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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투쟁 특집]



속도의 권력에 침투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조지훈/수유너머 N 회원 






 대중교통은 대중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미리 정비되어 이는 교통체계 내에서 버스와 지하철, 택시와 같은 정해진 이동수단에 의해 이동할 뿐이다. 이러한 이동수단을 통해서 우리의 이동속도는 언제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게끔 되어 있다. 규정된 속도를 어기는 행위는 비난 혹은 처벌의 대상이다. 너무 빨리 달려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도 안 된다. 예컨대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오는 행위는 위험하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교통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에 문제다. 우리는 언제나 상황에 따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이동속도는 대중교통 수단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대중교통 수단은 대중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게끔 하는 장치인 셈이다.




   

  


  

대중교통이 모든 사람들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속도를 장악하는 장치임은 대중교통에서 배제된 자들에 의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한국사회에서 장애인 인구비율이 5.61%가 됨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 수단에서 이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를 장애인들의 무기력이나 개인적인 수치심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대중교통이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순환속도를 장악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다그런데 장애인들, 예를 들어 휠체어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하면 시간이 평소보다 지체될 수밖에 없다. 버스의 경우 버스기사에게 버스를 탑승한다고 미리 말을 해서 리프트를 내려야하고, 리프트에 올라서서 탑승한 뒤에는 휠체어 고정시설에 고정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장애인 한명을 태우기 위해서 장애인이 탑승하고 있는 그 버스 한 대만이 아니라 뒤에 있는 버스까지도 장애인이 탑승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처럼 저상버스가 도입되기 이전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장애인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데에 방해요인 밖에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속도 유지에 방해요인으로 계산되는 장애인은 처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물론 장애인들은 흐름의 속도를 장악하고 유지하려는 권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2001년 오이도 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를 계기로 몇 개의 장애인 단체가 결성한 오이도역대책위를 시작으로 이동권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요구사항은 장애인들도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확충하라는 것이다. 예컨대 지하철 모든 역의 엘리베이터 설치나 저상버스 도입을 하라는 요구였다. 이러한 요구사항을 얻어 내기 위해서 버스나 지하철을 집단적으로 타기를 시도하여 연착시키거나, 극단적으로는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여 아예 지하철 운행을 정지시키기까지 했다. 이러한 투쟁 양상은 속도를 통제하려는 권력을 넘어서는 것이고, 권력이 제시하는 삶의 영역과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권력이 관철시키려는 것처럼 집과 시설에 처박혀서 보이지 않는 것 마냥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속도로 이동하겠다고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한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 운동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만나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의 표현이다. 아마도 혁명을 정의할 수 있다면, 이런 것이 혁명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혁명이란 삶의 양상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격렬한 투쟁이었던 것만큼 성과도 컸다

200239일간의 무기한 단식농성 끝에 장애인이동권연대는 결국 서울시로부터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를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회를 구성하며, 중증 장애인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리프트 장착 콜택시 100대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핵심 쟁점이었던 저상버스 도입을 쟁취하기에 까지 이른다. 그런데 저상버스 도입에 미묘한 지점이 있다. 2004년 버스체계 개편사업을 통해서 도입된 저상버스는 장애인들의 요구 말고도, 버스노선의 순환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저상버스 도입으로 인한 승하차시간의 단축과 연관이 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저상버스는 기존의 계단이 있는 일반버스에 비해 승하차시간을 1인당 약 2초정도 단축할 수 있다고 한다. 저상버스 1대당 1일 승객 승하차시간 절감분은 1720로 추정되는데, 이는 장애인의 버스이용을 1일당 0.8회로 계산하여 348초를 뺀다고 해도, 총 저상버스 도입시 버스1대당 1일 승하차시간은 1332초 정도가 절감이 된다. 만약 서울시가 전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하게 되면 연간 절약될 수 있는 승하절감시간은 869,181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저상버스를 도입하게 되어 장애인들이 사용하게 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순환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 아래 개편이 시행된 것이다. 이렇게 저상버스와 함께 도입된 정책들인 버스전용차선로개설과 환승시스템의 구축, 정류소의 간격조절과 버스노선 통폐합, 요금징수체계에 스마트미디어를 도입도 역시 순환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것과 관계된다.




    




 물론 저상버스가 전혀 장애인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저상버스 안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휠체어 고정대와 같은 편의시설들이 장치되어 있다. 다만 저상버스 안에는 두 가지 상충되는 힘, 즉 장애인들도 교통수단을 이용하고자하는 권리와 탑승 시간을 단축하여 교통수단을 순환속도를 좀 더 가속화시키고자 하는 정책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시당국이 순환속도의 가속이라는 측면에서 손해 보는 것은 없어 보인다. 즉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저상버스의 도입을 시행해도 순환속도의 측면에서 절대값은 상승하기 때문에 마치 시당국이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심지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시당국의 정책아래 포섭된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이 없었으면, 앞서 보았던 보건복지부의 계산에서 장애인의 탑승시간은 아예 고려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인 즉, 저상버스 설계시에 애당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생각하지도 않았거나, 새롭게 디자인된 정류소의 보도 폭이나 높이를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즉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안 만들거나 지금보다 더 구색맞추기식으로 일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버스개편 정책에 장애인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또한 저상버스의 개혁이 장애인들을 위한 방향으로 바뀌기 보다는 순환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향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를 유지하려는 권력의 기본 방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 저상버스를 둘러싼 투쟁은 속도를 장악하고자 하는 힘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의 이동하고자 하는 힘이 맞붙어 있는 것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싸움은 속도를 늦추더라도 이동을 감행하는 시도를 하면서 이동권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시당국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장애인들이 감소시키는 순환속도를 떠 앉고서 다른 지점에서 속도를 높이는 방향을 모색할 것이다. 결국 저상버스 도입을 받아내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버스를 개선하고 교통시스템을 정비 하는가 까지가 투쟁의 과제인 것이다. 순환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권력에 맞서서 이동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마도 다가오는 4/20 장애인차별 철폐의 날에 전개될 고속버스 타기 운동이 관건이 될 것이다. 고속버스는 시내버스와 달리 저상버스가 도입된다고 해도 상하차 속도가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 고속버스를 저상버스로 바꾼다고 해서 시내버스의 경우처럼 순환속도가 상승할 일은 없다. 물론 역으로 고속버스의 상하차는 시내버스의 상하차보다 월등히 횟수가 적기 때문에, 저상버스로 바뀌어 장애인들이 이용을 한다고 해서 버스의 순환속도가 크게 감소될 리도 없다. 다만 문제는 장애인들이 저상버스로 된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도시 간 이동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을 때 발생한다.


장애인들이 도시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들은 더 많은 도시에서의 저상버스를 요구할 것이다. 어떤 도시도 서울의 버스체계처럼 저상버스가 잘 구축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처럼 이동의 권리가 관철되기 시작하면 막을 수 있는 명분은 예산부족 밖에 없다. 그리고 예산부족이라는 명분은 장애인들의 버스타기 운동을 막을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서울시 차원이 아니라 전국적 차원에서 버스타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다면, 순환속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려는 권력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플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시 버스 개편 사업 때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게 계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순환속도를 유지하고자 집요하게 계산하는 권력의 맞서, 이동권의 요구로 그들에게 두통을 안겨주고 더 나아가서 계산을 포기하게 하는 일이 이동권 투쟁의 다음 국면이 될 것이다. 


살펴보았듯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점차 근본적으로 속도의 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속도로 움직일 것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은 속도의 권력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의 연대는 장애인의 배제된 권리를 위해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속도의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일과 함께하는 것이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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