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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운동의 기록과 당사자성

- 제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토크쇼 “기록의 후예들” 발표 자료집

반다, “장애운동 기록과 영상 언어와 문자언어&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박  임  당 / 수유너머N 회원


 



4월은 1981년에 지정된 ‘장애인의 날(20일)’이 있는 달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날을 지정할 때 우리는 더 이상 기뻐할 수가 없게 된다. 4월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국가와 지자체의 장애인 격려(?)행사는 장애인을 들러리로 세운 채 내빈용 행사가 되었고, 각종 매체들에서는 장애인의 고단한 삶에 대한 동정어린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번 달만은 혹은 오늘 하루 만은 장애인의 삶을 돌아보기를 종용하고 이내 시선을 거둔다.




 

올해로 14회를 맞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바로 이러한 장애에 대한 시선에 문제제기를 한다. 장애와 인권에 관한 영화들, 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영화들을 기획하고 관련 행사들을 꾸려 장애인의 삶과 문제에 대해 알리고, 차별적 시선에 대한 고발을 담은 영화제를 올해는 4월 20일부터 4일간 개최한 것이다. 그 부대행사로 마련된 “장애운동과 기록 토크쇼 : 기록의 후예들”이라는 토크쇼는 장애운동의 기록에 관한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작업이었다.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의 활동가 유해정의 사회로 다큐멘터리 감독인 박종필 과 반다, 비마이너의 편집장인 하금철과 발행인인 김도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인 이정훈,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사 홍은전이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장애는 어떻게 기록되는가?

 


작년에 야학에서 한 사업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말미에 보고서 작업에 참여한 일이 있었다. 발달장애인분들과 주간 수업을 하면서 학생·교사를 인터뷰하고 기록하여 보고서에 실릴 자료를 만드는 일이었다. 몇 개월간 있었던 방대한 일들을 마지막으로 갈무리하면서 기록 한다는 일에 대해서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억 속에 있는 사건들을 언어로 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정리되지 않았던 일들을 곱씹고 추스르게 하여 나름대로 그 사건에 대한 견해와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특정한 사건에 대한 매듭짓기라는 차원에서 기록은 그 결과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있던 일들을 모아 의미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운동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반다는 특히 영상작업에서의 기록이 가지는 문제의식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지금도 많은 다큐가 그렇듯 장애인의 차별과 억압 현실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내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영상을 본 관객은 ‘아니, 세상에 저런 일이’라든가, ‘저렇게 까지 차별을 하다니’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기록의 후예들 자료집, 12쪽)

 

다큐멘터리감독 반다는 장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이 카메라의 시선을 차별받는 장애현실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 있는 사회에서 차별은 눈에 띄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이러한 필름들은 자연히 차별의 현실을 극대화해 잘 묘사하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다는 장애인으로 정체화 되는 개인들이 다시금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는 고된 장애인의 이미지”에 가두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당사자의 주체성과 역동성, 개인으로서의 특이성들이 사회적 문제라는 큰 틀로 치환되면서 지워져버릴 우려의 목소리인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항해 적극적으로 당사자성을 드러내려는 노력들이 있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장애인을 차별 현실의 피해자 이미지로 강하게 고정하게 되는 효과라든가, 늘 투쟁만 하며 사는 장애인과 집이나 시설에서 무력하게 사는 장애인 둘 중에 하나의 이미지로 양분시켜 버리는 효과 같은 것.”(12)

 


기록의 당사자성 문제, 당사자는 누구인가?


 

반다는 그러한 차원에서 당사자가 만드는 영상 작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실제로 반다 감독은 영상 제작 경험이 없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장애인미디어교육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당시 수료작들은 당사자의 입장과 감수성을 전달할만한 수작이 종종 발견되는 장이 되었다고 한다.

 

“주된 내용은 기존 미디어가 그리는 장애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당사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영상으로 만들어보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장애인권 감수성을 새롭게 확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카메라는 ‘권력(내 말을 들어!)’을 가지고 대중에게 전달하기도 한다.”(12)

 

토크쇼 중간에 위 인용문에도 실려 있는 것처럼 영상 매체라는 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소수자의 목소리와 현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영상은 당사자에게 권력을 쥐어준다는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영상을 관람하는 자의 시간을 점유하면서 동시에 당사자의 시각을 내면화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영상은 장애인권 감수성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통로가 된다.

 

그런데 당사자성이 실제로 당사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이야기 된다면 이는 오히려 감수성 확장의 계기를 좁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참여자 개인별 발표 시간이 짧고, 원고의 양도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논의되지 않은 지점이기에 조심스럽지만, 당사자성이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따라서 반다의 논의는 많은 가능성들을 지워버릴 수 있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진보평론』 67호에 실린 가케모토 츠요시의 논의를 덧붙임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사건의 당사자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저자는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다루는 그의 글에서 조금은 확장된 당사자성을 표명한다.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를 한없이 좁혀 들어가면, 실제로 위안부라는 발상을 하고 실현했던 일본군과 당시의 국가, 위안부로 끌려간 당시 여성들과 그를 중간에서 연계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당사자를 좁히는 순간 사과와 문제 해결은 상당히 제한된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가케모토 츠요시는 위안부문제에 다가서는 좁은 의미에서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로 “빠질 수 없다는 별개의 당사자성”(진보평론, 132쪽)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운동과 접속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별개의 당사자성은 각자 이 운동에 왜 접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아내면서 가지게 되는 정체성이다. 이러한 이유는 자신이 각자 처한 조건이나 견해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며, 그러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운동이 꾸려질 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 해결 방안이 다층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이를 장애 운동 기록의 당사자성과 연결시켜본다면 우리는 운동으로서의 기록이 우리의 어떤 당사자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당일 토크쇼에 참석했던 자들 모두 별개의 당사자성을 담보하고 있는 한에서의 작업들을 꾸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할 지점은 장애 당사자의 삶을 상상하는 힘이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어떤 상상력이 무리하게 누군가의 삶을 다 안다는 태도로 치환되지 않도록 점검하는 세심한 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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