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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스로틀(Full-Throttle, 최고속력)이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기계가 우리의 삶과 정신을 모두 지배할 때-

영화 : 매드맥스

 

 

 

장 희 국 /수유너머N회원

 

 

 

 

1. 기계에 대한 강렬한 물신숭배 -“V8을 외쳐~!!”

 

임모탈의 병사들이 V8을 외치며 출병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강렬한 엔진배기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한 그들의 외침은 앞으로 시작될 영화의 장렬한 속도감을 충분히 예감케 한다. V8이 뭐길래 그 단어만으로 속도가 느껴지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자동차 매니아가 아닌게 분명하다. V8-8기통 엔진은 일반적으로 대형차에만 달리는 강력한 엔진이다. 이 엔진이 소형차에 달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게 50kg의 배낭을 메고 뛰던 당신이 갑자기 그 배낭을 벗어던지고 달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바로 그러한 로망이 V8에 담겨있다. 안전 등의 문제로 제공되지는 않는 옵션인 일반 자동차의 엔진(보통 6기통 이하이다)을 ‘불법’으로 8기통으로 바꿀 때, 이 차량은 안전, 승차감 등을 모두 포기한 채 오직 속도만을 추구하는 날뛰는 야생마가 된다.

 

워보이들이 출발전 경건하게 V8을 외치고 있다. 자료: 아이즈 ize 글 위근우.

 

빨리 달리기위해 50도가 넘는 콕핏에서 에어컨도 없이 달려야 하는 F1레이서들처럼 매드맥스 속 워보이들은 V8을 외치며 (전혀 안전하지 않은) 자동차의 일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자동차의 존재 목적을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안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의 전도, 과학-기계문명의 발전이 핵전쟁이라는 멸망을 낳았지만, 멸망이후(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그들은 어느 순간 기계를 (너무나 아껴)신성시 하는 전도에 이르게 되었다.

기계에 의한 멸망 이후에도 그 기계에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아이러니는 매드맥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매우 잘 보여주는 매드맥스2편은 카체이싱(자동차 추격전)의 끝에 부서진 차에서 흐르는 기름을 생명수마냥 간절하게 담는 맥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하며, 기름보다 가치없는 인간의 목숨은 ‘매드(Mad)’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규정한다.

 

적의 차를 부순 후 마치 생명수를 모으듯이 바닥에 떨어진 휘발유까지도 손수건으로 짜서 모으는 맥스. 자료: 매드맥스2의 한장면

 

법과 통제가 모두 사라진 시대에 기계-이동수단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면서 동시에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의 무기이다. 이전 1,2,3편까지는 기계와 인간의 이러한 필연적 공존과 그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인간의 삶 자체를 그려내는데 집중했다면, 4편에서는 기계와의 공존을 넘어서 기계에 대한 물신으로 전도된 인간의 광기가 V8의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사방에 울려펴지고 있다.

 

 

2. 풀 스로틀(Full-throttle)과 직선도로

 

매드맥스4는 스토리상으로는 완전하게 분리된 작품이지만 연출의 핵심이 되는 이미지들은 전작의 시리즈를 매우 충실히 따르고 있다. 폭발하는 인터셉터(맥스의 차), 차량의 앞에 매달린 포로(피 주머니), 유조탱크를 단 트럭의 질주 등 매드맥스4가 시작되고부터 약 10분가량은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반가운 장면은 퓨리오사(샤를로즈 테론)가 임무를 맡고 시타델을 나설 때 나타난 곧게 뻗은 직선도로였다. 매드맥스의 전설은 바로 이 곧게 뻗은 직선도로에서 이루어지는 시원한 질주 때문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힐 걱정도 과속카메라 걱정도 없는 이 직선도로 위에서 맥스는 언제나 풀 스로틀(최고속도)로 내달린다. 인터셉터의 본네트에 거칠게 솟아 있는 8기통 엔진의 회전장면은 기계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렬한 힘을 우리의 뇌리에 각인한다.

 

 

매드맥스2의 카체이싱(자동차 추격전)은 기본적으로 곧게 뻗은 직선 도로위에서 이루어진다.

