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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합리적 선택’은 가능할까?


-레나타 살레츨,『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박광호 역, 후마니타스)-

 

 

 

장희국/수유너머N 회원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레나타 살레츨은 신간『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제안한다. 선택이라는 이름 앞에 가려진 ‘합리적"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점검해보자는 것이다.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이 이데올로기는 막강하여 인간사를 다양한 형태로 뒤틀고 있다. ‘합리적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와 우리에게 실제로 주어진 도저히 합리적일 수 없는 선택의 괴리는 우리를 끝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우유부단한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우유부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대답과 결정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가 문제다.

 

1. OO천국에서 메뉴고르기

 

친구와 OO천국에 밥을 먹으러 가면, 눈앞에 놓인 수많은 메뉴들 속에서 바쁘게 셈을 한다. ‘김밥에 라볶이를 먹을까? 아니 돈가스도 괜찮은데?...’ 메뉴판을 쉴 틈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더 만족스러운 점심을 고민하던 중, 친구가 외친다.

“난 아무거나”

아뿔사 최고의 메뉴를 말할 찬스를 뺏겨 버렸다. 그가 분명 “아무거나”라고 외쳤지만 그것이 눈을 감고 메뉴판에서 손으로 찍어서 걸리는 것을 먹자는 의견은 아닐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돈가스 어때”라고 질문한 순간 “그거 말고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친구가 “아무거나”라는 마술적인 언어를 내뱉은 순간 나는 친구의 메뉴선택권까지 떠안아 버리게 되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본인보다 친구인 내가 자신의 욕망을 더 잘 알아줄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한 것이라고 즐거워해야 할 일 인걸까? 나도 내가 뭘 먹고 싶은지를 고르지 못하고 있는데?

 

출처: 네이버 웹툰, 선천적얼간이들(가스파드, 63화 중)

 

식사 메뉴를 결정할 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도처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발견된다. 쇼핑을 할 때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취업을 위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더 잘 살기 위해 자기 계발서 등에 조언을 구한다. “오늘날 소비사회는 우리에게 상품을 선택하라고 요구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결정과 선택들의 혼합물로 보라고 말하고 있는데(선택이란 이데올로기. 15).” 그 선택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조언들 속에서 살고 있다. OO천국의 사례처럼 전문가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보다 더 올바른 선택을 내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을때 조차도 우리는 선택을 위해 조언을 구하며, 더 나아가서는 선택권 자체를 이양한다.

 

2. (합리적)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스스로 선택하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한 개인이 바로 ‘합리적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주요 공격 대상이다. 이는 선택을 통해 우리가 가진 욕망을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역으로 우리가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아보고, 이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지를 되물어 보자.

돈가스와 김밥은 전혀 다르다. 나에게는 돈가스를 먹고자하는 욕망과 김밥을 먹고자하는 욕망이 동시에 발현될 수도 있다. 이 두 음식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도 다르다. 짜장면과 짬뽕을 고르는 문제가 ‘인류 최대의 고민’이 되는 이유는 짜장면은 절대 짬뽕 국물의 얼큰함을 줄수 없으며, 짬뽕은 짜장면 특유의 맛을 흉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지는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으며, 우리의 욕망을 다양하게 자극한다.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우유부단해 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살레츨은 이탈리아노 칼비노의 소설 <팔로마 씨>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이 소설에는 물건(치즈)을 사는데 엄청 고민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팔로마는 상반되는 욕구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한편으로는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알고 싶다는 것인데, 이 욕구는 모든 종류의 치즈를 맛봐야지만 충족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완벽한 선택을 향한 욕구인데, 그가 설사 그 완벽한 치즈와 영원히 만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팔로마 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34)”

 

여기서 보듯이 완벽한 선택지가 있으며, 나는 그것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백과사전식의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지식은 내가 다 가질수도, 판단에 이용할 수도 없다. ‘팔로마 씨’는 결국 가장 평범하고 가장 광고가 많이 된 치즈를 택했다. ‘팔로마 씨’의 방황과 평범한 선택이 그가 자신의 욕망조차 파악못하는 우유부단한 멍청이 이기 때문일까?

 

 

출처: 네이버블로그(치즈공방), 저 많은 치즈들 중 하나를 고른다는게 축복일까 고통일까.

 

3. 현대 소비사회를 지탱해 온 “부인(denial)”의 매커니즘

 

살레츨은 우유부단한 개인이 자신의 선택을 신뢰하지 못하게 될 때 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자신의 소비에 대한 선택을 의심하고 노상 실패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비자는 보통 끊임없이 의심하며 괴로워하고, 수많은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더라도 이내 후회하게 된다(63).”

 

바로 이 후회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소비를 하고도 소비하지 않았다고 믿는 부인(denial)의 매커니즘이 가동된다. 그녀가 보기에 이 부인의 매커니즘이 바로 현대 소비사회를 이끌어 왔다.

 

“부채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려는 그래서 금융위기로 이어진,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던 우리 소비의 기초...(64)”

 

세계 각국은 국가 부채를 경쟁적으로 늘려가고, TV에서는 연신 대출광고가 흘러나온다.

“여러분 빚을 늘려서라도 우리의 현재를 유지해야 합니다. 빚은 언젠가 갚아지겠죠.”

‘조삼모사’우화 속 원숭이들이 배를 잡고 웃을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기사는 이제 지겨울 정도다

출처: 한국은행(그린경제에서 재인용)

 

4. 어떻게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날것인가

 

그녀의 글은 소비사회, 부인, 선택 뿐만 아니라 사랑, 결혼, 연애 등의 사회적 현상을 면밀히 살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선택”이라는 표현뒤에 숨겨져 있던 “합리적”이라는 의미를 표면에 드러낸다.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그저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선택되어야 한다고 끝없이 강요하고 있다.

어떻게 이 강요를 벗어날 것인가. 안타깝게도 살레츨의 글은 다양한 사회현상속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를 지적하는데 그치고 있다. 어떻게 이것을 벗어날 것인가에 대해 뾰족한 대안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준 명쾌한 분석을 이어가는 것이 독자의 또다른 즐거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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