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_문학.예술 :: 시, 문학, 예술, 영화 분야의 리뷰입니다!





잘 모르는 사이에()

- 박성준 『잘 모르는 사이』(문학과지성사, 2016) -

 




이 종 현 / 수유너머N 회원

 







이 시집은 박성준의 두 번째 시집이라고 한다. 첫 시집의 제목은 『몰아 쓴 일기』라고 한다. 그 시집에는 귀신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 시집에서 누이가 무당이 될 운명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의 이름도 들어봤고, 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던 것도 들어봤고, 그래서 그 시집을 사다 둔 적도 있고, 그가 어떤 외모라는 것도 들어봤지만 그와 나는 여전히 잘 모르는 사이다. 아예 그의 이름도 모르고 시도 안 읽어봤다면 그냥 모르는 사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주워들은 정보가 꽤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잘 모르는 사이다. (물론 그에게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겠지만) 그래서 다음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잘 모르는 그를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본다.



 

것들과 들것

 

불이 나간 전구를 오래 바라보고 있을 것

자판기 반환구에 이따금씩 주머니에 있던 동전들을 모두 털어둘 것

토끼에게 콘택트랜즈를 먹이로 줘볼 것

오랜 줄을 기다렸다 차례로 되었을 때 돌아서볼 것

아는 길을 물어물어 찾지 못해 헤매어볼 것

제 살 어딘가를 딴 곳인 듯 오래 깨물어 흔적을 만들 것

도통 알 길이 없는 외국어 강의를 경청해 볼 것

물어뜯은 손톱 대신 먼저 웃을 것

책상에게 물을 줘볼 것

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볼 것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둥둥 떠 다니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뜰채를 가지고 떠 다니는 것들을 낚아채 하나의 그물에 집어 넣어본다. 그렇게 것들은 하나의 그물에 들 것이 된다. 시인은 온갖 것들들것에 담아 실어 나른다. ‘들것에 담긴 것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 물론 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볼 것은 어느 일본영화에 나오듯 겨울숲을 향해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것처럼 간지러운 일이다. 차라리 물어뜯은 손톱 대신 먼저 웃을 것이 훨씬 즐겁다. 왜냐하면 나에게서 떨어져 나와 앞으로 모르는 사이가 될 손톱이 초승달 모양으로 웃기 전에 내가 선수 쳐서 웃어 보인다는 것은 매우 익살맞기 때문이다. 손톱을 이로 물어뜯을 때, 내 입은 이미 초승달모양으로 웃고 있다. 손톱의 뒤통수를 친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인가? 그런데 시인은 온갖 익살을 다 부린 뒤에 매우 진지하고 결연한 말을 내뱉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듯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시집의 전반부에서 예고된 바 있다.



 

안아주는 사람

 

저곳을 본다 저곳을 바라본다 저곳에서 말하는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 불이 꺼지고 말을 놓친다

 

꺼진 불 때문에 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해해야 한다 불에서 피가 나거나 불에서 다시 불이 붙더라도 저곳은 불이 있던 자리

 

처음 맡는 냄새가 있었다

장소를 잃어버렸다

 

저곳을 본다 저곳을 바라본다 저곳에서 말하는 사람이 피를 흘린다 내용을 알 수 없는 어둠이 이글거린다

 



이 시에서는 귀신이 시인에게 다녀간 흔적이 있다. 무엇이 있는지는 모를 저곳을 쳐다보니 말하는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 그가 누구인지는 도대체 알 수 없고 다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나마 불이 켜져 있다면 그의 말하고 있는 입과 혀를 볼 수는 있다. 불이 꺼진다면 말소리만 들리지 그 말소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불이 꺼지고화자가 그의 입에서 말을 놓칠 때’, 말소리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화자는 불이 꺼지고 말소리가 순수한 음성이 될 때, 오히려 이해하려고 한다. 지금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장소를 알 수 없지만 불이 꺼졌던 자리, 그러니까 불이 있던 자리를 기억하고 자신의 위치를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처음 맡는 냄새가 나타나 이해의 시도는 좌절되고 화자는 장소를 잃어버린다.

 

장소는 아무 것도 없는 빈 곳공간과는 다르게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이다. ‘처음 맡는 냄새가 있다는 점에서 화자가 있는 곳은 분명 어떤 장소이지만, 사실 이 곳은 공간이나 다름없다. 말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태어나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사건이 있어야 장소의 독특성이 확보될 텐데, 이곳은 오히려 생전 처음 맡는 냄새로 시공간에 대한 화자의 감각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처음 맡는 냄새라는 구체적 감각물은 지금까지 장소에 있던 화자를 추상적인 공간으로 날려 보낸다. 이 공간은 과연 시의 제목처럼 무언가를 품어주는 곳일까? 공간에 처한 화자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저곳을 바라보고 불이 있던 자리에서 내용을 알 수 없는 어둠을 본다. 아마 알 수 없는 사람은 이 어둠 속에 있을 것이고, 화자는 그의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자는 알 수 없는 이의 내용에 사로잡혀 있다. 아니, 그는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 안겨있다.

