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수유너머104 입장문
2017년 4월 7일 새벽,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결과보고”(당일 오후 수정) 게시 이후, 수유너머104는 안팎으로 쏟아지는 많은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결과보고” 첫 번째 판본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구체적인 사실을 밝혔다는 비판을 받은 후, 그 부분을 삭제한 두 번째 판본을 올리고 사과문을 올렸지만 수유너머104를 향한 세간의 비난은 수그러들긴커녕 증폭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특히 연구실 탈퇴자들이 올린 문제제기에 대해 우리가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와 같은 문제제기와 비판을 있는 그대로 수긍하는 듯한 인상 내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듯한 인상도 주는 듯합니다. 하지만 연구실에 남은 회원들은 이에 관해 적지 않은 고민을 거듭해왔으며, 토론과 논의를 거친 끝에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내놓고자 합니다.
이 입장문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이번 성폭력 사건과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에 대해 탈퇴자들과 연구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분들이 갖는 판단에 대한 우리의 입장입니다. 둘째는 탈퇴자 연명으로 제기된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입니다. 여기엔 향후 연구실이 지향하고 실천해 나갈 젠더의식과 성평등에 관한 각오와 다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연구실에 쏟아진 다양한 비판, 그리고 오해와 분노, 격앙된 시선에 대해 온당하게 응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장문의 형식으로 글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소 길더라도 이런 점들을 새겨주시며 읽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I. 성폭력 사건의 결정 과정에 대한 해명
1. 3차 회의의 ‘합의안’은 사건 수습을 위한 편의적 절충안인가?
탈퇴하신 분들은 ‘합의안’을 만들려는 것을, 성폭력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지 않고 수습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공동체라고 해도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분들로 이루어진 것이니, 어떤 사안이든 단일한 생각, 단일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다른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결정을 한다는 것은, 설득이나 감화로 동일한 의견을 갖게 되든, 아니면 생각은 다르지만 어떤 의견에 동의해주든 다른 의견들 사이에 ‘합의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합의’라는 말이 가진 뉘앙스가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사용하는 ‘합의’의 의미는 순전히 ‘다양한 의견들에 대한 가능한 최선의 의견일치’라는 점에 한정하여 사용한 것임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3차 회의는 사건의 양 당사자 두 분이 서로 한 발씩 물러서주었기에, 우리는 이를 최대한 존중하여 최대한의 합의안을 만들어내자며 시작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라 사건의 경중을 판단해 어떻게 징계할 것인지를 두고 토론했습니다. 어떤 분은 6개월~1년의 자격정지(출입금지, 활동정지)가 맞다고 했고, 어떤 분은 3년으로 하자고, 또 다른 분은 추가 조사된 다른 사안을 감안하여 5년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는 자격정지 기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가해자는 공지되는 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두 사람의 입장을 최대한 받아들여주는 합의안이 가능하리라는 제안이 있었고, 그래서 피해자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여 자격정지(출입금지, 활동정지) 기간은 5년으로 하고, 대신 공지문은 가해자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것으로 하자고(가해자 동의를 얻어서 공지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대리인도, 피해자도 받아들여주었고, 그래서 회의는 ‘드디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 속에 끝났습니다.
회의에 없었던 분들은 이 느낌을 잘 모를 겁니다(불행히도 탈퇴하신 분들 중 많은 분들은 이 회의에 없었습니다). 그간의 고생 끝에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믿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감응을 알아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3차 회의 회의록이라도 찬찬히 다시 읽어주신다면, 적어도 이렇게 애써 만들어낸 합의안을 두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타협적 절충안이라고 비난하진 않으리라 믿습니다. 수습을 위한 절충안이라는 비난은 정말 천신만고 끝에 얻은 합의안을 너무 쉽게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런 합의안을 찾아내기 위한 게 아니라면, 대체 회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요?
