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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론의 개념들 04]영화의 공백, 그리고 정신분석의 응답

수유너머웹진 2014.06.27 07:07 조회 수 : 145

[영화이론의 개념들04]


영화의 공백, 그리고 정신분석의 응답

-크리스티앙 메츠, 『상상적 기표-영화·정신분석·기호학』(1984)





문화/수유너머N 회원





왜 정신분석학인가?

정신분석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어떻게 응답할까?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 대해 ‘정신분석’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영화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정신분석은 얼마나 독창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960년대 ‘기호학’을 영화에 등장시키면서 활발한 논의를 이끌었던 크리스티앙 메츠는 이번에는 ‘정신분석’이라는 무기를 가져와 먼저번의 무기를 재장전한다. 기호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메츠는 정신분석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이러한 만남을 시도한 것일까.


은폐된 동일시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메츠가 정신분석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한데에는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형식적 특수성에 있다. 영화는 다른 여타의 예술 장르와-연극이나 문학 등-다르게 실제하지 않은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 환영들이다. 관객은 이러한 환영을 보면서 자신을 카메라의 눈과 같은 것으로 동일시를 하기도 하고(1차적 동일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2차적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동일시 과정은 애초에 ‘동일시’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정신분석’의 눈으로 봐도 꽤나 흥미로운 것이다. 라캉이 거울단계에서 ‘동일시’를 말할 때는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아이)의 모습을 보고’ 동일시를 하는 것이었다.


반면 영화 스크린을 보고 동일시를 할 때는 ‘이를 바라보는 주체는 스크린에 비치지 않고’, ‘밖에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관객은 스크린 밖에서 고립된 채로 자신을 카메라의 눈과 동일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카메라라는 절대적이고 초월적 눈을 통해 스크린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이러한 동일시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메츠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영화의 형식적 특성상 이러한 은폐된 동일시-1차적 동일시-가 필연적이라는데 있다. 이러한 1차적 동일시는 영화에서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관객은 지각의 순수한 행위로서 (빈틈없고 기민하게)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 동일시는 지각된 객체라는 가능성의 조건이며,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선험적인 주체다.(『상상적 기표』)


이러한 1차적 동일시가 특히 강조되는 장르로 ‘멜로 드라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동일시를 통해 영화는 그 나름의 목적-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달성한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이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봉합(suture)"을 통해 철저히 은폐된다. 봉합은 비연속적이고 단절된 영화의 장면들로 인해 관객과 영화의 유대를 깨지 않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봉합이 얼마나 자주 실패하느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으나... 다음 기회에...)




"봉합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많으나... 다음 기회에..."




부인할지어다! 쾌락을 얻을지니!!!

메츠는 앞서 설명한 영화적 기표와 주체가 만들어내는 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 정신분석의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이라는 개념을 유용하게 사용한다. 정신분석에서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의 구조는 앎과 믿음의 불일치로 아이가 성차를 발견하고도 이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아직 남녀의 성차에 대해 구분이 모호할 때, 아무런 준비없이 나와 달리 남근이 없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목격할 때 아이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아이는 ‘나는 (엄마에게 남근이 없다는 것을)잘 알고 있지만 (엄마도 남근이 있다고 믿는데에는)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이는 이러한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을 통해 자신의 앎의 결핍을 부정한다.



크리스티앙 메츠, 『상상적 기표』, 이수진 역, 문학과 지성사, 2009






메츠는 이러한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의 메커니즘으로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설명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환영’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이것이 ‘환영’임은 아무 상관이 없다. 한창 블록버스터 영화 ‘엑스맨’이 상영되고 있는 극장에 가서 관객에게 ‘니가 보는 것은 모두 CG고 다 가짜야!’ 하고 외치는 순진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분명히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환영이고 가짜라는 것을 몰라서 몰입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쾌락’을 얻는데는 ‘나는 잘 알고 있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는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 이라는 앎과 믿음의 불일치의 형식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이 충실할 수록 ‘쾌락’도 커진다. 부인할지어다! 쾌락을 얻을지니!


이러한 결핍을 부인하는 것은 동시에 ‘페티쉬(fetish)’로 드러난다. 페티쉬는 부재하는 남근을 대체하는 대체물로 결핍을 메우는 동시에, 다시 결핍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인과 페티쉬의 메커니즘이 ‘상상적’ 질서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상징적’의 질서에 노출된 이의 앎과 믿음의 불일치에서 일어난다는 것! 때문에 메츠는 이러한 부인과 페티쉬에서 나오는 ‘쾌락’이 ‘전문가’에게서 발전된다고 강조한다.(『상상적기표』, 119) 영화는 바로 이러한 ‘부인(否認, Verleugnung, désaveu)’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가에 그 성패가 달렸다. 결국 영화는 영화라는 ‘상상적 기표’를 완성시킴으로서 그것의 ‘결핍’을 감추는 것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상상적 기표’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결핍’이 계속 다시 출현한다는데에 있다. 이러한 메츠의 이론에 따르면 영화의 의미화 작용은 다시 출현하는 결핍을 메우기 위한 작업이 된다.


동일시에 실패한 타자들이 갈 곳은?

물론 메츠의 이러한 메츠의 ‘결핍’에 대한 설명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페미니즘 진영이 보기에 이러한 영화의 부재와 결핍에 대한 설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욕망을 단일한 주체의 욕망을 상정하는 것이 되기 쉽고, 특히나 그것이 남성 관객 주체가 되기 쉽다는 면에서 부정적이다. 그들이 보기에 영화를 둘러싼 수 많은 타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장치이론이 유사한 비판을 받았던 것처럼, 메츠의 이론 역시 ‘다양한 관객 반응’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라는 ‘상상적 기표’에 쉽사리 동일시 되지 않는 관객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이라는 남근중심적 이론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출현한 페미니즘은 이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할까. 새로운 관객의 출현 가능성은 이후의 논의에서 점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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