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_철학.예술 :: 철학과 예술 분야의 칼럼입니다!


-Q

우선 지속적 논의를 위해서는 매우 적절치 않은 공간과 저의 개인 일정에 비할 때 방식이 다소 장황하고 쟁점 없는 반복에 논점 간 긴밀성도 그리 높지는 않다는 점 때문에 계속 답변은 어렵겠다는 말씀 드리는 점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1a. "첫 번째는 역사적인 맥락이 없는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이것이 바로 저의 첫 댓 5번2~4절 논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서양철학사를 말씀드린 것이고, 그 안에서의 니체를 말씀드린 것이며, 동서양사의 차이도 고려할 것을 제안드린 것입니다.

 

1b. "니체 스스로가 플라톤 철학을 이야기했을 때 크게 세가지의 흐름속에서 플라톤 철학의 역사적인 맥락을 이야기 했다고 봅니다.

“그는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학파,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하나로 통합했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적 가르침에서 감각적 인식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해, 사고를 통한 인식은 피타고라스에 의해, 그리고 실제적.정치적 인식(즉 윤리)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니체전집1/프리드리히 니체 지음/김기선 옮김/책세상 참조)" 

  : 소크라테스 철학의 영향만 절대화된 대중적 통념과 달리 우수한 고전학자로서 니체의 선찰이 돋보였던 부분이며 사상사적으로도 이미 검증되고 이젠 거의 상식화된 부분입니다. 다만, 플라톤은 일찍부터 다양한 소피즘들과의 대결을 통해, 그리고 스승의 사후 훨씬 더 많은 지역을 떠돌며 다양한 학파들에 유학하여 당대 주요 사상들에 거의 다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종합했습니다.

 

1c. "저는 니체 철학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 철학 그리고 고르기아스와 프로타고라스로 대표되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지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  이것도 바로 제 1댓5번2~3절 주장과 일치합니다.

 

1d.

1d1. "특히 '니체의 계승자' 라고 평가되고 있는 들뢰즈는 플라톤 스스로가 플라톤주의를 전복함으로써 소피스트의 사상을 발견했다고 그의 책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들뢰즈 지음/박정태 엮고 옮김/이학사에서 참조)"

1d2. "저는 이후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플라톤이 헤라클레이토스나 소피스트들의 사상을 왜 계승하지 못하고 이데아로 대표되는 객관적 실체론의 철학으로 발전해 나갔는지? 궁금하고 앞으로의 연구과제일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부분은 들뢰즈와 플라톤을 오해하고 계신데, 먼저 들뢰즈의 논지는 플라톤이 당대 개별 사상가들과의 치열한 대결과정에서 자기 사상을 정립하면서, 개별자들의 종합을 통해 그 전도 형태로서의 '소피즘'이란 개념범주를 처음으로 발명해 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자연히 1d2의 이유도 해결될 텐데, 당대는 소피스트들의 영향으로 지금보다도 훨씬 더한 각종 궤변, 가짜 뉴스와 선동들이 창궐하여 극심한 사회 혼란으로 민주정이 완전히 타락하면서 붕괴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플라톤은 나름의 해결책으로 그들에의 동조와 야합 대신 치열한 대결을 택하고 자신의 철학을 그러한 방향으로 정립해 나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e. "제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께서 마치 니체가 "근대까지의 '모든' 철학은 다 플라톤주의이고 그것은 곧 악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말 한것에 대해서입니다."

    :  굳이 긴 설명까진 필요없을 것 같고 다음의 인용으로 답변을 갈음하겠습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본능과 이성에 대해 "이는 먼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게서 나타나 그리스도교보다 이미 오래전에 정신을 분열시킨 오래된 도덕적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플라톤은 전력을 기울여 이성과 본능은 자연히 하나의 목적을, 선을, 신을 향하는 것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플라톤 이래의 모든 신학자와 철학자는 같은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은 정신(본질)과 육체(현상)를 분리하고 전자를 후자의 절대 우위에 둔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전통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니체는 이 같은 플라톤주의가 '신의 죽음' 이후에도 면면히 살아오면서 현대성에도 그 '흉한 얼굴'을 드리우고 있다고 일갈했다."

 

1f. "제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오히려 중요한 것은 역사적 맥락속에서 어떤 부분을 계승하고 어떤 부분을 지양함으로써 니체가 살고 있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는지에 대해서 고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a와도 동일한 논지이자 그 실질로, 이것이 바로 제가 철학사와 동서양 차의 문제를 제기한 실천적 핵심 사유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심지어 플라톤 철학도 무조건 악마화시킬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일정 정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온달 선생님이 2b에서 제기하신 극단적인 이분법의 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태도입니다.)