 

잘 모르는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확립된다. 말하던 사람이 있고, 불이 꺼졌고, 장소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는 이곳에 있고 모르는 사람은 저곳에 있다. 우리의 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는 관계. ‘잘 아는 사이가 함께 보낸 역사를 공유하고 의 사이에 있는 사물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한편, ‘잘 모르는 사이는 공유하는 역사도 없고 무엇이 사이를 메우는 지도 모른 채 덩그러니 내던져진 둘 아닐까? ‘뿐만 아니라 역시도 장소에서 공간으로 빠져들게 되는 관계가 아닐까? 장소의 상실 혹은 착각은 시 「토포필리아」에서도 주요 모티프다. 장소(topos)는 상실되고 헷갈리기 때문에 더욱 사랑해야(philia) 할 것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장소에 대한 사랑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시에서는 계속 엇갈리는 두 가지 발화가 이어진다. 한쪽은 사태와 장소를 확인하려 들고, 다른 한쪽은 이 확인하는 질문을 받아 모든 것을 엉뚱한 것으로 전화시킨다. 비가 오냐고 물으면 눈이 맑다고 대답하고, 벽이냐고 물으면 향기가 있었다 말하고, 백색이냐고 물으면 가지 않은 곳이라 말하고, 그래서 결국 상실이냐고 물으면 바다나 수증기라고 말한다. 가장 이상한 것은 대답하는 쪽이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 번에 걸친 죄송합니다이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아서 일거리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럴 리가 그럼 여기가 벽이로구나 아니요 향기가 있었습니다. 누가 왔다가 갔구나 아니요 잠시 버릇을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땅이 이동합니다

구름 대신에

(「토포필리아」 부분)

 



대답하는 쪽은 왜 죄송해 하는 것일까? 물어보는 쪽의 장소를 확인하려는 열망에 부응하지 못해서일까? 알 수 없다. 다만 반말로 하는 질문에 끝까지 공손함을 갖추어 대답하는 쪽은 그다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 같지 않다. 대답하는 쪽은 죄송하다고 여러 번 말하면서도 자기 갈 길을 간다. 그가 하는 말들은 모두 공간의 엄정함과 관련되어 있다. 물어보는 쪽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있었는지 확인하면서 장소를 사후적으로 구축하려고 한다면, 대답하는 쪽은 그러한 구축의 시도를 무화시킨다.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아무런 일거리가 없다.’ 다만 공간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 지금 이 곳을 구름이 지나간 자리, 즉 장소라고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어떤 곳을 장소라고 생각하는 버릇일 뿐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물이 가만히 있고, 공간 자체가 이동하면서 그 사물을 품었던 흔적들, 냄새들만 이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향기는 있지만 누가 다녀간 것은 아닌 상황이 가능하다. 그가 잠시 땅에서 폴짝 뛰어올라 발이 허공에 뜬 사이 땅이 움직여 그의 냄새를 싣고 떠나버렸을 수도 있다. 이때, 그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른 곳에 역시 가만히 있던 누군가가 땅의 움직임으로 배달된 향기를 처음 맡는 냄새로 받아들여 자기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 혼동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장소를 잃어버리고 공간으로 내던져진다. 둘은 잘 모르는 사이.






 



그런데 둘은 어떻게 잘 모르는 사이가 되었을까? 알 수 없다. 둘은 다만 저들도 잘 모르는 사이이런 일을 겪었다. 시인은 시집의 전반부에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힘껏 불러본 적이 있다. 그는 잘 모르는 사람이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히 모른다. 다만 그도 잘 모르는 사이에, 그의 목소리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불이 꺼진 공간 속의 소리로 가 닿을 수는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일을 한다. , 그는 이렇게 장소를 공간으로 몰고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든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외쳐보려고 책상에게 물을 줘’(시 「들것과 것들」) 보기도 한다. 기이한 행동은 다른 시에서도 반복된다.



 

호스를 끌어다가 책장에 물을 준다

이제 더는 자라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게 마음이다

목소리 속에 공터가 있다면

공터를 지나가는 벙어리 대신 말을 앓다가

두 눈 딱 감고 몇천 년쯤 말을 앓다가

[…]

호스를 끌어다가 책장에 물을 준다 우연을 끌어다가

마음에 시간을 준다

[…]

식욕이 돌았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다는 듯 낼름

책에서부터 혀를 내민 것들을 나는 가만히 만진다

(「저 바깥으로 향하는 한결 같은 피의 즐거움」 부분)

 



시 「들것과 것들」에서 마지막 문장인 모르는 사람을 향해 내 이름을 힘껏, 불러볼 것바로 앞 문장이 책상에게 물을 줘 볼 것이다. 마지막 문장과 그 앞 문장은 왜 이런 순서로 배치된 것일까? 두 문장의 연결고리를 위의 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앞의 시는 책상에 물을 주는 것이고, 위의 시는 책장에게 물을 준다는 점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둘 다 이제 더는 자라지 못할 것이기는 마찬가지다. 나무를 잘라 만든 두 가구들에 물을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무는 젖어서 썩게 되고 썩은 나무는 흙이 되어서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시인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희망을 조금은 갖고 있는 듯 하다. 대신 그는 진짜로 가구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연을 끌어다가/마음에 시간을 준다.’ 서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을 모아다 마음 속에서 천천히 뒤섞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온갖 것들이 자신이 머물고 있던 장소와 위치에서 한 번 폴짝 뛰어올라야 한다. 그 사이 지구가 자전하고 그 것들이 다시 땅에 발을 디딜 때, 이전에는 마주쳐 본 적 없는 향기들과 흔적들을 마주하게 된다. ‘잘 모르는 사이의 것들이 저들도 잘 모르는 사이에 생겨난다. 그래서 이제 그것들은 잘 모르는 사이에서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본다. 거대한 과정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시인은 모르는 사람에게 소리쳐 보기도 하고 책상에 물을 줘 보기도 한다.






