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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_굴뚝연대의 글] 우리의 고통을 상상하고 이해해

수유너머웹진 2015.03.11 15:06 조회 수 : 13


우리의 고통을 상상하고 이해해





소영 / 수유너머N 세미나 회원





두 노동자가 전광판 위에 올라갔던 26, 꽃다발을 든 이들을 자주 지나쳤다. 아마 졸업식이었겠지. 막 졸업한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 날만은 별 걱정 없이 기뻤을까, 아니면 걱정이 많았을까. 무슨 걱정들을 했을까? 어쩌면 그저 각자의 기쁨과 슬픔을 안은 채 축하 받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담담했을까.

 

졸업식이 있던 날 엄만 일을 쉴 수 없어 대신 상품권을 줬다. 오만원권이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지만 졸업식엔 가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씹어 삼키면 사라질 뿐인 음식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쓴 건 처음이었다. 졸업을 기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입시가 끝나면 삶은 전혀 달라질 줄 알았으니까. 그러나 다를 건 없었다.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졌을 뿐.

 

오만원이 엄마가 하루를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그녀는 백화점에서 판매 노동자로 일했다. 아홉 시 반부터 여덟 시 반까지, 종종 연장근무를 하면 아홉 시 반까지 열두 시간 동안 서서 웃음 짓는 일을 했다. 고단한 일이었다. 나중에 내가 그녀와 같은 자리에 서 보고서야 알았다. 손님을 맞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우린 서로 다른 존재여서, 같은 자리에 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 섰던 이를 상상하고 이해하기도 한다는 것을.





두 번째 오체투지 행진.

청운동을 앞두고 경찰이 행렬을 가로막았고, 행진단은 결국 이 자리에서 하루를 꼬박 샜다. (사진 참세상)



세 번째 오체투지 행진 참가자 중 한 명은 절을 하면서 앞선 행진 참가자들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같은 해고 노동자라는 처지 때문이었을까. 한 걸음 내딛기 위해 온 몸을 구부렸다가 일으킬 때 느끼는 통증 때문이었을까. 절하는 것마저도 경찰들이 가로막고 시민들이 말없이 지나칠 때 느끼는 고독 때문이었을까.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통을 느꼈을 이들을 상상하면서 그들을 이해했을까.


서울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오른 두 사람(강세웅·장연의) 역시 그랬을까. 그들은 앞서 전광판 위에 올랐던 씨앤앰 노동자들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지난 11, 부당 해고에 맞서 농성을 벌이던 씨앤앰 협력업체 케이블 설치·수리 노동자들 중 두 사람(강성덕·임정균)이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 해 마지막 날까지 50일을 전광판 위에서 싸웠고, 전광판 아래에서는 177일을 농성했다. 그렇게 긴 싸움 끝에 승리해 전광판에서 내려오면서도 자신들보다 먼저 고공 농성을 시작한 차광호(스타케미칼)를 염려했다. 1213일 굴뚝에 오른 김정욱·이창근(쌍용자동차)을 염려했다. 이렇게 먼저 내려가도 되는지 미안해서 울었다. 물론 그들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울었다. 차광호가, 김정욱이, 이창근이 그 높은 곳에서 어떤 심정일지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것을 이창근은 해고계란 낱말로 바꾸어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굴뚝의 밤 행사에서였다. 아마 같은 경험(해고)을 공유하기 때문에 상대의 고통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한 것이었겠지. 우린 서로 다른 존재여서 같은 해고를 당하면서도 각기 다른 모멸감을 받고 다른 고통을 겪었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어떤 모멸감을,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테니까.




 


(왼쪽) 서울중앙우체국 앞 전광판에 오른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노동자들 (사진 참세상)

(오른쪽)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사진 뉴스민)


 

그렇다면 그 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청중들은 어땠을까. 그들에게도 해고 경험이 있었을까. 우린 같은 경험 속에서 같은 자리를 점하고 있었을까. 같은 세계 안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을까. 해고 앞에서 느끼는 모멸감과 고통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눈이 내리는데도 행사에 오고 세 시간을 앉아 있었을까.

