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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을 거칠게 죽여야 했던 영화 

-<킬 유어 달링> 





지안/수유너머 N 회원




앨런 긴즈버그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던진 시시껄렁한 멘트로도 도서관 서고실에서 사서와 오럴 섹스를 하는데 성공한다. 겉으로 조신한 척 하던 사서는 묻지도 않은 성경험 이력을 말하며 경험 없는 긴즈버그를 무시한다. 이런 개방적인! 시대에 <채털리 부인의 사랑> <율리시스> 같은 ‘외설적인’ 책들은 대학교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되어 볼 수조차 없다. 그래서 문학도 루시엔 카는 고요한 도서관에서 이렇게 외친다. “문학은 혁명이다!”


<킬 유어 달링>은 현재 "비트 세대"라고 명명된 작가들이, "너는 작가냐?"고 물으면 빨개진 얼굴로 부끄러워하며 "아니"라고 답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이야 이들을 가리켜 비트세대라 말한다고 우리는 배우지만, 변변한 작품하나 없이 교수한테 까이던 시절의 이 작가들, 아니 이 문학도들은 "문학 혁명"을 기획한다. 비트세대란 획일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한 세대, 삶에 안주하지 못했으며 사회에서 얻어터지던(beating) 2차대전 전후의 세대를 말한다. (문학 비평용어 사전 참조) 


영화사의 홍보 문장을 빌어 덧붙이면 "문학 혁명을 꿈꾸는 청춘들과 그들의 뮤즈"에 대한 영화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작가들,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버로우즈, 잭 케루악"의 실화인데다,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4각 관계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그들의 뮤즈 "루시엔 카"는 젊은 디카프리오를 닮은 웬 모델 같은 "남성"이니, <킬 유어 달링>의 예매율 1위 달성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왼쪽부터 실제 비트 세대 작가의 이름이기도 한, 윌리엄 버로우즈, 앨런 긴즈버그, 루시엔 카, 잭 캐루악>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것은 그 배경이다. 영화의 배경은 2차 대전 시기의 미국이다. 영화는 내내 20세기 미국 특유의 거칠고 경쾌하며 들뜬 분위기를 잘 써먹는다. 그 속에서 젊고 방탕한 20세기 중반 미국 아이들은 사교파티에 우르르 몰려가 마약을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이고 깐깐한 19세기 노인들은 진탕 놀다가 집에 돌아온 손자들을 볼 때면 못본 척 얼굴을 돌려 찡그린다. 이런 상반된 분위기에서 나오는 긴장감이 내내 영화를 조여온다. "공공연하지만 공적으로 말을 할 수는 없는" 분위기란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를 쓸 때도 마찬가지다. 보기만 해도 깐깐해보이는 나이든 교수 스티브스에 따르면 시는 형식에 맞추어, 지저분하지 않게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글을 쓸 때에 "사적인 감정을 죽여라"(kill your darling)라는 것이다. 



"교수님 말씀은 고정관념 아닌가요?"


20살, 대학에 갓 입학한 앨런 긴즈버그는 첫 수업에서 시를 쓸 때 필요한 온갖 형식과 방법을 나열하는 스티븐스 교수에게 질문한다. “그럼 휘트먼은 어떻게 설명되나요?” 정곡을 찔린 늙은 교수는, 하지만 능숙하게 어린 긴즈버그를 꺾어놓는다. 이어서 "모방 없는 창조는 없다"고 단정한다. 그런 앨런에게 같은 과 4학년 루시엔 카가 나타난다. 그는 새로 태어나는 건 먼저 죽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단어들”이라는 대사는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제 창조는 모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수적인 학교와 교수는 박차고 나와야 하는 대상이고,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파리에서 해방을 외쳐야 한다고.







보수적인 시대의 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건 “단어들”이다. 루시엔 카는 줄곧 문학 혁명을 벌이자고 말한다. 예이츠의 <환상(A Vision>에서 따온 ‘뉴 비전’이 이들이 하려는 문학혁명의 이름이다. ‘르네상스를 만든 건 단 2명이고 낭만파도 그렇게 많은 숫자가 아니었어.’ 사전에 칼을 꽂으며 시작한 낭만주의처럼 이들은 ‘뉴 비전’을 만들어줄 사건을 만들고자 한다. 해방을 위한 반항은 이제 절정에 달한다. 있던 것은 죽어야 하기에 <리바이어던>처럼 지루한 책들은 조각내야 하고, 혁명적인 새로운 문학이 탄생해야 한다.


이들이 이런 문학을 만들기 위해 취한 방법은 "각성"이다. 마약을 통해 감각이 각성된 상태에서 글을 써내리는 것이다. 각성 상태에서 교수가 죽이라고 했던 사적인 감정들, 별 것도 아닌 "일시적 호감, 유치한 직감"이 갑자기 너무도 대단하고 큰 것인 양 느껴지고, 앨런은 감정에 끌리는 대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마약에 취해서 미친듯이 타자를 치다가 침대에서 몸부림을 치는 앨런을 보고 룸메이트는 깜짝 놀라 "너 뭐하냐?"고 묻는다. 앞서 루시엔이 "너는 작가냐?"고 물었을 때 부끄러워 하던 앨런은, 약 때문에 침대에서 헐벗은 상태로 발광하는 와중에도 "글 쓰는 중!"이라고 대차게 대답한다. 