2. 의사결정 과정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는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전체 회의들의 의사 결정 과정이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었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1차 회의 전에 피해자의 미투선언과 가해자의 사과문을 본 회원들은 충격을 받아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진상조사를 먼저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전언과 가해자의 사과문은 우리로 하여금 곧장 가해자에 대한 최대한의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결정으로 이끌었고 이것이 피해자나 많은 분들에게는 그대로 이번 사건의 최종 처리처럼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1차 회의 이후 가해자가 소명의사를 밝혔고, 이번 사건과 1차 회의에서 제기되었던 동일 가해자에 의한 다른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가해자의 소명과 피해자의 추가 진술, 제보된 관련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어진 2차 회의에서는 먼저 두 사람의 반복적인 소명이 ‘진실공방’이 되면 해결할 길은 사라질 것이며 두 사람이 서로 받는 상처만 커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그래서 피해자의 2차 소명이 나왔으니 2차 소명까지를 끝으로 징계를 결정하자는 안이 제안되어 받아들여졌습니다. 다음으로, 회의에서 결정한 것을 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아들일 때까지 회의를 계속해야 하는가, 전체회의는 그렇다면 어떤 것을 결정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피해자의 대리인이 제안한 대로) 피해자가 원하는 소명의 방식을 채택하는 ‘대신’, 그것을 기초로 전체회의가 징계결정을 하면 피해자가 그 결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타협안’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덕분에 보이지 않던 출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끝난 회의로 대부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도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3차 회의는 2차 소명 이후 양 당사자가 서로 한발씩 물러서주었다는 생각에 고맙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회의 앞부분에 한 분이 해주신 말씀이 이를 보여줍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에 두 분 다 정리를 하신 상태에서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 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에 공감을 표시해주셨습니다. 회의 초기에 전체회의에서 결정을 하면 피해자 가해자 두 분이 받아들일 것인지를 다시 확인할 때, 피해자 대리인 역을 해주시던 분이 피해자와 통화했다고 하면서 했던 발언을 일부 인용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제명이라고 했지만 우리 공동체가 조사위를 꾸리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했잖아요. 몇 주간 계속 회의를 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피해자가 충분히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꼭 제명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어요. 하지만 징계는 분명히 필요하고 일단 본인이 위협감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3차 회의 회의록>, 8쪽)
이 발언을 들었던 참석자 모두는 그 동안 애쓴 보람이 있다고 확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3차 회의의 ‘합의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공지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대리인은 ‘성폭력’, ‘가해자’라는 말과 ‘5년’이란 기간을 명시할 것을 주장했고, 그에 대해 그렇게 5년이란 징계기간을 명시하면, 회의시간에 비교대상으로 거론되었던 녹색당의 징계보다 훨씬 강한 징계를 하는 것이 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녹색당의 경우 가해자는 5~6명의 여성에게 신체접촉을 반복한 사건에 대해 1년의 자격정지 등과 성교육 이수였다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과 비교하면 이는 가해자에게 추가로 제기된 과거의 사건들을 모두 포함한다 해도 우리의 경우보다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1년이란 기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며 5년은 되어야 한다는 게 대리인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는 1차 회의에서 제명으로 시작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피해자 대리인에 따르면 피해자는 ‘제명’으로부터 5년으로 양보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년과 5년의 간극이 매우 컸기에 ‘훨씬 강한 징계’라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다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4차 회의가 열렸고, 이 사건에 관한 적절한 처벌수준을 논의해야 했기에, 이회원 각자가 이 사건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4차 회의 회의록의 비공개 처리와 회원 각자의 자유발언에 관련된 것이 그렇습니다.
