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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22-0419] 이진경의 생각의 그늘  https://m.khan.co.kr/series/articles/ao398

우리 체르노빌의 늑대들은 원전을 지지하오 /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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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만 있는 게 자연권이라면, 그게 어디 자연권이겠소. 인공권이라고 해야지!
자연권이 자연에 속하면, 문제는 만물의 영장이라며 다른 생명체 자연권을 부정할 때 생길 게요.

원전에 대한 우리 지지는 우리를 지키려는 차악의 선택이라 할게요.
어차피 지금은 모두가 최악을 면하는 방법을 고심할 극단적 상황이니.

 

그렇소, 미안하지만 우리 늑대들은 원전을 지지하오. 우리뿐 아니라 체르노빌에 사는 스라소니나 족제비도 그렇고, 소나무와 자작나무도 그럴 거요. 아니, 꼭 체르노빌에 사는 동식물만 그런 건 아닐 거요. 짐작하건대, 인간 아닌 동물이라면, 그리고 바닷속에 사는 참치와 고등어, 게들 또한 그럴 거요.

체르노빌이 중요한 건, 그걸 통해 우리가 비로소 그런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오. 그날, 체르노빌의 발전소에서 화염으로 터져 나온 그 사고가 우리에게 하나의 ‘사건’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소.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 텅 빈 도시와 불과 방사능에 불타버린 대지에도 어김없이 비는 내려 방사능 섞인 먼지들을 씻어주었고, 바람은 불어 방사능 입자들 사이에 숨 쉴 허공을 넓혀주었다오. 그 허공이 어느 정도 넓어지자 식물들은 다시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나무는 자라 숲이 되었다오. 인간에게 쫓기며 살 곳을 찾던 우리는, 아직도 방사능이 자욱한 그 숲에 거처를 마련했고, 새끼들을 낳아 키우기 시작했소. 다른 동물들 또한 모여들기 시작했소.

물론 방사능으로 몸에는 이상이 생겼을 거고,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 수 있으며, 수명은 분명 이전보다 짧아졌을 거요. 기형의 자식들이 수도 없이 태어났을 거요. 하얀 얼룩을 갖고 태어난 새끼 제비들은 해가 바뀌면 돌아오지 못한다오. 그래도 거기는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라오. 혹시 아시오? 지금 지구상의 포유동물 가운데 야생동물의 비율이 4%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인간과 가축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 세계자연기금이 2020년 발표한 <지구 생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군의 68% 정도 줄었다는 것? 유엔세계생물다양성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말까지 동식물 100만종이 멸종할 수 있다는 것? 내게 어느 인간이 알려준 거라오.

과학자들이 신중하게 만든 저런 보고서를 공포감을 조장하는 과장 내지 거짓이라며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디다. 그런 의구심이 든다면, 당신들이 사는 곳을 한 번 둘러보시오. 당신들이 키우는 것 말고 동물이라 할 만한 게 몇 마리나 눈에 걸립니까? 조그만 곤충이나 절지동물들조차 살 곳을 허용하지 않고 ‘박멸’하는 게 당신들 아니오? 그런 당신들의 서식지 아닌 곳이 지구상에 얼마나 남아 있소? 이젠 아마존의 열대우림도, 동남아의 숲도 놀라운 속도로 절멸의 톱날에 사라져가고 있지 않소? 동물을 보호하자고 하지만 약간 늘어난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당신들의 땅에 가까이 가면 가차없이 다시 총질을 하게 하지 않소? 그걸 생각하면 방사능 덕에 총과 덫, 전기톱과 불도저로 무장한 인간들로부터 자유로운 이 땅은, 낙원까진 아니어도 우리로선 정말 ‘약속의 땅’ 같은 곳이라오. 그렇소, 여기서 방사능은 인간의 침입을 막아주는 강력한 ‘억지력’을 제공한다오. 당신들 말대로 “전쟁을 막아주는 무기”인 셈이오. 몸이 병들고 수명이 좀 짧아지는 것이야 그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불행 아니겠소?

인간이 암 걸리듯, 지구도 암 걸려

하지만 우리가 원전을 지지하게 된 것은 사실 이 한 번의 사고 때문만은 아니라오. 우리가 체르노빌에 자리 잡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다시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되었소. 그때 또한 알게 된 것은 원자력이란 인간들이 처리할 수 없는 절대적 불가능성의 영역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소. 노심 용융으로 노출되거나 빠져나가버린 연료봉도, 붕괴된 원자로도 인간들이 다가갈 수 없기에 더는 처리할 수 없다고 합디다. 원자로와 연료봉 냉각에 사용된 엄청난 양의 바닷물도 그렇다죠? 끓여서 증발시키면 공기가 오염되고, 바다에 흘려보내면 바다가 오염되기에 처리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오. 일본 정부는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바다에 방류하겠다고 하는데, 국내외의 반대가 강력하여 아직 못하고 있다지요?

