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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는 근간 예정인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 원고 중 일부를 출간 전에 미리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2장 구미호와 인간의 대결, 혹은 변신술의 유형들





이진경



다섯 번째 부분에 이어 계속 (첫 번째 부분 보기 / 두 번째 부분 보기 / 세 번째 부분 보기 / 네 번째 부분 보기 / 다섯 번째 부분 보기)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홍길동전 / 사진출처: By Heo Gyun (d. 1618) - [1],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052293






8. 도구적 도술: <홍길동전>


전우치의 도술과 홍길동의 도술이 확연히 다름을 보여주는 것은, 전우치와 달리 홍길동은 살생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점입니다. 전우치는 자신을 죽이려던 적대자나 자신이 징치해야 했던 도적떼의 우두머리조차 ‘살생은 하지 않으리라’는 원칙대로 죽이지 않습니다. 반면 홍길동은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자객 특재를 즉각 죽여버릴 뿐 아니라, 공모자인 관상녀를 일부러 찾아가 칼로 베어버립니다.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해 초란마저 죽이려고 하다가 상공이 사랑하심을 깨닫고 칼을 던”져버립니다(25). 분노와 원한 때문일까요? 그는 살생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습니다. 이후 활빈당을 만들어 관청을 털 때에도 탐관오리의 목을 벱니다. 나중에 조선을 떠나 남경땅 제도라는 섬에 들어갔을 때, 망당산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만난 울동이라는 ‘짐승’도, 죽일 이유가 전혀 없었건만 모두 죽이고 그들이 사는 곳까지 찾아가 몰살시킵니다.


홍길동 역시 전우치처럼 분신술 내지 둔갑술을 써서, 팔도에 동시에 나타나 난리를 부립니다. 임금이 부친과 형을 압박하자 자수하여 잡혀갈 때 팔도에서 모두 잡혀 여덟 명이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다툽니다. 이는 상황 자체가 매우 웃기는 것이기에 전우치의 도술처럼 유희적으로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실은 그의 도술에 유희적 성격은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상황을 즐기고 권력자를 우롱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 임금에게 알리기 위한 ‘과시적’인 목적에서였습니다. “무뢰배들과 함께 관아를 치고 조정을 시끄럽게 한 것은 신의 이름을 드러내어 전하께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홍길동전>, 46) 따라서 그의 도술에는 장난스런 면도 없고 웃음도 없습니다. 명확한 목적을 갖고, 속이거나 공격합니다.


홍길동이 이리 난리를 피우고 다니는 이유는 알다시피 서자라는 신분으로 인해 출세할 수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홍길동은 이를 반복하여 말합니다. 가령 병조판서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임금이 받아준 뒤 곧 사라졌다가, 어느날 임금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신이 전하를 받들어 만세를 모시려 하였사오나, 한갓 천비의 소생인지라 문과에 급제해도 옥당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요, 무과에 급제해도 선전관에 천거되지 못할 것이니, 이런 까닭에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팔방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46) 


이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첩실의 자식이라는 처지, 다시 말해 양반의 자식이지만 양반의 자식 대우를 받지 못하는 처지, 달리 말하면 ‘자리 없는 자’의 자리에 있기에 홍길동은 국가와 가족, 아버지와 임금에 불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그가 선 자리가 통치에 반하여 자리를 이탈하고자 욕망하는 ‘반국가적’ 지점임을 뜻합니다. 거기에서 ‘무뢰배들과 함께 관아를 치고 조정을 시끄럽게’ 했으니, 얼핏 보면 반국가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홍길동이 민중의 반란이란 저항을 다른 작품이라 보는 해석은 모두 이로 인한 것일 겁니다. 그러나 “요신 홍길동은 아무리 해도 잡지 못할 것이나, 병조판서로 임명하시면 잡힐 것입니다.”라고 스스로 사대문에 방을 써 붙이고, 임금이 병조판서에 임명하겠다고 하자 얼른 궁궐 안으로 들어가 임금에게 절을 하곤, 이제 사고 안 치고 나라를 떠나겠다고 한 것을 보면, 정말 그런 것이었나 의심하게 됩니다. 자신을 가둔 신분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지만, 그것이 그런 신분제에 기초한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는지, 그리고 군주의 권력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했지만 그것이 정말 군주의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이었는지 의문입니다.[각주:1] 


홍길동은 국가나 제도에 의해 배제된 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고를 치고 난리를 부린 것이며, 임금이 포섭하고자 했을 때 얼른 들어가 절하곤 충정을 말한다는 점에서, 배제된 상태에서도 이미 사실은 국가에 충분히 포섭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그는 천비 소생의 서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달라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치안’과 대비되는 ‘정치’에 속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에도 홍길동은 임금이란 통치자에게 등을 돌린 게 아니라 버림받은 처지의 원한을 호소하며 포섭해주길 욕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섭 이전에 이미 포섭된 자입니다. 


따라서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술 또한 국가나 통치에 반하여 사용되는 게 아니라 그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의 소망이라는 ‘병조판서’란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는 최고 지위 아닙니까! 따라서 그의 도술은 반국가적 도술이 아니라 마이너스 형태의 국가적 도술이고, 반통치적 기술이 아니라 음각적(陰刻的) 형태의 통치적 도술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사용된 홍길동의 도술이기에 거기엔 유희적 성격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는 원한을 가진 자의 무거운 울분과 성공을 추구하는 자의 냉혹한 합목적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피와 죽음에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 명의 홍길동을 만들어 ‘장난’을 친 것도 장난 아닌 ‘과시’라는 별개의 목적이 있었던 것이니, 유희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합목적적 ‘이벤트’였을 뿐입니다. 모든 도술의 사용이나 무력의 동원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그것을 얻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도구적’ 도술이었습니다.


변신술이 동반하게 마련인 속임수의 성격에서도 전우치와 홍길동은 같지 않습니다. 전우치가 변신술로 임금이나 관리들을 속일 때, 거기에는 유희적 성격과 더불어 ‘배신적’ 성격이 있습니다. 임금에 대한 배신, 충성이라는 도덕에 대한 배신, 통치자가 제시하는 선이나 ‘의로움’이란 가치에 대한 배신. 그가 사용하는 변신술의 속임수란 이런 배신적인 행위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기에 ‘기만적’이라기보다는 ‘배신적’입니다. 반면 홍길동의 변신술은, 그가 임금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과시적이고 선전적인 목적을 갖는 것이었으며, 임금과 대면하여 비난받을 때조차 그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코 배신적이지 않습니다. 그가 사용한 분신술의 속임수는 오히려 임금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것이란 점에서, 임금을 향한 ‘충실성’ 안에 있고, 자신의 진정한 소망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란 점에서 ‘진실성’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충실성은 기존의 것을 벗어나지 못하는 충실성이고, 이 진실성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잊지 못하는 진실성입니다. 새로운 것을 꿈꾸지 못하는 충실성이고, 결여된 것에 사로잡힌 진실성입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부호형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원망하지만 아버지나 형에 대한 도덕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가족적인 가치를 등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렇게 사고를 쳤으면서도 아버지와 형에게 충실합니다. 심지어 조선을 벗어나 제도로 날아간 뒤에도 부친의 죽음을 짐작하고 미리 묘자리를 만들곤 아버지의 시신을 모시러 조선에 들어갑니다. 상제인 형을 보고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 단지 의례적인 언사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자 처음에는 마음을 잘못 먹고 폐단을 일으키기를 일삼았더니, 아버님과 형이 화를 당하실까 염려하여 조선 땅을 떠나,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풍수지리 보는 술법을 배워 살아왔습니다.”(55) 





  1.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12장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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