 

1g. "선생님도 알다시피 니체 당대의 현실(근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어떤 면에서는 닮아 있습니다. 니체 철학의 목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자면 근대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망가진 개인적 삶의 복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극단적인 지식이나 진리의 추구로 증대된 허무주의의 극단에서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것인가?입니다. 이는 극단적인 진리와 지식의 추구로 인해 과학과 기술로 대표되는 지식을 철학과 예술로 제어할수 있는가?라는 니체 자신의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 결국 이 부분이 역사 및 시대와 현실 인식에 지둔하고 실천적 문제의식이 없으며 허영에 들떠 사상가의 명망에만 관심 있는 자들이나 범박한 통상적 니체주의자들의 문제들이 집약되는 시작점이라 생각됩니다. 정말 지금 현재 이 시점이 니체 당대의 현실과 닮아 있고 극단적인 진리와 지식의 추구로 인해 고통받는 시기입니까??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안타깝지만 이미 그런 시절은 지나간 지 오래이고 지금은 벌써 Post-truth의 시대여서 누구든 자신의 관점과 입맛에 맞는 지식만 골라 믿고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도 있으며 어떤 궤변도 끝까지 고집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요????

이것이 바로 제가 역사적,실천적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그토록 강조한 이유이고 충분히 강조했다고 생각되어 더이상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부족하다면 죄송하지만 1댓5번4절을 다시 한번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2a. 이원론↔이분법???

이 문단은 상대 논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 하고 매우 궁박한 논리로 사적 재정의와 반대측 논거까지 갖다 쓰며 동어반복만을 행하므로 굳이 답변을 하기 좀 그렇습니다만, 일단 이진우 선생님 본인과 104 내 다른 니체주의자 분들이 '이원론'과 '이분법'을 동의어로 혼용하는 사례들을 적시합니다.

"이진우는 <'광장의 파시즘'을 경계한다>라는 제목의 10월 6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노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낙인찍는 운동권 출신들을 비판하면서 "괴물과 싸우다 보면 스스로 괴물이 된다는 니체의 말처럼 이분법에 저항하던 사람들이 선악의 이원론에 갇혀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생각이 다르다고 적대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이진우의 주장대로 당연히 이원론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수세력의 진보비판에는 이미 그 내부에 은폐된 이분법적 사고가 존재한다."

"선악 이원론은 멀리 고대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서양 형이상학에서 이원론이 굳어진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면서 완성된 관념론 철학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은 '로고스(logos)적 질서'를 기본 토대로 하고 있다. 로고스적 질서는 남자와 여자, 선과 악, 해와 달, 이성과 비이성, 정상과 비정상 등의 이항대립과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경계를 설정한 뒤 그 둘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를 대입해왔다. 이런 근대의 로고스적 질서와 흐름에 정식으로 반기를 든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니체는 선악 이원론에 포집된 본능과 이성의 대립에 대해 그 기원을 소크라테스에 두고 있다."

"플라톤 이후 서양철학은 정신(본질)과 육체(현상)를 분리하고 전자를 후자의 절대 우위에 둔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전통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2b. 조국 대전

그러나 이 문제만은 원래 논의들의 출발 계기였고, 이에 대한 104 입장의 핵심논거로 니체주의가 동원되면서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한 가지만 첨언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극단적인 이분법의 예로 저는 조국 사태의 예를 들고 싶은데요.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서 왜 싸우게 되었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쪽 계열에만 절대적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극단적으로 대립시키는 사상이 현실화된 것이 조국 사태가 아닌지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외부에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를 설정해 놓고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니체가 말한 도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은 이분법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의 철학적 사유의 부재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분법적인 사태로 인식한다면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여기서 특히 비판의 주 대상에 해당하는 것은 소위 '진영논리'로 무조건적 조국수호를 주장해서 반조국 진보세력과 보수세력 양 측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은 서초동계이며, 바로 이 논리에 따라 조국을 옹호하고자 했었기 때문에 여기 선생님(들)도 사회 각계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비판과 재옹호 논거로 갑자기 니체를 동원하면서 비판이 재점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온달 선생님은 반드시 104 내 다른 선생님들과의 논리적 충돌을 먼저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 조국 사태도 단순히 보편 진리의 추구 때문이 아니라 정반대로 진리의 개인화, 다양화 때문에 폭발한 것으로 봅니다.

시한이 없고 실천 문제가 아니며, 온전히 개인 영역에 관한 것이라면 다양한 관점이나 이견이 많을수록 좋겠지만, 단지 진리나 인식에 관한 게 아니라 끊임 없이 밀려 오는 촉박한 실천적 결정 및 결단의 문제들과 특히 개인을 완전히 초월하는 공통 문제들 때문에, 어차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 원칙이나 공통 진리란 아예 없다고 상정됨으로써 어떠한 궤변도 끝없이 고집할 수 있고 그래서 종국적으로 어떤 합의도 불가능해진 이 Post-truth 시대, 관점 및 진리의 다양성과 이견들의 충돌은 결국 그 어떤 것도 언어나 논리 같은 대화를 통해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언제나 곧바로 세 대결과 실력 행사로 치달아 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옳은 의견을 가진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의 의견이 옳은 것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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