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리뷰입니다!


세상에는 훌륭한 말과 글이 아주 많습니다. 풍성하게 운영되는 여러 다른 웹진과 블로그의 글들에서부터, 아카데믹한 격식이 오히려 그 가치를 가리고 있는 학술논문에까지, 수없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글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부쩍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강연과 발표에서도 보석 같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에서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말과 글을 모아, 추천의 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권하려고 합니다. 

-코너 소개-


감정의 우주가 시작된다





꽁꽁이 / 수유너머N 연구원




  이번 주에 추천해드릴 말과 글은 모두 "감정"에 대한 것들입니다. 보통 감정이라고 하면 매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감정은 만들어져 권해집니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감정은 마치 화폐와 같습니다. 흔히 예절과 의례의 차원에서 감정을 거래․교환합니다. 이를 단순히 제스처나 인사의 교환으로 이해되어서 곤란합니다. 형식을 지킴으로서 특정한 감정의 거래를 유도하는 것입니다. 억지웃음조차도 습관화되면 호감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첫눈에 반하는 것도 일종의 교육의 결과입니다. 모든 통제와 규칙을 넘어서는 낭만적 사랑이 권장된 까닭입니다. 그의 감정론은 우선 연애제도사를 다룬 연구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제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특정한 흐름을 폭로합니다. 그는 완전히 개인적인 감정이란 없으며, 우리의 감정은 제도가 파놓은 수로를 따라 흐른다고 봅니다.

  어느 시대나 혼사장애의 문제 즉 사랑의 장애물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장애의 유형은 각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파악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애에서 가문의 명예와 같은 가치는 그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사랑을 방해합니다. 가족이라는 전통적 가치의 강요로 방해하는 것입니다. 반면 오늘날 사랑의 문제는 되려 낭만성이 너무 강요되어서 문제가 됩니다.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하나의 투자와 선택의 문제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중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겉으로는 낭만적 사랑을 성립시키려 하지만 속으로는 가장 합리적인 계산을 성립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사랑, 사랑보다 돈이 아니라 돈과 사랑 모두 쟁취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이 때 돈의 쟁취란 계급과 육체적 매력을 아우르는 포괄적 자산의 합리적 교환을 의미합니다. 이 규칙 없어 보이는 규칙 속에서 현대인들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내 불안으로 전환되어버립니다. 에바 일루즈는 감정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권해지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사랑이 어떻게 아프게(불가능하게) 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바 일루즈의 책에 이어 "감정"이란 키워드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가 있어 강연을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조나단 해리스는 사람들이 웹서핑을 하면서 감정이라는 "발자국"을 남긴다고 말합니다. 즉 자기표현의 순간들이 인터넷 상에 흔적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흔적들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그 흔적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뭘 느끼고 뭘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의 오늘은 어제나 내일과 어떻게 다를지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블로그에서 "I feel" 이나 "I am feeling" 이라는 문구가 들어가는 문장을 매 2~3분마다 한번씩 검색하고, 그런 문장이 발견될 때마다 데이터베이스에 수집합니다. 이렇게 수집한 인류의 감정 데이터를 일종의 별자리라고 생각하고 스크린에 쏘면 우리는 지구 상의 슬픔이 집중되고 있는지, 기쁨이 생성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인류의 감정 표현이 밤하늘에 쏘아지는 것은 소름이 돋는 경험이라고 합니다. 그의 작업이 의미 있는 이유는 "감정"의 역사가 가능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 일상사건의 배후에 항상 숨어 있으면서도 그 기록을 좀처럼 남기지 않습니다. 있으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 덕분에 감정은 당당히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바 일루즈와 조나단 해리스의 작업을 통해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감정은 통제된 가운데 만들어진 것일 수도, 동시에 한 개인의 고유한 자기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이 비가시적인 힘이 점점 가시적인 힘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자세히 알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나를 찍지 말아주오, 나를 규정하지 말아주오 -민주주의법학연구회, 감시사회와 표현의 자유- 수유너머웹진 2015.06.19 6
102 [풍문으로 들은 시] 서효인, 『소년파르티잔 행동 지침』(민음사, 2010) 수유너머웹진 2015.06.12 32
101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감성의 코뮌주의를 위하여 - "감성의 혁명과 일상생활의 정치화" 수유너머웹진 2015.06.10 15
100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사회적" 영성이 만들어내는 공동체적 사건-정경일,「불안의 안개와 사회적 영성」 수유너머웹진 2015.06.08 28
99 [개봉영화 파헤치기] 풀 스로틀(Full-Throttle, 최고속력)이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수유너머웹진 2015.06.05 43
98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신용루저에게 필요한건 뭐?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 수유너머웹진 2015.06.03 17
97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흰머리 휘날리며-「여성주의와 협동주의의 만남」 수유너머웹진 2015.06.01 28
96 [2015 맑스코뮤날레 리뷰] 공산주의자는 어떤 "주체"인가? -「공산주의라는 쟁점: 바디우와 발리바르」 수유너머웹진 2015.05.29 29
95 [풍문으로 들은 시] 시 쓰는 코기토 -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시전집』(문학동네, 2014) 수유너머웹진 2015.05.15 41
94 영매를 자처한 복화술사: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읽고 수유너머웹진 2015.05.06 10
93 [개봉영화 파해치기] 블록버스터에 우리 동네가 나오다 수유너머웹진 2015.04.29 5
92 [풍문으로 들은 시]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문학과지성, 2014) 수유너머웹진 2015.04.22 29
91 "겪지 않은자", 새로운 연대를 꿈꾸다 - 도미야마 이치로, <유착의 사상> 수유너머웹진 2015.04.13 20
90 보이는 중국, 보이지 않는 중국-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5.04.08 29
89 [풍문으로 들은 시] 타인과 드라마 - 기혁,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민음사, 2014. 12) 수유너머웹진 2015.03.18 14
88 20세기의 힘, 실재를 향한 열정-이진경 수유너머웹진 2015.03.05 14
87 [풍문으로 들은 시] 지옥에서의 한 철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수유너머웹진 2015.02.27 319
86 우리 시대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한병철, 『피로사회』 수유너머웹진 2015.02.09 9
85 [풍문으로 들은 시] 이질적인 것들과 공명의 에너지-김이듬, 『히스테리아』(문학과지성사, 2014) 수유너머웹진 2014.12.17 9
84 멈추지 않을 질문들- 황정은 외,『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2014) 수유너머웹진 2014.12.05 6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