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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는 근간 예정인 이진경 선생님의 [파격의 고전] 원고 중 일부를 출간 전에 미리 보내드리는 코너입니다.



<이진경의 "파격의 고전">






2장 구미호와 인간의 대결, 혹은 변신술의 유형들





이진경






1. 두 가지 변신술


변신술은 확고하다고 믿는 형태를 와해시키고, 인간과 동물 같은 뚜렷한 범주의 경계를 넘는 기술입니다. 가령 전우치가 호랑이로 변신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는 것이고, 홍길동이 분신들을 만들어 휘젓고 다니는 것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입니다. 경계를 넘나들기에 변신은 역으로 익숙한 범주들로 이루어진 경계들을 주목하게 하고 문제화하게 합니다. 넘나드는 방식으로 경계의 이편과 저편에 있는 것들이 만나게 하고, 그것들이 맺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변신술이 아니어도 고전 소설에서는 변신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가령 <김원전>에서는 수박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아이가 열 살 때 멀쩡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연꽃 속에 들어앉은 심청 역시 일종의 변신한 존재고, <이생규장전>에서 죽은 뒤 다시 남편 앞에 나타난 최낭자 또한 변신한 존재입니다. <박씨부인전>에서 박씨부인은 나중에 끔찍하게 못 생긴 얼굴의 허물을 벗고 미인으로 변신합니다. ‘변신’이란 개념을 이런 식으로 다룬다면 사실 소설은 대부분 변신에 대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릅니다.[각주:1] 서사의 진행과정 속에서 심신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소설에서 진행된 과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다른 이들과 접촉하여 사랑하거나 대결하면서 변신하지 않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로 다루려는 변신은 ‘합목적적’으로 사용되는 기술로서, 종종 ‘도술’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변신의 기술입니다. 이는 재현적인 합리성과 과학적인 합리성을 양식으로 하는 요즘의 소설에선 그다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 고전 소설에선 이런 기술이 가령 『창선감의록』이나 『옥루몽』처럼, 변신술이나 도술이 소설의 중심에 있지 않는 작품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고전소설의 변신에서 가장 일차적인 것은 인간과 동물, 혹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 간의 경계와 관련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동물의 일종이기에, 역으로 어디서든 동물의 세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세계의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내고자 합니다. 그 경계를 침범하는 것들에 대한 우려와 근심 속에서, 그걸 흐리고 침투하는 것들을 밀쳐내고 배제하고자 합니다. 이는 변신능력에 대한 부정적 서술로 표현됩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그런 변신능력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빌어 고정된 벽이나 담을, 경계선을 넘기를 욕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변신능력이란 두려움과 선망, 거부감과 매혹의 상반되는 감응을 동반합니다. 




변신은 경계를 흐린다. 

인간이 동물이 되거나(늑대인간), 동물이 인간이 되거나(구미호). 후자의 변신은 통상 제압의 대상이 된다.

사진 출처: By 미상 - From cyberx.liful.com,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03028

사진출처(울프맨):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0682



변신술이나 도술은 인간의 통상적인 힘을 넘어선 능력이기에 다른 인간들을 능가하는 자리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는 확인 위에서, 동물적 힘을 제압하여 인간계 내부로 침투하지 못하게 저지할 수 있는 통제력을 확보한 위에서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변신술을 쓰는 인간은 무엇보다 변신술을 쓰는 동물과 겨루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승리함으로써 평범한 인간들 위에 서게 됩니다. 그런 능력을 자신의 손 안에 장악한 자는 인간세계의 통치자가 됩니다.


