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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장애인이 보내는 위험한 초대장

-박경석,『지금이 나는 더 행복하다』(책으로 여는세상, 2013)

 

 


 

정우준 / 수유너머N 회원

 

 


 

"사진"과 "나"라는 주어가 무색하게, 이 책은 박경석 자신만의 자서전은 아니다


 

 

이 책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경석의 자서전이다. 날라리 대학생이 행글라이더를 타다 장애를 입었던 순간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로서 장애인 운동 최전선에 서 있는 현재까지를 저자는 행복이란 키워드를 가지고 써내려간다. 한창 나이에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되고, 그 때문에 자살까지 하려했던 인생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말투로 자신이 얼마나, 그리고 왜 행복한지를 풀어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저자 자신만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자서전은 아니다. 책 제목의 라는 주어와 표지의 자신의 얼굴이 무색하리만큼 책 속 내용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심지어 책 후반부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다. 그가 장애를 입지 않았던 과거보다 장애인이 된 지금이 더 행복한 까닭이 바로 책 속에 나오는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착한 장애인에서 나쁜 장애인으로


민주화의 열기로 뜨거웠을 시절, 해병대를 제대하고 행글라이더를 즐기는 "날라리" 대학생이었던 저자는 행글라이더 사고로 휠체어에 앉게 된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 본 세상은 그가 이른바 정상인이었던 시절보다 높이만 조금 낮아진 것이 아니었다. 장애는 그를 5년간 집 안에서 처박혀있게 만들었다. 그가 처음 휠체어에 앉았을 때 볼 수 있었던 것은 틀면 나오는 TV와 끝을 알 수도 없는 절망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죽고자 마음먹기도 했었다. 그 당시 신이 있어 단 한순간이라도 걸을 수 있게 해준다면, 휠체어로 살아갈 평생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는 그의 말은 휠체어에서 바라본 세상의 끝도 없는 절망을 잘 말해준다.


그러던 그가 올곧이 휠체어에 앉아 장애인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은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두 동지 덕분이었다. 장애인들의 기능을 조금이나마 되살려 그들의 고용을 돕고자했던 서울장애인복지관에서 저자는 정태수 열사와 박흥수 열사와 만난다. 둘과의 만남을 통해 부모님과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충실히 따르며 재활에 힘쓰던 착한 장애인박경석은 180도 달라진다. 장애의 문제가 장애를 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손상(impairments)을 사회적 불리(handicap)로 만드는 사회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장애는 자신의 하체만을 무감각하게 만들었지만 이 사회는 장애뿐만 아니라 모든 차별, 억압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었다. 결국 문제는 저자의 하체의 무감각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사회의 무감각이었다. 나의 하체의 무감각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무감각을 알게 된 순간. 그는 더 이상 착한 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도로를 검거하고, 쇠사슬을 버스에 묶기도 하는 나쁜 장애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장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자 개인을 바꾸는 재활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투쟁에 힘쓰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사랑의 리퀘스트사랑의 가족이 아니라 신문의 사회면, 9시 뉴스에 더 많이 얼굴을 비추게 된다.

 

    저자는 나쁜 장애인이 되어 투쟁에 힘쓰는 과정 속에서 걷는다는 것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분신과도 같은 휠체어와 그것을 물리적이고 정신적으로 함께 밀고나갈 동지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비로소 지금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매일매일이 우당탕탕, 좌충우돌로 힘에 부치지만, 사고 이후 5년간 집안에 처박혀 TV만 바라봤던 외로움조차 사치였던 그 시절에 없었던 울고, 웃고, 함께해나갈 나쁜 장애인들이 그의 곁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나쁜 장애인들의 중심에 노들야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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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

 



노들로의 위험한 초대


교장쌤이라 불리기를 좋아하는 저자는 노들야학의 교장이다. 그는 책 1부의 제목을 휠체어를 탄 교장 선생님이라 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의 중심에 노들야학을 위치시킨다. 노란들판의 준말인 노들은 집과 시설에서 수십 년간 살다 나온 중증 장애인 50여명과 자원교사 20명이 뽀글거리며 공부하고 살아가는 학교이다. 학령기에 장애로 인해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하지만 노들에 오는 이들은 단지 검정고시만을  위해 오지 않는다. 노들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싸우고, 상처받고, 치유하며, 성장한다. 그 속에서 때론 한 끼 식사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고, 시설에서 막 나온 누군가의 가족을 찾기도 하면서 우당탕탕 살아간다. 때로는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허망해하고 아쉬워하지만 그 곳에서 만나는 인연들 때문에 저자는 외로움과 고통 속에서 견딜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단 한순간이라도 노들에서 함께 활동했다는 것은 가슴 뿌듯하고 삶의 큰 힘이 되게 하는 무엇이었던 것은 틀림없다.”(61) 누군가가 말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교가 노들이라고. 저자는 이 아름다운 학교의 17년째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의 노들야학에 대한 사랑이 투영된 것일까? 이 책은 흡사 하나의 초대장처럼 느껴진다. 노들야학과 함께해서 행복한 이들이 아직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쓴 하나의 초대장 말이다. “함께하자하지만 이 초대장은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다. “천둥처럼 쿵쾅쿵쾅 소란하기도 하고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자 현실도 미래도 불투명한 공간으로의 치명적인 초대장인 것이다. 공부보다 노는 것을 좋아해 대학로로 놀러가던 규식이형은 리프트 사고로 인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기록적인 투사가 되고, 조용필을 좋아하는 영애누나는 조용필 노래의 가사를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잠시 교사로 왔었던 누군가는 여전히 그들과 생활하고 있다.

검정고시 공부, 사람 관계, 여백과 채움, 만남, 변화, 열공, 열투(열심히 투쟁)와 같은 것들이 노들에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규식이형은 투사가 되고, 영애누나는 사회를 읽는 눈을 가지게 된다. 또 누군가는 그 곳에 우연하게상근 교사가 된다.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저자의 말대로 나의 해방과 당시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고, 그것을 통해 변화한다는 것이 아닐까. 저자 그리고 노들야학의 모든 이가 언제나, 누구보다도 더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이 더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며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 위험하지만 행복한 초대장에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할 수 있을까?

 

초대장에 대한 답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쓸 수 있다. 다가오는 4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며, 더 기쁜 소식은 노들야학이 교사를 상시 모집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 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

 

<같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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