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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춤을] MeToo사건과 위버멘쉬의 타자성

수유너머웹진 2019.01.04 16:20 조회 수 : 304

MeToo사건과 위버멘쉬의 타자성

류 재 숙 / 수유너머104 회원

 

[1] 위버멘쉬는 타자로부터 온다

 

 

나 너희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들은 너희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 보라, 나는 항상 스스로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이다. _『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버멘쉬(Übermensch, overman)는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이다. 그것은 흔한 오해처럼,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나 ‘완전한 인간’ 같은 특별한 인간유형이 아니다. ‘인간을 넘어섬’ 혹은 ‘인간을 극복함’을 뜻하는 위버멘쉬는 ‘결과로 주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과정으로 구성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위버-멘쉬하기’ 혹은 ‘위버멘쉬-되기’로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버멘쉬란 ‘자기정체성의 극복을 정체성으로 갖는 자’이며, 다음의 자기독백이 위버멘쉬에게 적합한 것이 된다. “나는 항상 나로 머물러 있지만, 그것은 항상 다른 내가 되는 방식으로 그랬다.”

 

그런데, 이러한 자기극복으로서 위버멘쉬는 자기정체성의 ‘발전이나 진화’라기 보다 ‘몰락과 변신’의 과정이다. 위버멘쉬는 자기정체성의 강화로 일어나는 질적 변화가 아니며, 지금의 자기정체로부터 어떤 것도 승계하지 않는다. 자기정체성의 철저한 몰락만이 위베멘쉬-되기의 전제조건이다. ‘새로운 나’를 위해서는 ‘지금의 나’는 몰락해야 한다. 이제 문제는 인간은 자신의 몰락을 욕망할 수 있는가, 결국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타자의 존재가 요청된다!

 

타자(l'autre, the other)는 ‘자기동일성을 해체하는 존재’이다. 동일자(le meme, the same)가 ‘나와 같은 존재’라면, 무엇보다 타자는 ‘나와 다른 존재’이다. 여기서 ‘같음과 다름’은 ‘유기체 수준’에서 나와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자기동일성’을 강화하는가 해체하는가의 문제이다. 따라서 같은 생각과 같은 목표로 한 몸처럼 움직인다면 그는 나의 외부에 있지만 동일자이며, 반면 다른 사유와 다른 감각으로 나를 해체시킨다면 그것은 내 안에 있지만 타자이다. 위버멘쉬가 자기극복으로 정의되는 존재라면, 자기정체성을 해체시키는 타자야말로 위버멘쉬의 절대적인 계기이다.

 

타자는 내 안에서 시작된 것이든, 바깥으로부터 오는 것이든, ‘나를 몰락시키고 나를 넘어서게 하는 존재’이다. 나를 망치러온 내 인생의 구원자, 타자! 그래서 타자는 위험한 존재이며, 도발적인 존재이다. 비극은, 나를 넘어서게 하는 그는 먼저 나를 몰락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그는 몰락을 향하여 나를 심연으로 끌고 가는 자이며, 다음과 같은 명령으로 나의 몰락을 추동한다.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남아있으려 하는 집착은 계속 너를 제약한다.” _「공각기동대」 타자는 내 안의 타자성을 깨워 나의 동일성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는 내 안에 존재하는 외부 ‘내재하는 외부’이다. 결국 내가 다른 내가 되는 것은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서이다.

 

MeToo사건은 우리의 권력감각에 균열을 내는 타자이다. MeToo형 성폭력에서 작동하는 권력이란 무엇이고, 그 권력에 봉사하는 담론은 어떤 배치 속에 놓여있는가? 이로부터 우리의 감각은 해체되고 새롭게 극복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MeToo사건으로부터 해체된 낡은 것들은 무엇이고, 너머의 새로운 것들은 무엇인가? 이 에세이는 우리의 권력감각을 넘어서게 하는 타자로서 MeToo사건을 사유하려고 한다.

