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9조 마당 참여를 위한
서예반 부채에 적어넣을 시구들을
김시종 선생 시집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짧아야 하고, 들고 다니고 싶을 문구여야 하고
시적인 맛이 있어야 한다는 걸 기준으로 삼다보니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만
우리가 쓰기엔 충분할 거 같습니다.
적절한 걸 몇 개 골라 집중 제작하거나
모두다 써서 제작하거나 하는 방법이 있을 듯해요.
일단 여기 적어둡니다.
꿈 같은 이야기여, 끝내 버리지 못한(「꿈 같은 이야기」, 지평선)
생각은 이토록 커다란데, 표는 이렇게 작다니(「개표」)
지구는 공기를 빼앗겨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악몽」)
한정된 세상에 목소리마저 내지 못하는 존재여(「먼 날」)
바람은 바다의 깊은 한숨에서 새어나온다(니이가타)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바래지는 시간 속」, 광주시편)
때로 말은 입을 다물고 색을 낼 때가 있다(색을 낸다)(「입 다문 말」, 광주시편)
얼룩은 흔적이 압축된 신념(「얼룩」, 화석의 여름)
얼룩은 규범에 들러붙은 이단(異端)(「얼룩」)
돌인들 마음속에선 꿈을 꾼다(「화석의 여름」)
여름날 터져 나온 저 아우성(「화석의 여름」)
세월은 우주의 구멍에서 새어나온 바람자국(「자문」, 화석의 여름)
도망치는 계절에 이 시름 두들기고(「노래 또 하나」, 이카이노 시집)
나이는 분명 꿈이 말라버릴 때 든다(나이는 꿈이 말라버릴 때 드나니)(「나날의 깊이에서(1)」, 이카이노시집)
돌연 맞은 열풍에
그만 눈이 아찔해지고 만 밤의 사내다.
내 망막에는 그때 이후 새가 깃들었다.(「그림자에 그늘지다」, 이카이노)
-->돌연 맞은 회천(回天)의 열풍, 내 망막에는 새가 깃들고
벌거벗은 뿌리를 거꾸로 치켜들고, 수선대는 바람이 건너는 희미한 어둠을 쳐다보는 것이, 설마 그녀를 싸안은 고향의 떨림일 줄 아직 누구도 알 턱이 없으리라.
-->고향, 수선대는 바람이 건너는 희미한 어둠(「아침까지의 얼굴」, 이카이노)
기억의 바닥, 가라앉은 녹슨 시간의 손짓(「녹스는 풍경」 변형, 잃어버린 계절)
밤이 깊어가는 것은 별들도 감회에 젖기 때문(「여름 그 후」)
눈을 감아야 보이는 새는 기억을 쪼아 먹으며 거기 있고(「4월이여, 먼 날이여」)
소생하는 계절에 올 것이 오지 않으니(「봄에 오지 않게 된 것들」)
한자로 된 글자를 한자로 하여 한글, 한자를 섞어서 쓰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