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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투쟁

 

 이달 초, 이삿짐을 꾸리다가 방 한구석에 놓여있던 편지함 박스 하나에 눈길이 멈췄다. 연례행사마냥 연말이면 늘 주고 받던 크리스마스 카드부터 학창시절 간간히 도시락 가방 한쪽에 들어있던 엄마의 편지까지... 짐을 꾸리다말고 한참을 주저앉아 옛 추억에 사로잡혔다. 그 속에는 A4사이즈의 초라한 "찌라시"가 몇 개 섞여 있었다. 한일 월드컵 열풍이 한창이던 2002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대기업 직영 모 식당에서 일을 하던 우리 엄마는 그때즈음 회사에서 이상한(?) 통보를 받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회사에 있던 어머니 연배의 노동자들 모두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다른 업체에 소속되게 되었다는 일종의 "아웃소싱" 형식의 해고장이였던 셈이다.  똑같은 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게될 것이란 사측의 변명에도, 무언가 굉장히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던 엄마는 그 길로 서초동의 고용안정센터를 찾으셨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 회사측 조치에는 그 어떤 법적 하자가 없으니,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고 한다. 사측 노조이던 한국노총에 문의를 해도 답변은 같을 뿐이었다. 하루종일 이리저리 시내를 헤매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은 당시 영등포에 있던 민주노총 사무실이었을게다. 얼마지나지 않아, 엄마에게도 그동안 TV 뉴스에서나 간혹 볼 수 있던 "투쟁"이란 것이 시작되었다.

 

 편지함에서 발견한 그 "찌라시"란 다름아닌 그때 있었던 엄마의 투쟁의 흔적인 셈이다. 아버지가 직접 그림을 그려 엄마와 동료들의 목소리를 인쇄물로 만들었고, 회사 입구의 대리석 바닥에 앉아 엄마는 동료들과 구호를 외쳤다. 당시 투쟁에의 경험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냐는 내 질문에 의외로 엄마는 "아무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더라"로 대답하셨다. 평소에 친아들, 딸처럼 따르던 회사 직원들조차 당신들의 이야기에 고개를 슬며시 돌리고 귀를 닫아버리는 모습을 경험했던 일은 회사의 해고 통보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경험이라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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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아폴리스의 창녀에게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

 

이봐요 찰리, 나 임신했어요.

지금은 9번가 유클리드 변두리 지저분한 서점 윗층에서 살아요.

마약도 끊었고 위스키도 안마셔요.

우리 그이는 트럼본도 불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예요

 

그이는 날 사랑한대요

비록 자기 아이는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키우겠대요

그이 어머니가 준 반지도 내게 줬고요

매주 토요일 밤이면 날 데리고 춤추러 가요

 

찰리, 주유소를 지날 때면 늘 당신 생각이나요

당신이 머리에 바르곤 하던 그 머릿기름때문이겠죠

난 아직도 리틀 안소니& 더 임페리얼스 레코드를 가지고 있는데

누가 내 레코드 플레이어를 훔쳐갔지 뭐예요.

당신은 아직도 그 음악 좋아할까요?

 

이봐요 찰리, 마리오가 잡혀갔을 때는 거의 미칠뻔했어요

그래서 고향사람들과 함께 살아볼까 하고 오마하로 돌아갔었죠

근데 내가 알던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감옥에 갔더군요

그래서 다시 미네아폴리스로 돌아온 거예요

 

찰리, 사고 이후 난 처음으로 행복한 기분이예요

약사느라 써버린 그 돈들, 다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즘 중고차 매장을 하나 사서 한대도 팔지 않고

매일매일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차들을 몰고 다녔을텐데..

 

찰리, 세상에나.. 진실은 말이죠..

사실은 나 남편따윈 없어요. 트럼본을 불리도 없고요

사실 나 변호사 살 돈이 필요하거든요.

잘하면 이번에는 가석방될 수 있을 지 몰라요

이번 발렌타인데이에는 제발 와주세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톰 웨이츠는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는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부모는 스코틀랜드-아이리시 계와 노르웨이 이주민 출신이었고, 둘 다 교사이긴 했으나, 톰 웨이츠가 어린 시절 이혼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샌디에이고 쪽으로 이사를 했고, 간간히 찾아오던 아버지를 따라 멕시코 여행을 자주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차에 실려 이리저리 떠도는 와중에, 톰은 자동차 라디오에서 나오는 멕시코 민요들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이 기억이 그에게는 꽤나 강렬했던 모양이다. 톰 웨이츠는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 장면을 빼놓지 않는다. 가난했던 그는 옆집의 피아노와 기타를 빌려가며 악기를 독학으로 배웠고, 고등학교 때는 밴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첫 직장은 피자 가게였다. 톰 웨이츠의 "하층민"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는 늘 "다른 것"을 원했던 아티스트였다. 블루스 향이 진하게 나는 음악을 만들면서도, "청년 시절 블루스는 사실 내 취향이 아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톰 웨이츠는 당시 "올드"한 것들인 빙 크로스비, 스티븐 포스터, 조지 거쉰등의 음악에 심취했다. 그러다 우연히 프랭크 자파의 매니저였던 허브 코헨의 눈에 들어 [The Early Years]와 [The Early Years, Vol. 2.]라는 타이틀의 앨범으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이어진 [The Heart of Saturday Night](1974),  [Nighthawks at the Diner](1975), [Blue Valentine](1978) 등의 앨범들은 비록 대중적 관심을 사지는 못했으나, 평단의 찬사와 컬트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81년 결혼을 하게되기 전까지, 자동차를 타고 온갖 싸구려 여관을 돌아다니며 술에 취한 채로 음악적 영감을 얻고자 했다. 늘 "바닥"을 살았고, 그 "바닥"을 노래하고 싶어했던, 그는 일종의 "다운 생활자"였던 셈이다. 톰 웨이츠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찾아 헤맸고 그것을 노래하고자 했다.  