4차 회의의 회의록을 비공개로 하자는 의견은 회의 초반부터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간 이 사건을 성폭력으로 규정짓는데 미온적이거나, 가해자의 가해자성을 의심하는 발언 혹은 입장이 나올 때마다 ‘2차 가해’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공개적인 사과가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4차 회의의 회의록을 비공개로 한다면 그때야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밝히겠다는 요청이 나왔고, 또한 만일 피해자가 실명으로 된 회의록을 읽게 되면 후일 연구실에 돌아왔을 때 이 사안에 대해 피해자에게 적극 동조하지 않은 회원들에게 느낄 불편함이 제기되어 비공개처리하기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비공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에 뭔가 ‘은폐’나 ‘축소’의 의혹을 제기하는 주장들이 나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설명드린 바와 같이, 비공개의 이유는 회원 개인의 완전한 자유발언 및 판단과 피해자가 발언자가 누구인지 인지할 경우 생길 피해감을 막고자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탈퇴한 분 가운데는 4차 회의에 참여했고, 상기의 이유로 비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공개처리한 데 대한 비판이 일어났을 때 이에 관해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던 점은 매우 아쉽습니다. 게다가 각자의 입장을 밝힘으로써 논쟁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한 분이 있었으며, 그것이 관철되어 개인별 입장표명이 이루어졌던 게 사실이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따라서 4차 회의 회의록의 비공개처리에 대해 ‘권위’나 ‘위계’의 압박을 지적하거나, ‘은폐’ ‘축소’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실시된 4차 회의 개인 발언은 ‘성폭력 13명, 성폭력 아님 11명’이라는 이분법적 결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결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령 이 사건은 성폭력이기에 성폭력에 해당하는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 성폭력이지만 그것의 징계는 그 경중을 가려 적절하게 산정해서 내려야 한다는 의견, 혹은 성폭력이라 부르기엔 과대하지만 명백히 불미스러운 사건을 초래했으므로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 등이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진상조사를 통해 드러난 복잡한 맥락들로 인해 이 사건을 성폭력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도 다수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4차 회의에서 회원들 각자가 밝힌 비공개 입장들에는 이 사안이 심각하지 않으며 그래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회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 자리에 참여한 모두가 사안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고통에 심각한 염려를 표했으며, 가해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징계 혹은 분리기간을 둠으로써 앞으로의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 공유되었습니다. 하지만 탈퇴자 일부를 포함해 그날 회의에 참석했던 모든 분들이 잘 알고 있듯, 회의운영 과정은 성폭력이냐 아니냐라는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도록 강조되었고 이에 따라 명확하게 성폭력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들은 모두 ‘성폭력 아님’으로 결론이 났던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이 입장문에서는 피해자보호의 원칙에 따라 대외적으로 공개할 수 없는 전체 회의록과 소명 자료들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판단 불가능’이라는 입장들이 어떻게 내려진 것인지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탈퇴하신 분들께서는, 특히 4차 회의에 참여해서 경과를 지켜보았던 분들이라면 이른바 ‘판단 불가능’이나 ‘성폭력 아님’이라는 입장이 단순히 성폭력 불인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것입니다.
이 사건이 피해자에게 심대한 상처를 주었다는 점과 더불어 불가피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징계의 수위였습니다. 모든 형사적인 범죄에 대해 극형을 내리는 것이 불합리하듯 성과 연관된 폭력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한 징계는 해당 사건에 합당한 것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결과보고”에서 문제가 되었던 ‘징계를 전제로 한’ 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때문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의미화의 차원과 처벌의 차원은 다르기 때문에, 징계절차에서는 구체적인 가해의 경중을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징계를 전제로 한다면 성폭력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표현의 실질적 의미입니다. 사안이 최대한의 징계를 할 정도로 ‘계산’할 수 없는 폭력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문제가 된 사안이, 구체적인 내용은 ‘2차 피해’의 우려 때문에 적을 수 없지만,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견해든 간에, 그간의 소명과정을 통해 드러난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나름의 판단을 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탈퇴하신 분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이 성폭력 문제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것으로, 혹은 사태를 축소해 덮으려는 것으로 보였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는 진상조사위에서 진행했던 두 번에 걸친 소명, 그리고 사건의 맥락에 대한 각자의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어떻게 이 판단이 하나 같이 동일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견해를 가진 분들 역시 성폭력문제에 대해 충분히 진지했다고 믿습니다. 한 달 넘도록 그렇게 힘들게 토론하고 회의하고 했는데, 그런 노력들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진지하지 않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4차 회의는 자정 너머까지 회의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상태에서 파장이 되었습니다. 성폭력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퇴장하셨고, 남은 사람들은 3차 회의 합의안이 깨진 상태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3차 회의 합의안으로부터 파생되는 두 가지 대안, 하나는 ‘가해자’, ‘성폭력’을 명시하고 1년의 징계를 한다, 다른 하나는 가해여부를 결정하지 말고 피해자 보호원칙에 따라 보호기간을 5년으로 결정한다는 안이 가능하리라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안을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보고하고 절충되면 그것으로 가름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솔직하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음을 밝히고 무능력을 사과하자는 안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당시 우리의 상태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4차 회의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연구실을 탈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탈퇴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의논하기 위해 임시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피해자가 세 가지 안 모두를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결국 그 임시회의는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회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회의에서 우리가 그토록 논의하던 것을 접고 피해자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우리의 능력 부족으로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피해자의 요구와 쉽게 공감해주지 않는 동료들에게 실망해 탈퇴하신 분들의 주장에 대해 더는 대립을 지속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어째서 권위주의적인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각자가 자기 의견을 밝혔고, 그 의견들이 성폭력으로 일원화되지 않은 것에 당혹스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누군가의 권위로 개개인의 의견을 모았다고 할 만한 회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반대로 누구도 그럴 수 없었기에 문제를 쉽게 풀 수 없었습니다. 사건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판단에 열려 있었던 것이 문제라고 느꼈다면, 그것이야말로 폐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이 많으며, 그래서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더 이상 함께 토론하기를 포기하고 탈퇴하는 것 또한 폐쇄적인 것 아닌가 싶습니다.