그러나 통치자 자신이 변신술을 사용하면, 그의 위치 자체가 불안정해집니다. 동물인지 인간인지,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인지 단일하게 확정될 수 없다면,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는 통치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동물적 변신술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강력한 변신능력을 가진 자를 휘하에 거느리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또한 그것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인간세계를 통치하는 권력은, ‘정상상태’를 형성하는 그 경계선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은 그것을 넘나들 수 잇는 ‘예외상태’ 속에 있습니다. 정상상태를 규정하는 예외상태인 셈입니다. 아감벤이라면 여기서 다시 ‘주권’의 본질을 보려할 지도 모릅니다.[각주:2] 변신술을 정치학적 주권의 개념에 직접 연결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 되겠지만, 그것이 정상과 예외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경계선 상에 있으며, 동물세계 및 인간세계에 대한 통치자가 출현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음은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하겠습니다. 많은 건국신화들이 동물과 인간이 섞이는 곳을 발생지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신술이 인간과 동물의 경계에서 출현하는 한, 그것은 인간만의 독점물이 될 순 없습니다. 변신하는 동물이 없다면, 그를 제압하는 권력자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것은 인간세계를 위협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가령 흔히 등장하는 ‘구미호’는 인간의 통제와 반대의 방향에서 오는 이 힘을 표상하는 존재입니다. 거기서 인간은 구미호와 대결해야 하고 그를 제압해 이겨내야 합니다. 통치자 아닌 이가 사용하는 변신술이 종종 통치자를 위협하는 어떤 힘으로 사용되는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전우치도, 홍길동도 그랬습니다. 변신능력을 갖춘 전우치가 가장 먼저 그걸 써먹는 것은 임금에게였습니다. 홍길동의 변신능력이 겨낭했던 일관된 상대도 임금이었습니다. 변신능력으로 군주를 농락했던 홍길동은, 결국 다른 지역을 찾아가 스스로 군주가 됩니다. 반면 전우치는 통치자의 이념을 대변하는 인물인 서화담에 의해 포획되고 깊은 산중으로 유폐됩니다. 이는 홍길동의 변신술이 인간적인 것이었다면, 전우치의 그것은 동물적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상반되는 성격의 변신술이 있음을 우선 강조해야 합니다. 통치자의 수중에 들어간 변신술과 통치자를 위협하는 변신술, 그것은 또한 인간의 세계 안에 있는 변신술과 그것을 교란하는 변신술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변신술, 특히 동물과 인간이 ‘섞이는’ 양상의 변신술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지점에서 양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고리를 함축합니다. 이는 인간 세계의 이런저런 양상들을 다루기 이전에, 인간세계와 그것의 외부를 분리하는 구획선을 그리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기 전에, 변신술을 다루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변신의 문제는 인간세계의 발생적 ‘기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변신술은 이후 다른 경계선 상에서 작동하는 경우에도, 이 발생적 기원과 관계됩니다. 이러한 기원에서 멀어지면서, 변신술은 점차 동물적 성격을 벗어나게 됩니다. 『박씨부인전』은 그런 동물적 기원이 완전히 사라진 ‘도술’을 사용합니다. 국가적 성격의 도술입니다. 이는 그 변신술이나 ‘도술’의 의미나 위상을 동물과 인간의 경계선으로부터의 거리를 통해 측정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용와 구미호는 무엇을 두고 싸우나?: <왕수재전>


