다. 페소아가 만들어내는 존재들은 언어로 탄생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한 시점에 안착하지 않는 흔들리고 불안한 상태로 사물을 바라본다. 그의 상상된존재와 상상하는시점이 현시대 이미지 재현과 들어맞는 지점이다. 페소아는 다양한 이명을 만들어 고정되고 안정된 시점을 전복하고 넘실대며 흔들리는 관찰자를 창조했다. 시각 이미지를 바라보는 데에 원근법이 더 이상 권위를 내세우지 못하는 이 시대에, 페소아적 접근방법- 즉 새로운 시점과 존재를 창조해 거기에서부터 바라보기-가 한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예측해 본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매체가 등장함에 따라 시공간이 뒤섞여 재현되는 이 때, 우리가 페소아를 들여다보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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