3. 우리는 피해자와 지지자들에게 무수한 2차 피해를 가했는가?
우리는 ‘2차 가해’ 내지 ‘2차 피해’라는 개념에 대해 여성운동 내부에서 제기된 비판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 회원이 민우회 토론회 자료집 (2017년 5월 15일 여성민우회에서 주최한 토론회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 2017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파일을 올려놓았지만, ‘기존에 여성주의를 공부했던 사람들에게는 유의미한 글이지만 여성주의 지식이 없던 사람들이 이 글부터 처음 읽는 건 우려’가 된다는 의견이 있어 회의에선 실제로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2차 피해란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하지 못했고, 그런 비판이 나오면 발언이나 글을 취소하거나 삭제하고 사과하길 반복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발언은 극도로 제한되었고,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검열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실들이 문제였길래 성폭력인지 아닌지 그렇게 의견이 갈렸던 것인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한 채, 침묵하거나 생각의 결론만을 말해야 했고 그에 대한 비판을 감수해야 했던 회원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조금 더 들어보고 고려해 보았어야 할 다양한 의견들을 충분히 듣지 못하게 만든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만일 공동체 안에 ‘악의적인’ 의도로 피해자를 공격하려는 의사가 있는 게 아니라면, 모든 관점들을 충분히 생각해 보고 판단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피해자의 고통을 고려해야 하기에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2차 피해라는 말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사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피하긴 어려웠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탈퇴하신 분들이 한 ‘피해자와 지지자들에게 2차 피해를 가했다’는 말입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는 막아야 하겠지만, 사건의 성격이 확정되기 전에 어떠한 반론도 2차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제기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피해자는 물론 지지자에 대해서까지 확대된 2차 피해 개념은, 2차 피해라는 개념이 발언을 봉쇄하기에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침묵하게 하고, 그로 인해 충분히 말을 하고 토론을 했을 때 가능해지는 진정한 납득이나 설득의 기회를 오히려 차단한다는 여성운동 내부의 비판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함을 보여주는 말이라는 생각입니다.
4. 이번 사건은 회원과 비회원의 위계구조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번 사건이 회원 추천을 해준 사람과 추천을 받은 사람 사이에서 발생했기에, 회원과 비회원의 권력관계 때문에 발생했다거나 위계구조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회원제도나 연구실의 운영방식을 생각해보면 이는 타당한 지적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물론 연구실 안에서 회원과 비회원 간에 어떤 차이 내지 간극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심지어 회원과 회원 간에도 그와 같은 간극은 분명 존재합니다. 예컨대 회원 중에는 매일 연구실에 나와 일상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여러 가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일상에 긴밀히 결합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 사정은 결코 회원 간의 위계의 높낮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구실의 일상을 도맡아 관장하는 회원들과 그렇지 않은 회원들이 완전히 동등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만일 투표를 한다면 모두는 동등한 한 표를 갖게 되겠지만,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발언하게 되었을 때 연구실의 사정을 상세히 알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과 그렇지 못한 회원 사이의 차이는 모두가 직관적으로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실에 대한 활동의 정도로 나뉘게 되는 ‘영향력’이나 ‘발언권’에 차이는 회원제도가 있는 곳뿐 아니라 사실은 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과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산술적인 평균주의를 뜻하는 평등주의는 서로가 무감하게 비슷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참여하는—가령 선거가 그렇지요—곳 아니라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스피노자의 개념을 빌어 ‘권리란 능력만큼 행사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약간 다르게 말해 ‘권리란 참여하는 만큼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회원과 비회원은 물론 회원 안에서도 이런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현상이 자칫하면 회원과 비회원 사이에 벽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회원제도를 없앨 수 없는 한(이는 사실 매일의 일상적 활동이 원활하게 되도록 해야 하고, 이런저런 활동을 관리해야 하는 한 불가능합니다), 양자의 경계에서 ‘권리’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불가피한 간극이나 ‘위계’를 최대한 넘어서려는 시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이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즉 회원/비회원의 구별이 공동체 안에서 말하거나 행동할 자격의 유무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제도를 다양하게 바꾸려는 실험들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회원 아닌 분들도 열심히 활동하시면 활동하시는 만큼 ‘발언권’을 갖도록 하려고 했고, 회원/비회원의 이항성을 깨기 위해 ‘친구회원’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수칙제정, 고충처리 위원 등을 신입회원에게 떠넘겼”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정말 당혹스런 비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입회원임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우리보다 낫다는 판단에서 그와 같이 위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페미니즘과 젠더문제, 성폭력에 대해 그 분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입회 이전이었음에도 연구실을 대표하는 발표를 기꺼이 맡겼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필경 앞으로도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5. 우리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건을 무마하거나 은폐하려 했는가?
