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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대한 현장보고서 

줄리언 어산지 외, 사이퍼펑크』 (박세연 역, 열린책들, 2014)





수유너머N 회원 조지훈

 




 20104,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파일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비디오는 2007년에 이라크에서 이라크 국민과 기자들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을 담고 있었는데, 영상 그 자체로도 충격적이었지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파일을 공개한 사이트에서 2개월 뒤에 미국 정부에 의해 기록된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관한 76,900건의 미공개 문서들을 공개했다는 데에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군사 기밀정보 유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겨우 군 내부 고발자 한 명과 몇몇의 해커들로 이루어진 일개 인터넷 집단을 통해서 말이다. SF물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규모의 해킹이 현실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SF적 사건을 우리에게 안겨준 이 해커집단은 그 이름도 유명한 위키리크스이고, 이 모임의 실질적인 리더인 줄리언 어산지가 바로 이번에 소개할 사이퍼펑크의 주요 저자다.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해커의 생각을 인터넷이 아닌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사이퍼펑크는 시작부터 자극적인 문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 책은 선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이 책은 경고다.” 전쟁을 치러왔던 해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프로파간다성의 첫 문장과 함께, 서문은 현재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와 자본이 결탁한 보안 시스템과 감시망의 확대를 디스토피아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흥미진진한 음모론과 SF가 결합된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단숨에 서문을 읽고 나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인터넷 공간의 현실인가 하는 기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소 선동적인 서문을 지나가게 되면, 커뮤니케이션의 증가와 감시의 증가, 사이버 공간의 군사화, 민간 기업의 스파이 활동, 인터넷과 정치, 검열 등과 같은 마치 인터넷과 윤리라는 이름의 대학 교양과목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익숙한 주제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이들은 실제로 사이퍼펑크라는 반체제적 정보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단 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다루고 있는 내용의 생경함과 달리 어산지와 그의 사이퍼펑크 동료들의 아젠다는 단순 명료하다. “약자에게는 프라이버시를, 강자에게는 투명성을.” 즉 이들은 개인과 권력기구간의 정보 접근의 비대칭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아젠다를 뒤집으면 지금의 현실이 된다. 권력기구는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이 간단하고, 역으로 개인들은 권력기구의 정보에 접근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권력 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단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암호기술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권력기구가 쉽사리 뚫어낼 수 없도록 다층화시키고, 또한 무분멸한 개인정보의 유통을 막기 위해 특정 서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넷 환경에서 벗어나 탈중심화 된 서버의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정보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하기 어렵게 보안 층위를 두껍게 만들고, 역으로 권력기구에 등록된 정보들은 누구나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해킹을 불사해서라도 말이다.





이들은 단순히 현재의 인터넷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지금의 인터넷 시스템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개정을 모색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 잘 사용되든 현재의 시스템 내에서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개인 정보가 권력기구에 의해 포획될 수 있는 가능성의 상태로 늘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실례로 미정보부에서 위키리크스 수사와 관련해서 구글과 페이스북, 그리고 트워터에 등록된 개인정보 기록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사례를 언급한다. , 개인의 등록정보와 인터넷의 활동 기록은 특정한 상황에서 법적인 절차만 통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소환이 가능한 것이다. 이들이 하나의 중심서버에 의해서 구축된 인터넷 환경이 아닌, 탈중심화된 인터넷 환경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물론 이들 역시 현실의 한계를 직시한다. 단지 권력기구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기존에 쓰던 인터넷 환경에서 굳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롭게 고안된 서버로 이동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시스템에 대한 활용만이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이 권력기구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와 이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구상은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들은 말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어산지와 그의 동료들의 생각을 보고 있노라면, 다루는 내용의 최첨단과는 달리 어딘지 모르게 형식적으로 익숙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이들이 정보를 둘러싸고 있는 권력에 대한 시각이 정보를 가진 자와 못가진자라는 이분법에 근거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정보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정보를 포획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권력기구 대 정보로부터 차단되어 있고 언제든지 개인정보를 포획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개인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물론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정보의 획득 유무 여부만이 인터넷 공간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지점인지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힘은 단지 어떤 정보를 알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만 결정되는가? 만약 권력을 단지 나쁜 놈들이 가진 거대한 힘이라고 파악할 것이 아니라, 푸코 식으로 무언가에 영향을 미쳐서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파악한다면, 그 많은 정보들이 실제로 어떻게 분석, 배열되고 활용되는 방식에 대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욕심을 부리자면 지난 사이퍼펑크 운동이 어떻게 정보의 게이트를 구축하고 돌파하느냐의 문제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게이트 안쪽에 있는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를 고민할 차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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