아마도 후쿠시마 근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방류에 찬성할 거란 생각이오.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방류되면 그들도 방사능에 오염될 것이고, 우리처럼 죽거나 병들고 기형의 새끼를 낳거나 할 거고 수명도 짧아지고 하겠지요. 그래도 거기 사는 물고기를 먹으려는 인간은 없을 테니, 저인망을 끌고 다니며 바다를 싹쓸이하는 인간들 걱정할 일은 별로 없게 될 거요. 그러니 아마 거기는 인간에게 쫓기는 물고기들이 몰려드는 또 하나의 안전지대, 또 다른 ‘약속의 땅’이 되지 않을까 싶소.

또 하나 우리가 유심히 지켜본 것은, 인간들의 실험이나 실수가 아니라 지진과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에 의해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이었소. 화산 폭발, 지진이나 쓰나미는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연적 순환의 일부이니, 원전 사고 또한 그만큼은 아니어도 그 순환 속에 있다는 뜻 아니겠소? 게다가 온난화로 인해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하는 지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고,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의 힘은 극도로 강력해지고 있다고 합디다. 인간들이 지하에서 불러낸 저 작은 소립자의 힘과, 탄소를 태워 지구적 스케일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저 거대한 힘들이 합쳐진다면, 방사능이 인간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안전지대가 좀 더 많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지 않겠소?

인간의 불행한 사고를 바라는 발상이라며 분노하지 않길 바라오. 아마 지구가 나처럼 말하는 능력을 얻었다면, 그런 사고를 두고 ‘방사능 치료’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들이 암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말이오. 지구의 생물권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소. 대기화학이나 미생물학을 통해 그렇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고 합디다. 그에 따르면 이산화탄소가 대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성이나 금성과 달리 지구는 20%가량의 산소, 78%를 차지하는 질소, 미량의 다른 기체들이 일정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열역학적 과정에 반하여 이런 항상성을 갖는 것은 생명체의 특징이라고 한다지요. 살아 있는 한 당신들의 체온이 항상성을 갖듯이 말이오. 동물과 식물, 미생물들이 ‘먹고’ ‘배설하는’ 활동이 하나의 순환계를 이루며 되먹임되며 그런 항상성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지요.

방사능 사고는 지구에 암치료?

그런데 당신들이 암에 걸리듯, 우리도, 지구도 암에 걸린다오. 암세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죽을 때가 되었어도 죽기를 거부하며 급속히 증식되며, 이웃한 다른 세포들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신체에 공급되는 자원을 최대한 자신이 영유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들었소. 지구가 생명체라면, 아마도 그는 당신들을 보며 암세포라고 생각할 게 틀림없소. 죽음을 면하려는 지식과 기술 덕분에 지난 100년간 인간의 평균수명은 두 배로 늘었고, 인구는 ‘증식’이란 말로는 부족할 만큼 폭증하여 지구 전체를 뒤덮었고, 지구의 모든 자원을 장악하여 자기 것이라며 채굴하고 착취하고 있으니 말이오.

당신들을 겨냥한 ‘방사능 치료’라는 말이 곤혹스러우리라는 건 잘 알지만, 이를 두고 인간에 대한 원한의 감정이나 냉소적 저주라고 비난하진 않길 바라오. 방사능 치료가 좋아서 하는 인간이 없듯이, 지구도 그럴 것이오. 우리 또한 좋아서 지지하는 것은 아니오. 암환자가 그렇듯 우리도 생존의 궁지에 몰려서 출구를 찾는 것이오. 이는 생존 가능한 영토를 거의 다 상실한 채 죽음으로, 멸종으로 쫓겨가는 우리들의 생존본능, 우리들의 ‘자연권’에 속하는 것이오.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속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권리 말이오.

늑대나 소나무, 고등어에게 무슨 자연권이 있느냐고 반박하려는 게요? 그러나 인간에게만 있는 게 자연권이라면 그게 어디 자연권이겠소? 인공권이라 해야 마땅할 거요. 자연권이 자연에 속한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인정에 의해 생겨나는 것도, 누군가의 부정으로 부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거요. 문제는 다른 생명체와 대비하여 자신들을 ‘만물의 영장’이라며 정복자의 지위를 주장하며, 다른 생명체의 자연권을 부정할 때 발생하는 것일 게요. 당신들의 전제군주가 당신들에게 그러했듯이, 당신들 전체가 인간 아닌 생명체들에게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시오. 그런 부정의 폭력이 있을 때,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야말로 자연권의 작동 아니겠소? 당신들이 당신들의 군주들에게 했듯이 말이오. 원전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그 점에서 보면 소립자와 동맹하여 우리를 지키려는 차악의 선택이라 해야 할 것이오. 어차피 지금은, 우리나 지구나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최악을 면하는 방법을 고심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니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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