죽어야 할 것은 누구인가? 킬 "유어" 달링과 킬 유어 "달링" 


이제 글을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사건으로 만들어야만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고, 그래서 혁명은 단순히 작품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떠들썩한 사건으로 철저하게 기획된다. 그래서 이제 이들은 빼돌린 도서관 열쇠를 가지고 밤중에 도서관에 침입한다. 도서관에 전시되어 ‘성체’라고 불리던 형식적인 소설집들을 던져버리고 그 자리에 "외설적" 소설들인 <율리시스>와 <채플리 부인의 사랑>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이제 문학은 우리가 접수한다는 듯이. 


그런데 최고점인 줄 알았던 이 시점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줄곧 경쾌한 듯 진지한 듯 문학도들의 젊은 날을 그려내던 영화는 갑자기 미스테리로 빠져든다. 루시엔에게 집착착하는 옛 애인이자 같은 학교의 문학 교수인 데이빗 캐머러가 이들의 "혁명"을 방해해오는 것이다. 데이빗은 중년의 문학 교수이자 "뉴 비전"이 처음 만나 작당을 시작하게 되는 마약 굴 같은 곳의 수장 격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꾸만 이 "뉴 비전" 기획에 초를 치는 것은 선뜻 동의되지 않는다. 


데이빗 캐머러가 혁명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의 동물적인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는 루시엔의 소년 시절부터 그를 스토킹하고 마침내 잠깐 사귀기까지 하는 인물인데, "뉴 비전"의 시작은 더 이상 루시엔에게 문학적 자극을 주지 못하는 자신의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기점으로 집착의 강도는 점점 심해지고 데이빗은 다시 루시엔을 찾아온다. 

 

뉴 비전의 잔뜩 고취된 시작 앞에서 이 늙은 옛 애인은 자꾸 집착한다. 이 늙은 애인이 하는 말이라고는 계속 똑같다. 나는 너를 사랑했고 우리는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학, 새로운 비전으로 떠나야 하는 소년을 붙잡는 과거의 애인은 혁명을 지연시키려는 자다. 그래서 루시엔은 이제 집착하는 늙은 애인을 피해서 파리로 향하는 배에 오르려고 떠난다. 


이제 항구에까지 쫓아온 데이빗에게 루시엔은 칼을 겨눈다. 가까이 오면 죽인다고 협박함에도 불구하고 늙은 애인은 자꾸 다가온다. 죽이려면 죽이라고, 마치 이 죽음은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양 데이빗은 루시엔의 칼에 스스로 박히는 길을 택한다. 루시엔은 잠시간 놀라더니, 다음 순간 돌변해서는, 애인을 거칠게, 여러 번 칼로 찌른다. 창조로 가야하는 시작 앞에서 죽을 것은 죽어야 한다. 그래서 고루한 늙은 애인은 거칠게 죽어야만 했다. 스티븐스 교수는 앨런에게 글을 쓸 때 사적인 감정을 죽이라고(kill your darling) 말하지만, 죽어야 할 것은 오히려 ‘뉴 비전’을 틀에 가두려는, 혁명을 지연시키려는 과거의 애인 데이빗이다.


남은 것은 감옥에 간 루시엔과 그를 사랑하는 앨런의 감정이다. 이 외설스런 동성애 이야기를 앨런은 소설로 만들어 기말 과제로 제출한다. 학장과 스티븐스 교수는 과제를 철회하지 않으면 퇴학이라고 말하지만 앨런은 과제를 철회하지 않고 퇴학을 받아들인다. 집에 돌아온 앨런에게 우편물이 오는데, 그를 퇴학 당하게 만든 기말 과제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를 퇴학 시킨 스틴브스 교수는 ‘젊은 휘트먼에게, 작품을 많이 만들라’는 짤막한 격려와 서명을 과제에 붙여 보낸다. 그때 ‘월드 뉴스’의 종전을 알리는 앵커의 들뜬 목소리가 깔린다. ‘전쟁이 끝났고 프랑스와 유럽은 모두 해방입니다’ 그리고 이 퇴학생은 해방된 파리를 상상하며 미소 짓는다.




<루시엔 카를 두고 데이빗 캐머러와 앨런 긴즈버그는 영화 내내 아주 미묘하게 "감정적으로만" 대립한다.>


이제 놀 줄 모르던 안경잡이 유태인 소년 앨런 긴즈버그는 더 이상 자기가 작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숨기지 않을 것이다. 퇴학을 함으로써 가능해졌던 "나는 작가다"라는 마지막 대사에, 그의 앞길이 걱정되어 우리가 마음 졸이지 않았던 것은 영화가 사실에 기반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대성공한 작가의 젊은 날 반항은 한갓 무용담처럼 즐겁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들이 만들어낸 문학의 해방은 현실의 해방이 되었을까? "단어들"의 혁명을 말하는 루시엔 카 조차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부정하려한다. 앞으로 끝도 없이 더 필요할 혁명들을 생각하며 앨런의 무용담은 멀지도 않았고 유쾌하지만도 않았다. 죽어야할 애인들, 지금의 세기를 잠식하는 감각들은 또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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