 

 

[2] 권력감각에 균열을 내는 타자, MeToo

 

 

2017년 10월 허리우드의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스캔들에서 시작된 MeToo운동은 순식간에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다. 와인스타인 성추문을 폭로한 [뉴욕타임즈]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타임]지는 MeToo고발자 - ‘침묵을 깬 사람들_The Silence Breakers’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와인스타인은 누구인가? 그는 [와인스타인 컴퍼니]를 설립하여, [정복자 펠레], [시네마천국] 같은 아카데미 수상작을 비롯하여 [킬빌], [장고], [씬시티] 등 쿠엔틴 타란티노의 모든 작품을 제작하였다. 최근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와 [킹스 스피치], [굿 윌 헌팅], [셰익스피어 인 러브], [시카고], 그리고 한국 봉준호감독의 [설국열차]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화산업의 킹 메이커 King Maker로서 그는 허리우드 영화제국의 제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30년 동안 여배우, 영화사 직원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뉴욕타임즈] 보도 이후 MeToo폭로가 빗발쳐 피해자가 70명을 넘겼는데, 그 가운데는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우마 서먼, 애슐리 주드 같은 세계적 배우도 포함되어 그의 권력을 실감하게 했다. 이어 미국의 ‘국민아버지’ 이미지를 가진 빌 코스비 역시 40년간 60여명의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와인스타인이나 코스비는 모두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에서 영구제명되었고, 이제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재인정권을 탄생시킨 ‘촛불혁명’이라는 대중적 열기가 MeToo폭로로 이어졌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시작되어, 2월에는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 감독과 우리문단의 대표시인 고은에 이어, 3월에는 국제영화제에서 더 유명한 김기덕 감독에 대한 성추행 고발로 이어졌다. 특히 차기여권의 강력한 대권주자로, ‘포스트 문재인’으로 거론되고 있던 안희정 충남지사의 몰락은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들 대형사건을 시작으로, 모든 사회적 공간은 MeToo고발로 하루도 조용하지 않았다. 연예계 MeToo, 영화계 MeToo, 연극계 MeToo, 문단 MeToo, 대학 MeToo, 스쿨 MeToo ······. 이제까지 성폭력의 온상이었던 직장 내 성추행이 오히려 MeToo운동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형국이 되었다. 그렇게 MeToo의 물결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공간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을 비롯하여, 대학교수와 조교, 선생과 학생, 작가ㆍ시인ㆍ만화가와 그의 문하생, 제작자ㆍ연출가ㆍ감독ㆍPD와 배우ㆍ작가, 신부ㆍ목사ㆍ승려와 그의 신도, 심지어 편의점사장과 알바, 그리고 고객과 매장직원ㆍ전화상담원이라는 모든 관계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갑을관계가 성립하는 모든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MeToo형 성폭력이며, 내 학점, 내 배역, 내 직장, 내 생계를 좌우하는 ‘갑의 자리’가 바로 MeToo형 권력이다.

 

MeToo운동은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폭로이다. 공공연한 만큼 익숙한 일들이었고, 말할 수 없었던 만큼 비밀에 붙여진 것들이었다. 따라서 MeToo사건은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지만, 어떻게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사태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MeToo의 피해자/가해자 리스트를 보면서, 성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공연하게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나 침묵 속에서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는 어쩌면 MeToo형 성폭력의 그림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묵인하는 미시권력과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했던 담론의 배치야말로 MeToo형 성폭력의 진범일 것이다.

 

 

[3] MeToo형 폭력을 생산하는 미시권력

 

 

     MeToo형 성폭력을 생산하는 미시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일상화된 권력형 성폭력]

내가 등단할 무렵 문단 내 성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내가 거절했던 요구는 한두 개가 아니고, 한두 사람이 아니다. 여러 차례 너무 많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고 목격했다. _시인 최영미

남성원로가 가운데 앉고 양 옆으로 여성문인들이 술시중을 든다. _중견 여성문인 A

이윤택 뿐만 아니라 유명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를 포함해서, 너무 많은 분들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가슴도 만지고 그런다. _연극배우 이승비

 

[갑을관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

이윤택은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가 내게 안마를 하러 오라고 했을 때, 왜 부르는지 단박에 알았다. 안갈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 _극단미인 대표 김수희

