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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맑스코뮤날레 리뷰]


나를 찍지 말아주오, 나를 규정하지 말아주오


-오길영, "고도 자본화 과정으로서의 개인정보 비식별화"-

 

 

 

 

 

장 희 국/수유너머N 회원

 

 

 

 

채증카메라


“야, 찍어”


집회현장에 채증카메라가 등장한지 수년이 지났다. 전경방패와 캡사이신 분사기 뒤에서 더듬이마냥 솟아있는 카메라들을 보면 방패를 든 전경무리가 하나의 곤충, 갑각류로 보이기도 한다. 불법 채증을 중단하라는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두운 밤이면 사진을 더 잘 찍기 위해 눈이 아플정도의 조명을 쏘아대니 내 사진 중 가장 조명빨 받는 사진은 어느 경찰서의 메모리카드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회현장에서 오고가는 물리적 충돌들도 두렵지만 채증카메라는 그와는 전혀 다른 두려움을 준다. 맥락 없이 단절된 하나의 장면이 반영구적으로 남아 언제든지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내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곳으로 나의 외형이 그렇게 강제로 납치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채집된 이미지(사진, 영상 등)는 사건에 대한 증거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는 하나의 낙인으로 기능할 위험을 언제나 내포한다. 인류의 축복받은 능력 중 하나인 망각할 권리를 기계가 가로막는다. 사실 이러한 두려움이 막연한 것만은 아니다. 정작 당사자들은 이미 잊어버린 몇 개월이 지난 집회현장의 채증물을 근거로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갑자기 깨부수는 ‘조사요구서’가 날아오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다.

 



더듬이처럼 솟아있는 채증카메라는 더이상 어색한 광경이 아니다. 자료: 오마이뉴스.

 

 


빅데이터와 감시사회


비단 집회현장의 채증뿐만 아니라 가로등과 자동차마다 CCTV(블랙박스)가 있고,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거래 실적을 통해 우리는 어디서든 감시대상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작가적 상상력에서 벗어나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딱 한가지 손으로 움직이는 홀로그램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를 자본의 용어로 칭하는 표현이 있다. 이는 바로 ‘빅데이터’라는 용어인데, 자본이“별 의미가 없던 인류의 일상속 움직임들에 대해서 새로운 상업적 가치를 발견한 것”(오길영 발표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미니아폴리스 외곽에 있는 타깃 매장에 화가 잔뜩 난 남자 한 명이 들이닥쳐 매니저 접견을 요구했다. “우리 딸애가 우편으로 이걸 받았어요!” 남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 고등학생인 애한테 아기 옷, 아기 침대 쿠폰을 보내요? 애더러 임신을 하라고 부추기는 거요 뭐요?” 며칠 후 매니저는 사과를 하기 위해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기 반대편의 목소리가 누르러져 있었다. “딸애랑 이야기를 좀 했어요” 남자가 말했다. “알고보니 내 집에서 내가 제대로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더군요. 8월이 출산 예정이에요. 미안하게 됐습니다”(발표문 중)


 

빅데이터의 성공적 사례로 유명한 이 일화는 고객이 원하는 것을 고객보다도 먼저 제공할 수 있게된 마케팅 이론의 혁신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으로 고객인 나도 모르는 나의 정보를 나와 전혀 관련이 없던 마케팅 분석가가 가지게 된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확신하는 불특정 타인이 존재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예언자-기계 3인처럼 그들(불특정 타인)이 나에게 적절한 행동 패턴을 제공한다.


 

정작 이런 멋진 기술은 구현이 안된 채, 예측시스템만 현실화 되고 있다. 자료: 서울신문(마이너리티 리포트 한장면)

 



프로파일링된 신체


사실 딸아이의 임신사실을 알게된 아버지처럼 빅데이터를 통해 궁금했던 자신의 욕구-필요를 알게 되는 것은 상당히 편한 변화로 보인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내 주위의 상황이 알아서 나에게 맞춰준다면, 화낼 일도 없고, 신경쓸 일도 없으며, 오직 좋고, 편한일만 추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편하기만 한 일일까?

