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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여섯 번째: 감히 반대하기

수유너머웹진 2014.05.12 06:39 조회 수 : 5

세상에는 훌륭한 말과 글이 아주 많습니다. 풍성하게 운영되는 여러 다른 웹진과 블로그의 글들에서부터, 아카데믹한 격식이 오히려 그 가치를 가리고 있는 학술논문에까지, 수없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글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부쩍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강연과 발표에서도 보석 같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에서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말과 글을 모아, 추천의 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권하려고 합니다. 

-코너 소개-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 여섯 번째

:감히 반대하기

 




꽁꽁이 / 수유너머N 회원



 

 

  오늘 소개할 강의 <감히 반대하기>에서 연사 마가렛 핼퍼난은  엘리스 스튜어트라는 의사를 모델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엘리스는 임신 중 x선 노출이 소아암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매우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게다가 임신부에게 x선 노출을 금지하던 오늘날에 비해 25년이나 빠른 통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동료인 조지는 오로지 그녀의 의견이 틀렸음을 증명하는데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조지는 엘리스의 동료라는 점입니다. 조지는 반대하기로서 엘리스의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료 조지의 끝없는 반론 덕분에 엘리스는 자신의 학설을 매우 정교하게 증명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반대하기에 대해 우리가 숙고해야할 점을 시사합니다. 상대의 반대하기는 실은 내 사고의 연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조직 내의 반대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조직의 반대자들을 종종 배신자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대하기가 조직의 사고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반대자들로 인해 의사결정의 신중함과 정교함을 품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강연의 주제입니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 연사 마가렛은 우리가 겪는 끔찍한 재앙의 대부분은 이렇게 감히 반대하기를 품지 못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침 세월호 사태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과 1년전, 과적에 항의하여 부당한 임금체계를 고발하는 1인 시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반대자의 행위를 의사결정행위의 한 계기로 삼았다면 최소한, 여러가지 사고 원인 중 하나인 "과적"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반대자는 실은 나와 더불어 생각하는 자입니다. 감히 반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반대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슷한  주제의식을 크로포트킨의 소논문 <국가-역사에서 국가의 역할>(1904)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는 백용식이 선별해 옮긴 <<아나키즘>> (충북대학교 출판부, 2009)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크로포트킨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평화를 강요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여 대립하는 것들은 강제로 결합되어, 단일한 질서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개개인들과 작은 유기체들은 그들을 삼키는 거대하고 단일한, 무채색과 무생명인 전체의 희생이 된다." (위의 책, P. 102)


  이 글에서 크로포트킨은 갈등이 없는 평화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고발하고 있습니다. 국가 시스템이야말로 갈등없는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되려 거대한 폭력을 저지른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고요한 평화는 실상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가만들기는 "거대한 무채색의, 무생명의 전체"를 창조한 일에 불과합니다. 국가의 내부에는 감히 반대하는 자들의 생명력이 없습니다. 

  대신 국가의 개념이 성립하기 전에 융성했던 자유도시의 문화를 예로 들면서, 그곳에서도 수많은 갈등이 존재는 했지만 이는 매우 발전적인 갈등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국가 간의 전쟁을 서로 죽이는 투쟁이라고 보았고, 자유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공동체 안의 갈등을 인류를 진보시키는 투쟁으로 보았습니다. 


"죽이는 투쟁과 갈등이 있고, 또한 인류를 진보시키는 투쟁과 갈등이 있다." (위의 책, p. 103)


  이러한 창조적 갈등덕분에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작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자유도시 안에서의 약간의 혼란과 그로 인한 자유는 이러한 예술이 꽃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는 적대가 아니라 또 다른 긍정입니다. 이웃의 반대를 기꺼이 사랑하라는 것. 이것이 오늘 소개해드릴 말과 글의 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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