지금 수유너머104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은폐 내지 축소하려 한 집단이 되고 만 듯합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 부당한 비난입니다. 먼저, 발생사적으로 보면, ‘공동체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은폐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100인위’)에서 지적했듯이 운동단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직이나 운동을 보호하기 위해 피해자의 침묵을 요구하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것으로 인해서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유너머104는 ‘공동체를 위해’ 피해자의 침묵을 요구한 적도 없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그건 사실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성운동 맥락에서 제기된 ‘조직 보호를 위한 은폐’라는 비판은 부당합니다.
다음으로,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미로 사용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건 1차 회의에서부터 회의의 진행과정을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맞습니다. 그건 1차 회의에서 ‘제명’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들 무진 애를 썼는데, 사태가 이처럼 최악의 결과로 귀착된 건 무엇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건 바로 1차 회의에서 내린 결정과 그 결정을 내린 회의과정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성폭력의 문제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 신중하고 무리없는 판단을 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1차 회의에서 우리는 가해자의 진술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제명’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물론, 가해자가 자신의 과실을 인정한 게시물을 내부게시판에 올렸기에 그것을 감안한 것이었으나, 사안에 대한 정확한 파악을 미뤄둔 채 제명 결정을 내린 것은 성급했다는 생각입니다. 제명이라는 ‘극단적’ 결정—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결정이란 의미—을 사안에 대한 명확한 증거수집이나 숙고어린 판단 없이 내렸던 것입니다. 저간의 앞뒤 사정을 청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사건의 경중을 따져볼 때 제명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모두 일축해 버렸습니다.
이 회의 이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중에 연구실을 탈퇴하고 싶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누군가를 파문하는 ‘종교집회’ 같다는 말을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어떻든 간에 우리는 첫 회의에서 너무도 단호하게 제명을 결정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사건이 성폭력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 사실과 반대됩니다. 좋든 싫든 ‘제명’에 부합하는 성폭력이라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용의 경중을, 그에 합당한 처벌의 정도를 따지지 않은 채 ‘묻지마 징계’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 뒤 가해자의 진술을 듣지 않은 채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문제제기가 다시 있었고, 그로 인해 피해자 동의하에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제명 결정’ 뒤에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이 문제를 처음에 얼마나 어이없이 처리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후의 회의는 당연히 진상을 조사하고 사건의 경중을 가려 징계의 수위를 재결정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양측의 1차 소명, 2차 소명이 이어지면서, 그것을 보고 사건의 성격과 경중에 대해 우리는 각자 다시 판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과가 제명이란 결정보다 낮은 처벌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으니, 이후의 과정은 사건의 ‘축소과정’이었다고 해도 틀렸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첫 단추를 이렇게 잘못 끼웠기에, 이후의 조사과정이나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의견 개진은 사건의 ‘축소’라고 받아들였을 만한 소지가 없지 않습니다. 징계의 내용뿐 아니라 사건의 파악에서도 첫 회의에서는 제명에 값하는 성폭력이라고 다들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그 강도가 낮아져 성폭력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마저 다수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탈퇴하신 분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신 듯합니다. 이 또한 1차 회의의 또 다른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6. 성폭력 사건은 경중을 따지지 않은 채 처벌해야 하는가?
