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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파해치기] 블록버스터에 우리 동네가 나오다

수유너머웹진 2015.04.29 13:24 조회 수 : 5

[개봉영화 파해치기]


블록버스터에 우리 동네가 나오다: 

<어벤저스2>의 이국적인 서울




수유너머N회원 조지훈





 <어벤저스2>가 개봉했다. 예매율 갱신기록이 날이 갈 수록 올라간다. 블록버스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하루이틀 일 아니지만, 이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어벤져스2>에는 서울이 나온다! 제작년에 마포대교, 새빛둥둥섬, 강남을 방문한 어벤져스 촬영팀 때문에 도로 전체가 통제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루 종일 도로가 통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OK를 했고, 사람들은 이해했다. 왜냐하면 어벤저스 촬영으로 인해 우리는 수십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처럼 창조경제의 마법 같은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도로 통제에도 불구하고 어벤져스 촬영에 호의적이거나 그다지 반대가 없었던 것은,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서울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촬영 당시 마포대교에 몰려든 인파는 장관이었다. 정말이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 였다. 촬영 장면이 잘 보일만한 모든 건물의 창문들도 이미 몇 시간 전에 사람들이 차지한 뒤였다. 말 그대로 촬영일은 축제와도 같았다. 





익숙한 장소가 영화에 나오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더군다나 어벤저스 같은 메가톤급 블록버스트 영화에 자신의 동네가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함을 넘어 기이한 기분이 들 정도다. 가끔 밤에 산책을 가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오는 강변이 수백억 달러 짜리 영화에서 모험의 장소로 등장한다. 차량이 전복되고 등장인물들은 날라다니고 지하철은 철로를 벗어난다. 술이 만취한 상황에서도 우리 동네에서 그런 식의 모험이 가능할꺼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영화는 나의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버렸다. 마포대교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촬영된 장소라 나는 늘 마포대교를 지나가며 괴물을 머리 속에 그려지곤 했는데, 이제는 <어벤져스>의 화려한 전사들이 떠오른다.


자신이 사는 곳이 영화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과연 아무런 의미없는 질문이다.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영화에 배경이 되는 자신들의 "미개한" 마을이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한국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주목을 받지 않은 장소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딱 한번, 10년도 더 된 007시리즈인 <007 네버다이>에서였다. 사실 그 영화에서 주로 등장하는 배경은 북한이었다. 남한은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등장하지 않는 몇 장면에 그려진 남한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영화가 만들어진 2002년이면 거의 뭐 월드컵으로 한국이 기고만장 했을 때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남한은 북한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농업국가처럼 그려졌고, 더군다나 농민들의 복장은 배트남 사람의 옷에 가까웠다. 황소 대신에 기계로 농사작업이 바뀐지가 언제인데 영화 속 2002년의 한국에는 소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황소가 아니라 배트남에 있을 법한 검은 물소가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고 사람들은 광분했다. 영화에 출연한 한국계 배우 릭 윤은 거의 매국노가 되었으며, 이 영화에 제의를 받고도 출연을 거절한 차인표는 애국자가 되었다. <007 네버다이>는 역대 박스 오피스 최고의 흥행을 자랑했지만, 한국에서는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다. 자신들이 늘상 액션영화 속 이슬람, 인도, 아랍, 아프리카의 배경이 형편없이 그려지고 쑥대밭이 되든 말든, 그게 뭐 중요해, 어차피 영화잖아, 그냥 즐겨! 라는 대사는 자신들의 상황에 적용되지 않았다. <007 네버다이>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라고 해도 한국이 저 따위로 그려진다면 차마 보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영화 불매운동과 이에 따른 흥행참패로 고스란히 증명되었다. 





자,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한다). 2002년 한국이 제3세계처럼 그려졌다면, 2015년 한국은 엄연한 액션영화의 무대가 되는 대도시이다. 어벤져스에서 그려지는 서울은 최첨단 연구소가 있는 곳이다. 그 연구소는 오세훈의 작품인 새빛둥둥섬이다. 영화 속 새빛둥둥섬은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 기술을 보유한 연구소다. 연구소의 최고 기술자를 연기하는 수현은 아이언맨을 향해 그런 고철 기술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어벤져스의 대한민국이다. 어벤져스에 나오는 새빛둥둥섬은 대한민국이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호다. 새빛둥둥섬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말 그대로 강 한가운데 둥둥 떠다니는 형태의 둥그런 건물이다. 영화에는 주로 밤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새빛둥둥섬이 강에 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신비로운 외계종족이나 아바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이국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는 어벤져스 본부가 있는 멘하튼의 쭉 뻗은 건물과 비교된다. 어벤져스 본부(혹은 아이언맨의 연구소)는 쭉쭉 뻗은 건물들로 둘러 싸인 멘하튼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로 영화 속에서 장관을 보여준다. 반면에 한강에 둥둥 떠있는 새빛둥둥섬은 이국적인 환상을 보여준다. 서울은 참으로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둘러 쌓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계속 보여주는 건물은 둥글납작한 새빛둥둥섬이다. 이쯤되면 제작진이 서울을 보여주면서 노렸던 시각적 대비효과가 무언지 알만하다. 





