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칼럼입니다!


[이슈] 무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인가?

수유너머웹진 2015.03.25 14:36 조회 수 : 18

엇을 위한 표현의 자유인가?

 

 

조지훈/수유너머N 회원




표현의 자유는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진보진영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제기된 역사적 사례는 입이 아플 정도로 많이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근래 들어 한국에서 가장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집단은 인터넷 우익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일베다. 일베의 이른바 소수자와 약자를 비하하는 혐오 발언은 인터넷에서 너무나 자주 눈에 띤다.


전라도 지역을 비하는 전라디언이라든지, 5.18관련하여 비하하는 홍어택배, 생리휴가 여성들에게 휴가를 받으려면 생리 인증샷을 하라든지, 최근에 세월호 관련해서 어묵인증샷을 찍는 다는지 등등 이들의 업적은 이루 셀 수 없이 많다. 문제는 이들의 오래된 발언의 형태인 혐오표현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탄생한 시점부터 오랫동안 혐오발언이라고 불릴 만한 언사들을 행해왔다. 문제는 최근 이들이 자신들의 발언이 문제 제기되는 것에 대해 표현의 자유로 방어한다는 데에 있다. 자신들에게 전라도는 홍어, 세월호 유가족은 유족충이라고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것처럼 표현의 자유가 그토록 신성한 가치라면, 우리 일베가 그 자유를 누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일베가 진보진영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우왕좌왕하거나 일베의 아방가르드한 제스처에 탄식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이 우리는 넓게 보아 일베가 말하는 표현의 자유에 감각적으로 동의되지 않는 사람들이다)는 오히려 일베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사용하는 맥락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표현의 자유는 세월호 유가족을 유족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가? 어떤 말도 내뱉어도 제제 받지 않을 자유가 표현의 자유인가? 단지 표현의 자유는 형식적인 수준의 차원에서만 지켜지면 되는 영역의 문제인가?


직접적으로 답을 하기 전에 시간을 거슬러서 표현의 자유가 제기된 역사적 맥락을 한번 살펴보자. 단지 말과 관련된 자유가 특정하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역사적 맥락들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이름은 밀턴의 아레오파티지카일 것이다.


밀턴의 아레오파티지카17세기 영국의 혼란스러운 영국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의회파가 제정한 출판허가제에 반대하여 쓰여진 책이다. 때문에 언론사상사에서 어떠한 발언에 대해서도 외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소극적 자유를 옹호한 책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해지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맥락을 살펴보면 자못 흥미롭다. 밀턴은 억압적인 왕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의회파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이는 의회파가 왕당파를 몰아내고 억압적이었던 가톨릭을 몰아낸 이후 정권을 잡은 혼란스러운 당시의 영국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17세기의 영국은 그 이전까지 왕당파와 카톨릭에 의해서 억압되었던 수많은 프로테스탄트의 분파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목소리에는 반동세력인 왕당파의 잔당마저 있었다. 이른바 팜플렛 전쟁이라고도 불리우는 17세기 영국의 공론장에는 너무나 많은 목소리들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의회파는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출판허가제를 제정한다. , 사회의 안정과 통합을 위해서 의회파는 언론을 규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밀턴이 의회파에 표현의 자유를 제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였다. , 단순히 폭력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서 표현의 자유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나름대로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 통합을 추진하려고 했던 정권에 맞서서 표현의 자유를 제기한 것이었다. 여기서 밀턴은 일베 혹은 자유주의자처럼 표현의 자유의 신성불가침을 얘기하지 않는다. 밀턴은 도리어 의회파가 추진하려고 하는 사회 통합을 위해서라도 표현의 자유는 필요하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제기한다. 만약 의회파의 정책처럼 혼란을 막기 위해 사전심사를 하게 된다면 일정 기간 동안 통합을 이룰 수는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쪽의 생각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통합이기 때문에,


밀턴은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 구성원들 간에 연대를 이룰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밀턴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상이한 세력들 간에 평화로운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쪽의 생각을 억제하거나 미리 정해진 방향으로 논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열렬하게 토론되는 장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 연대는 서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혼란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밀턴이 보기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 상이한 세력들 간에 설득하려는 자세다. 사회 구성원들 간에 연대를 위해서는 그저 자신들의 주장을 던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시키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밀턴이 보기에 표현의 자유는 그저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자유가 아니라, 사회의 평화로운 연대를 이끌어내고 진리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밀턴에게 표현의 자유는 진리와 연대를 끌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밀턴의 논의에 비추어봤을 때 일베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는 무엇을 위한 가치인가라는 질문이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가? 전라도, 세월호 유가족, 여성, 성소수자를 비하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을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러한 비하들을 실천하는가? 물론 일베가 이런 질문에 곱게 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요구되는 이면에 깔려있는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자신들 나름대로의 가치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자신들의 발언을 정당화할 수 있는 권리는 조금도 없다. 그냥 예전에 하던 데로 아무 말이나 던지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말을 막말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대응하면 된다. 어렵게 표현의 자유로 보호막이 씌워진 막말들을 대응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기왕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으니 더욱 심사숙고해서 일베 자신들이 생각하는 자유로운 사회에 대해서 얘기했으면 좋겠다. 그때부터 우리는 막말과 표현의 자유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지루한 논의를 멈출 수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 이면에 깔린 일베의 사상을 보고 싶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7 자유인의 공동체와 노예의 공동체(3)(이진경) [2] file Edie 2017.10.05 1318
126 자유인의 공동체와 노예의 공동체(2)(이진경) [13] file Edie 2017.10.03 2054
125 자유인의 공동체와 노예의 공동체(1) [4] file Edie 2017.09.24 3234
124 애니메이션 혹은 기계적 영매에 대하여 (이진경) file Edie 2017.09.14 2197
123 [이슈] 이재용 재판을 톺아보며 [3] 누혜 2017.09.09 393
122 무모한 자들의 공동체(이진경) file Edie 2017.08.21 2753
121 [이슈]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 수 있을까? file compost 2017.08.17 736
120 전체주의와 공동체(이진경) [15] file Edie 2017.07.23 3969
119 [이슈] 삶을 위한 주석: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의 만남 file Edie 2017.06.23 604
118 [이슈_장애, 그리고] 발달장애인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지음, 『그래, 엄마야』, (오월의 봄) 수유너머웹진 2016.12.28 43
117 [이슈_4040] 촛불시대의 정치선동 수유너머웹진 2016.11.28 27
116 [과학X철학 토크박스] 현상학이 과학에 답하자면 [1] 수유너머웹진 2016.10.05 35
115 [과학X철학 토크박스] 지금 현상학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수유너머웹진 2016.09.02 56
114 [이슈_4040] 마녀들의 밤,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1] 수유너머웹진 2016.08.18 22
113 [이슈_4040] 사드와 꼬부기 수유너머웹진 2016.07.20 21
112 [이슈_4040] "안전사회"의 완성 수유너머웹진 2016.06.22 19
111 [이슈_장애, 그리고] 장애운동의 기록과 당사자성 - 제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토크쇼 "기록의 후예들" 수유너머웹진 2016.05.27 139
110 [이슈_4040] "문제는 노동이야" - 경제민주화와 최저임금 수유너머웹진 2016.05.24 26
109 [이슈_장애, 그리고] 장애와 노동의 불편한 동거 -김도현,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시민인가”, <창작과 비평>, 171호, 2016년 봄호 수유너머웹진 2016.04.24 58
108 [이슈_지안의 난독일기] “유니온 세대”의 불가능성 수유너머웹진 2016.04.03 2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