 



그런데 우연을 끌어오는 일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고생스럽다고 해서 비장한 것도 아니다.



 

물구나무서기:

나는 우연을 이해해보려고 몸을 뒤집었다. 움직이지 않아도 더 빨리 뛸 수 있다. 심장은,

 

심장에서 나온 말이 지구를 들고 중력을 거부하고 신을 거부하고 두 발로 허공을 딛고 우주에서 힘이 가장 센 존재처럼 으르렁거릴 수 있게 한다. 마음이 안 가는 곳을 모두 거절할 수 있게 한다.

[…]

당신, 우연입니까? 우리 여기가 우연입니까?

아니요. 병든 사람입니다. 좀처럼 편해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물구나무서기: 온몸으로 하는 생각. 모르는 마음을 만나려고 더 큰 벌을 받는다.

 

그토록 그리워한 우연을 만나면

내 주먹이, 내 심장보다 조금은 더 컸으면 좋겠다.

   (시 「기계들의 나라」 부분)

 



시인은 잘 모르는 사이에서 안절부절하고 있다. 온몸으로 것들을 만나려는 병에 걸려 있다. 구름처럼 사뿐히 땅이 움직이던 시 「토포필리아」에서와는 다르게 시인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니라는 누군가의 질문에 말을 마세요. 더 지칠 뿐입니다.’라고 짜증을 와락 내기도 한다. 무한의 공간 속에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고 싶다는 포부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포부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는 사이에, 잘 모르는 사이의 것들끼리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잘 모르는 사이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은 한편으로는 잘 모르는 사이에() 생겨날, 또는 발견될 혀를 내민 것들을 만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온갖 것들을 다 만져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까봐 불안해 하는 듯 하다. 솔직한 불안이어서 매우 위안이 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 [전시리뷰] 피에르 위그, After ALife Ahead [4] 장한길 2017.06.27 1884
51 [영화리뷰] 도나 해러웨이 "Story Telling for Earthly Survival" [4] file compost 2017.06.07 1209
50 [전시리뷰] 수행의 간격- 통상적인 신체와 장소의 전복 [4] file 큰콩쥐 2017.11.12 437
49 문학세미나_가상현실보다 환상적인 포 읽기 수유너머웹진 2019.06.24 80
48 [영화리뷰] 80년대 오우삼의 영화들은 왜 그렇게 비장했나? (부제:오빠들 왜 그렜어요?) [2] file 마빈 2017.11.25 45
47 기형도 30주기 추모 기획세미나_기형도 시집 새로 읽기 수유너머웹진 2019.06.22 35
46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수유너머웹진 2019.03.01 34
45 [문학세미나] 나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페르난두 페소아 수유너머웹진 2019.04.25 26
44 [시읽는 목요일] 김혜순, <우리들의 음화陰畫> 수유너머웹진 2019.03.01 26
43 [비평집] 더 이상 정상참작 될 수 없는 고백 앞에서― 금은돌, 「그는 왜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려눕혔을까」를 읽고 ― 수유너머웹진 2019.04.25 24
42 미얀마 여행 후기 수유너머웹진 2019.03.22 22
41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수유너머웹진 2019.01.22 22
40 문학세미나_나를 발견하는 거울 -페르난두 페소아 수유너머웹진 2019.03.21 21
39 [시읽는 목요일] 처음 읽는 시집- 김혜순, <또 다른 별에서> 수유너머웹진 2019.01.03 18
38 문학세미나_동시대의 유동하는 시점과 페르난두 페소아 수유너머웹진 2019.04.25 15
37 [바깥의 문학] 재현의 정치성에서 상상의 정치성으로― 김시종과 김혜순의 시 수유너머웹진 2019.02.24 15
36 [바깥의 문학] 염려하는 주체와 언어의 형식―김복희와 안태운의 시 수유너머웹진 2019.01.06 15
35 [바깥의 문학] 주소 없는 편지― 2018년 신인들의 시적 감응에 대하여 수유너머웹진 2019.01.29 13
» [풍문으로 들은 시] 잘 모르는 사이에(서) - 박성준 『잘 모르는 사이』(문학과지성사, 2016) 수유너머웹진 2016.07.11 11
33 [풍문으로 들은 시] 인양에서 은유로, 은유에서 인양으로 - 백무산, 『폐허를 인양하다』(2015, 창비) 수유너머웹진 2016.05.13 10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