이윤택, 그는 그곳에서 왕같은, 교주같은 존재였다. 거부할 수 없었다. _연극배우 이승비

그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크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해서 했던 관계가 아니다. …… 인터뷰 이후에 닥쳐올 수많은 변화들이 충분히 두렵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안희정지사이다. 실제로 “제가 오늘 이후에라도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_안희정 충남지사의 비서 김지은

‘지사님께서는’이라는 표현이 입에 붙은 김지은씨에게 안희정지사 자체가 절대권력이었다. _JTBC뉴스룸 앵커 손석희

 

먼저, MeToo형 성폭력의 미시권력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작동한다. 성폭력 가해자는 우리와 무관한 범죄자가 아니라, 우리들의 직장상사이고, 선생님이고, 선배이고, 동료이다. 일상적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우리 주변에 흘러넘치고 있지만 지각되지 않던 것들이다. 그것들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문제될 것이 없었고, 너무나 미세해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MeToo폭로는 이제까지 지각불가능했던 것을 지각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다음, MeToo형 성폭력의 미시권력은 갑을관계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다. “그는 우리 세계의 왕이었다.” 일반적 성폭력이 동등한 지위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라면, MeToo형 성폭력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을 동반하지만, 후자의 경우 피해자의 심리적 굴복과 침묵이 동행한다. 사건으로서 MeToo는 물리적 억압 이전에 심리적 지배가 선행하고, 가해자의 폭력과 피해자의 복종이 함께한다.

 

직장 내 설문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의 71%가 조직 내부의 갑인 직장상사였고, 40%가 조직 자체의 갑인 고객이었다. 영화산업계에서도, 성폭력 가해자의 65%가 조직 내부의 갑인 감독이었고, 41%가 조직 자체의 갑인 기자였다. 이들이야말로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갑을관계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는 미시권력인 셈이다.

 

     MeToo형 성폭력을 생산하는 미시권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파시즘은 분자적인 흐름이 밀려가면서 형성되는 미시정치학적 개념이다. ······ 파시즘은 대중들 자신이 상호작용과 전염에 의해 번식되는 정치적 흐름이고, 대중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 전염되며 확장되는 양상으로 진행된다. ······ 농촌파시즘, 도시파시즘, 지역파시즘, 젊은 파시즘과 구-군인들의 파시즘, 우익파시즘과 좌익파시즘, 커플의-가족의-학교의-사무실의 파시즘. 이 각각의 파시즘은 미시적 검은 구멍에 의해 정의된다. _『천의 고원』, 들뢰즈, 가타리

 

권력형 성폭력의 뿌리는 갑을관계라는 미시권력이다. 권력형 성폭력은 ‘갑질의 성적인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갑질문화가 청산되지 않는 한 권력형 성폭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MeToo사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작은 권력이라도 손에 쥐어지면, 그 권력 밑에 있는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하려는 ‘갑질근성’이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을’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갑질, 갑질문화, 갑질근성은 갑을관계가 생산해내는 미시권력의 행태들이다. 따라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사건, 광고대행사 물컵사건, 공사현장의 욕설폭행사건 같은 대표적인 갑질사건은 물론, 백화점 VVIP고객이 종업원을 무릎 꿇리게 한 것이나 아파트 주민대표가 아파트 관리소장을 ‘종놈’ 취급한 사례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갑질 역시 MeToo폭력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제 우리는 ‘미시권력이 만들어내는 파시즘’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들뢰즈-가타리의 지적처럼, 파시즘은 거시권력 이전에 미시권력-일상 속의 권력과 공명한다. 특히 우리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그리고 미세한 조직관계에서부터 위계와 서열이 일상의 기본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나이, 서열, 신분 경력, 직급 등 위계와 서열에 따라 권력을 쥐게 되면, 타인의 이해를 착취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결국 우리는 일상을 지배하는 미시권력의 파시즘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4] MeToo형 폭력에 봉사하는 담론의 배치

 

 

     MeToo형 성폭력에 봉사하는 담론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나?     

