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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외피에 감추어진 계급투쟁의 맹아(萌芽)

「독일 농민 전쟁」,(프리드리히 엥겔스,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2권>)

 

 

 

 


심아정/수유너머N 회원

 

 


혁명의 신학자 토마스 뮌처

 

맑스는 독일 영주들의 가혹한 세금으로 촉발된 1525년 독일농민전쟁을 “독일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에피소드”라고 말했다. 알베르토 토스카노 또한 천년왕국운동과 결합된 이 전쟁을 “프랑스 혁명 이전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가장 주목할 만한 민중 봉기”로 기록한다.

 

독일농민전쟁의 주도자는 에른스트 블로흐가 ‘혁명의 신학자’라고 불렀던 토마스 뮌처였는데, 지배계급인 군주와 영주들이 만든 기존 질서를 부정했던 그는 처형 직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의 재산이라는 우리 군주들과 영주들의 주장 말고

대체 어디에서 이 모든 고리대업, 절도, 강도와 같은 악이 솟아 나오겠는가. 

 

“모든 것은 공통의 소유여야 하고, 각자에 대한 분배는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거부하는 어떤 영주, 백작, 귀족이 있다면 처음에는 경고가 주어질 것이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목을 치거나 교수대에 매달아야 할 것이다.” 

 

 

엥겔스를 비롯해 후대의 일부 맑스주의자들은 이 말에서 ‘공산주의’의 원칙을 찾아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유토피아주의 혹은 신비주의로 경시되어 왔던 뮌처의 천년왕국운동을 두고 블로흐의 “사회주의는 대단히 천년왕국적”이라는 말을 빌려 적극 평가하기도 한다.

 

 



 

      

 <토마스 뮌처에 대한 독일의 기록 영화>                       에른스트 블로흐,『맑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엥겔스가 독일농민전쟁에 주목한 이유

 


1848~49년의 독일 3월 혁명의 패배로부터 2년이 지난 1850. 혁명운동이 침제된 상황에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신라인신문/정치경제평론> 5/6 병합호에 「독일농민전쟁」을 게재한다. 그는 1524~25년의 독일농민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뮌처와 농민들의 모습을 통해 노동운동을 고무함과 동시에, 1848년 혁명 당시의 적들이 300년 전의 적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음을 역설하면서, 그들과의 싸움이 녹녹치 않을 것임을 노동자계급에게 일깨워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 글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16세기 당시에 잡다했던 신분들이 종교 개혁의 혁명적인 종교적, 정치적 이념이 보급됨에 따라 비로소 한층 더 큰 전체로 결집하게 되었고, 결국엔 3대 진영, 즉 현상유지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가톨릭적 반동 진영과 시민적이고 온건적인 루터적 개혁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하급귀족과 시민층으로 구성되는 부르주아적/개량적 진영, 그리고 뮌처에 의해 그 요구와 교리가 언표되었던 농민들과 평민들로 이루어진 혁명적 진영으로 나뉘게 된다. 이 중에서도 평민들은 농민, 소시민과도 차별화되는 무소유와 무권리의 계급이었다.

 

엥겔스가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시기는 16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전쟁 직전에 프랑스의 후스파의 농민 봉기가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해운업의 등장과 함께 초기 자본주의적인 회사조직이 태동하고 있었으며, 소규모의 금융자본이 생겨나고, 몇몇 메뉴펙처가 생산자본을 가지게 됨으로써 그 세력이 확장되고 있었던 시기다. 결과적으로 수공업이 몰락하고 농민의 빈곤화가 진행되었다. 여기서 엥겔스가 주목하고자 했던 사실은 서유럽의 자본주의가 시작되던 이 시점, 즉 아직까지는 국민국가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이동이 대체로 자유로웠지만 이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한되었던 시기에, 국경을 초월한 자본에 의해서 성장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의 차이가 현저해지게 되었으며, 곳곳에서 농민봉기와 반()권력투쟁 등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토마스 뮌처가 이끌었던 독일의 농민봉기를 재조명함으로써, 현재(1850)의 공산주의 혁명과의 유사점을 살펴보고 그 가능성과 실패를 진단하는 것이 엥겔스 글의 주제이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그의 이러한 시도를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지만, 일본의 역사학자들 중에서도 일본 에도시대(1603~1867)의 농민봉기를 통해서 자유민권운동의 맹아(萌芽)를 추적해본다든가, 농민봉기가 일어났던 그 시점에서 이미 근대의 자유 또는 민주주의적인 주장이나 조직론이 태동하고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방법론적으로 보면 엥겔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루터와 시민들의 "신중한" 개혁의 한계