 

빅데이터라는 방법 앞에서 “‘왜 그러한가’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중요한건 그 ‘이유’가 아니라 ‘결론’이 부합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인들의 검색어들을 분석한 구글은 결국 독감확산의 예측모델을 개발했고, 그 예측이 실제의 독감확산 상황과 일치했기 때문에 더 이상 검색어와 독감확산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과성’이 아니라 ‘상관성’에 기초한 ‘예측’이 빅데이터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유’는 모른 채 ‘결론’만을 알게 되나, 그 결론이 과거의 방법론에 비해 정확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발표문 중)

 

발표자가 언급한 것처럼 빅데이터는 상관성분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신용카드가 어디에서 사용되었는지, 그 신용카드를 사용한 사람은 다음엔 어디에서 또 사용하는지를 통계적으로 누적하여 패턴화한다. 신용카드를 사용한 손이 어떤 기계와 어디서 만나느냐에 따라, 마우스를 잡은 손이 어떤 홈페이지를 클릭하느냐에 따라, 내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어느 기지국을 통과하느냐에 따라서 ‘나’라는 신체는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빅데이터’분석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나의 신체 일부’와 닿아있는 디지털기기(신용카드등 포함)가 어떤 패턴으로 반응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렇게 한 인물의 특징을 추론하는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가? 발표자는 토론시간에 빅데이터 분석은 유명한 미국드라마 CSI 등에서 나오는 프로파일링기법과 동형적이라 설명했다. 범죄자가 습관적으로 남긴 흔적이 그 범죄자를 규정한다. 죄를 입증하기위해 증거를 모으는 것을 넘어서 증거들이 범인을 형성한다. 이 방식은 언제나 우리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네가 범죄자일 것이 틀림없어”라는 말은 ‘빅데이터시대’에 “넌 이 물건을 살 것이 틀림없어”라는 말로 변화된다.


 

빅데이터시대의 도래는 다양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 틀림없다. 자료: 네이버 블로그, 책을 이야기하다

 


식별되지 않을 권리


‘빅데이터’가 단순히 편하기만한 기술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감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발표자는 자본가와 고객 모두가 빅데이터 기술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빅데이터는 피할 수 없는 변화인 것으로 바라보는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빅데이터’라는 시대적 변화에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해보고자 한다. ‘빅데이터’ 기술이 없던 시절 우리는 망각의 기쁨 속에서 다양한 행동들을 즐겼다. 내가 10일전에 먹은점심메뉴를 굳이 기억하지 않으며, 20일전에 이동한 동선을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스쳐지나가는 현상이었으며, 스쳐지나가고 난 이후엔 익명성 속에 묻혀 누구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빅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특정 인물은 언제든지 이와같은 정보를 조합해 ‘나’를 규정하고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제각기 파편화되어 사라지던 정보들이 조작을 통해 “개인정보”가 된다. 따라서 발표자는 ‘빅데이터’를 통해 얻어진 정보 역시 “개인정보”이며, 당연히 ‘개인정보 보호’의 매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영역은 사실상 법적으로 사각지대이다. “지금까지의 법제는 정보주체의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권의 수호를 위해 주로 ‘동의’의 방식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빅데이터 환경에서 동의권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찾기 힘들어 보인다.”


발표자는 여러 부작용이 우려되는 이 현실에 비관적인 답변으로 끝을 내고 있지만 그의 발표들 들은 필자는 다음과 같이 느낀다. ‘빅데이터’라는 새로운 기술을 맞이하여 우리는 ‘비식별될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빅데이터 이전부터 우리에겐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법리는 빅데이터의 변화된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 새로운 변화에는 새로운 권리요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비식별될 권리’는 새로운 권리를 생성해 내는 작업이기에 기존의 법이 보호하는 영역 밖에서 이루어져야 할 작업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때로는 법을 요구하고, 때로는 법을 비판하면서만이 달성될 수 있다. 하지만 발표자가 토론의 말미에서 제기한 통렬한 한마디가 ‘비식별될 권리’요구라는게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새삼 상기시킨다.

 

“우리나라는 태어나면서부터 번호를 달고 태어나잖아요. 주민등록번호. 이거만 있으면 미국처럼 프로파일링 같은 복잡한 과정 없이도 우리는 개인을 너무 쉽게 식별가능해요. 이 문제에서 시작하지 않으면서 비식별을 주장해도 허황되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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