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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_굴뚝연대의 글] 누구를 위하여 밥을 올리나?

수유너머웹진 2015.03.09 13:15 조회 수 : 8

누구를 위하여 밥을 올리나?





임당 / 수유너머N 회원

 




수유너머N 주방의 도마 위에는 고기가 올라오지 않는다. 연구실을 찾는 모든 사람이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채식을 선택한 이들의 이유도 각자 다르다. 다만 우리는 모두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고기를 요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 날 그 일이 일어났다! 아기 욕조만한 대야에 쫀득한 돼지고기 앞다리 살을 잔뜩 넣고 시뻘건 양념을 치덕치덕 바르고 손으로 벅벅 주무르고 있는 일이 우리 주방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날은 1월 24일, 쌍용자동차 굴뚝에 밥을 올리러 가기 하루 전날이었다.


그 날은 오후부터 바빴다. 굴뚝 2인과 농성장 상주 인원, 그리고 우리 쪽의 먹성 좋은 연대 방문자들의 숫자를 더하니 대략 40인분의 음식을 준비해야 될 터였다. 메뉴 구성부터가 고민이었다. 준비를 맡아 하기로 한 지안이와 나는 머리를 싸매고 앉아 메뉴 구상부터 했다. 국 하나에 주 메뉴 하나, 나머지 반찬 두어 개와 김치, 그리고 샐러드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줄곧 ‘스페샬’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기요리, 미역국에 들어갈 소고기 만원어치, 고기와 함께 먹을 2인분 분량의 쌈 등이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연신 "굴뚝에 올릴 것들은 아저씨들 힘나는 걸로 하자!’며 한 시간 가량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가져가 데워 먹기만 하면 되도록, 여럿이 모여 조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 였다. 도와주던 연구실 학인들은 ‘진정 이걸로 충분하겠느냐?’며 다른 대책을 요구했고 그럴 때 마다 준비한 ‘스페샬’에 대해 은밀하게 설명해야만 했다. 아니 대체, 밥하나 올리러 가는 데 무슨 스페샬이 이리 중요한가?

 




‘밥을 올린다’는 말이 다른 뜻을 더 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농성장에서 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낯선 주방이다 보니 우왕좌왕 하는 와중에 쌍차 아저씨들이 집기도 찾아주시고, 주방 도구 사용 스킬도 알려주시고, 밥 올리는 시간 등도 자세히 알려 주셨다. 그런데 아저씨들은 그럴 때 마다 ‘굴뚝에 올리는 반찬은 여기(정갈한 반찬통)에 담으시라.’, ‘굴뚝에 올릴 밥은 이 작은 압력밥솥에 올리기 직전에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나서 이 보온도시락에 식지 않게 담으면 된다.’고 내내 말씀하셨던 것이다. 굴뚝에 밥을 올린다는 것의 다른 의미가 밥을 준비했던 우리의 태도에서, 아저씨들이 굴뚝인들의 끼니를 챙기는 세세함에서 언뜻 비쳐졌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우리말에서 ‘올리다’라는 말은 아래에서 위로 무언가를 옮겨 놓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올리는 것이 밥이 될 때 그 의미는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밥을 올린다는 표현은 크게 두 경우에 관용적으로 쓰인다. 과거 임금이나 왕에게 밥을 올릴 때 그러했고, 제사나 종교 행사에서 귀신이나 신에게 올릴 때가 그 때 인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인 임금에게 밥을 올리는 것은 인간의 위아래가 있던 시절, 그 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인 임금에게 밥을 올리기 때문에 그럴 것이고, 두 번째인 제의 경우에는 조상이나 신의 안녕을 바람과 동시에 의례를 통한 현세의 인들의 바람과 기원이 듬뿍 표현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굴뚝 위는 어떠한가? 굴뚝은 공장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긴 하지만 겨우내 가장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이다.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올 때에는 방독면 없이는 버티기조차 어려운 곳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들이치는 빗물 탓에 비닐 천막이 필요한 곳이다. 굴뚝은 두 사람이 자진해서 올라간 것이지만, 오히려 내몰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머무르기에는 실로 참담한 곳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굴뚝에 올라갔으며, 그런 굴뚝에 밥을 올리는 수많은 이들이 있는 것일까.

 

굴뚝인들은 쌍용자동차라는 덩치 큰 기업 안에서 가장 낮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다. 아니다. 한 소설가의 글에서 보았듯, 그들은 쌍차 정문에서 이름을 대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름조차 사라진 이들이다. 그러니까 그 공장 안에서 노동을 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해고 노동자라고 칭한다. 노동을 했던 사람,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 노동을 다시 하고야 말겠다는 사람으로서의 노동자다. 가장 낮은 곳에 떨어져 절박한 이들이지만 기어이 가장 높은 굴뚝으로 오른 이유는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겠다는 것, 다시 자신의 자리에서 노동을 하겠다는 것, 노동이 없이는 생산이 없듯 노동자 없이는 회사도 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높이 높이로 정성껏 지은 밥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거의 매일 밥을 지어 올리는 이들, 어설픈 솜씨로나마 밥을 지어 드물게 한 번씩은 가게 되는 우리 같은 어설픈 연대자들의 밥을 올리는 마음이라고 하면, 제를 올리는 마음과 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굴뚝 위 버티고 선 자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그들의 신체를 관통하고 있는 먼저 간 이들의 염원과 또 다른 굴뚝에, 또 다른 광고판에, 혹은 또 다른 절벽 어딘가에 굳건히 선 이들의 뜻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일 테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들의 밥을 좀 더 정성스럽게, 좀 더 부산스럽게 신경을 써 가며 지어낸 것이다.

 


사진의 출처는 김정욱의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120345575&fref=ts



모두들 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부담을 지고서라도 한번은 굴뚝 밑을 방문해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그 아찔한 높이에서도 환하게 웃어주는 그들의 얼굴을 기어이 확인하려 한다. 그들이 오늘 하루 끼니는 잘 때웠는지 궁금해 SNS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들이 먹은 것과 같은 밥을 한 숟갈씩 뜬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같은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 것 보다, 서로의 끼니를 걱정하고 삶을 생각하고 버텨낼 작은 고리가 되어주는 일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매 끼니를 지나오며 단단히 이어져오고 있다.

 

굴뚝인의 식사에 봄나물이 올라간 날을 기억한다. 아래로부터의 봄소식은 이미 시작됐다. 그들이 굴뚝의 밥줄로 봄나물 반찬을 끌어올리듯, 일렁이는 봄기운을 길어 올려 굴뚝 위에서도 따뜻한 봄소식 전해 내려오길 기원해본다.




* 이글은 R-view, 굴뚝일보와 함께 기획한 글입니다. 

굴뚝일보https://www.facebook.com/gultukilbo, R-view82호http://commune-r.net/r-view/Rview082.pdf 에서 쌍용차 고공농성 관련 다른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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