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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훌륭한 말과 글이 아주 많습니다. 풍성하게 운영되는 여러 다른 웹진과 블로그의 글들에서부터, 아카데믹한 격식이 오히려 그 가치를 가리고 있는 학술논문에까지, 수없이 많은 좋은 글들이 있습니다. 글만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부쩍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강연과 발표에서도 보석 같은 메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N이 추천하는 말과 글]에서는 도처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말과 글을 모아, 추천의 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권하려고 합니다. 

-코너 소개-




여럿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여럿


수유너머N 회원 / 꽁꽁이



  헤더 바넷은 약간의 지능이 있는 점균류로부터 인간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균으로부터 인간이 배울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점균류는 중앙 집중식 신경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뇌는 없지만 우리가 두뇌 기능과 연과짓고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학습하고 기억하며 문제도 해결하며 결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지능이 어디에 있는지 궁굼해집니다. 

  점균류의 내부에는 주기적인 펄스의 흐름, 즉, 정맥같은 구조가 있어서 세포 물질과 영양분, 그리고 화학적 정보를 세포 전체로 이동시킨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 쪽 방향으로 흐르다가 다음에는 반대로 흐르는 형태로 말입니다. 이에 대규모 통제 시스템은 없으나 지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균류의 관찰에서 결론으로 도출됩니다.


 

  그래서 점균류는 직접적인 생물학적 도구로 사용되지만 사회적 화합과 소통 그리고 협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은유적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단순한 은유적 모델이 아니라 유비추리적 모델로 작동하여 우리의 협동과정에 대해 고민케 합니다. 헤더 바넷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30분 동안 점균류가 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거대한 세포처럼 점균류의 규칙을 따르게 합니다. 진동을 통하여 소통하되 말은 하지 않는 겁니다.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세포체로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이 때 자아는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먹이를 찾는 것이 곧 움직임과 주변 환경의 탐사에 대한 동기가 디고 서로 처음 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함께 묶여 박물관 공원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나무를 만나면 자신들의 형태와 연결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모두 거대한 세포로서 언어를 통하지 않고 실행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언어활동 없이 점균류적인 협동방식만으로도 어떤 자율적인 움직임을 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여럿이지만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여럿인 상황입니다. 




  일찍이 떼야르 드 샤르댕은 이러한 움직임이 진화의 모습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균류의 진화과정과 인간의 진화과정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이러한 균류의 움직임이야말로 "인간현상"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쉽게 믿었던 것과 달리 사람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멋지게, 사람은 거대한 생물학적 종합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 화살이다. 계속 이어지는 생명체 중에서 사람은 마지막에 나왔고 가장 신선하며 가장 복잡하고 가장 야릇하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다."(212p)

  단순한 사람 중심주의가 아니라 사람이 이 모든 진화 현상의 결과물이며 사람 또한 더 큰 하나로 이어져가려 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균류는 개별적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나 여럿이면서 하나가 되고, 그 하나가 동시에 여럿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여럿이지만 하나로 나아가야 하며, 동시에 그 하나가 여럿인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균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일 것입니다. 매혹적입니다. 중앙의 지도를 받지 않으면서도 연합하고, 개별로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집단으로서 해결하는 일은 여럿인 우리가 보다 큰 존재가 되는 순간 가능할 것입니다. 이 큰 존재를 다른 말로 공동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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