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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X철학 토크박스] 현상학이 과학에 답하자면

수유너머웹진 2016.10.05 05:34 조회 수 : 35


현상학이 과학에 답하자면




문 한 샘 /수유너머N 회원






C군에게.

  답장이 늦었네. 사실 좀 더 일찍 답장을 쓰고 싶었는데, 정작 편지를 받고 보니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ㅎㅎ 사실 현상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현상학’이라는 키워드가 웹진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아주 기뻐. 더불어 고민의 기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해두고 싶네.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그리고 그 비판자 데리다




  일단 미리 말해두자면, 나도 현상학만이 옳고 과학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를 현상학의 위정척사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도 누구보다 현상학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입장이라고 말하고 싶어. 다만 나는 현상학에 관심이 많지. 이유는 단순한데, 현상학이 ‘재미있는 하나의 철학’이기 때문이야. 생각해 봤는데, 내가 현상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즉 현상학은 무엇보다 하나의 현대철학이고, 20세기 초중기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철학이야. 너랑 내가 비교적 친숙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들, 들뢰즈, 데리다, 푸코 같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하나같이 현상학을 비판할까? 그건 이들이 그만큼 당대 현상학자들의 사상적 영향권 아래에 있었기 때문일 거야.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누구든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신의 선배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게 되잖아. 그런 면에서 현상학에 대한 강한 비판자들은 그만큼이나 현상학을 의식하면서,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것과 경쟁하면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다고 봐.


  그런 만큼 들뢰즈, 데리다, 푸코 역시(본인들은 썩 내켜하지 않겠지만) 현상학자들과 내용적으로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있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철학의 개념들의 대부분은 사실 현상학자들의 개념인 경우가 많아. 내재성이나 초월, 수동적 종합, 익명성, 신체, 타자 같은 핫한 개념들이 그렇지. 물론 ‘그러니까 현상학이 짱이다’라는 것은 될 수 없고, 근래의 철학자들이 그것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한 공로가 있는 거지만, 어쨌든 현상학은 최신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공부해볼 만한 철학이라고 생각해. 단지 ‘이전 세대의 철학’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최신의 철학들과 굉장히 많은 개념들을 공유하면서도, 그것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조립한 철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거야. 이건 앞으로도 차차 할 이야기이니 일단 이 정도로 이야기해두자.

 




현상학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까?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니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볼게. 첫 번째 질문은 이런 거였어. 메를로-퐁티는 지각을 강조하는데, 그 효과는 결국 상식과 일상적 감각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 오늘날의 첨단 과학 이론들은 우리 오감을 통한 지각에 기반하고 있다기보다 실험 결과와 수학적 추론을 통해 도달된 것들인데,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은 이런 성취를 못 보여주지 않느냐. 너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예로 들었지. 사실 두 번째 질문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했어. 쓸 수 있는 도구가 없던 시절에는 ‘직관’을 통해 사고를 전개한다고 하지만, 수많은 도구와 분과학문들이 있는 오늘날에 직관에 매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메를로-퐁티가 이야기하는 지각에 대한 탐구도 마찬가지지. 의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을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우리 지각이 그런 방식으로 일어나는 이유를 해명해나가고 있는데, ‘직관’과 그것에 기초한 ‘기술’만을 강조하는 현상학은 이들과 비교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거지.

 

 

  요약하면 첫째 질문은 ‘현상학은 상식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질문은 ‘현상학은 과학의 성취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정도가 될 것 같다. 일단 두 번째 질문부터 답해볼게. 두 번째 질문은 이런 질문이었어. ‘현상학은 현대 과학 이론들만큼의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상학의 역할은 무엇이냐.’ 너는 과학의 성취를 강조하며 이렇게 물었어. ‘그러나 그런 ‘지어낸 이야기’ 덕택에 우리는 반도체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어. 그 컴퓨터로 이렇게 형에게 글을 쓰고 있잖아?’






                                   컴퓨터가 생겨서 기말과제도 많아진 걸까?