 

[권력형 성폭력의 목격자]

당시에는 “내가 환각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주위에 검사들도 많았고, 법무부장관까지 있는 상황인데도 아무도 말리지도 않았고, 아는 척 하지도 않았다. _서지현 검사

당시 극단에서 이윤택감독의 별채인 ‘황토방’이라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성추행이 벌어졌다. 이를 목도한 선배도 있었지만, ‘최고의 연극집단’이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으로, 마치 집단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각자에게 일어난 일과 목격한 일을 모른 체하며 지냈다. _김보리

 

[권력형 성폭력의 동조자]

“이윤택이 안마를 원한다, 들어가라”며 등을 떠민 건 여자선배였다. 연희단거리패 김소희 대표가 이윤택의 성추행, 성폭행을 도왔다. 김소희 대표는 조력자처럼 후배를 초이스하고 안마를 권유했다. ······ 나에게 과일쟁반을 주면서 “이윤택 방에 안마하러 가라”고 했다. 내가 거부하자 가슴팍을 치면서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너만 희생하면 되는데 왜 그러냐”고 말했다. 아직까지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_연극배우 홍선주

남자 스탭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더니, 연출가와 저만 남았죠. 일부러 둘만 남겨둔 것이더라고요. _공연스탭 C

 

MeToo형 성폭력 담론은 가해자/피해자를 둘러싼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 시선은 성폭력 가해자의 폭력을 묵인하고, 그래서 가해자의 폭력은 은밀하기보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먼저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우월한 지위에 있어서, 자신의 권력이 타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스럽고 뻔뻔하기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해자는 그가 속한 세계의 왕이어서, 가해자의 폭력은 주변 시선들의 묵인과 동조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보고도 묵인하는 ‘목격자의 시선’이다.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 묵인 속에서, 공공연한 폭력을 모른 체하는 집단체면 속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당하는 폭력이 환각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성폭력의 자리를 만들어주거나, 성폭력을 권유하는 ‘동조자의 시선’이 있다. 이들은 성폭력의 직접적인 가담자이며, 폭력의 또다른 가해자이다. 영화산업계의 설문에 따르면, 46%가 성폭력을 목격했으며 58%가 피해자를 방관했다.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와 함께한 동조자가 73%에 이른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묵인하는 목격자의 시선, 권유하는 동조자의 시선이 ‘최고의 연극집단’이라는, ‘그 집단의 우두머리를 모신다’는 명목, ‘너만 희생하면 되는데’ 하는 권력형 성폭력에 봉사하는 담론을 만들어낸다. 미시권력의 파시즘이란 이런 시선의 배치 속에서 만들어지며, 사실 이런 배치가 미시권력의 파시즘 자체라고 해야 한다.

 

     MeToo형 성폭력에 봉사하는 담론이란 무엇인가?     

 

내가 성폭력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 자책감이 컸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 ······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검찰 내에서 검사 간에 성폭행까지 있으나, 문제삼는 여검사에게 ‘남자검사들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자주 봤다. _서지현 검사

성추행 폭로는, 변호사였을 때도 못했고, 국회의원이면서도 망설였다. 피해자들이 왜 긴 시간 동안 숨겨왔는지, 왜 지금에서야 용기를 내는지 이해가 필요하다. _이재정 국회의원

시도도 했지만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았다. 캐스팅에서 제외되거나, 정신이 이상하다는 공개적인 모욕을 들었다. _극단콩나물 대표 이재령

 

MeToo형 성폭력 담론은 피해자를 향해 쏟아지는 말들이다. 그 말들은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고, 그래서 성폭력의 폭로에 8년, 10년, 20년 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던 이유이다. 서지현 검사는 성추행 폭로가 그토록 오래 걸린 것은 우리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들었나?