한국이 등장하는 또 다른 장면으로 강남과 마포대교와 같은 큰 도로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목길이다. 여기에서 신나게 추격씬이 벌어진다. 대로변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아도 역시나 큰 건물은 화면에 잘 잡히지 않는다. 즉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로 추격씬을 접사로 보여주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뒤로 멀리 당겨서 도시 전체를 조망해주는 그런 장면이 흔치 않다. 쉽게 말해 분명 강남이 배경인데 강남에서 볼 수 있는 높은 건물들의 밀집이 영화 속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을 식별해줄 수 있는 기호는 한국 사람만 알고 있는 주홍색 택시 밖에는 없다. 여기가 중국이든 일본이든 혹은 어디 아시아라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이처럼 영화를 보면서 한국이 어떻게 더 잘 드러나는가를 보기 위해서 집중하고 있었는데(아마도 나를 포함하여 다른 관객들도), 이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골목길 씬이였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종횡무진하는 골목길에는 정말이지 노래방, 술집, 분식집 등등의 적나라한 간판들이 가득차 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노래방"이라고 써진 대문짝만한 간판을 지나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쑥쓰럽고 반갑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한국어로 쓰인 간판들이 지나치다 할 정도로 골목길 씬에서 많이 잡힌다. 한글이 헐리우드 배우들과 어우러지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한글이 아니라 이국적인 기호로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장면들을 헐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중국이나 아랍을 배경으로 할 때, 이런 식으로 그들의 글자를 이상하리 만큼 많이 노출 시키지 않는가. 여기는 다름 아닌 "중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중국어를 화면에 한 가득 채우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그러면 중국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도 그 장소가 다름 아닌 중국임을 편안히 인식하고 모험을 즐길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어벤져스2>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요새 서울에서는 영어로 된 간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의 간판은 집요하리 많치 원색적으로 쓰여진 한글만 보여준다. 정말 우연히 한글 간판으로 가득찬 골목을 촬영한 것일까?




의 사진은 어벤져스2가 개봉되기 이전에 사람들의 합성사진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웃자고 만들어놓은 합성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영화 장면은 합성사진의 모습과 크게 다른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억측에 의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작진이 서울을 찍을 때는, 그것도 어벤져스라는 블록버스터에 삽입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보여주는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결과물일 것이다. 즉 엄청 고민해서 찍는 것이다. 물론 그 고민은 서울을 어떻게 잘 담아낼까가 아니라, 서울이라는 배경을 사용하여 영화의 극중 구성과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지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 즉 서울은 뉴욕이 아닌 서울임을 잘 보여주는 기호들로 화면에 가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뉴욕 아닌)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 선정된 기호들은 새빛둥둥섬, 골목길에 가득찬 한글, 그리고 몇몇 도로들이다. 한국이 예전에 비해서 훨씬 잘 사는 괜찮은 국가로 영화에 나온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상 미국이 아닌 이국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기호들로 나타나는 영화 속 서울은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연 해외관객들에게 관광을 오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올지는 의문스럽다. 


그럴 일 없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어벤져스2>에 대해서 <007 어너더데이>와 같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으면 좋겠다. 예전에 비하면 서울이 영화 속 배경으로 좀 더 잘 사는 도시처럼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멘하튼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도시 정도 배치된 것 뿐이다. 영화 제작진 측에서는 서울의 모습은 아무 관심도 없다. 그저 새빛둥둥섬과 촌스러운 한글간판이 가득찬 이국적인 배경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블록버스터에 이국적인 배경으로 사용되는 그런 수준이다(사실 더욱 질문해봐야할 것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해외 로케이션이 이루어지는 방식 그 자체일 것이다). 서울시는 한국을 첨단국가처럼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에게 속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이 영화를 둘러싼 얘기는 서울이 몇 분이나 나오냐, 20분 나온다고 했는데 왜 10분 밖에 안 나오냐, 이에 대한 경제적 효과는 무엇인가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다. 아마도 <007 어나더데이>처럼 한국을 후진국으로 그렸다면 격렬하게 비판을 했겠지만, 어느 정도 잘 사는(생명공학 기술이 뛰어난) 도시로 그려졌다는 알리바이 때문에 사람들은 큰 불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007 어나더데이>나 <어벤져스2>나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동양의 어느 도시"가 구경꺼리를 위해 미국과 대비되는 이국적인 기호로 제작되는 방식 말이다. 







나는 스펙터클 영화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007 어나더데이> 때 사람들이 느꼈던 불편함이 <어벤져스2>에서 느껴진다. 영화를 찍기 위해 2년전 마포대교를 통제하고 서울시가 제작비를 지원한 것을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바로 그 마포대교에서,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찍기 위해 하루 종일 도로를 통제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축제처럼 지내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불과 몇 7년 전인 2006년에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위해 마포대교를 휠체어 없이 건넜던 것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그때는 철저히 진압되고 비판을 받았다. 교통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마포주민들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교통을 마비시킨 것이 천인공노할 일인 반면 스펙터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마포대교는 통제될 수 있었다. 그들은 경제효과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시키려고 했지만, 왠걸 개봉된 <어벤져스2>의 서울의 모습은 전혀 관광 수입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족시킬 수 있는 스펙터클 이상, 이하도 아니다. 과연 앞으로도 얼마나 더 사람들이 이 영화를 합리화 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 속 서울이 가져오는 창조경제 효과라는 기묘한 계산법과 우리나라도 이제 헐리우드 영화에서 잘 사는 나라로 나오네라는 기만적인 합리화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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