 

 니코틴과 알콜에 제대로 숙성된 듯한 거친 목소리의 독백.. 톰 웨이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만한, 특유의 부랑자같은 목소리로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사회 저소득층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 아티스트이다. 이는 그가 70년대 후반부터 영화에 급속히 관심을 가지며 온갖 영화에 B급 배우 혹은 조연 배우로 출연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출현은 그와 절친한 사이로 지냈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과 청년시절, 거리를 헤메며 쌓았던 톰 웨이츠의 "이야기"들은 그의 노래 속에서 그리고 영화 안에서 하나의 생명처럼 살아 숨쉰다. 단 한장의 골드레코드도 없을만큼 대중적으로는 인기가 없는 아티스트였음에도, 톰 웨이츠 특유의 카리스마가 음악팬들에게 깊이 각인되어있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톰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 즉 그가 찾아헤맸던 그 "서사"들의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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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자무시의 영화 "커피와 담배"에 출연한 이기팝과 톰 웨이츠)

 

 해마다 크리스마스와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올 때마다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하는 톰 웨이츠의  "미네아폴리스의 창녀에게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란 곡은, 78년 [Blue Valentine]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서, 이제껏 현존하는 캐롤들 중 가장 서글픈 곡이라 할만하다.  미국 백화점 시장의 연매출 40%가 소비된다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그리고 이어지는 발렌타인 시즌,  이 들뜨고 활기찬 축제의 시기에 톰 웨이츠는 그 누구도 귀기울지 않던 쓸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평소 잭 크로악(Jack Kerouac)과 찰스 버코우스키(Charles Bukowski) 등의 비트(Beat) 운동 작가들의 작품에 특히 애정이 남달랐던 그의 문학적 소양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를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비트 문학은 주로 "정키"라 불리우던 사회 부적응자, 방랑자, 아나키스트, 전위 예술가,  냉소와 허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태어난 문학장르인데, 고답적인 엘리트주의에만 빠져 있던 기존 문학의 스타일과 한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문학의 형태를 갈구하던 흐름을 지칭한다. 그의 또다른 곡 "토요일 밤의 마음(The heart of Saturday night)"에서는 당시 비트닉(Beatnik)이라 불리우던 "방랑자"적 서사를 물씬 느낄 수 있다. 톰 웨이츠의 쓸쓸한 이야기들이 단순히 하층민의 한탄과 같은 개인 서사가 아닌 정치적으로 평가되어야하는 이유는, 그가 이 같은 비트 운동의 한가운데 서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있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인생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그 어떤 거대한 구호보다 정치적 힘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 "이야기"들은 타성에 젖어있던 많은 이들에게 그간 미처 보지 못하던 사회의 이면들을 깨닫게해주고 비로소 움직일 수 있게하는 동인이 되기 때문이리라. 톰 웨이츠는 그가 부데꼈던 삶들의 "이야기"들을 노래로 부르고자 했고, 그렇게 "진정성"을 성취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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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광주시청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이 경찰의 강제 진입에 맞서 옷을 벗은 채로 "건드리기만 해봐"라며 눈물을 흘리던광경을 몇년 전 목도한 이래, 그 안타까움에 홍대 투쟁 관련 기사를 애써 피하게 되다는 누군가의 고백을 며칠 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새벽 시간 출근해 화장실 한켠의 청소자재 도구함에서 차가운 도시락으로 끼니를 떼워야만 하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미네아폴리스 창녀의 편지마냥 가볍게 듣고 넘길 수 있는 종류의 그것이 아니다. 그 서글픔이 단순히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독백이 아닌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기에, 그에게는 투쟁 소식을 접하는 일이 그리도 힘든 일일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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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시간에도 비인간적인 작업 환경 속에서 사그러져간 목숨들을 위해 거대한 공룡이 되어버린 기업과 싸우고 있는 이들, 며칠 앓고나면 나을 수 있는 병임에도 상품가치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생매장 당하고 있는 수십만의 생명들과 그들을 향한 눈물, 그리고 따뜻한 밥 한끼라는 소박한 권리를 위해 차가운 바닥에서 투쟁하고 있는 누군가의 어머니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톰 웨이츠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세상의 모든 투쟁하는 이들에게 그 어느 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는 진심일지 모른다. 기록적인 한파가 계속되는 이 추운 겨울날, 우리에게도 "미네소타 창녀의 카드"가 배달되었다. 자 , 진심으로 봉투를 열어 읽을 준비가 되었는가? 

 

 

글/ 김은영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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