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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된 자의 목소리

박민규, 「눈 먼 자들의 국가」 (『눈 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차소영/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5월 12일,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돌베개, 2014, 이하 <가라앉은 자>)가 출간됐다. 세월호가 잠긴 지 한 달째였다. 제목은 한 달 전에 수몰된 이들을 연상케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세월호를 다룬 책이 아니다. 시기상 절묘하게 읽힐 수 밖에 없었던 제목 역시 세월호에 빗대려던 것이 아니다. 원제를 별다른 바꿈 없이 옮겨온 것이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라는 커피가 보여주듯이, <가라앉은 자>는 2014년 4월 16일 진도에서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다룬 책이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를 구조된 자라, 죽은 이를 가라앉은 자라 말했고, 살아서 이 책을 썼던 그는 구조된 자였다.


(사진)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가라앉은 자>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한다. 수용소 에서 사람들이 반복해 꾸었던 꿈, 언젠가 바깥 사람들에게 수용소에서 겪었던 일들을 말하는 꿈, 그렇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두려운 꿈에서부터. 그들 자신마저도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강제 수용소가 실재했음을, 그들을 절멸시키는 것이 수용소가 존재하는 이유였음을. 비단 갇힌 자들만이 이러한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꿈이 수용소 위에 드리워졌다. 가둔 자들, 감시자들, 강제 집행자들; 즉 옆방에 잠들어 있는 나치 군인들 역시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꿈"을 꾸었다. 다만 갇힌 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날 때 이들은 단 꿈에 젖어 있었다. 꿈은 이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두터운 알리바이였고, 자신만만한 예지몽이었다. 바로 이렇게 :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지 간에, 너희와의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야.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 나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그를 믿어주지 않을걸. 아마 의심도 일고 토론도 붙고 역사가들의 연구도 있을 테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그 증거들을 너희와 함께 없애버릴 테니까. 그리고 설령 몇 가지 증거가 남는다 하더라도, 그리고 너희 중 누군가가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너희가 얘기하는 사실들이 믿기에는 너무도 끔찍하다고 할 거야. 연합군의 과장된 선전이라고 할 거고 모든 것을 부인하는 우리를 믿겠지. 너희가 아니라. 라거(강제수용소)의 역사, 그것을 쓰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될 거야." (<가라앉은 자>, 10쪽)



거짓말의 역사


전쟁이 끝나기 전에 나치는 거의 모든 것을 불살랐다. 학살 흔적은 거의 전부 잿더미가 되었다. 그렇지만 완전한 전부는 아니었다. 잔해가 남았고,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증언이 있었다. 수용소에 대한 소식이 퍼져나갔다. 동시에 나치 군인이 예견했던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 수용소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소식이었기 때문에 믿기를 거부했다. 정작 믿을 수 없는 말들은 재판정에서 새어나왔다. 나치 지휘관들은 범행을 부인했다. 자신은 명령을 따랐을 뿐 결정 내린 적은 없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수용소에서의 노예 노동을 통해, 혹은 수용소에 물건을 납품해 경제적인 이득을 얻어냈던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대답했다. "의도적인 무지와 두려움으로 침묵했다." (<가라앉은 자>, 15쪽)


같은 거짓말이 세월호에서 반복, 변주됐다. 엄청난 인력을 동원해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는 거짓말, 탑승객 전원 무사하다는 거짓말이 버젓이 떠돌았다.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던 해경, 한 민간업체(언딘)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세월호 인근에 있던 배들을 물리쳤던 해경이 "본 사람은 다 구조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가 잠기는 동안 대통령은 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비서실장은 모른다고만 했다가, 일곱 번에 걸쳐 지시를 내렸다고 말을 바꿨다. 선내 컴퓨터에서 국정원 문서가 발견됐지만 국정원은 모른다고만 했다. CCTV는 하필이면 8시 30분 59초에, 즉 선체가 급변침한 시각 8시 49분에서 18분 앞서 꺼졌다. 정부는 정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생존자들은 당일 아침 정전이 없었음을 증언했다.


시작부터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끝끝내 거짓말이었다. 무엇 하나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의심이 일었다. 토론이, 조사가 이어졌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확실한 정황 속에서 사람들은 사실을 가라앉히고 거짓말을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세월호 천막을 부수거나 세월호를 기억하라는 현수막들을 훼손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서명 부스 맞은편에 특별법을 반대한다는 서명 부스가 들어섰다.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산 사람은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모든 말들 사이에서 나치 군인의 목소리는 이렇게 변주되었다 : 세월호의 역사, 그것을 써내려가는 이는 가라앉은 자구조된 자도 아니었다. 배가 침몰하게 내버려둔 자들, 수백 명이 가라앉게 내버려둔 자들이었다.


사고가 아닌 "사건"


저들이 써내려가고자 하는 역사는 이런 것이었다. "세월호는 사고다. 즉 사고-보상의 프레임이다." (「눈 먼 자들의 국가」, 이하 「눈 먼 자」, 54쪽)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세월호가 거짓말에 잠긴 채 처음 등장했을 때, 침몰은 언뜻 사고처럼 보였다. 원인이 무엇이었건 탑승객 전원 무사하다는 소식은 우선 안도감을 주었고, 수백 명이 탄 배가 어떤 의도 하에 가라앉았다고 상상하는 건 끔찍했다. 수 시간이 지나서야 아직 거짓말에 잠기지 않은 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아무것도 무사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용 기한을 넘긴 배였다. 부실한 검사를 받은 배였다. 증축하지 말았어야 했건만, 증축한 배였다. 증축한 공간에 허용량보다 두 배 많은 화물을 실은 배였다. 사람들은 샤일록의 욕심에 수장당했다. 이것이 사고였는가. 박민규는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고 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 이것은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눈 먼 자」, 57쪽, 강조는 인용자)


이 지적은 중요하다. 세월호가 뜻밖에 침몰했다면 그것은 보상될 수 있는 것이고, 보상된 후엔 끝나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용 기한을 넘긴 배였는데도 사용했던 것, 증축할 수 없는 배였는데도 증축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아래 모든 규제가 완화됐기 때문이다. 안전검사 기준 전반이 완화됐고, 선주를 추궁할 수 있는 선박소유주 양벌규정이 완화됐다. 해난구조업무는 민간에 위탁됐다. 현행 수난구호법에서는 사고 선박 선사가 구난구조업체를 선정해 계약을 맺게 한다. 이를테면 더 값싼, 혹은 유착 관계에 있었던 특정 업체를.