 

가령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성차별적 담론을 그대로 반복하는데, ‘조신한’ 여학생, ‘듬직한’ 남학생 같은 수식어가 성별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교실의 급훈 역시 남학교가 ‘진리탐구, 문화창달 자기도야’ 같은 진취적이고 유능한 인물을 표방하는 반면, 여학교는 ‘순결, 성실, 근면’이나 ‘정숙, 신의 박애’ 또는 ‘고운 맘씨, 고운 얼굴, 고운 솜씨’ 같은 순종적이며 수동적 인물을 지향한다. 이처럼 여성들은 가정에서ㆍ학교에서ㆍ직장에서 즉 모든 생애에 걸쳐, ‘순결과 정숙’ 같은 말들을 미덕으로 강요받는다. 이러한 사회적 담론은 성폭력을 피해자 자신의 책임으로 몰고가 자신을 ‘꽃뱀, 정숙하지 못한 신체’로 인식하게 하고 ‘정숙하지 못한 신체’를 침묵하게 했다.

 

가해자 권력과 대중적 담론의 암묵적 협력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안으로 향하도록 했을 것이다. 영화산업계의 설문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한 이유로 ‘경력에 문제’(54%)를 넘어 ‘주위 분위기’(58%)를 들었다. 성폭력 폭로에 따르는 실제적 불이익(경력에 문제)보다, 소문과 시선(주위 분위기)이 두려웠던 것은, 성폭력 담론이 갖는 실제적 힘과 영향력을 보여준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오리엔탈리즘 담론’과 ‘동양의 침묵’의 관계에 대해 주목했다. 서양이 동양을 유린하는 가운데, 동양이 침묵했던 이면에는 오리엔탈리즘 담론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월한 서양, 열등한 동양’이라는 오리엔탈리즘 담론은,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열등한 신체’로서 동양을 침묵하게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벌써 26년에 이르지만,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까지 50년 동안 침묵 속에 있었다. ‘화냥년, 부끄러운 역사’라는 위안부 담론은, 피해자들을 민족의 수치로 만들었고 ‘수치스런 신체’를 50년간 침묵하게 했다. 대한광복회, 독립유공자들은 위안부를 민족의 수치로 간주하고, 광복의 역사와 독립의 역사에서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담론은 살아움직이는 구성체로서 현실을 창조해낸다. 문제는 이들 신체로 하여금 목소리를 앗아가고 침묵하게 했던 ‘담론의 배치’이다. 이제 이들이 침묵을 깨고 말하게 된 것은 ‘담론의 배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존재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지배담론과 대결하여 대항담론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담론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권력의지’가 되어야 한다. 가해자의 폭력을 묵인하고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담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5] MeToo를 넘어, 새로운 권력감각을 위하여

 

 

MeToo운동은 권력형 성폭력을 생산하는 미시권력과 담론의 배치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미시권력이 만들어내는 파시즘과 미시권력에 봉사하는 담론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이것은 MeToo운동이 제기한 권력문제와 대결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권력감각을 사유하는 것이 될 것이다.

 

     미시권력이 만들어내는 파시즘을 넘어     

 

미시권력의 일반형태인 갑을관계를 생각하면, 이것은 한명의 갑을 중심으로 다수의 을이 갑질당하는 구조라기보다, 갑과 을의 피라미드 배치 속에서 나는 갑인 동시에 을인 존재일 것이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갑질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갑질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갑질을 당한 나(을이면서 동시에 갑)는 다른 누구에게 갑질을 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MeToo폭력이 근절되지 않는다면, 권력형 성폭력의 가해자/피해자의 대립구조를 해체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MeToo폭력의 뿌리로 지목된 갑을관계를 생각하면, 갑질을 단죄하는 것을 넘어 갑을관계 자체를 해체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미시권력이 만들어내는 파시즘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모든 권력은 일방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미시권력의 파시즘에는 가해자의 폭력에 복종하는 피해자의 침묵이 존재하며, 피해자가 자신의 권력의지를 드러낼 때 가해자의 폭력은 무력화된다. 와인스타인 외에도, 안희정 충남지사, 이윤택 감독, 고은 시인 같은 자기 세계의 제왕들이 한순간에 몰락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5년 전 10년 전에 있었던 사소한 실수’때문이었고 ‘티끌보다 하찮은 존재’에 의해서였다.