 

황량한 벌판 위에 남은 단 하나의 문명의 흔적인 2차선 직선도로는 자동차-기계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도로-문명으로부터의 이탈은 곧 추격의 허용(자동차의 속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함), 기계의 파괴로 귀결되어 왔다. 하지만 매드맥스4는 바로 이 직선도로에서 퓨리오사가 급격한 이탈을 하면서 시작된다. 그녀가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우회(Detour)”하는 장면은 기존 매드맥스 시리즈와 단호한 단절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드맥스가 30년만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자축하는 장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우회가 기계-문명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유치한 코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연출은 지난 30년의 세월동안 변화된 과학기술이 우리 관객의 상식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자동차가 도로위에서만 달릴 수 있다는 오래된 상식을 비웃는다. 오히려 차체에 불이 붙어도 이겨낼 수 있으며, 기계의 천적으로 생각되던 모래를 자신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다. 매드맥스4에서 기계의 능력은 더욱 전지전능해졌다. 더 이상 무대의 한계는 없다. 기계와 함께 하는 한 인간은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생존할 수 있다. 또한 어디서든 위협받을 수도 있다.

 

 

3. 기계에 대한 광신

 

매드맥스4의 초반부를 압도하는 하얀피부의 워보이들은 기괴함, 이질적임,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외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들이 더욱 공포스러워 지는 것은 임모탈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을 보이며, 죽음마저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좀비와 같은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그가 나를 천국으로 인도해 주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는다. 임모탈과 워보이의 광기어린 관계를 보면서 우리는 쉽게 파시즘-독재의 형상을 떠올릴 수 있으며,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의 광기어린 충성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워보이들은 자발적으로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에서 독재의 공포에 의한 지배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고 독재자-임모탈의 치명적인 매력이 유일한 원천일 수는 없다. 임모탈 개인의 매력으로 환원할 수 없는 지점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눈에 띈다.

 

 

 

은색락카를 입에 뿌리는 눅스와 철제마스크를 쓴 임모탈은 기계-메탈에 대한 광적인 열정을 잘 보여준다. 자료: 아이즈 ize 글 위근우

 

워보이들이 신앙을 형성하는 대상은 임모탈이지만 그들이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V8을 외치고, 입에 은색락카를 칠하며, 자동차의 핸들(steering wheel)을 신성시 한다. 특히 입에 은색락카를 칠하는 장면은 감독이 밝히듯이 임모탈의 입에 채워진 금속형 마스크를 따라하기 위한 행위로서 메탈(금속)에 대한 찬양을 동시에 나타낸다. 이러한 워보이들의 신앙 활동은 임모탈 개인을 묘사한다기 보다는 기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는게 더 자연스럽다. 임모탈이 광신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점은 자동차가 신성시 된다는 점, 임모탈이 직접 차를 몰고 추격에 나선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치장된 자동차 핸들(스티어링 휠)을 들고 V8을 외치는 것은 그들이 차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왜냐하면 시타델은 이미 물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며, 도시 내부에서 식물도 키우고 우유-정확히는 모유도 만들어 내는 등 자생하기 위한 조건을 이미 모두 갖추고 있다. 상식적인 군주라면 이 경우 도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방벽을 높이고 굳건히 자신의 성지를 지키려 할 것이다. 임모탈을 비롯해서 시타델의 워보이들이 도시 밖에서 광기의 질주를 벌여야 하는 계기는 보이지 않는다. 메말라버린 다른 땅에서 뭐 얻을것이 있겠는가. 임모탈이 개인의 매력을 통해 자신만의 왕국을 완벽하게 구축했다면, 그 왕국은 과거 봉건영지처럼 폐쇄적이며, 간헐적 이동만이 발생하는 사막속의 독재국가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합당해 보인다. 상식적으로 현재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물이지 자동차가 아니다. 그런데 워보이들의 신앙은 자동차-기계의 형태를 띄며, 운전을 한다는 행위는 목숨을 걸 정도로 가치있는 행위로 그려진다. 이는 그들이 물을 얻기 이전 기계에 의존해 살아야 했던 시기의 문화가 이들에게 매우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물을 얻고 난 이후에도 계속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임모탈이 물을 제공해서 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당시의 지배적 문화(아마도 기계 숭배)와 임모탈이 절묘하게 결합된 것이다.

