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리뷰입니다!


연민을 넘어 연대로

(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난생 처음 택시기사 아저씨와 다툰 날이었다. 5월의 봄날이었지만 밤이 되자 꽤 쌀쌀해져 옷깃을 여미게했다. 나의 목적지는 청운동 동사무소였다. 나도 기사 아저씨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가다가 경복궁역 즈음해서 인파를 만났다. 아저씨는 이 늦은 시간에 대관절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했다. “여기가 이렇게 사람 많을 시간이 아닌데…” 내 마음속에서는 갈등이 일었다.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인가.’ 분명 그 얘기들을 늘어놓는 다면 확률 상 괜찮은 반응이라고 해봐야 ‘관심 없다.’는 대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말을 하기로 용기를 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의도에서 집회를 마치고 이쪽으로 오고 있대요.” 라고 나는 말을 꺼냈다. 역시나였다. 아저씨는 무서운 말들을 했다. ‘대통령도 사과 할 만큼 했다는 말, 이런다고 애들이 살아 돌아 오냐는 말, 유가족도 누구도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다는 말’, 그 무서운 말, 말, 말. 그렇다. 희생자들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애도를 그쳐야만 하나?


4.16 이후의 시간들


4월 16일 이후, 수심 어딘가에 죽어지지 못한 누구들을 옆에 뒤에 앞에 매달은 채로 지내온 날들. 그간에 개운한 날이 단 하루라도 있을 수 있었을까. 실종자의 추가 구조 소식이라든지 유가족의 요구가 늘상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메아리와 같아 졌다든지 뭐 단 하나라도 시원하게 진척된 일이 있었던가. 나에게 그런 먹먹함이 내동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먹먹함에서 오는 고통은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고통에서 빠져나가는 길은 근본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이라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내가 배웠던 대로 이 사건을 나 스스로에게 이해시킬만한 언어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두 가지 다 가질 수 없었다. 그저 우왕좌왕하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았으랴. 그래서일까 시대의 작가들이 써내려간 이 책을 읽으면, 이 답답함을 가로질러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건 어쩌면 이 지지부진한 전개를 좀 덜어내고 속도를 붙여보려는 이기적인 속셈이었을지도 모른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작가들의 글을 실은 책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라는 특집으로 문학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에 먼저 실렸는데, 싸늘한 출판시장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초판 4,000부가 매진되어 여러모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출판사에서는 더 많은 이들이 세월호 관련 글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의 세월호 관련 글들을 함께 묶어 이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세월호는 “사건”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눈은 저마다 다르다. 이 책의 이름이기도 한 소설가 박민규의 글 「눈먼 자들의 국가」는 4월 16일에 일어났던 일을 두고 당치도 않은 이름들을 붙여대려는 시도를 저지한다. 교통사고라느니 재해라느니 하는 이름들에 대해서 말이다. 박민규는 세월호를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56)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으로 명명한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며, ‘사건’은 사고에 의도가 개입되었을 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의도적으로 지키지 않은 의무, 국민을 사고 현장에서 구해내지 않은 그 의도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누군가들의 눈을 감겨주기 위해서 우리는 고통스러울지언정 눈을 뜨고 진실을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을 뜨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선량함 밖으로 박차고 나갈 것


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진은영 시인의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선량한 사람의 연민이나 시혜가 아니라 수치심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미처 사용하지 못한, 스스로 고결하다 말할 수 있는 자기 고양적 존재로서 느끼는 수치심 말이다.


“니체에 따르면, 수치심은 외적 권위에 대한 고려에서 비롯되는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긍심과 명예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 그 결핍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로서 작용한다. 따라서 수치심은 자기 고양을 욕망하는 고결한 존재가 갖는 감정이다. 고결한 자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역량이 자기 안에 있음을 알며, 그 역량을 미처 사용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72)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시인은 밀양 김말해 할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수치심이 가야 할 방향을 짚어준다. 조실부모한 이가 가엾어서 찍어 주었다가, 이제는 송전탑 문제를 해결해 준다던 무소속 후보를 찍었다는 김 할매의 말. 경찰과 대치중에 팔을 다쳐 숟가락도 온전히 들지 못하는 그녀에게서는 피해자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단다. 송전탑 공사를 막지 못했으니 모두 끝난 것이 아니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김 할매는,


