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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 ‘법’ 앞에 서다

 

 

 

장희국/ 수유너머N 회원

 

 

 

 

 

사건의 발단

 

“(카톡)교장선생님 감옥 가신답니다!!”

 

3일전만 해도 우리랑 웃고 떠들던 분이 갑자기 감옥은 왜 가신단 말인가. 당혹스러운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보다 상세한 내용이 날아온다.

“교장선생님께서 200만원의 벌금 대신 노역을 하러 구치소로 자진 출두하신답니다.”

처음 받은 소식에 너무 놀란 탓일까, 자세한 내용을 접하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 미디어마다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이 유명한 지금 200만원 정도야 몇 일 고생하면 탕감해주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자진 출두라는 방식으로 가신다는데 무슨 큰 걱정이 있으랴. ‘법’이라는 놈이 양심이 있으면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어오르는 감정은 이 ‘법’이 양심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다. 애초에 교장선생님의 벌금이 ‘법’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생겼기 때문이다. 거기서 ‘법’은 자기반성보다는 ‘불법’을 부여하고는 양심없이 도망가버렸다. ‘법’이 도망갔으면 따라가서 잡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교장선생님은 ‘법’앞에 정면으로 나서기로 결심하신 모양이다.

 

 

(사건은 바로 여기서 벌어졌다. "법"이 기능하는 그 중심부에서 말이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사건의 전개

(본 글은 사건당일 현장에 있었던 노들장애인야학 유미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내용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자진출두를 선언하며 검찰청으로 갔고, 이제 교장선생님은 ‘법’의 집행대상이 되어 그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검찰청으로 잡혀가셨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도무지 ‘법’이 집행되지 않았다. 구치소로 가시는 모습을 남기려 사진기를 꺼내들고 대기하고 있었건만 교장선생님은 도무지 나오질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검찰청 내부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과 어수선한 분위기, 그리고 다급한 전화소리였다.

“거기 서울 장애인 콜택시죠?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죄인을 이송하려 하는데 ... 의왕시까지 못간다구요? ... 규정이 그래요? ... 안양은 가는데 의왕은 왜 못가나요? 바로 옆이잖습니까? 아무튼 못간다구요?... 안양까지 가려해도 두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구요?”

또 다른 전화소리도 들린다.

“의왕시 장애인 콜택시인가요? 검찰에서 죄인 이송을 위해 협조를 구합니다... 3일전에는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고요? ... 여기 검찰청입니다. 협조 부탁드린다구요. 예약을 먼저 해야한다구요?”

“아 시스템이 뭐이래?!!”

그러게요 시스템이 왜 그럴까요. 지금껏 장애인 이동수단 시스템을 고쳐달라고 그렇게 외치실때는 못들으시더니 이제야 아셨나요. 검찰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이동시킬 수 있는 저상버스가 없다. 장애인을 위한 콜택시는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콜택시와도 다르다. 당혹해하는 그들을 보고있는 교장선생님은 그 존재만으로도 호통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너는 나를 법적으로 집행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법은 나(장애인)라는 존재를 신경쓴 적이 있느냐?”

 

 

(교장선생님은 평소에도 이동권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셨다. 하지만 이날은 존재자체가 바로 호통소리였다. 사진출처. 민중의소리)

 

 

사건의 절정

 

서울시 장애인콜센터에 다시 전화를 걸어 간절히 협조를 구해보지만 역시나 안된단다. 점점더 당황하는 그들 중 한명이 기쁜표정으로 말한다.

“구급차를 이용해보자!”

한숨부터 나온다. 그들은 구급차에도 휠체어가 못 들어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거기다 장애인은 환자가 아니다. 구급차를 쓰는 그들을 막아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협조가 잘 안되는 모양이다.

“구급차가 업무협조를 하려면 119에 연락을 해야한다구요? ... 119상황실인가요. 여기 검찰청입니다. 구급차가 필요해서 그런데 ... 남산방제센터요?”

기어코 구급차를 빌리려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시던 교장선생님이 선언하신다.

“이런 이동권 문제 때문에 굴욕적으로 살았는데, 자진 노역의 순간까지 굴욕적으로 이동할 순 없다. 리프트차를 원한다.”

악법도 법이라며 따르려던 소크라테스에게 지금은 독약을 담을 그릇이 없으니 바닥의 물을 핥아 먹으라는 상황이다. 여기에 분노한다고 소크라테스를 욕할 수 있을까, 교장선생님을 욕할 수 있을까?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에 전화를 걸고 --> 의왕시 못가서 거절당하고 --> 의왕시 장애인 콜택시에 전화를 걸고 --> 예약이 안되서 거절당하고 --> 다시 서울시 장콜에 걸고 --> 규정이 없어서 거절당하고 --> 소방서에 걸고 --> 119상황실에 걸고 --> 남산방제센터에 걸고 --> 그런데 구급차는 이송이 안되고 --> 마지막으로 또다시 서울시 장콜에 연락을 해서 간신히 협조를 구한다. 4시간에 가까운 해프닝 끝에 교장선생님을 구치소로 이송했다. 규정을 위반하는 ‘불법’을 통해서 말이다. ‘법’을 수행하기 위해 또 다른 ‘법’이 위반된 것이다. 장애인은 감옥가는 길도 고난이다.

 

(장애인에겐 모든 이동이 전쟁이다. 그리고 고속버스에는 그러한 이동 가능성마저 없다. 사진출처. 뉴시스)

 

 

절정의 끝없는 계속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 있는 사건이지만, 장애인과 ‘법’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법’이 고려하는 대상에는 장애인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장애인 복지를 이유로 들면서, "법"이 장애인을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법"의 고려라는 것은 단순히 생명유지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은 법에 속한자가(우리가) "함께" 살아가려는 방법을 정한 것이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을 둘러싼 검찰의 야단법석에서 볼 수 있듯이, 장애인들은 우리와 "함께" 이동하지 못한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한정되어 있다. 저상버스, 지하철, 장애인콜택시가 거의 전부다. 가장 흔한 교통수단인 지하철에서의 이동만을 생각해 보아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동하는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야학에서 출발해서 어린이 대공원을 장애인들과 이동하려고 하면 우리는 먼저 답사를 다녀와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몇 번 출구에 있는지 그것이 어느통로를 통해서 환승통로로 연결되는지(모든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일관성이 없어 각 역마다 확인을 거쳐야 함), 혹은 고장난것은 없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만약 통로를 잘못나가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면 우리는 다음역으로 향해서 내린다음 또다른 교통수단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폭이 장애인은 매우 좁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검찰이 겪은 그런 불편함을 우리는 항상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법’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들이 ‘법’의 관점에서 처벌의 대상이 되는 인격체라고 할 때, 이동의 권리는 마치 그것이 대단한 복지인것 마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당연히 보장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불법’을 말하고 싶다면 이동하지 못하는 자들을 우선 우리와 "함께" 이동하게는 만들어 주는게 ‘법’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 아닐까?

 

그리고 여기 나와 같은 비장애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또다른 문제가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을 통해 시외로 이동하지 못한다. 그것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는 저상버스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명절에 장애인은 부모님을 뵈러 이동할 권리도 없는 걸까? 혹은 장애인은 타 지역으로 이주할 권리도 없는 걸까? 4.20일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에는 이 문제를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법’이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날. 그 앞에서 ‘법’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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