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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트라우마가 있으십니까? <수학의 언어>

수유너머웹진 2014.04.02 06:21 조회 수 : 17



수학에 트라우마가 있으십니까? 

케이스 더블린, 수학의 언어, (전대호 역, 해나무, 2003)





노의현/수유너머N 회원




 

   3월, 드디어 새 학기이다. 시작할 학기가 없는 이들에게는 일 년 중 그 어느 때 보다도 지나간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기일 것이다. 6년간의 그 "아름다운" 기억 속에서도, 절대 미화되지 않는 몇 가지 악몽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 그 중 하나는 분명 ‘수학’에 관련있을 듯 싶다. 왜 문과를 선택하냐는 물음에 "국사가 좋아서"가 아니라 "수학이 싫어서"라고 대답했던 내 단짝친구처럼, 많은 사람들이 수학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으로 어떻게든 그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렇게 멀어진 후에는, 만약 다시 관심이 생겨서 어떻게 ‘해볼라고’ 해도, 전공자가 아닌 이상은 접근하기가 도무지 막막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수학 때문에 몸서리치고 있다!

 

 

 

   도대체 ‘수학’이란 무엇일까? 대체 뭐 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로 하여금 전공자가 되거나, 또는 평생 쳐다보지도 않거나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3.141592...?  ?  ? 이런 대답들로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한다. 음표가 음악이 아니듯, 수학적 기호가 곧 수학은 아니다. 숫자고 기호고 다 빼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수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걸까? 이 책의 서론도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저자는 수학을 ‘패턴(pattern)의 과학’이라고 정의 내린다. 즉, 수학은 근본적으로 일련의 현상들로부터 어떤 일정한 형식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패턴이 드러나 몇 가지 숫자, 혹은 기호들로 표현하는 것을 패턴의 "가시화"시키는 작업이라고 부른다.

 

물체를 공중에 놓으면 땅으로 떨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중력이다”라고 당신은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름을 대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술이다”라고 대답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중력을 이해하려면 중력을 ‘보아야’한다... 뉴턴의 수학은 우리로 하여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게 만들고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만드는 비가시적 힘들을 ‘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책의 부제인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하는 수학"이 담고 있는 의미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매일같이 알 수 없는 일들을 접한다. 내 소중한 아이폰은 왜 손에서 미끄러지기만 하면 곧장 바닥에 가 부딪히는지, 왜 눈이 오면 버스가 막히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아니, 왜 뻔히 아는 사실을 "알 수 없다"고 하냐고? 저자에 빙의되어 설명해 보자면, 우리는 이 현상들을 이해하기는 커녕 보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만으로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왜 그렇게 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 그렇게 될지에 대해서 어떤 명쾌한 대답도 내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을 통해 어떤 현상 속에 숨겨진 일련의 추상적인 과정들과 관계들을 포착하여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말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수학은 평소같았으면 그냥 체험하고 지나갈 뿐이었을 것들을 우리에게 "이해"시켜준다. 이런 점에서 수학은 자연의 이야기를 담은 "자연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언어를 배움(이라기 보단 발견해 냄)으로서 자연과 대화할 수 있게(즉 설명하고, 예측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수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련인 숫자나 기호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다. 이 도구의 힘은 매우 강력해서, 언제 무슨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이런 과정 전체의 성격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수학의 역사는 "어떤 현상"들을 패턴화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그에 맞는 도구들을 개발해왔는지, 어떻게 적절한 사용법을 창안해왔는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쓰면서 흥미진진해하는 사람들을,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20세기, 수학의 3대 난제 중 하나로 꼽혔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은 해결된 문제이긴 하지만,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했던 수학의 재미있는 면모를 잘 보여준다. 사실 이 정리는 그 무시무시한 명성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다. 겁내지 말고 따라가 보자. ‘ 이라는 방정식이 있다. 이 때 n이 3 이상의 수라면, 이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z, x, y는 존재하지 않는다.’ 페르마라는 한 아마추어 수학자가 자신의 수학책 귀퉁이에 끄적여 놓은 이 정리와 그에 이어지는 다음의 문장은, 이후 3백년간 내노라하는 수학자들을 제대로 자극시켜 그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나는 이 명제를 위한 정말 멋진 증명을 알고 있는데, 여백이 좁아 기록할 수 없다.”

 

   당신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저 쓸데없어 보이는 문장을 증명하기 위해, 3백년간 수많은 천재들이 밤낮 매달렸어야 하는 거냐고. 그건 사실이다. 페르마의 정리는 증명돼보았자 실생활은 물론 수학, 과학의 영역 내에서도 별로 요긴하지 않다. 이 정리가 유명했던 이유는 단 하나,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만일 문제가 곧 해결되었더라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이후의 수학 책에 각주 정도로만 실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르마의 정리가 수학의 역사상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로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이를 증명하기 위한 고투 속에서 (이 정리보다 훨~씬) 중요한 수학적 개념들과 기법들이 수두룩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평소에 듣게되는 "수학에서는 어떻게 풀었냐 보다는 결국 풀었냐 못풀었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수학 "시험"이 만들어 놓은 단순한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수학은 절대로, 당신에게 "괜히 고민하지 말고, 이대로만 따라서 풀어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설령 답을 내지 못했더라도, (문자 그대로의)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수학이다.

  

 

 

       

                              저자 케이스 데블린 (Keith Devlin).

 

 

   이 책은 그 두께와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수’ 그 자체를 다루는 수론에서부터 출발해 그 수들의 ‘패턴’을 만드는 수리 논리학, 운동을 패턴화하는 미적분학, 모양을 패턴화하는 기하학, 위치를 패턴화하는, 조금은 낯선 위상학, 우연을 패턴화하는 확률과 미래를 ‘보게’해주는 물리학에서의 수학까지 매우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학자보다는 저술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저자의 글 솜씨는 이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얕지도 않게끔 탁월하게 엮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이 책의 키워드가 "패턴"이라고 해서, 모든 이야기들이 ‘패턴’이라는 관점 아래 체계적으로 묶여있는 것은 아니다.  ‘패턴’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하되, 여기에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도, 하지도 않는 매력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 점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갖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저자가 "패턴화"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다분히 통상적인 과학주의적, 인간주의적 관점으로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답답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수학이 새겨놓은 지난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라면, 이 책은 수학 특유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 줄 멋진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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