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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론에서 기호학이라는 방법론의 등장

-크리스티앙 메츠, 「영화, 랑그인가 랑가주인가?」(1964)





수유너머N 회원 조지훈





 영화이론에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기호학은 기존의 연구방식에 논쟁적인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특별히 사회학이나 심리학 같은 다른 여타 학문보다도 학제 간 연구를 활성화시켰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영화기호학이 명확한 관점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호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지니는 “방법론적 접근” 때문이다. 예컨대 바쟁과 같은 사람이 보여주었던 존재론적인 접근 방식이 “영화란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기호학이 보여주는 방법론적 접근은 “영화는 기호학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의 1964년 논문인 「영화, 랑그인가 랑가주인가?」는 이러한 질문방식을 잘 보여준다. 메츠는 영화가 랑그인지 랑가주인지를 질문함으로써, 그 자체로 영화가 기호학적인 접근이 가능한지를 묻고 있다.





아마도 시네필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영화가 랑그인지 랑가주인지, 기호학자가 아니고서야 그게 그토록 중요한 걸까? 메츠는 그렇다고 답한다. 영화가 그 자체로 자신만의 의미작용이 존재하는 특수한 의미 체계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그러한 의미 체계는 의미작용을 다루는 학문인 기호학을 통해서만 철저히 규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영화를 기호학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분석은 영화의 의미 자체보다도 영화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메커니즘을 향하게 된다. 아무래도 내용적 층위보다는 형식의 층위가 분석의 주된 층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영화를 기호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은, 예컨대 히치콕의 <새>라는 영화가 어째서 우리에게 기묘한 불안감을 안겨주는지를 영화의 형식(숏, 프레임, 카메라 워크 등등)을 통해서 세밀하게 분석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기호학의 작업은 주로 한 작품에 대한 치밀한 형식적 분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메츠가 던졌던 질문인, “영화, 랑그인가 랑가주인가?”로 돌아 가보자. 대관절 이 질문은 무슨 뜻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질문인건가? 이 질문은 기존의 영화에 대한 기호학적 접근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즉 기존의 영화기호학이 영화의 의미작용 메커니즘을 랑그로 파악했던 것에 반해, 메츠는 영화를 랑가주로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랑그와 랑가주의 구분은 영화의 기호체계를 엄밀한 언어적 체계(랑그)로 볼 것인가, 보다 화용론적 언어활동(랑가주)으로 볼 것이냐에 차이에 있다. 영화를 랑그로 파악하는 이론가들은 영화를 음소(음의 최소 단위)와 형태소(뜻의 최소 단위)와 같은 언어학적 단위로 분석할 수 있다는 입장에 있다. 즉 언어를 분석했을 때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음소나 형태소 같은 단위가 나오듯이, 영화에서도 숏이야 말로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 단위라는 것이다. 영화의 숏 하나하나의 조립을 통해, 마치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되듯이, 의미를 생산해낸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메츠는 영화에는 음소, 형태소와 같은 언어학적 최소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나의 숏은 언어에서의 단어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숏은 하나의 단어보다 많은 의미가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언어에서 “개라는 단어”와 영화에서 “개를 보여주는 숏”은 일대일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를 보여주는 숏은 개라는 단어에 대응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기에 개가 있다”라는 문장에 대응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메츠는 영화에서의 숏을 문장으로 파악한다. 영화의 최소단위는 그 자체로 무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인 것이다. 더군다나 영화는 언어와 같이 단일한 기호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상, 소리, 음악 등등의 상이한 기호들이 얽혀 있다. 영화는 다양한 기호들이 혼합된 의미작용 체계인 것이다. 영화가 랑그라고 하기보다 랑가주라고 규정해야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영화의 의미작용 체계의 복잡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생산되는 의미의 복잡성을 논의하기 위해 꺼내들었던 기호학이라는 도구는 메츠 자신의 기획과는 무관하게, 분석 도구의 난해함을 초래했다. 영화기호학이라는 복잡한 도구를 통해 파악된 의미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는 메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가 영화 이미지의 유형을 8개로 세밀하게 나눈 “서사영화의 거대 통합체”와 같은 틀에서도 분석과정의 난해함에 상반되는 분석결과의 빈곤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한계가 지적되면서 6,7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기호학은 영화이론 내에서 슬금슬금 자리를 감추기 시작한다. 유행을 빠르게 선도한 만큼이나 재빨리 사라진 것이다. 이후 영화기호학은 영화이론 전면에 등장하기 보다는, 정신분석학적 영화이론과 더불어 등장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은 기호학처럼 의미작용의 메커니즘만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메커니즘이 어떤 중층적인 의미를 띠는지를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까지 제공해주기 때문에, 영화기호학보다 더욱 유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기호학은 영화이론에서 역사적 가치만이 있을 뿐인가? 아마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영화기호학이 영화이론 서적에서 중요한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학제 간 연구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던 기호학적 방법론이 보여주었던 치밀함에 있을 것이다. 영화이론에서 기호학의 도입 이후 그 어떤 영화 연구도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점검을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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