변신이란 자기와 다른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됨으로써 자기와 다른 것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입니다.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확고하다고 보이던 세계에 생각하지 못한 변화의 선을 그리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것은 그런 경계선에 의해 만들어진 구별을 흐리는 것이고, 그런 구별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인간의 지각을 흐려놓고 혼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변신은 종종 ‘속임수’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구미호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은 고전 소설이나 설화, 민담에 아주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데, 대부분 인간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홍길동이 체포를 피하기 위해 변신을 하는 것도, 전우치가 임금 앞에서 신선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황금기둥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구미호는 어떨까요? 구미호는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변신 동물입니다. 그의 변신은 대개, 아니 언제나 인간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구미호는 변신의 위험을 알려주기 위해 불러내어지는 동물입니다. 숲속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만났다면, 일단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음식을 얻어먹든, 같이 사랑을 나누든, 대개 결말은 구미호라는 정체가 드러나는 것으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의 변신술은 언제나 인간을 속이려는 목적으로 갖고 있다고 간주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구미호와 용왕의 아들 간의 장대한 대결을 다루는 <왕수재전>은[각주:3]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변신술, 그런 변신술이 놓여 있는 경계지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아주 좋은 텍스트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왕수재는 고려 왕조를 세운 왕건의 아버지라고 합니다(‘수재’는 이름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높여 부르는 일반명사입니다. 이생, 허생 하듯이 ‘왕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요약하고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후삼국시대 마한(후백제)에서 태어난 왕수재는 어려서부터 힘도 좋고 영웅의 기상이 있었는 인물이었는데, 특히 활을 잘 쏘았습니다. 남경에 파견할 외교사절단에 자천하여 들어가는데, 가던 중 바다에서 배가 움직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인근의 섬에 버려집니다. 왕수재는 자신을 섬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배를 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서해 용왕의 아들을 자처하는 노인을 만납니다. 그 섬에서 산 것만 천년이 넘었다는 노인은 하늘에 오를 날이 몇 년 남았건만 3천년을 묵은 구미호가 자기 집을 빼앗으려 합니다. 그와 닷새째 싸우고 있지만 물리치지 못했고, 싸움이 너무 힘들어 수재의 활솜씨를 빌기 위해 불러들였다는 것입니다. 구미호와 싸우는 도중에 부탁대로 활을 쏘려 하지만, 구미호 주변의 음악이 너무 청아하고 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여 활을 쏘지 못합니다. 안 쏘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노인의 협박과 딸을 주겠다는 회유에, 둘이 다시 싸우는 사이에 부탁대로 활을 쏘아 구미호를 죽입니다. 그 딸을 데리고 노인이 준 검은 소를 타고 육지에 돌아온 그는, 농사든 장사든 모두 잘 되어 부자가 되며 ‘나라의 주인이 될 거’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딸을 하나 더 낳지만, 그 뒤론 아내의 모습이 초췌해지고 몸이 약해집니다. 이유를 묻자 아내는 자신이 원래 “용의 자손이기 때문에 때때로 변신하여 기운을 펼쳐야 하는데, 낭군을 따라 나온 뒤론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병이 되어 죽을 날이 임박했으니 슬프기 그지없”다고 말합니다(184). 하여, 변신한 모습으로 있으라고 하니, 부부간에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며, 평소엔 변신한 상태로 있을 수 있도록 출입할 때 먼저 알려주고 들어오라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급한 일로 알리지 않은 채 들어갑니다. 황룡으로 변신해 있던 모습을 본 왕수재는 기겁을 했고, 이후 정이 사라져 멀리하게 됩니다. 변신한 모습에 겁을 먹어 정이 사라졌음을 안 아내는 딸을 데리고 황룡으로 변신하여 떠났고, 아들은 남아서 고려의 태조가 됩니다.



일본의 백면금모구미호. 구미호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통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사진출처: By Katsushika Hokusai (葛飾北斎) - scanned from ISBN 4-3360-4636-0.,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4257326



앞서 구미호의 변신술이 속임수인가 질문하며 시작했었지요? 구미호와 싸고 있는 노인은 그 섬에서 천년을 넘게 살았으며, 수행을 하여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노인은 자신의 집을 빼앗으러 오는 구미호가 힘에 버거워 왕수재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런데 구름을 타고 온, 인간으로 변신한 구미호에게 화살을 쏘려 하자, 그냥은 “한 번에 백 발의 화살을 쏜다한들 한 손으로 다 막아낼 테니 소용없”다고 저지합니다(<왕수재전>, 『낯선 세계로의 여행』, 176).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입니까! 더욱이 눈속임을 하며 피하는 게 아니라, 백발의 화살을 한 손으로 막아내는 것이니, 이를 두고 속임수라 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미호의 변신은 인간을 속이려는 것으로 언제나 간주됩니다.


용왕의 아들인 노인의 변신은 어떨까요? 그나 그 노인의 딸이 인간으로 변신한 채 등장하지만, 이를 두고 ‘인간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왕수재는 그 딸과 결혼하여 애까지 낳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딸은 용으로 변신을 하지 못해서 병이 난다고 말하며, 왕수재가 없을 때는 용의 모습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은 평소에 인간 아닌 것이 인간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음을 뜻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속임수라 하지 않습니다. 이 불공평해 보이는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이 작품에서 구미호의 도술은 인간세계와는 다른, 선계의 고귀한 감응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리가 청아한 것이 인간 세계의 음악과는 달랐다.”(<왕수재전>, 175) 용왕 아들을 자처하는 노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왕수재가 감히 활을 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속임수의 느낌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왜 쏘지 않았느냐는 노인의 말에 왕수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얼굴을 보니 이는 사람이지 결코 여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178) 이 말에 노인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라며 한편으론 협박하고, 다른 한편으론 자기 딸을 아내로 삼게 해 주겠다며 회유합니다(178).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입니까!


