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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월한 익살꾼(Humorist), 마조히스트.

                그는 우리를 어떻게 웃기는가?

질 들뢰즈, 『매저키즘(Masochism)』( 이강훈 역, 인간사랑)

 

 

 

박 남 희/수유너머N 회원

 

 

 

 

  타인의 책장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꽤 흥미롭다. 첫째,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둘째,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나 철저하게 코너별로 구분된 대형서점보다, 책들이 구분 없이 이리저리 섞여 꽂혀있는 책장에서 눈에 띄는 책을 발견할 확률이 경험상 더 높았다. 그날도 그렇게 연구실 책장들을 이리저리 잠깐 둘러보다가 계속 눈길이 가는 책이 있었다. 질 들뢰즈의 『매저키즘』이었는데, 한 번 펼쳐보았더니 난해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렇게 잠시 잊고 있다가 마침 친구들과 함께 『매저키즘』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언젠가 들뢰즈가 자신의 책을 (물론 『천의 고원』 이었으나) 오디오에 음반 걸어 놓듯이 읽어달라고 했었다는데, 마음 편히 선율을 따라가듯이 읽어보기로 했다.

 

 

들뢰즈와 매저키즘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의 결별

 

  들뢰즈는 묻는다. 마조히즘과 사디즘은 ‘사도마조히즘’이라는 말처럼 한 쌍으로 있는 걸까? 얼핏 보기에 때리는 사디스트와 맞는 마조히스트는 완벽한 한 쌍처럼 보인다. 그런데 맞으며 즐거워하는 마조히스트를 보면서 사디스트는 쾌락을 느낄 수 있을까? 글쎄, 때릴수록 좋아하는 상대방을 보고 있노라면 사디스트는 불쾌감을 느낄 것 같다. 그렇다면 마조히스트는? 때려 달랬더니 때려주지도 않고, 힘 빠지지 않을까? 그렇다. 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 같은 피해자를 원하지 않는다. 마조히스트 역시 사디스트 같은 박해자를 원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한 쌍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사디즘과 마조히즘에는 각각 다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커플을 싹둑 자르고서 마조히스트의 은밀한 내면을 파고들어간다.

 

 

 

마조히스트의 은밀한 쾌락. 유머(Humor)

 

  평범한 사람들은 처벌이 주는 불쾌감과 고통 때문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조히스트는 처벌을 원한다. 왜 그럴까? 처벌이 주는 고통 자체를 즐기는 것일까? 마조히스트는 모든 처벌과 고통을 욕망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신을 때려주기를 원하는 마조히스트에게 진정한 처벌은 그를 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을 때리지 않는 처벌을 마조히스트는 원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마조히스트는 모든 처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마조히즘적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에서의 처벌만을 원한다. 그렇다면 마조히스트는 왜 처벌을 원할까? 들뢰즈는 다시 질문한다. 처벌을 받은 이후에 금지되었던 무언가 허락되는 것이 있고, 그렇게 허락된 것이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나 맞았어 으엉 크르르엉엉

 

  처벌의 기능은 금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우리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존재를 하나씩 이미 갖고 있다. 이른바 ‘양심’이다. 돈은 없는데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도둑질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양심에 따라서 진짜 하고 싶은 행동을 금지시킨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런 ‘양심’을 작동시키는 존재를 ‘초자아’라고 한다. 초자아는 양심을 통해 특정 행동을 금지시키고, 자신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경우 고통을 가함으로써 처벌한다. 그 처벌은 양심의 가책 등이 있다. 그런데 마조히스트에게는 상황이 반대로다. 이를테면 “나는 이미 처벌을 받았으니, 금지되었던 것을 하겠어!”라고 마조히스트는 말하는 것이다. 이제 처벌은 금지되었던 것을 허락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어머니를 욕망하면 처벌할거야! 욕망하지마!’라는 초자아의 명령을 통해 마조히스트는 어머니를 욕망하는 셈이다. 즉, ‘내가 엄마를 욕망했어! 나를 때려야해! 나를 때려줘!’ ‘나를 때렸으니 이제 엄마를 욕망할게!’라는 방식으로. 이렇게 마조히스트는 초자아의 말을 잘 지켜서 초자아의 법을 우습게 만든다. 이러한 마조히스트의 고급기술이 “유머”다.

 

 

 

우리의 은밀한 쾌락. 마조히즘적 유머

 

  ‘유머’라는 기술은 마조히스트에게만 고유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법이나 규칙에 관한 위와 같은 일련의 태도들 모두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개그처럼 말이다. 엄마의 명령이나 신의 명령 모두 잘 지켜서 엄마와 신의 명령이 금지하는 알콜이라는 쾌락을 얻어낸다.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알콜을 사랑하라.

 

 

또 엄마가 남자랑 자지 말라고 해서 여자랑 잤다던 이반지하의 <효녀이반>이라는 노래가사처럼 말이다. 여자는 남자랑 자면 안된다고, 순결을 지켜야한다고 명령하는 법을 아주 잘 지키다보니 여자랑 자버렸네?!?!라고 말하는 노래에, 여성에게 강요되는 순결, 이성애 중심주의를 이용하여 보수적인 성도덕을 아주 유쾌하게 뒤집는 이 노래에 한참을 웃었다. 유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비교하고,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을 비교하면서,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들을 교묘하게 비하하는 통속적인 편견들로 가득한 TV 코미디프로그램 속 불편한 유머가 아니라. 위법하는 준법자 마조히스트처럼, 마조히즘의 탁월한 익살(Humor)에 아주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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