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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하루 종일~서비스, 이대로 괜찮을까.

수유너머웹진 2014.08.29 17:52 조회 수 : 12

하루 종일~서비스, 이대로 괜찮을까.

 

(앤드류 스미스, 「서비스 노동」,『뉴레프트리뷰·5』, 도서출판 길, 2014.5)


 

문화/수유너머N 회원

 

 

 

 

몇 년 전 대형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날 따라 뭔가 짐덩어리가 많았던것 같다. 그날도 퇴근하면서 집에서 할 일 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짐을 먼저 사물함에 맡기고 마트를 돌아다니다가, 몇 가지 물건을 사고 나왔다. 사실 굳이 대형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이었다. 가공식품 몇 개 자질구레한 생필품들 그리고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세일하는 김에 산 몇 개의 물건들... 그날도 그저 괜히 습관처럼 들른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물건을 사고... 나는 또 다른 쇼핑몰을 배회하다가... 어쩌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거의 마트가 문을 닫을 때 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마트 사물함에 가방을 맡기고, 다른 층의 쇼핑몰에서 너무 시간을 오래 보내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부랴부랴 다시 마트 사물함으로 갔다.

 

그때는 이미 마트가 문을 닫는 10시를 살짝 넘은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트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뒤늦게 사물함에서 물건을 챙겨서 나왔다. 마침 직원들도 퇴근하는 중이었다. 내 주위는 거의 다 마트 직원분들이었고, 나도 그 사이에 끼어 마트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우리는 모두 그 마트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퇴근 후 무료함 인지 울적함인지 뭐지 모를 헛헛함을 풀러 마트 산책을 하고 있는 내 옆에는 하루 종일 마트에서 노동을 하고 또 끝나기 전에? 아니면 자신의 파트 타임이 시작하기 전에?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분들 역시 자신이 "서비스"를 제공했던 마트에서 물건을 꽤 많이 산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라는 로고가 찍힌 쇼핑백을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점원에서 고객으로, 고객에서 점원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하루 종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리고 그 댓가로 받은 돈을 밑천 삼아 "고객"이 된다. 그리고 내가 제공했던 것과 유사한 그 "서비스"를 누린다. 그날 나는 마트를 나서면서, 뭔가 거대한 성에 갇혀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날만큼... 퇴근 길이 피곤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 끝없는 "서비스"의 사슬 속을 벗어날 수 없음을 절실하게 느껴버려서가 아니었을까.

 

오늘 날 서비스 노동은 거의 우리 삶 전반에 광범위 하게 존재하는 일반화된 노동이 되어버렸다. 굳이 고전적 의미의 "서비스 영역"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과정 밖에서 기능하는 노동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용역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네이버 경제학 사전) 이처럼 서비스 노동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노동 과정 밖에서 기능하는 노동을 일컫는 말고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오늘 소개할 이 글은 앤드류 스미스라는 영국 학자의 「서비스 노동」이라는 글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는 실제로 학계에 몸을 담고는 있지만, 과거에 서비스 노동에 종사했었고, 이 글은 바로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글을 서술하기 전에 자신의 글쓰기는 어떤 것인지 밝힌다. 그에 따르면 그의 글쓰기는 소위 말하는 사회학적 글쓰기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자신이 서비스 업계에서 일한 경험을 놓고 이것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글쓰기를 하겠다고 밝힌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쓰기는 객관적인 글쓰기나, ‘말하는글쓰기와는 거리를 둘 것임을 밝힌다. 하지만, 아쉽게도 자신의 경험을 객관화 하고는 있지만, 실제 경험에 기반한 예리한 통찰은 부족한 편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비스 노동의 고충에 대해, 너무 많이 들어서 일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서비스 노동"의 ABC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의 글은 쉽고 잘 읽힌다는 점에서 필요한 글이기도 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권력을 대리 집행"해야 하는 서비스 노동

 

서비스 분야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유권이 복잡한 사슬을 이룬 하청 계약의 형태에서 행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노동자가 가장 먼저 적응해야 할 대상은 "관리자"이기도 하다. 관리자는 사실상 노동자를 고용한 사람이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이지만 그는 가장 직접적인 권위자이다. 다음으로 노동자에게 결정적인 대상은 고객이다. 노동자는 M-C-M이라는 교환의 사슬 속에서 상품과 고객을 매개한다. 사실상 이 관계에서 노동자는 매개일 뿐이지만, 직접 고객을 대면하고 상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품의 가격이나 질을 놓고 벌어지는 고객의 각종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MC사이에서 보초를 서야하는 입장인 것. 저자가 말하는 테이크 아웃 요리점 경험이 이를 잘 보여주는 예(92)일 것이다.

 

앞서 말한 서비스 노동의 특징들-하청 고용 계약, 경계근무-와 같은 것들 외에도 이 노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이해 당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권력을 대리 집행해야 한다는 어려움이다.(95) 좀도둑과 맞닥뜨릴 때의 문제가 그것이다. 수상한 사람이 있다. 당연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디까지 경계해야 하는 가? 누구나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것이 매장의 특성인데, 단지 수상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해서 무조건 내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었다가 좀도둑을 못 막는다면? 노동자와 좀도둑의 공모로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서비스 노동 현장에서 반복되는 전근대적 관계

 

저자의 논지에 따라 서비스 노동의 특성을 정리하자면, 서비스 노동은 "잘 알지도 못하는 권력을 대리 집행"한다. 즉 복잡한 이해관계의 사슬 속에 놓여 있다는 것. 그리도 또 다른 특성이  "전근대적 관계"의 지속이다. 쉽게 말해 고객과의 관계에서 감정 노동을 하거나, 고전적 노동 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동이나 관계가 생긴다는 것. 맞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를 "서비스 노동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완전히 퇴출되었다고 믿어졌던 전근대적 관계가 지속되는 영역"이라 지적한. 그리고 이는 마지막 절에서 서비스 노동의 "저항"의 어려움에 대한 지적과 "저항"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진다. 서비스 노동의  특성상 이 영역에서 일어나는 저항은 항상 미묘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두 보이스의 글을 빌려와 서비스 노동 분야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방식을 예로 든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고의로 실수하거나, 느릿느릿 응대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격식을 갖추는 예의를 비추는 방식의 저항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서비스 노동의 특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살짝 소개하는 미묘한 저항의 방식에서도 혹은 저항의 어려움 자체에 대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앤드류 스미스의 「서비스 노동」,『뉴레프트리뷰·5』, 이 글을 읽고 "서비스 노동"에 대한 분석이 끝난 것이라거나 이 저항의 가능성에 대해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계기로 질문을 한 번 바꿔보면 어떨까. 서비스 노동에서 나타나는 "전근대적 관계"를 당연한 것 처럼 재생산해내는 주체가 누구지? 왜 우리는 고객과 점원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우리가 행여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당연하게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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