 

 

4. 포기된 검은 오아시스

 

매드맥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계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매드맥스4에 이르러 기계에 대한 광신으로 그려진다. 이는 30년의 세월동안 과거보다 더 기계에 익숙해진 관객들에 걸맞는 변화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객의 인식 변화로 말미암아 너무나 아쉬운 변화가 한가지 생겨나고야 말았다. 그것은 바로 매드맥스 시리즈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 ‘검은 오아시스’가 ‘진짜 오아시스’로 바뀌고야 말았다는 점이다. 매드맥스1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의 죽음(친구의 죽음과 복수를 달성하는 죽음)은 연료(기름)에 불을 붙이며 발생한다. 특히 두 번째 죽음은 자신의 원수 중 한명을 차에 묶어두고 그 차의 기름에 불을 붙여 죽이면서 맥스가 ‘매드’의 칭호를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매드맥스2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주요 무대는 사막 속 한 유전이다. 그 유전을 중심으로 하나의 촌락이 꾸려져 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과 매우 흡사하다. 이는 물보다 기름이 우선시 되는 사회를 전적으로 상징하며, 발전한 기계문명에 익숙해진 인류가 멸망 이후에도 그 기계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물은 기동력이 갖추어 진다면 어디서든 구해 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기계에 의지한 기동력인 것이다. 기계와 인간은 서로 뒤엉켜 있어 마치 피와 기름마저도 서로 엉켜있는 것 같다.

이 ‘검은 오아시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희망없는 미래를 보다 강하게 상징한다. ‘검은 오아시스’에서는 기계 이외의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 기름은 식물을 기르지도 못하고, 식량이 되지도 못한다. ‘기름’은 오직 기계를 위해서만 쓰일 수 있으며, 인간(생물)의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은 오아시스’를 성공적으로 점령해도 인류는 생존을 위해 물을 가져와야 하고,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 ‘진짜 오아시스’와는 달리 ‘검은 오아시스’는 삶에 필수적이면서도 생존은 보장하지 않는 장소인 것이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기계에 집착하고, 기계를 위해 석유 주변에 모여들게 될수록 생명의 생존조건과는 멀어지게 되는 이러한 멸망의 연쇄고리야 말로 희망 없는 시대, 미친 시대의 중대한 상징이다.

 

 

매드맥스2의 주요사건이 벌어지는 "검은(석유) 오아시스" 촌락, 그들은 언제나 이동을 전제로 살아간다

 

그러나 매드맥스4에서 바로 이 ‘검은 오아시스’의 상징이 포기되고야 말았다. 기계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히 의존적인 관계에서 광신의 관계로까지 발전 했지만, 이를 설명해주던 매우 중요한 상징이 포기된 것이다. 매드맥스4에서 싸움의 원인은 명확하게 ‘물’이다. 모든 생명의 생존이 가능한 그곳(시타델)은 물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이미 ‘구원의 성지’다. 기존의 매드맥스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하염없이 떠돌아야 했던 영원한 사막이 아니다. 그래서 매드맥스4의 결말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맥스는 이전의 시리즈와는 달리 ‘구원의 성지’를 찾았다. 그가 그렇게 외치던 생존의 터전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떠나는가. 그것이 쿨해보일 줄 알았다면 큰 착각이다.

 

 

5. 기계와 함께 미쳐버린 시대

 

매드맥스4를 보다보면 사실 맥스는 별로 미치지 않아 보인다. 젤 미쳐 보이는건 워보이들이지.. 오히려 맥스가 미친 세상에서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다. 기존의 시리즈에서 맥스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미쳐’야만 했다. 그는 당시의 상식을 뛰어넘는 잔인함과 폭력적인 형태로 적을 처치하였으며, 이것이 그에게 ‘매드(Mad)’의 칭호를 부여한 원인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맥스는 ‘미친’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적으로 ‘정상’적이어야 했다. ‘매드’와 ‘맥스’의 분리가 명확히 보인다.

이는 어쩌면 30년이라는 시간동안 ‘맥스’가 멈춰있는 사이에 우리의 세계가 급속도로 변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엔진이 사람을 갈아버리고, 피와 기름이 뒤엉켜 흐르는 광경이 통괘한 액션씬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이미 매드맥스가 그리는 세기말의 감성에 보다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기계가 인간을 집어 삼키는 와중에도 기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뼛속깊이 각인한 세대인 우리들은 ‘맥스’보다도 ‘미친(Mad)세계’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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