“끝나다니? 아직 멀었지. 줄(전선) 걸고 할 때까지 싸워야지. 저거(송전탑) 세우는 데는 석달 걸려도 뜯는 데는 한나절 밖에 안 걸린다더라. 죽을 때까지 싸워야지.”(82)


라고 답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왠지 ‘푸핫’하고 적절치 않은 듯한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랬던 거다. 무척이나 쉬운 답이지만 이러저러한 찌들어버린 삶의 무게 덕택으로 떠올리기 어려웠던 것. 이 세월호라는 사건을 건너가는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건너가려는 시도 그 자체가 필요할 따름이며, 우리는 모두 그래야 한다는 것뿐이다. 무력한 피해자로 낙담하지 않는 것, 살아있는 정치적 활동 그 자체를 통해 우리는 선량함 밖으로 박차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이고 과제라고 시인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택시기사 아저씨와 언성이 높아졌을 때 쯤, 휠체어 탄 한 무리의 사람들과 그들을 막고 선 형광 연둣빛의 벽을 발견했다. 그리고 급하게 내리고야 말았다. 아저씨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리려는 내가 청운동이 어딘지 알면서 모른 척 했다는 둥 비난을 퍼부었다. 택시 안팎은 모두 전장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후 일행과 합류해 지겨운 고착과 풀어지기를 반복하다가 퇴각한 우리는 근처 친구 집에서 소주를 마셨다. 청운동에 고착된 이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하루를 보낸 그 밤이었다. ‘내일이 되어도 전과 다를바 없겠지.’ 그런 생각들을 구겨 넣은 채 소주만 들이켰다.


그러나 다음날, 유가족은 팽목항과 안산에 더하여 청운동에서 그리고 광화문에 나왔다. 집을 부수어버린 자들에 대항하여 잔해 속의 벽돌을 들어 올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은영 시인이 말했던 “진실과 용기가 살아있음을 믿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이들의 싸움은 나아가기도 밀려나기도 하면서 계속 될 것이다. 은폐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의 곁에는 다양한 방식의 연대가 함께할 것이다.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국가적 은폐와 모함에 응전해 균열을 내고 있듯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능케 할 힘으로 가득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3 [피케티와 21세기 불평등] 조세의 정치적 성격에 대하여 - 피케티 『21세기 자본』을 읽고 수유너머웹진 2014.12.03 22
82 구조된 자의 목소리-박민규, 「눈 먼 자들의 국가」 (『눈 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수유너머웹진 2014.11.28 8
81 [풍문으로 들은 시] 쓸모 없는 것들의 공동체-진은영,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 수유너머웹진 2014.11.21 22
80 [피케티와 21세기 불평등] 종말론과 낙관론 사이에서 "불평등" 경제의 탈출구 모색하기-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 수유너머웹진 2014.11.19 28
79 우리에게 "합리적 선택"은 가능할까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수유너머웹진 2014.11.05 28
78 관계의 미학-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4.11.03 49
77 [개봉영화 파헤치기] 애인을 거칠게 죽여야 했던 영화 -<킬 유어 달링> 수유너머웹진 2014.10.27 12
76 [풍문으로 들은 시]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에코-김행숙, 『에코의 초상』 수유너머웹진 2014.10.24 17
» 연민을 넘어 연대로 - 김애란 외,『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수유너머웹진 2014.10.17 16
74 가능성으로만 남은 세계 – 토머스 핀천, 『제49호 품목의 경매』 (김성곤 역, 2007, 민음사) 수유너머웹진 2014.10.13 13
73 두개의 과거, 혹은 과거의 구제- 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4.10.08 6
72 빵집 주인의 경제학, 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4.10.08 12
71 기품 있는 요실금 - 필립 로스 『유령퇴장』(박범수 옮김, 2014, 문학동네) 수유너머웹진 2014.09.29 1
70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열두 번째: 여럿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여럿 수유너머웹진 2014.09.22 13
69 예술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사유하기 - 진은영, 『문학의 아토포스』(그린비, 2014) 수유너머웹진 2014.08.20 19
68 기본소득 : 대안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 수유너머웹진 2014.08.18 8
67 [개봉영화 파해치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 "루저" 워즈 수유너머웹진 2014.08.14 8
66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열한 번째: 낯선 나에 대한 이야기 수유너머웹진 2014.08.08 11
65 [개봉영화 파해치기] 웰메이드 오락영화, <군도> 수유너머웹진 2014.07.29 13
64 프로이트 환상 횡단하기-『우상의 추락』 수유너머웹진 2014.07.23 1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