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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와 21세기 불평등] 기획을 시작합니다. 이슈&리뷰 팀에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고 불평등에 대한 다양한 주제와 이슈들을 엮으려고 합니다. 






조세의 정치적 성격에 대하여 

-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을 읽고





박기형 /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2014년을 되돌아 볼 때, 우리가 떠올릴 가장 중요한 인물들 중 하나로 바로 토마 피케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저작 『21세기 자본』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부의 불평등, 양극화 문제에 대한 논쟁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그가 이전의 불평등 논의와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는 부의 불평등이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한 것이라는 주장을 방대한 양의 경험적인 데이터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적 양극화, 부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글로벌 자본세’이다. 즉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금 통제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유토피아적인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높은 수준의 국제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요컨대, 자본주의 체제 내의 불평등 동학을 규제하고,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자본세가 도입 및 시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조세 부과는 상당히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문제이다. 과세는 불평등 해소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정치적 격변의 핵심에는 조세를 둘러싼 갈등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구체적인 과세 방식을 택하느냐는 그 사회에 통용되는 철학적 논의에 바탕을 두며, 모든 사회의 정치적 갈등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세를 둘러싼 정치적 문제를 프랑스 혁명의 일련의 상반된 흐름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금과 혁명


우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원인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사회 구제도의 모순’이다. 그러한 구제도의 모순 중 하나가 바로 세금이었다. 13세기 봉건 시대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독점하여 판매하는 소금에 과세하는 이른바 ‘가벨’이라는 세금제도를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8세 이상의 프랑스 국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왕이 정한 가격과 할당량에 따라 소금을 사야만 했다. 현대의 소비세와 같이, 어쩌면 당시에도 소금과 같이 생활에 필수적인 품목에 세금을 부여하는 것이 국가 재정정책 상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맑스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소금세를 비롯한 “주세의 징수 방법은 가증스러웠고, 그 할당 방법은 귀족적이었다.”는 점이다. 즉 귀족 등 특권층은 이 세금을 비롯한 다양한 세금 납부 의무를 면제받았고, 지역에 따라 다르게 과세가 이루어져 세금이 원가의 20배가 넘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금세를 내지 못한 하층민들이 매년 3만 명이 넘게 감옥으로 갔고, 500여 명이 처형되었다. 요컨대, 당시의 세금 제도가 계급 간에 차별적이었기 때문에, 가벨에 대한 민중의 증오는 극에 달했고, 결국 1789년 혁명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1789년의 혁명은 민중들의 봉건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되었다. 하지만 맑스가『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에서 분석하고 있는 1848년의 혁명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7월 혁명 이후 등장한 정부들이 해소해야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 채무 해소라는 국가 재정 불균형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 특히 루이보나파르트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조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내린다. 한편으로는 국가 채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융 세력의 도움이 절실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상층 계급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것을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당시의 정부로서는 하층 민중들에게 조세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금세에 더하여 주세가 부과되는 과세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민중들에게 이것은 1789년 혁명 이후 파괴되었다고 여겨졌던 "앙시앵 레짐"의 잔재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이러한 루이보나파르트의 반혁명, 즉 불합리한 조세제도의 부활은 다시금 상층계급의 특권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민중들에게는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혁명의 상반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조세 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프랑스 혁명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조세가 민중들의 삶에 중요한 문제라는 점 그리고 조세제도가 어떻게 설정되는가에 따라 평등한 분배를 보장할 수도,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전자는 조세제도를 둘러싼 절대왕정 또는 루이 보나파르트와 민중들 사이의 갈등에서, 후자는 "가벨"이 가져왔던 가혹한 참상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과세 결정에 따른 민중들의 부담 증가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관계 속에서 조세 제도가 결정된다는 것을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하층 민중과 특권층 간의 힘의 대결의 결과로서 조세 제도의 설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수단으로서의 조세 문제에 관하여 계급관계가 갖는 의미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프랑스 혁명 과정에서의 조세 문제는 결국 세금의 부과 방식과 정도가 어떠한 가에 따라 조세제도가 갖는 의미와 효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조세 문제는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제기해야할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피케티의 글로벌 자본세는 과연 불평등이 심화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 글로벌 자본세가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도록 위해서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이런 측면에서 피케티에 대한 김공회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공회는 『피케티를 급진화 하라』의 제6장에서 피케티에게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으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하는 것을 든다. 아울러 국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계급 관계의 구도인데, 이에 대해 피케티가 고려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은 계급관계라는 생산영역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불평등 문제도 분배가 아니라 생산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세금을 통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과세 방식과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계급들 간의 갈등 양상에 달려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 결과, 김공회는 피케티가 주장하는 글로벌 자본세 자체를 넘어서,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에서의 계급 관계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김공회의 지적은 피케티가 조세부과를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여겼지만, 정작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모든 것을 민주주의에 의존하는 낭만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에서 피케티에 대한 적절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비판에는 조세 제도를 자본에 봉사하는 국가의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 보편적 납세제도는 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이 정상시민이라는 환상을 갖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계급 위치를 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조세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그것이 갖는 의미가 달라진다는 그의 이야기와 충돌하는 것으로써, 조세 제도를 일면적으로만 판단한 결과에 따른 모순이다.


보편적 납세 제도가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갖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보편적 납세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에 따라 사회 불평등의 정도를 완화할 수 있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또한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글로벌 자본세 이외에도 피케티가 중요한 제도로 보았던 누진세를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글로벌 자본세를 보편적 납세 제도와 같은 맥락에서 놓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 든다. 보편적 납세 제도와 달리, 피케티가 주장하는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 부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해소(완화)에 있기 때문이다.






세금문제는 정치적 사안이다.


요컨대, 피케티가 이야기 했듯이, 세금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금을 어떤 방식으로 걷느냐와 어디에, 그리고 무엇을 위해 쓰느냐이다. 그렇기에 세금은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라거나 계급 갈등을 가리는 자본의 도구라는 주장은 세금을 부정적인 것으로 낙인찍음으로써, 조세가 갖는 긍정적 효과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피케티의 논의를 한국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데 적용할 때에는, 조세제도를 자본주의를 규제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그리고 목적을 실현하기에 충분한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김공회의 논의에서도 드러났듯이, 조세문제는 계급 관계와 그들 간의 갈등이라는 동학 속에서 결정되는 정치적인 사안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국가가 시행하는 조세 제도를 설계하는 것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의 영역에 투입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되며, 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조세 제도의 설계 논의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피케티의 논의에서는 제외된,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이냐 하는 문제, 이른바 보편적 복지와 사회적 지출에 관한 문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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