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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2008 인권선언’이 길어내는 표현의 자유

수유너머웹진 2015.03.27 15:36 조회 수 : 7

‘2008 인권선언’이 길어내는 표현의 자유

 




임당 / 수유너머N 회원

 







1948년 최초의 인권선언문

 

인권은 언제 불려 나오는가? 아마도 그것은 인권에 대한 침해가 가장 심각한 그 순간 혹은 그 순간이 지난 직후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참혹한 상황에서 인권에 대한 합의의 움직임이 피어올랐던 것도 그러하다. 이는 전쟁의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야만적 행위의 참혹한 실상들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에서 시작 되었다. 인권은 이렇게 전후 재건의 상황에서 높은 가치를 가지는 이념으로 떠올랐고, 1948년 12월 10일 UN총회에서 50여개국의 협의로 세계인권선언이 발의되었다. 그 내용으로는 인류에게는 누구라도 평등과 존엄성이 부여되어야 하며, 그것이 바탕이 될 때에야 비로소 세계 평화의 밑거름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주 골자로 한다. 이러한 세계인권선언은 강제력이 없는 선언에 불과하지만 이후 국제 조약이나 의정서의 채택과 각 국가의 헌법에 인용되는 등 인권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자” (2008 인권선언)

 

그런데 2008년 대한민국에서 인권은 어째서 다시금 불려나온 것일까? 인권은 변동 불가능한 고정된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정한 시기의 정세에 따라 침해되는 권리들은 상이하다. 따라서 그때그대 마다 부각되는 권리의 쟁점들을 통해 인권에 대한 논의는 새롭게 씌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은 어떤 보편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다는 변화되는 사회와 정치의 지형에서 그려지는 인권의 연약한 지반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다시 씌어져야 하는 것이다. 2008년의 인권선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기획되었다. 2008년, 인권을 불러낸 사건은 무엇인가?

 

2008년의 촛불은 참여자들이 저항의 목소리를 함께 내며 연대의 가능성이 분출된 사건이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국가와 정치권력에 대항해 국민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대답은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 시위 참여자에 대한 연행․구속으로 돌아왔다. 저항의 목소리와 연대의 움직임이 처단되는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선언은 갱신 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인권선언을 위해 모인 이들(비상국민행동 등)은 무엇보다도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48년 당시의 세계인권선언이 무엇보다도 생존 그 자체에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면, 2008년의 인권선언에서는 신자유주의화로 인해 배제와 소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들의 권리로 고쳐 써졌다. 인권이 권리라는 차원에서 권력자들에게도 남용되는 사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권선언이 발의되는 배경에 대해서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외침


2008년의 인권선언은 새로운 선언문의 발표와 함께 각 권리별 릴레이 선언이 뒤따랐다. 공안탄압대응, 표현의 자유,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선언, 빈곤에 맞선 권리선언, 집은 인권이다!, 성소수자 선언, HIV/AIDS 감염인 선언, 이주노동자 선언, 장애인권리 선언, 청소년 선언, 환자권리선언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각 선언들은 비정규직․성소수자․이주노동자․장애인․청소년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가 누구인지 이들을 위해 어떤 제도와 의식이 뒤따라야 하는지를 담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탄압을 저지하는 공안탄압대응과 표현의자유 선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빈곤․주거의 문제 또한 언급하고 있어 당시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지점들을 짚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8년은 무엇보다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이들의 입장 표명이 두드러지는 해였던 만큼 ‘표현의 자유’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MB정권은 촛불 집회를 강경진압 하는 것은 물론, 참가자들에 대해 연행과 구속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사찰까지 더해진 정권의 이러한 행태는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2008년 인권선언 운동’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권선언인 헌법 제 21조의 수호에 대한 성명으로 발표 된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로부터 개인의 표현의 자유, 그리고 집단적인 의사표현인 집회․결사의 자유, 그리고 정치적인 의사표현에 이르기까지 국제인권기준과 헌법이 보장하는 수준의 표현의 자유가 어떤 제약 없이도 보장되어야 한다.”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오름, <[2008년 인권선언운동] 헌법 제 21조를 지켜내자> -


 



 


표현의 자유가 억압될수록 사회 전반에는 공포가 만연해지고, 이로 인해 침묵만이 미덕인 후퇴한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봉쇄는 공공질서나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그 주체는 정치권력과 보수 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차별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는 이렇게 요약된다.


 

“2. 사상의 자유는 주류 사상에 대한 허용이 아니라, 비주류․소수의 사상에 대한 인정이다. 비주류․소수의 사상이 주류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조건 없이 폐지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표현의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한 우리의 의무다.”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비주류․소수의 사상에 대한 용인에 그 방향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권력자들이 남용하는 인권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인권이 침해되는 지점에서 선언문을 다시 써야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특정한 권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권리가 무너진 곳에서 들려온다. 곧 인권선언의 목표는 권리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애초에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나온다.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인가?






 

최근 논란이 되었던 한 부장판사의 ‘막말댓글’ 파문은 앞서 언급한 표현의 자유를 남용하는 사태를 잘 보여준다. 이 판사는 2008년 촛불 시위를 “촛불 폭동”으로 일컫고, 야당 지지자들을 폄하한데 이어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으로 조롱한 일베 회원이 구속된 사건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 한 것이라고 댓글을 단 것이다. 일베와 같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을 일삼는 집단의 주장 또한 표현의 자유를 위시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2008 인권선언에서 이와 같은 혐오발언들을 표현의 자유로 치환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한 근거를 분명히 마련해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7. 위와 같은 표현의 자유는 전쟁의 선동, 인종주의의 선동, 소수자에 대한 차별 선동 등 반인권적 표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인권에 반하는 표현의 자유는 해당 관련자에 대한 폭력을 낳을 수 있음을 우리는 우려한다.”

 


표현의 자유가 권리의 영역이라면, 특정 지역인․외국인 노동자․여성․성 소수자들을 향한 혐오 발언은 폭력의 영역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권리가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자유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 폭력이 권력 관계에 의한 것일 때 더 많은 처벌과 비난이 따르듯, 다수의 가치를 위시하여 소수집단을 겨냥하는 혐오 발언의 행태는 응당 비난 받아야 마땅하다. 





* 더 읽을거리


- "얼어붙은 세상을 녹이자 : 2008 인권선언" 전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2286

- 인권오름, "[2008년 인권선언운동] 헌법 제 21조를 지켜내자"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1002&page=1&category1=63

- 인권오름, "아무 권리나 인권의 목록에 오르지 않는다"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id=1023&page=1&category1=50

- 2008인권선언 카페 http://cafe.daum.net/2008human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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