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집 두리반, 다시 문 엽니다
“오랫동안 힘들었는데 해결돼서 기뻐요. 여러 사람이 도와줘서 이런 날이 온 것 같아요.”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돼온 홍익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 주인 안종녀씨(53)는 끝내 눈물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날만은 분노가 아닌 감격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두 리반의 투쟁이 시작된 지 531일째인 8일 정오 서울 마포구청에서 두리반 대책위원회와 시행사 남전DNC가 ‘두리반 철거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양측 대표와 마포구·마포경찰서 관계자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양측은 ‘두리반이 기존 상권과 유사한 곳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두리반은 홍대 인근에서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작은 용산’의 되찾은 웃음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강제 철거로 시작된 홍대앞 칼국수집 ‘두리반’ 사태가 531일 만에 해결됐다. 8일 주인 안종녀씨(오른쪽)와 유채림씨 부부가 건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두리반은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강제철거를 당했다. 2005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안씨에게 시행사가 제시한 이주비는 300만원. 새로운 곳에서 장사를 하기는커녕 생계를 이어가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이곳은 공영 재개발지역이 아닌 민간사업자가 주관하는 곳이어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거리로 내몰린 안씨는 다음날 남편 유채림씨(51)와 함께 두리반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후 두리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농성장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각종 음악회와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열렸고 촛불예배도 이어졌다. ‘막개발’에 저항하는 예술인들의 공연은 지역주민들을 불러 모았고,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두리반에 들어오던 전기가 끊기기도 했지만 두리반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더 늘었다. 두리반은 ‘작은 용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태가 해결되면서 두리반 사건이 상가세입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철거민들을 법률적으로 도와온 김남근 변호사는 “그동안에는 상가세입자들의 주거권을 무시하고 철거를 강행하는 것이 관행이었다”면서 “공동체 속의 주거권이나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눔과 미래’ 이주원 사무국장은 “세입자들 개인이 거대 건설자본과 대항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세입자가 주민들이나 지역사회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재건축 상가세입자들도 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보상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입력 : 2011-06-08 21:36:31ㅣ수정 : 2011-06-08 23:57:57
식당 ‘두리반’의 여주인 안종녀(53)씨와 소설가인 남편 유채림(51)씨 부부는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뜨리고야 말았다. 2009년 12월24일, 철거용역들이 들이닥치고 농성에 들어간 지 531일 만에 흘리는 눈물이었다.
안씨 부부와 두리반대책위원회는 8일 서울 마포구 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와 두리반대책위가 협상을 통해 홍익대 인근에 식당을 다시 열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재개발 시행사와 안씨는 조인식을 열고 “주변에 식당을 여는 데 시행사가 금액을 지원하고, 둘 사이의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한다”는 합의서에 서명을 했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두리반은 그동안 ‘작은 용산’으로 불려왔다. 재개발이 시작되고 중소상인들이 제대로 된 이주대책과 보상 없이 쫓겨날 처지에 몰린 두리반의 상황이 용산 참사 당시와 같았기 때문이다. 두리반 농성에 힘을 보태온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두리반 문제 해결은 도시 철거민들에게 새로운 역사이자 중요한 교훈”이라고 평가했다.
눈가가 젖어 있던 안씨는 함께 도와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두리반은 승리를 했지만 잘못된 개발 악법이 바뀐 것도 아니고 아직도 곳곳에서 폭력에 노출되고 쫓겨나는 철거민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531일의 농성 기간에 시민단체 활동가들 외에도 문화예술인, 10대 청소년들, 홍대 주변 인디음악가들이 영화제와 음악회 등을 통해 두리반 철거민들에게 힘을 보탰다.
인디음악가 단편선(25)씨는 “우리 같은 인디음악가들도 두리반과 철거민들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데 공감했다”며 “두리반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사회구성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씨 부부는 두리반에서 한달 동안 예정된 행사를 치르고 건물을 비워준 뒤 홍대 주변에 적당한 곳을 찾아 식당을 다시 열 예정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두리반은 어제 시행사와 합의를 하고 531일간의 지루하고 힘겨운 싸움을 마감했다. 시행사는 홍익대 인근에 두리반을 다시 열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고, 양측은 1년반 동안 민·형사상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철거 세입자들이 빈손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던 관행에 비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두리반은 가난한 가장만 쳐다볼 수 없던 소설가의 아내가 ‘네 식구의 목마름을 해결하려 판 우물’이라고 한다. 유씨 부부는 국숫집을 다시 열도록 해달라는 절실한 싸움을 벌여 그들의 우물을 빼앗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재개발 철거민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보상의 선례도 만들어냈다.
두리반이 제2의 용산이란 비극적 결말을 피할 수 있었던 힘은 연대였다. 용산 참사가 뿔뿔이 흩어졌던 시민을 깨어나게 했다면 두리반은 깨어 있는 시민들을 모여들게 했다. 1년반 동안 두리반은 국숫집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두리반에선 요일마다 알록달록한 싸움이 벌어졌다. ‘칼국수 음악회’ ‘불킨 낭독회’ 등의 문화행사가 이어지며 예술인과 종교인, 주민과 청년들이 막개발에 맞서는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탰다. 철거민에게 가해진 사회적 불의를 자기의 일처럼 아파하며 어깨를 나란히했던 시민들이 위태롭기 짝이 없던 ‘작은 용산’ 두리반을 지키며 민주주의의 배움터로 만든 것이다.
연대의 힘으로 ‘작은 용산’의 악몽을 떨쳐낸 두리반은 이제 ‘네 식구의 우물’에서 ‘시민의 우물’로 거듭났다. 전기가 끊긴 채 겨울을 났어도 두리반에 연대의 온기가 끊긴 적은 없다고 한다. 두리반의 531일은 우리 사회에 연대와 배려의 우물이 마르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줬다. 연대의 소중함을 보여준 두리반은 희망이란 실천의 결과라는 사실을 거듭 일깨워주고 있다.
입력 : 2011-06-08 21:46:02ㅣ수정 : 2011-06-08 21:46:02
우아... 승리하면 투쟁한 사람들에게 칼국수 맛있게 끓여 주시겠다는 약속을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