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리뷰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스타 루저워즈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문지용




 

 마블 스튜디오의 신작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마블 히어로 영화들보다 가깝게는 조스 웨던의 <세레니티>, 멀게는 <스타 워즈> 시리즈, 더욱 멀게는 고전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전통에 밀접하게 닿아 있다. 주인공들의 능력은 어벤져스 멤버들에 비교할 바가 못 되고, <아이언 맨 3>이나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보여주었던 일종의 포스트 9.11 정치학에 비견될 만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거대한 우주 세계의 아기자기한 묘사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험 활극, 그리고 유머다.

 


이 영화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제임스 건이다. 그는 <새벽의 저주>에서 각본을 맡아 묵직한 원작을 날렵하게 리메이크하는 솜씨를 보여주었고, 연출 데뷔작이자 B급 외계인 영화 <슬리더>에서 장르 공식과 기상천외한 유머 감각을 고루 섞어서 내놓은 바 있다. 마블이 거대 예산 블록버스터의 메가폰을 그에게 맡겼을 때, 세간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지만 결과는 대체로 성공적이다. 제임스 건은 장르의 스펙터클과 자신의 개성, 그것도 B급이고 어딘가 주인공들만큼이나 루저 기질이 빛나는 개성을 능숙하게 조합하였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일상적인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는 캐릭터를 이용한 심드렁한 말장난과 화려한 공중전 시퀀스, 병원에서의 오프닝 씬이나 그루트의 희생이 보여주는 짧고 굵은 드라마가 병존하고 있는, 일종의 영화적 태피스트리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주인공들은 그다지 대단한 캐릭터들이 아니다. 리더 격으로 행동하는 피터 퀼만 해도 전설의 무법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좀도둑에 불과하다. 다섯 명의 대원 가운데 두 명이 생체 실험의 결과로 태어난 말하는 너구리와 살아 있는 나무뿌리다. 아무리 보아도 번쩍거리는 금속 슈트를 입은 무기회사 재벌, 전쟁 영웅, 고대의 신으로 이루어진 어벤져스와는 출발선이 다르다. 이들은 신체적인 능력으로 어벤져스에 함량 미달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슬랩스틱에 가까운 단순 반복적이고 (“나는 그루트다.”)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은 물론이고,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캐릭터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이미 퀼의 입을 빌려 스스로를 루저로 묘사한다. 제임스 건은 캐릭터들의 찌질함과 상호 간의 불신을 전면에 조명한 이후, 용케 임무를 수행하고 팀워크가 발생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드라마와 코미디를 영리하게 촉진한다.

 

   


사실 영화의 전반적인 특징이자 매력도 바로 조합의 능력에 있다. 조합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자체로 대단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다. 전체적인 구도와 공중전, 다양한 우주 공간 설정은 <스타 워즈> 시리즈의 자장에 놓여 있다. 평화적인 잔다르 족은 반군, 흉폭한 로난의 크리 족은 제국군에 해당된다고 할까. 인피니티 스톤과 악역 로난은 전형적인 마블 히어로 영화의 장치들로서, 특히 로난은 캐릭터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얄팍하고 텅 비어 있는 악당이다(오히려 돋보이는 것은 그의 오른팔 네뷸라다). 액션에서도 박력 있거나 아주 날카로운 느낌은 없고, 플롯 역시 예상 가능한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사소한 디테일과 소품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전투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 요소들을 활력 있게 조합한다. 캐스팅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용한다. 단역으로 출연하는 글렌 클로즈와 베니치오 델 토로를 제외하면 아주 이름값 높은 배우들은 없지만, 각각 고른 개성과 화학 작용을 보여준다. 조이 살다나가 변함없이 보여주는 전사의 기품은 영화에 무게를 더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여름철 블록버스터에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요소들을 충족시키는 것과 더불어 감독 고유의 감성도 적절히 녹아든 성공적인 오락 영화다. 이러한 양질의 오락물들을 정기적으로 공급하여 상업적으로 고수익을 내는 할리우드의 역량은 때로는 경계의 대상이지만, 어찌 됐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벤져스> 이후 마블 스튜디오 영화들의 전반적인 품질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3 [전시리뷰] 피에르 위그, After ALife Ahead [4] 장한길 2017.06.27 2735
162 [책리뷰]바흐친에 접근하는 세 가지 키워드 [2] file Edie 2017.09.13 1625
161 [영화리뷰] 도나 해러웨이 "Story Telling for Earthly Survival" [4] file compost 2017.06.07 1511
160 [탐방기]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1 [5] file 큰콩쥐 2017.09.28 1394
159 [책리뷰] 공동의 슬픔 -바오 닌, 전쟁의 슬픔을 읽고 file 수유너머104 2017.12.21 1390
158 [책리뷰]삼켜야했던 평화의 언어⎯병역거부가 말했던 것, 말하지 못했던 것 file Edie 2017.06.30 917
157 [강연리뷰]그들의 1960년대, 대안적 앎의 공간으로서의 전공투1 [2] file 큰콩쥐 2017.10.25 871
156 [전시리뷰] 수행의 간격- 통상적인 신체와 장소의 전복 [5] file 큰콩쥐 2017.11.12 661
155 [강연리뷰]그들의 1960년대, 대안적 앎의 공간으로서의 전공투2 [7] file 큰콩쥐 2017.10.26 574
154 [재춘언니] 영화리뷰1. 재춘언니라는 사건 [3] file oracle 2022.03.27 550
153 [과학기술리뷰] 린 마굴리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리뷰 수유너머웹진 2019.04.26 502
152 [영화리뷰] 시 읽는 시간 [1] file lllll 2021.03.19 449
151 [탐방기] 공간탐방기 - 서문 file 장한길 2017.11.06 442
150 [영화리뷰] 시 읽는 시간( 2021. 3. 25. 개봉) file 효영 2021.03.08 411
149 [탐방기] 냉전의 인질로 붙들린 사람들의 이야기2 file 큰콩쥐 2017.10.13 401
148 [풍문으로 들은 시] 지옥에서의 한 철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수유너머웹진 2015.02.27 319
147 [과학기술리뷰] 책에는 진리가 없다 수유너머웹진 2019.06.26 298
146 [재춘언니] 영화리뷰3. 그는 법안으로 들어가기를 멈추었나 [1] file oracle 2022.04.01 296
145 [재춘언니] 영화리뷰2. 13년-4464일, 흐르는 시간처럼 [1] file oracle 2022.03.29 273
144 [비평리뷰]금은돌의 예술산책 효영 2021.04.26 27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