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주방, 까페, 서점, 복사 등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게시판입니다!


소소하지 않은 우리의 일상에 관하여

이지은 2018.04.09 02:10 조회 수 : 1409

안녕하십니까. 얼마전 수유너머104 회원을 탈퇴한 이지은입니다.

안부도 여쭙고, 어지러운 제 마음도 말씀드리고, 부끄러운 반성도 하고 싶습니다만, 어렵기도 하고 필요치 않은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매우 소극적인 회원이었으나, 수유너머104가 외부성과의 접촉을 추구하는 공동체라는 믿음 하에 글을 씁니다. 

 

1. '성폭력'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의 도출 과정

1)'상습성'을 논할 수 있는 부분은 '피해자'의 정식 증언/고발이 없었으므로 논외로 하며, '카더라 통신'은 믿을 수 없으므로 제외하고, 2) 오직 피해자가 증언한 부분/가해자의 소명에 대해서만 판단하되, 3)제명 혹은 5년 정지라는 '가혹한 처벌(혹은 폭력)'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성폭력이 아닐 수 있다는 다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명백하게 사건 축소입니다. 더하여 '징계'는 사안을 판단하는 근거가 아니라 사후적인 조치입니다. 

 

2. 피해자 요구 수용을 넘어서

최초 보고서에서 구체적 사안을 적시함으로써 야기되는 '객관성' 문제와 2차 가해 문제에 대한 빠른 사과를 수유너머 104의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젠더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짐을 인지하고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환영합니다.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앞으로 변화하는 수유너머를 지켜봐 달라는 회원님의 말씀에도 기대를 겁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믿으며,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있다는 고백도 믿습니다. 이 사과가 피해자에게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이제 피해자의 요구 수용을 넘어, 수유너머 104 스스로에 대한 요구를 보여 줄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개인과 개인의 문제이자 동시에 수유너머104라는 공동체,  내부의 위계관계, 더불어  여기에 작용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제 조건들과 연동된 것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진공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땅 위에 초월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피해자의 요구 수용'이라는 말이 가진 전제를 의심합니다. 피해자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것에는, 피해자, 가해자 특정 개인의 문제라는 전제가 엿보입니다. 회원을 대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할 것이며, 젠더 감수성에 대해 고민하겠다는 약속은 스스로에 대한 요구이길 바랍니다.

1)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되는 게시물이나 댓글에 대해 수유너머104 스스로 대응해 주는 것으로부터 그 실천을 시작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2) 피해자 요구와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요구가 앞으로 이 문제를 논하는 근거가 되길 바랍니다. 피해자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가 아니라 스스로 요청되는 책임에 대해서 모든 실천을 다하고 있는지를 근거 삼아 말씀해 주십시오.  

 

3.  그 동안의 모든 선언에 관해서

"내가 백남기다" , "내가 노동자다" ... 수많은 선언들. 그것이 단지 은유일 뿐이라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누구도 "내가  피해자다" 혹은 "내가 가해자다"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피해자이므로, 혹은 나도 부지불식간에 가해자였을 수 있으므로, 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저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번엔 은유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나는 피해자이며, 나는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당사자가 되었을 때, 더이상 선언이 은유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었을 때, 그것을 마주한 우리는 초라하고, 비겁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선언이 단지 은유였음을 폭로했습니다. 여기에 근본적인 절망이 있습니다. 

제 나름 절망에서 헤쳐나가보겠습니다.

남으신 선생님들, 각자의 절망에서 반드시 헤쳐나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연구실에서 뵙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굴은 타인에 대한 반응이며 나의 표현이라는 그말이, 이렇게까지 실감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은유적 거리를 좁혀나간 지점에서 다시 만났을 때 멋쩍게나마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절망에서 헤쳐나가는 모습, 자신의 요구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 전해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이지은 올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20 주방사용방식을 위한 제안 [1] hyobin 2020.02.17 740
공지 [공간] 사람과 공간의 좋은 관계를 위한 제안 oracle 2019.02.04 1108
공지 [카페 소소] 이용은 이렇게 해요~! 효영 2017.07.11 1386
공지 [카페 소소] 소개 효영 2017.03.19 1521
553 초여름 텃밭 풍경 [2] file menestrello 2018.05.24 375
552 [카페 소소] 뒤늦은 선물 목록 file 구르는 돌멩이 2018.05.21 272
551 180504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관해 ​: 수유너머104 사건을 중심으로] 강연 후기 [3] file 누혜 2018.05.15 3918
550 공동체 평등 수칙 만들기 설문조사 안내 [5] file sora 2018.05.15 517
549 '#MeToo운동'과 함께하는 학문공동체의 역할 토론회 file b회원 2018.05.11 451
548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비판의 오용 ​: 수유너머104 사건을 중심으로(권김현영) - 토론문 [1] choonghan 2018.05.09 874
547 반성폭력 가이드 라인 [5] 생강 2018.05.07 1255
546 몇 가지 선물들 file menestrello 2018.05.06 391
545 [신청마감]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비판의 오용 ​: 수유너머104 사건을 중심으로(권김현영) [27] file 강연기획팀 2018.04.29 1851
544 누구의 것도 아닌 공동체 [8] 생강 2018.04.26 1166
543 수유너머104 입장문에 대한 탈퇴회원들의 목소리 [16] 탈퇴회원 2018.04.25 1844
542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유너머104 입장문 [26] file 수유너머104 2018.04.23 5765
541 보어 선생님께 답글 드립니다. - 탈퇴회원 [1] 동동 2018.04.19 744
540 알렉스 선생님께 드리는 글 - 탈퇴회원 [5] 동동 2018.04.19 1083
539 왜 정의는, 공동체는 이제부터 시작인가? [15] wonderland 2018.04.17 1263
538 ㅎㅎ선생님께 드리는 한 가지 질문 [8] choonghan 2018.04.16 1496
537 선생님께 [3] 해든바위 2018.04.14 864
536 코뮨의 우정 [19] ㅎㅎ 2018.04.13 4771
535 정말 제가 주제 넘는 참견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여러분.. [7] 비회원 2018.04.12 1011
534 제가 잘 몰라 여쭤봅니다. [19] 비회원 2018.04.12 103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