탈퇴하신 분들은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의에서도 이 사건이 성폭력 사건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나, 성폭력 사건이라면 어느 정도의 징계가 합당한 사건인가를 따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우리 안의 가해자성’을 인정하라고, 연구실 전체가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화된 요구나 주장으로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대체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건은 개별적이며, 사건에 대한 판단은 그 사건이 어떤 상황,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행해졌는가를 세심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를 따져보지 않고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들어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며, 이는 사건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성희롱에 대한 징계기준이 우리에게 없기에 정확한 처벌의 수위를 정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슷한 다른 사건을 찾아서, 그 사건에 대해 징계하는 수준을 참조하며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징계받는 사람도 수긍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이 사건만이 아니라 이 문제는 미투운동과 결부된 것이고 그런 문제의식에서 제기된 것이니, 그에 대한 지지나 성폭력 문제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갖고 있음을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로서는 공동체를 ‘위한’ 길이 될 것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성원들에게 납득할 만한 근거나 토론을 제외한 채,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처벌만을 내리고자 한다면 그 공동체가 충분히 합리적인 의사표명이 이루어지고 논쟁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7.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수습의 태도로 일관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1차 회의의 과도하게 빠른 결정은 ‘공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과도해서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생각을 말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나친 공감 뿐 아니라, 문제가 된 사안이 ‘성폭력’임을 너무 쉽게 인정한 것 또한 유사한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1차 회의에 참석한 많은 회원들이 ‘피해자가 성적 불쾌감을 느꼈다면 성폭력’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의미에서 그 사건이 성폭력임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이는 성폭력은 나쁘고 처벌받아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따른 결론이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피해자중심주의를 강하게 주장했고,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당시에 이견을 제기할 만한 용기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달랐던 점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절대 다수가 가해자가 잘못했다는 점에 동의했고 그것을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으니 성폭력’이라고 생각했지만 개념이 너무 주관적이어서, 각자가 성폭력이란 말에 실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문제를 강하게 느낀 분은 제명에 상응하는 무거운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징계할만한 정도의 성폭력은 아니라고 느낀 분도 있었고, 징계를 해야 하지만 무겁게 징계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었고, 사회적 통념에 따르면 성폭력이 아니지만 공동체의 관점에선 성폭력이라고 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성적 불쾌감을 느꼈으니 성폭력이란 점은 다들 인정했기에, 아마도 강한 성폭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폭력임’을 다시 설득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4차 회의 때에도 단지 “이게 성폭력이 아니면 대체 뭐가 성폭력이나?”라고 반문하는 데서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건을 다들 다른 무게와 뉘앙스로 느낀다는 것, 심지어 심각한 성폭력이 아니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음을 알고는, 성폭력임을 모두가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회의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이 쉽게 바뀌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요컨대 너무 쉬운 공감과 너무 주관적인 성폭력 개념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보이게 했고, 이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의 편차를 줄이는 설득의 과정을 건너뛰게 했으며, 나중에는 설득 대신 공감의 표현으로 ‘가해자성을 인정하라’는 등의 요구만을 반복하게 했고, 그것이 서로 끝까지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8. 