아무 인간이나 변신하는 게 아니듯, 아무 여우나 변신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능력이 있는 여우만이 변신합니다. 변신하는 구미호, 그는 대단히 탁월한 능력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변신은 애초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기에, 쉽게 속임수와 혼동됩니다. 그러나 변신 자체가 속임수는 아닙니다. 속이려는 목적이 있는 변신만을 속임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속임수란 변신 자체에 속하는 게 아니라 변신의 특정한 ‘목적’에 속한다고 해야 합니다. 용왕 아들의 집을 뺏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나타나는 구미호는 용왕 아들을 속인 게 아니며, 속이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용왕 아들은 구미호의 ‘정체’를 알고 있으며, 그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구미호 역시 알고 있으니까요. 그는 노인과 싸우기 위해, 싸워서 집을 빼앗기 위해 그에 유리한 모습으로, 혹은 그 집에 어울리는 멋진 모습으로 변신하여 다가오는 것입니다. 


심지어 속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을 때조차도 변신은 단지 속임수만은 아닙니다. 신체를 바꾸는 것은 능력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능력이고, 다른 신체로 자신을 변용시키는 능력입니다. 변신이란 멀쩡한 얼굴을 거짓 가면으로 가리는 게 아니라, 얼굴 자체를 바꾸고 신체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니체가 “가면이 바로 얼굴”이라고 할 때의 그 가면이고, 그 얼굴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필요한 얼굴을 만드는 것이 변신입니다. 속임수란 그 능력이 사용되는 특정한 경우를 지칭할 뿐입니다. 가면 뒤에 얼굴이 있다고 해도, 그 얼굴은 가면 쓰기 이전의 얼굴이 아니며, 변신의 가면을 만들지 못하던 때의 그 얼굴이 아닙니다. 


고전소설에서 변신술은 도술의 일종으로 다루어집니다. <홍길동전>이나 <전우치전>은 그런 도술을 사용하는 특별한 능력자를 전면에 내세워, 행하고 싶은 것, 말하고 싶은 것을 그 도술을 이용해 행하고 말합니다. 약간 다른 양상의 도술이지만, <박씨부인전> 역시 그런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는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도술이 단지 변신술만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천문을 읽는 기술, 점을 치고 부적을 사용하는 도술, 비와 바람을 부르는 기술, 귀신을 부르거나 물리치는 기술은 고전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술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한 능력의 사용입니다. 






  1. 이상일(1994)이나 최성욱(1994)은 변신의 범위를 정신적 변화까지 포함시키는데, 문학작품이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람이 변하는 것을 다루는 것인 한, 변신 아닌 것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변신이란 개념이 어떤 현상을 특정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무효화됩니다. [본문으로]
  2. 칼 슈미트는 주권이란 예외상태를 선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는데(Schmitt, 2010), 이를 따라 아감벤은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통해 정상상태를 규정하고 유지하는 자라고 말합니다(Agamben, 2008). [본문으로]
  3. 정확한 제목은 <왕수재취득용녀설(王秀才娶得龍女設)>입니다. 이하에서 <왕수재전>를 비롯한 한문소설은 박희병이 교감하여 정본화한 작업(박희병, 2007)에 기초하여, 박희병·정길수가 편역하여 돌베개에서 출간한 번역본을 사용하며, 그 번역본에 없는 것에 한해 다른 번역본을 이용하겠습니다. 교감된 작품의 한문원문은 박희병의 『한국한문소설 교합구해』(소명출판, 2007, 제2판)에 실려 있고, 번역된 작품의 인용은 뒤에 참고문헌에 표시된 책의 쪽수로 표시합니다. 이 번역본에 없는 것은 별도의 주로 표시하겠습니다. 번역본에는 제목이 <왕수재>로 되어있으나, 전(傳)의 형식을 취한 소설이기에 이름인 ‘왕수재’와 구별하기 위해, 다른 작품들을 명명하는 방식을 따라 <왕수재전>이라고 표시하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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