 

MeToo폭로는 우리 사회에 ‘공공연히 은폐된 폭력’을 드러내는 작업이며, 우리 내면에 ‘꿈틀거리는 추악한 욕망’과 대면하는 사건이다. 미시권력이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이라면, 파시즘의 주체는 우리 자신일 것이다. 그것은 미시권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별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결국 문제는 “내 안의 파시즘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안의 (갑)가해자성과 내 안의 (을)피해자성을 해체하는 문제이다. 즉 위계와 서열을 이용하여 타인의 이해를 착취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파시즘적 폭력에, 가해자로서 동시에 피해자로서 대항해야 한다. 폭력의 공공연한 가해자성과 동시에 폭력에 침묵하는 피해자성 역시 넘어서야 한다. 권력형 성폭력을 멈추게 하려면, ‘내 안의 갑질근성’을 지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 안의 피해자성’이 극복되어야 한다!

 

     미시권력에 봉사하는 지배담론을 넘어     

 

성폭력 피해자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으로 MeToo담론을 넘어설 수 없다면, 권력형 성폭력의 ‘가해자/피해자’의 담론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가해자/피해자’의 담론구조는 한편으로는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의 형태로, 다른 한편 ‘가해자는 강자, 피해자는 약자’의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의 담론구조는 MeToo담론의 일반형태이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 담론은, 권력형 성폭력이 성의 문제 이전에 권력의 문제라는 것을 약화시킨다. MeToo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나 버크는 MeToo운동은 여성운동이 아니며, 남성들은 적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남녀대립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한다. “MeToo는 성폭력을 겪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니다. 많은 희생자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MeToo운동의 주요동력이지만, 케빈 스페이시를 고발한 소년이나, 성폭력에 직면한 수백만 남성들을 배제할 수 없다. 남성들은 적이 아니다! 남녀 간의 대립을 불러와서는 안된다.”

 

다음, ‘가해자는 강자, 피해자는 약자’의 담론구조는 MeToo담론의 한계지점이다. 더욱이 피해자성 혹은 약자성이 MeToo폭로자를 정당하게 만드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피해자성과 약자성을 강조하는 것은, MeToo폭로자를 보호받아야 할 신체로 규정하고 MeToo운동의 주체로 서는 것을 가로막는다. MeToo폭로자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며, ‘억울함의 호소자’를 넘어 이제 ‘잘못의 폭로자’이다.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에 있는 동안 그들은 보호받아야 할 약자였으나, MeToo폭로자의 자리에 서는 순간 이들은 자신의 변화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강자가 된다. 타라나 버크 역시, “우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신중해야 하며, 실명과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해야 한다”고 MeToo폭로자의 태도를 말한다.

 

     매순간 나를 몰락시킬 타자를 기다리며!     

 

MeToo폭로자와 타자성을 바라보는 2가지 관점이 있다.

먼저, 권력형 성폭력에 반대하여 남성/여성의 성평등이나 가해자/피해자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 차별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적극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것이 MeToo폭로자를 약자로서 동정ㆍ연민하거나 혹은 남성/여성의 현재 위계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된다. 다음은, MeToo폭로자를 나와 다른 ‘차이의 담지자’로서, 나를 넘어서게 하는 ‘타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차별에 저항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야말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며 우리에게 권력에 대한 다른 감각을 생성하게 하는 존재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MeToo폭로자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2가지 규정이 있다.

이는 타자성에 대한 2가지 관점과 대칭적이며, 지배권력에 의한 2중적 규정성과 연결된다. 한편 자신을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착취받는 ‘약자’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한편 자신을 MeToo폭로자로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타자’로 보는 것이다. MeToo폭로자 역시 무엇을 자신의 것으로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기존의 세계를 부정하고 폭력으로부터의 반동성에 머무를 것인가, 새로운 세계를 생성하는 긍정과 능동성의 주체가 될 것인가!

 

MeToo폭로자를 바라보는 2가지 관점 혹은 규정 가운데, 전자가 시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시대성에 기반하고 있다면, 후자는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비시대성으로 넘어서고 있다. 전자의 경우 MeToo폭로자의 타자성이 부정되는 반면, 후자는 MeToo폭로자의 타자성에 대한 완전한 긍정이다. 우리가 그들(타자)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타자)이 우리를 구원한다. 매순간 나를 몰락시키고 나를 넘어서게 하는 타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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