다른 누구보다 더 비대한 샤일록이 여기에 있다. 이윤을 위해 살을 요구했던 전범典範처럼, 아니, 살은 가져가되 피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에서 교훈을 얻은 샤일록, 이제 이윤을 위해 살과 피 전부를 요구하는 샤일록, 세월호가 사고였다면 보석(상)금을 내고 말 것이나 사건이었다면 파산하고 말 샤일록이 여기에 있다. 파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월호는 사고여야만 했다. 책임 추궁할 만한 명분을 전부 없앤 것이 바로 정부 자신이었음에도― 선주에게 모든 책임과 엄청난 현상금을 덮어씌웠던 것, 해경을 단칼에 해체했던 것은 결국 세월호를 사고로 규정 짓는 태도였다. 운전대를 잡지 않았던 정부의 손에는 어떤 책임도 없다는 태도였다.


불가능한 증언


<가라앉은 자>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한다. 끔찍한 폭력은 세계를 수용소 으로 쪼개었고, 안의 목소리가 밖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첫 번째 두려움이었다. 그렇지만 레비는 <가라앉은 자>를 썼다. <이것이 인간인가>를, <휴전>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썼다. 전부 아우슈비츠를 다룬 책이었고, 자신이 쓴 말들이 밖에 닿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장벽이 아니었다. 레비가 부딪쳤던 장벽, <가라앉은 자>에 서술되어 있는 두 번째 두려움은, 증언의 불가능성이었다.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한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가라앉은 자>, 98쪽)


말하자면 레비는 이례적인 소수, 바닥을 치지 않은 자, 고르곤을 보지 못한 자; 구조된 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완전한 증인, 즉 증언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고 썼다. 바꾸어 말해 <가라앉은 자>는 불가능한,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증언이었다. 그렇지만, 반복하건대 레비는 <가라앉은 자>를 썼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끊임없이 증언했다. 증언해야 할 이들은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가라앉은 자>, 98쪽) 이들, 완전한 증인들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오직 구조된 이들만이, 가라앉은 자들보다 더 선량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 남용이나 수완,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자들만이 입을 열 수 있다. 아니, 살아남았기 때문에 입을 열어 말해야만 한다. 진짜 증인들, 완전한 증인들을 대신해서 증인석에 섰다는 것, 원래 섰어야 할 이들은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증언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증언이자, 진실이라는 것을― "라거에 대한 진실을 확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독일 민족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집단 범죄"(<가라앉은 자>, 14쪽)였다.


구조된 자의 목소리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이 주째였다. 유가족들은 피켓 행진을 했다. 피켓에는 수많은 문장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구호로 외쳤던 것은 "우리 애를 살려내라"였다. 이때의 "우리" 란 누구일까. 자식을 잃은 유가족 자신들을 가리켰던 우리. 아니― 우리는 동시에 우리 모두였다. 인터넷을 통해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 침몰하는 배를 바라보았던 우리였다. 전부 살아 나오기를 바랐건만 바라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던 우리, 배가 엉망진창이 되도록 무관심했던 혹은 알면서도 방관했던 우리였다. "우리가 모두 (한국이라는) 한 배를 탔기 때문이다." (「눈 먼 자」, 63쪽, 괄호 안 문장은 인용자)


정부는 이제 애도가 끝나야 한다고, 일상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 우리에게는 끝나야 하는 애도가 없다. 돌아갈 일상이 없다. 이 "한 배"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순간, 우리는 돌이킬 수 없이 구조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우는 배 안에서 아이들은 말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우리가 언제든 침몰할 수 있었던 배를 빗겨간 것은 한 줌 행운 덕분이었다. 특별히 선하거나 위대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선한 이들, 제 구명 조끼를 벗어 건네주었던 이들은 기우는 배 안에 있었다.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반복하지만 세월호는 유가족들의 사건이 아니다. 정부의 사건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연루된 사건이다. 우리가 구조되었다는 것은 달리 말해서 우리가 증언할 수 없음을 뜻한다. 완전한 증인들, 진짜 증인들; 우리의 아이들은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증언할 수 없기 때문에 증언해야만 한다. 이미 차가운 시신이 되어 돌아온 아이가 다시 살아날 리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애를 살려내라"고 불가능한 요구를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아이는 결코 살아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증언이자, 진실이니까. 세월호가 침몰한 지 200일 하고도 6일이 더 지난 지금, 유가족들에게 아무런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세월호 사건이 종결 국면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는 지금, 계속 증언하는 것이 힘겨워 보일지라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마저 가라앉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박민규를 비롯한 작가·학자들 12명이 한 편씩 글을 쓴 것도 증언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믿는다. 설혹 불가능한 증언일지언정, 진실을 붙잡기 위한 노력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눈 먼 자」는 이렇게 끝맺는다.


"이는 정치의 문제도 아니고 경제의 문제도 아니다. 한 배에 오른 우리 모두의 역사적 문제이자 진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눈 먼 자」, 65쪽, 강조는 인용자)



사진 출처 : 참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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