 



  물론 현상학은 컴퓨터를 만들지 못해. 그런데 나는 반대로 이렇게 묻고 싶어. 너는 현상학이 컴퓨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이 질문이 사실 내가 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인 거 같아. 너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 난 니가 ‘철학이라면 컴퓨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약간 불만스러운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야. 단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이 컴퓨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니가 그걸 문제삼지는 않을 거 같다는 거야. 그런데 너는 현상학에 대해서는 그걸 묻고 있어. 왜일까? 음... 아마도 니가 접해온 현상학에 대한 이미지들이 들뢰즈 철학만큼 ‘섹시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현상학이 무엇보다 하나의 ‘철학’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일단 철학의 입장에서 너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보려고 해. 왜냐하면 너의 질문들이 표면적으로는 현상학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 결국에는 철학 자체에 대한 질문이 되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내 답변은, 너의 질문들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과학적’ 전제들과, 내가 생각하는 ‘철학’의 전제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드러내는 식으로 일단 진행될 것 같아.

 

  너도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철학이 반도체를 만들지 못하고 컴퓨터를 만들지 못하는 건 철학의 흠결이 아니야. 애초에 그걸 하고자 하는 게 아니거든. 다르게 말한다면, 철학은 ‘유용성’을 추구하지 않지. 그럼 철학은 뭘 하는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이야기할게. 철학은 ‘진리’를 추구해. 즉 철학의 질문은 이런 거야. ‘진리란 무엇인가?’ 시대착오적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이건 고루하게 보이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근대의 데카르트 같은 사람한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야. 고전철학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자라고 하는 들뢰즈 같은 현대철학자 역시 마찬가지야. 들뢰즈가 니체를 따라 작업하는 진리 개념의 파괴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반만 맞는 얘기야. 들뢰즈가 깨부수려 하는 건 고전적 진리 개념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런 진리와는 다른 것으로서의 진리가 어떻게 가능한지 묻지. 그 대답으로 도출되는 설명들이 바로 ‘기호와의 마주침(<프루스트와 기호들>)’이나 ‘내재성의 구도(<철학이란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거짓의 역량(<시네마Ⅱ: 시간-이미지>)’ 같은 개념들일 거야. 들뢰즈보다 훨씬 더 고전철학에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바디우 같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 바디우는 명시적으로 자신의 핵심적 주제를 진리라고 설정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날 찾을 수 없을 걸~




 

  물론 철학자들마다 진리를 무엇으로 이야기하는가 하는 건 모두 달라. 그러니까 ‘철학은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해봤자 이 말이 내용적으로 우리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건 아니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라는 표지로 철학을 규정하는 건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진리’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통상적인 지식과는 다른 어떤 것을 뜻하거든. 상식은 진리인가? 그렇게 말하기 힘들어. 그러니까 철학은 상식을 추구하지 않지. 그럼 처세술이 진리인가? 그렇지 않겠지. ‘거래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법’ 같은 건 살아가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런 지식을 철학자들은 설파하지 않아. 그럼 조금 더 나아가서, 과학은 진리인가? 여기서부터가 민감한 문제일 거야. 과학이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이때의 ‘과학’이 ‘유용한 학문’을 함축한다면, 과학과 진리는 분명히 구분될 거라는 거야.

 

  그럼 철학이 진리를 추구한다고 할 때, 대체 그 진리라는 건 어떤 건가? 그 내용은 각 철학마다 다르다고 했으니 현상학에 국한해서 이야기해볼게. 후설과 메를로-퐁티는 공통적으로 현상학을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어. 엄청나게 고루해 보이는 이야기이고, ‘저 본질은 그럼 어떤 건가’ 하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겠지만, 확실한 건 이들이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 기존의 각종 선입견과 전제들을 제거하고자 했다는 거야. 내가 A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이런저런 선입견들에 영향을 받았다면 그건 A를 ‘엄밀하게’ 인식했다고 말하기 어렵겠지. A를 A`로 인식하거나 아예 B로 인식하는 일이 벌어질테니까. 후설이라면 이를 두고 본질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거야.

 

  중요한 건, 이러한 선입견들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과학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거야. ‘물체는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것이 대표적이지. ‘아니, 물체는 당연히 원소로 이루어진 거 아니야?’라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저 과학적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저런 생각은 오늘날에는 상식적인 생각이고, 그런 점에서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바로 ‘상식적’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으로는 따져물을 만한 문제인 거지. 다양한 철학들의 내용들은 다 다르지만, 어떤 철학이든 누군가의 전제를 따져묻고 그것과 다른 생각을 전개하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어. 다만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어떤 전제를 비판하고 어떤 생각을 새롭게 끼워넣느냐 하는 게 다른 거겠지.