 

그 자리에서 나는 엄마를 떠올리고 있었다. 몇 해 전까지 그녀는 정규직이었지만 사직서를 써야 했다. 권고사직이었다. 정확히 말한다면 권고를 가장한 강압이었고, 그러니까 퇴사가 아니라 해고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에 진실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째서 회사 사정이 나빠졌는지, 어째서 그 책임을 그녀에게 돌렸는지, 직원을 해고하면 사정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사직서를 쓰기까지 그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어떤 모멸감을 느꼈는지 안다. 그녀는 여러 군데로 전화를 걸었고 회사에 찾아갔고 노동부에 찾아갔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찾아간 회사에서는 아무도 그녀에게 알은 척 하지 않았다고 했다. 수 년을 일했던 곳이었다. 망연자실한 그녀는 종일 누워 있었다. 누워서 하릴없이 텔레비전만을 봤다. 어두운 방 안에 텔레비전 불빛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무늬들을 바라보면서 알았다.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그녀가 일했던 수년이 먼지 같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해고 이후에 하루하루는 납처럼 무겁고 치명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행사가 끝났을 때 눈은 그쳐 있었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전철 안엔 제법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핸드폰에서 무얼 보고 있었을까. 전철이 방향을 틀면 사람들은 같은 리듬으로 흔들렸다. 그 날 법원에서는 굴뚝 위에 있는 두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열흘 안에 내려오지 않는다면 인당 50만원씩, 즉 하루에 100만원씩 회사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각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시 그 때 그 열차에 같은 기사를 읽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전철이 움직일 때 같은 흔들림을 느끼듯, 같은 기사를 읽고 같은 흔들림을 느꼈던 사람은 없었을까.

 

수도권 전철 중 가장 붐비는 노선인 이호선 순환선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1549000여 명에 달한다. 비정규직 인구는 800만 명을 넘어섰다. 800만 명 각자에게 부모나 형제가 한 명씩 있다면 적어도 2400만 명이 2년에 한 번씩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하루 동안 이호선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비정규직이라 가정해도 650만 명이 남는다. 닷새 동안 이호선에 비정규직만이 타더라도 50만 명이 남는다. 한 도시의 인구 수. 이를테면 천안. 혹은 포항. 물론 서울을 지나는 전철은 이호선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인구 전부가 서울에 거주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궁금했다. ‘해고계에 속한 사람이 내 옆자리에 앉았을 경우의 수는 얼마나 될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그 낯선 얼굴들은 언젠가 엄마가 해고당했을 때처럼 흐려졌을까. 혹은 해고당한 엄마를 바라보고 있던 내 얼굴처럼 흐려졌을까.

 

엄만 한 달 동안 일을 구하지 못해 생활비에 쩔쩔맸다. 그 한 달 동안 난 매일 학교에 갔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은 위로는커녕 밤늦게 집에 들어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도 적었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그 때 하지 못했던 생각을 뒤늦게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평택에 가던 날 엄만 부스럭거리는 내 움직임에 잠에서 깼다. 새벽 여섯시였다. 나는 더 자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잠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나중에 엄마한테도 이렇게 해주려나?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이제 비정규직으로, 계약직으로, 임시직으로 일한다. 고정적이지 않은 일이어서 닥치는 대로 한다. 쉬는 날을 정하지 못한다. 집에 돌아오면 그녀는 지쳐 금방 잠든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것도 모른 채, 아니, 그것이 이제 버릇으로 굳어져 텔레비전 소리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 잠시 동안 함께 지냈던 이에게서 안부 메일이 왔다. 강정 마을에 행정대집행이 들어갔던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 돌아오는 대신 거기서 살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들이 매일 일어나.” 무례한 물음이었다망루를 세우고 싸운 이들에 대한 무례. 그건 그들이 있는 힘껏 지키려고 했던 이 세계에 대한 포기이자, 당신도 포기하는 게 어떠냐는 물음이었으니까. 대신 이렇게 물어야 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 나는 스스로가 무능함을 입 밖에 내어 버렸지만, 이제 그 말은 수정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역시 이 세계에 대한 손쉬운 포기였으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대답을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해서 물음을 붙잡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쓴다. 이 질문을 다시, 또 다시 던지기 위해서 쓴다. 할 줄 아는 것이 쓰는 것뿐이어서 쓴다.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쓴다. 누군가 응답해주기를 바라면서 쓴다.



* 지난 글은 굴뚝일보에 실려 있다.

https://www.facebook.com/gultukilbo/photos/a.754413664632654.1073741828.753783114695709/776873109053376/?type=1&fref=nf&pnref=story







* 이글은 R-view, 굴뚝일보와 함께 기획한 글입니다. 

굴뚝일보https://www.facebook.com/gultukilbo, R-view82호http://commune-r.net/r-view/Rview082.pdf 에서 쌍용차 고공농성 관련 다른 글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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