6세기에는 성직자들이 지적 교양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의 교리들은 동시에 정치의 공리들이었고, 성경은 재판정에서 법적 효력 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봉건제와 교회에 대한 공격, 일체의 혁명적 사회/정치 이론은 동시에 신학적으로는 이단이어야 했으며, 봉건제에 대한 혁명적 저항은 신비설로, 공공연한 이단으로, 무장봉기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

 

루터는 1517~25년 사이의 기간에, 19세기의 독일 입헌파가 1846~49년까지의 기간에 거쳤던 변모와 완전히 똑같은 변모, 즉 잠깐 동안 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가 운동이 경과함에 따라 자신들 배후의 평민적 혹은 프롤레타리아적 당파에게 추월 당하는 각각의 부르주아 당파가 거쳤던 변모를 거쳤다. 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카톨릭 교회와 교리들에 대한 그의 반대는 모든 반대분자들이 뭉쳐야만 했고, 카톨릭 정통에 맞선 종래의 이단파가 대표되어야만 하는 포괄적인 성질의 것이어야 했다. 1847년 이후 독일의 부르주아들이 혁명적이었으며,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자처했고, 노동자 계급의 해방에 열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초기 혁명적 열의에 찬 루터는 “각종 무기들을 가지고 공격하여 그들의 피로 우리의 손을 씻어서는 안된단 말인가?” 라고 사람들을 선동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적 분자들을 내팽개치고 시민과 귀족 제후의 편에 서게 되면서 “나는 복음이 폭력과 피흘림으로 지켜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을 바꾼다. 시민적 당파들이 일단 승리를 거두면 ‘합법적’으로 전진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제 루터는 제후의 하인이 되었다.

 



무력 봉기, 무신론, 그리고 공산주의를 주장한 토마스 뮌처 

 



그러나 봉기는 순식간에 시민적인 ‘신중한’ 개혁을 압도하여 급속히 확산되었고, 시민과 제후, 귀족과 성직자, 루터와 교황은 농민 도당에 반대하여 동맹을 맺었다. 시민적 혁명가 루터에 반해 평민적 혁명가였던 뮌처는 루터가 설교했던 조용한 토론, 평화적 전진 따위가 아닌 무력 행동을 호소했고 그의 종교철학은 무신론에, 그의 정치적 강령은 공산주의에 닿아있었다.

 

평민들 사이에서 이제 막 발견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 조건들에 대한 천재적인 예견이라 할 수 있는 뮌처의 강령은, 교회를 그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림으로써,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매우 새로운 이 교회와 모순되는 일체의 제도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즉 예언된 천년왕국을 즉각적으로 지상에 세울 것을 요구했으며, 그는 하나님 나라를 어떠한 계급 차별도, 사적 소유도, 사회 성원들에 대해 소원한 국가권력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상태로 이해했다. 모든 노동과 모든 재산이 공동의 것으로 됨으로써 가장 완전한 평등이 실현될 것으로 본 그는, 혁명적 소책자를 발행하고 각지에 밀사를 파견했고, 루터는 그의 고발자로서 행동하였다.

 

 

 



계급투쟁의 맹아(萌芽), 1525년의 독일농민전쟁 


16세기의 종교전쟁들에서는 무엇보다도 매우 실증적인 계급이해들이 문제였고, 이 전쟁들은 후일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국내적 충돌들과 마찬가지로 ‘계급투쟁’들이었다는 점을 간과하거나 그 의의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 당시 이 계급투쟁들이 종교적인 구호를 내걸었다 하더라도, 각 계급들의 이해들이나 욕구들이 종교적 외피에 감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계급투쟁으로서의 ‘맹아(萌芽)’적 성격을 가지고 300년 전에 이미 연주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주곡인 것이다.

 

엥겔스는 300년 전 독일농민전쟁에서 농민들과 평민들이 봉건세력에 대항하여 통합된 저항을 일구어내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1525년 독일농민전쟁과 1848 3월 혁명 모두 지방의 제후들이 각각의 지역에서 봉기를 격파했다는 점과 시민적/평민적 반대파가 농민의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혁명의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이 이제야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엥겔스는 3월 혁명 이후 독일에 도래할 진보를 조심스럽게 조망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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