       

당신 제 정신이야??




 

  현상학은 과학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해. 다르게 말하면 과학의 전제들을 비판하지. 과학의 대표적인 전제는 이런 거야. ‘세상의 원리는 물질의 원리를 밝히면 해결된다’. ‘물리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고 ‘유물론’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지. 이런 입장은 사실 굉장히 힘이 센 입장이고, 누군가 이 입장을 지지한다면 그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는 거지만, 그것이 철학이 되는 한에서는 문제가 다르지. 아무리 그럴 듯한 생각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한다는 거야. 플라톤의 이름을 다시 꺼내보자면, 플라톤은 ‘진리(episteme)’와 ‘의견(doxa)’을 구별해. 의견이란 opinion, 말그대로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거지. 철학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 지위에 가닿지 못하는 것들은 하나의 의견, 더 강하게 말해 하나의 ‘믿음’에 불과한 거야. 철학의 입장에서 볼 때 과학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역시 그 자체로 참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 믿음이라는 거지.





         

잠깐만, 내 얘기를 좀 들어보라고





 

  이런 점에서 현상학이 본질을 추구한다고 할 때 이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고, 곧 우리에게 미리 자리잡은 의견을 제거한다는 것인데, 과학들과 과학자들의 경우 자신들의 의견을 ‘자명하게 맞는 것’, 즉 진리의 지위에 올려놓으려 한다는 점에서 현상학은 과학을 강하게 비판하는 거지. 그럼 현상학은 어떻게 묻는가? ‘봄(vision)’이라는 문제를 예로 들어볼게. 현상학은 이렇게 물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과학은 어떻게 답할까? 거친 예상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과학은 ‘본다는 것’을 ‘시신경을 통해 외부의 상을 받아들이는 것’ 정도와 같은 것으로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은 과학의 입장에서는 ‘시신경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밝히는 것’으로 환원되겠지. 여기에는, 내가 무언가를 본다고 하는 사실은 ‘시신경의 운동’이라고 하는 물리적 사실로 환원된다고 하는 전제가 있어. 현상학은 이런 전제들을 문제삼고,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보이려 하고, 더 나은 설명을 시도하는 거지. 그러니까 ‘봄’을 쉽게 ‘시신경의 작동’으로 환원하는 것이 과학의 입장(이면서 그 영향 아래에 있는 우리의 상식)이라면, 그것과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 현상학이자 철학이라는 거야. ‘본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렇게 보면 너무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 어쨌든 이런, 도저히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철학이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비판도 받는 거지만^^; 현상학만이 아니라 이런 시도는 현대 이론들에서 다양하게 목격되고 있어. 메를로-퐁티는 본다는 것이 시신경의 물리적 작동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주체의 지향성(intentionality)과 결부된 문제라고 파악하지. 쉽게 말해 주체의 의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거야. 라깡 같은 사람은 이걸 욕망과 시선의 문제로 연결지으면서 정신분석학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항상 이데올로기가 결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본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이야기를 마무리지어 볼게. ‘현상학은 과학의 성취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하는 너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래서, 니 말이 맞기는 하다는 거야. 다만 현상학, 더 넓게 철학은 과학과 하고자 하는 게 달라. 과학이 굉장히 유용하고 그래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면 너무 좋은 일이지만, 철학은 조금 다른 걸 하려고 한다는 거지. 전통을 따라 말한다면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고, 이건 기존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과학의 성취가 훨씬 더 우리에게 유용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유용성 자체가 곧 진리가 아닌 한에서 철학은 언제나 과학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할 거야.

 

 

  글이 좀 길어졌네... 일단 과학에 대한 철학의 기본적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현상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야 할 것 같아. 대체 현상학의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궁금하지?^^ 니가 궁금하지 않다고 답장을 보낸다 해도 나는 이미 열심히 쓰고 있을 거야. 답장을 받을 때쯤이면 다 완성됐을지도 모르지. 우리 사이에 놓인 이 시차(時差)가 우리를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어. 건승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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