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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영화 파해치기] 


영화-세계의 정치적 가능성

:영화 <소수의견>을 보고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신광호

 




 <소수의견>은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하는 픽션 영화이다. 하지만 용산을 배경이야기로 삼음에도 직접적으로 용산을 다루지는 않는다. 법정물이 지니는 장르적 쾌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며 법정 공방의 가운데에서 우리 사회의 비합리적인 구조를 드러내 보이려는 야심을 <소수의견>은 지니고 있다. 실제 그 야심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내었는가 하는 평가는 둘째로 치고, 여기에서 우리는 주목할 만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용산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두 개의 문>이 이미 있다. 그렇다면 용산이라는 현실을 픽션은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 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픽션은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른바 정치적이라 여겨지는 픽션 영화들을 알고 있다. 그러한 영화들은 주로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로 만들어져 왔다. 여기에서, 현실이라는 영화적 질료는 이전까지의 흥행 기록이 보증해 주는 내용과 형식으로 가공된다. , 관객의 원초적인 감정, 기쁨 또는 슬픔, 환희 또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자극하여 동요하게 하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관객은 주요 인물들과 동일시되고 인물들의 목표는 관객의 목표가 된다. 네러티브는 인물의 목표가 달성되든 혹은 실패하든 인물을 영웅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제 이야기는 하나의 신화가 되어 버린다. 현실이 그에 대한 신화로 비약하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신화화한 정치적 픽션은 관객 몰이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일시적으로 어떠한 실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이십여 년 전의 독재자를 지금에 와서 암살하려고 시도하는 내용의 영화는, 위의 방식을 잘 활용한다면, 과거 독재정권의 잔혹함을 환기시킬 수도 있다. 특수학교에서 실제 있었던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을 픽션으로 구성한 영화는 십여 년이 지난 후에 관련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와 현실 제도의 개정이라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정치적 힘이란 이 정도로 충분할까? 특히 픽션은, 현실에 대한 비유적 관계의 자리에 놓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따금 현실을 환기시키게 하는 정도로 그 가능성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소수의견>을 들여다보자. 진원(윤계상)은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었던 상황이 수경(김옥빈)의 기자로서의 직업의식 때문에 엎어지게 되었음에 분노하며, 이 재판은 변호사인 자신의 재판임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수경은 다음과 같이 일갈하는데, 그녀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당신은 내가 아니었으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터이다. 이 재판은 당신만의 재판이 아니라 나의 재판이기도 하다.’ 가장 주요한 인물인 진원에 대한 동일시는 여기에서부터 덜커덕거리기 시작한다. 경찰 피해자인 김희택의 아버지(장광)와 검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사건의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에 의해 아들을 잃은 또 한 명의 피해자의 아버지 박재호(이경영)가 법정에 나란히 앉은 장면에서는 더욱 혼란스럽다. 대체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가?

이는 선악 이분법을 넘어서는가 마는가 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소수의견>은 현실의 신화화를 의식적으로 좌초시키려 한다. 이러한 시도 하에서는 영웅도 영웅이기를 멈추고, 그에 의한 동일시 작용 또한 중단되고, 마지막으로, 네러티브 구조 속에 관객을 봉합하는 동시에 현실을 상상적으로 신화화함으로써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에 의한 욕망의 대리적 해소도 불가능해진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신화이거나 현실에 대한 유비이기를 그치고, 하나의 세계가 된다. <소수의견> 말미에 검사(김의성)가 진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아는 2009년 용산이라는 참담한 사건이 벌어진 세계와는 다른, 또 하나의 영화-세계가 떠오르는 체험을 한다. 박재호는 국가를 위해 희생을 했고, 나는 국가를 위해 봉사를 했다. 그런데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영화가 하나의 세계가 된다고 함의 정치적 의의를 이제 밝힐 수 있다. 영화-신화의 구조 속에서, 영화는 현실의 허상과 같은 무엇에 지나지 않게 된다. 현실과 불완전하게 대응하는 소품 따위가 되어 버린다. 관객은 이러한 영화를 봄으로써 영화의 네러티브가 제시하는 욕망의 상상적 해소에 만족한 채로 영화관을 나서거나, 기껏해야 일시적인 흥분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이는 정치적으로 보아 참으로 불모적인 과정이다.

반면, 영화-세계의 경우는 다르다. 여기에서 영화는 현실과 나란히 서는 또 하나의 세계가 된다. <소수의견>에서 실제 아현동의 철거 장면이 실질적인 영화의 네러티브 밖에 삽입되었음을 상기해 보라. 이는 영화와 현실을 특정한 쪽에 포함되지 않도록 하는, 서로 간의 평행 관계를 존중하는 효과적인 편집이었다. 또한 관객의 이러한 영화-세계에 대한 경험, 그리고 그에 의한 어떠한 각성은 위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영화는 단순한 환기의 기능을 벗어 던지고, 또 다른 세계의 경험을 통한 각성으로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게끔 한다. 이로써 영화는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현실에 뒤지는 무엇이 아니게 되고, 현실을 바꾸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게 된다. 어느 평론가가 말하였듯이, 언젠가 영화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세상이다. <소수의견>이 이를 훌륭하게 해내었는가는 다시 보아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글의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 픽션 영화는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단서는 주어졌다. , 영화는 자체로 온전한 세계를 창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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