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박소라입니다. 수유너머에서 세미나를 시작한지는 1년 반 정도 됩니다.
처음 저에게 수유너머는 다소 낯선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에 세미나에만 왔다 가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 좋아졌고, 지금은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친한 사람들도 생겼고, 제 친구들을 이곳에 데려 오기도 하고요.
저는 수학 교사입니다. 학생들에게 잔소리하고 혼내는 일을 많이 하죠. 그 중 많은 경우에는 학생과 거리두기를 하고 혼을 냅니다. 제 삶과 분리시키고 그들을 대상화시킵니다. 그래야 제가 덜 아프거든요. 간혹 반 아이들이 제 삶과 얽혀 들어가는 지점이 생기면, 그래서 그 아이가 제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리면, 그때는 잔소리하거나 혼을 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상상도 못했던 나쁜 일을 저지르면 화가 나기 이전에 제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먼저 오죠.
회원분들의 마음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요. 탈퇴하신 분들도, 남아계신 분들도... 왜냐하면 게시판의 글만 읽고 있는 저도 이렇게 상실감이 크고 마음이 아픈데 그분들은 더하시겠죠. 이번 일이 회원들만의 회의 자리에서 다루어진 것은 처음에 비공개로 진행되었기 때문 인거죠. 그렇다고 해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비회원이라고 해도 우리 모두 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비회원’이라는 익명으로 이 공간을 대상화시켜서 비난하는 일은 약간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익명으로 욕하는 거 필요하면 해야죠. 그런데 지금 이 공간에서는 아닌 것 같아서요.
성폭력사안에 대해 결과보고서를 보니 감수성이 떨어지는 회원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게시판의 글들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 당황도 했구요. 이게 현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요. 그런데 저는 다른 비회원들분처럼 의도치않게 한 발짝 떨어져 있어서인지 에너지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직은 이 공간에 등 돌리거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였어요. 가족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떠나신 분들의 고통이 가족을 잃은 슬픔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제 글을 읽고 개인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거에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떠나버린 분들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 하실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떠나신 분들 및 다수의 회원 분들과 직접 얘기해보지 못했어요. 그 긴 과정을 알지 못해요. 이런 상태에서, 게시판만 읽은 제가, 심지어 저만의 선입견을 가지고 읽었을 텐데 그런 제가 뭔가를 판단하기가 어려워요. 어쩌면 섣불리 재단하고 상상해서 만든 오해만 갖게 되겠죠.
저는 수유너머라는 곳이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 같은 사람은 아무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할 만한 정말 그런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들 수유너머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비회원의 익명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들은 수유너머에 어떤 상을 씌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떠나신 분들이 남기신 글들 읽으며 가슴에 새기고(앞으로도 계속 남겨주시길 바래요), 우리 모두 세미나 할 때, 강의 들을 때 이 상황에 대해 나부터 먼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현재 게시판은 어떤 글을 올려도 읽는 사람 중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그래서 글 쓴 사람을 공격하는 그런 공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글 이라는 건 자신만의 안경을 쓰고 읽게 되니까요. 이 글에도 누군가는 분노하시겠지요? 세미나때라도 들르셔서 같이 얘기하시면 안될까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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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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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좋은 의도로 쓰신 글인 것은 압니다만
이렇게 누구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한 채 먼 거리에서, 사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음'에도 누구에게나 좋길 바라는 착한 글을 쓰셨으니...직접 대화하기는 어렵겠네요.
공감하기엔 정보가 부족하여 판단하기 어려우시겠지요. 대화로 정보를 얻고 싶으신 건가요?
저는 피해자 분과 그 지지자 분과 이 공간에 폐가 되지 않도록 비회원의 이름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들이 목소리를 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라님이 보기엔 뭘 알지도 못하면서 쓴 글로 보였을 수 있겠지요.
친구도 데리고 올 만큼 가족같은 공간에 '성폭력', 사건인지 아닌지도 모를 '사건', '피해자', '가해자'...라는 험악한 단어들...거기에 당당하지 못하게도 익명이라니 속상하시겠지요.
그러나 이름을 걸고 쓰셨는데 의견도 없고, 주관도 느껴지지 않아서 제가 더 속상합니다.
이 곳은 인문학, 철학...생각을 다루는 곳이 아닙니까? 저는 이름없이 쓴 글에도 생각을 느끼고 공감하고, 때로는 배웁니다.
지금 이 공간에 어떤 상을 기대하고 계신 건 소라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한 추행이 있었으면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셨을까요.
공감해 주셨을까요. 왜 어떤 기대를 하고 싸워낸 걸까요.
저도 수유너머가 대단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또한 소라님만큼 간절한 마음에서 댓글을 달았답니다.
소라님의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합니다.
혹시 내가 단 댓글로 인해 미투의 본질이 흐려지고 갈등만 증폭되는 거 아닐까 신경쓰느라 잠도 설쳤습니다.
처음 댓글을 달 때부터 누군가 나타나 무책임한 비난이라 비판하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분이 소라님이라 다행입니다.
비회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욕하는 거 아니냐, 자기검열도 했습니다. 저야말로 제 자신이 야비해지는 거 싫거든요.
비회원으로 댓글 다신 분들은 대체로 저와 같았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비회원이라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길 선택했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여지가 생기니까요. 건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선 제3자의 시각 필요하니까요.
대신 제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단어 하나 조사 하나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댓글 두 줄 다느라 한시간을 소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마 소라님만큼도 이 사건을 모를 겁니다. 올라온 글들과 피해자 글을 보고 제 느낌대로 판단했습니다.
그 누가 진실을 알겠습니까. 진실은 이렇게 논쟁을 통해 찾아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완벽하게 몰라도 판단내릴 수 있고 목소리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하면서 알아갑니다. 애초 선입견없는 투명한 시각은 불가능합니다. 고정된 실체라는 건 없으니까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따져보려고 노력합니다.
대상화.... 당연히 합니다. 사물을 대상화 하지 않고 동일시 하고 자기화 하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너는 나다. 나의 시각이 너의 시각이다. 거리가 없으면 개체도 없습니다.
어떻게 대상화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노리개로 대상화하느냐, 돈벌이로 대상화하느냐.....
저에게 수유는 대상입니다. 80% 좋은 이미지의 대상입니다.
소중한 대상입니다. 그래서 수유가 건강하게 만수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간 쪼개가며 댓글질한 거랍니다.
그러나 비회원이기에 거기까지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갭을 무책임하다 하시면 어쩔 수 없네요.
이 불가피성을 어쩌겠습니까. 어느 정도는 서로가 감수해야합니다.
이것마저 피해라 여기면 우린 정체합니다. 딱딱해지다가 결국 자연붕괴합니다.
바람이 불어야 배는 앞으로 나갑니다. 파도가 치는 걸 불안하게만 보지 마시고 그안의 치열한 고민들도 보아주시길....
여유를 갖고 보아주시길.... 망나니 칼춤 추려고 대기하는 자들이 아니니.... 그 정도는 믿어주시길....
도덕성은 파열 후에 한 걸음 성장합니다. 그 효과를 함께 지켜봅시다.
그리고 저는
이 일에 관한한 계속 비회원의 익명 속에 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