우리는 이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두고 3월초부터 4월초까지 한달 넘게 4~5차의 전체회의를 했고, 그 사이에 거의 매일 단톡방에서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으며,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 또한 계속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모두가 몰두했던 이 모든 활동은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혹자는 우리가 이 사건을 ‘공동체’의 문제로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징계 이외에 공동체의 젠더 문화를 바꾸기 위한 조치들, 재발 방지를 위한 수칙을 만드는 문제 등을 적극 도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혹시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이 사안에 대해 공동체 전체가 동일하게 판단함을 뜻한다고 한다면 그건 부적절하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의 판단을 내릴 공동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성원들의 판단들이 있는 것이며, 공동체의 판단이란 그런 개별 판단들이 설득이나 동의 등의 과정을 거쳐 합의된 어떤 결론에 이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합의가 모아지지 못하면, 공동체의 판단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간의 토론 과정에서 합의할 수 없는 이견의 존재를 확인했고, 서로를 설득하지 못했으며, 여러 분이 설득을 포기하고 탈퇴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합의된 결정, 공동체의 판단이 불가능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가 공동체로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공지하자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것이 피해자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 수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 그러한 상태를 고백하는 것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역으로 공동체가 자신들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의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아쉬운 점은, 합의가 어려워졌을지라도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문제의 엄중함에 대한 책임감, 서로에 대한 믿음을 통해 끝까지 의견을 모아보는 노력을 다 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탈퇴자들은 나름의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을 텐데, 남아있는 사람들로서는 탈퇴자들을 조금 더 설득해 보고 이해와 타협의 노력을 다하지 못한 듯해 너무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는 남아있는 회원들이 두고두고 반성하고 더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9. 코뮨의 우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우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치 정치학자였던 칼 슈미트는 정치란 ‘적과 친구를 가르는 문제’라고 정의한 바 있지만, 인근의 모든 이를 적이냐 친구냐 둘 중의 하나로 가르는 이런 정치란 편가름의 정치학, 결국은 적과 친구라는 적대만 남는 적대의 정치학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비판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이번 일처럼 현실에서 토론이 벌어지고 논쟁이 발생하게 되면, 어떤 의견을 ‘결국은 누구 편을 드는 것’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이 너무 흔히 벌어집니다. 가령 이번 일에서 가해자의 제명에 반대하며 사안의 경중을 따져 적절한 징계 수준이 얼마인지를 판단하자라는 말은, 어느새 가해자에게 가해질 처벌을 축소시키려는 것이란 점에서 ‘가해자 편을 드는 것’이며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일이 정확하게 편가름의 정치이고 적대의 정치입니다.
편가름이면 어떠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피해자의 편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또한 입장을 떠난 객관적 중립성 같은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적대의 두 항으로 편이 갈라지면 피하려 해도 누군가의 편이 되고 맙니다. 편가름의 정치나 적대의 정치가 문제인 것은, 입장을 그것이 야기할 결과만으로 과도하게 가르며, 그 결과 하려는 말이 들리지 않고 ‘결국 누구편이잖아’라는 결론으로 환원해버린다는 겁니다. 징계의 적절한 수위를 정하자는 것은 성폭력임을 인정하고 징계를 하자는 전제에서 나온 것이니 분명 피해자 입장에 선 것이지만, 제명이란 결정, 혹은 5년이란 결정에 비추어 그보다 적은 것이라면 ‘결국 가해자 편’이라는 결론으로 몰아버린다는 겁니다.
어떤 입장에 선다는 것을 그 입장에 서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과 혼동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피해자의 입장에 선 것이면,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말조차 쉽게 허용되고 그에 대한 비판이면 오류를 지적하는 것조차 금지되는 것이 그런 경우일 겁니다. 오히려 반대로 말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입장에 선다면, 소수자의 입장에 선다면, 그 입장을 견고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도 자신의 논지가 적절한지를 최대한 점검하고 타인의 주장을 오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세심하게 읽고 들어야 하며, 자기가 지지하는 입장을 위해 상대방을 최대한 설득하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몹시 드물어 보입니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 선다는 것을 피해자를 지지하는 태도를 표명하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 그런 지지의사를 명백히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끌려들어가 버립니다.
우정의 정치란 적과 친구의 이분법을, 단순명쾌한 편가름의 논리를 넘어서지 않고선 불가능합니다. 친구가 문제가 있을 때 분명하게 지적하고 비판을 가하는 것,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코뮨의 우정이라면, 강하게 비판할 만한 잘못을 했을 때조차, 그 뒤에 그가 자신의 오류를 넘어서주길 기다려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공동체는 이질적인 생각과 감각, 습속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러니 거기서 만나게 될 사람들이란 대개는 비슷하다기보다는 다른 감각, 생각, 습속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예컨대 ‘나는 게이가 싫어!’라는 말을 듣고 놀라 그 후진 젠더적 감수성을 공동체 전체의 감수성이라고 비판하며 떠난 분도 있지만, 바로 그런 얘기를 듣고선 그 사람에게 함께 퀴어이론가인 버틀러 책을 읽는 세미나를 하자며 세미나를 만든 분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번 사건을 두고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설득하려 하면서 끝까지 같이 풀어가려고 애쓴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이번 사건에 대해 하나의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며, 차라리 아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에 강한 공감을 요구하지 않고, 서로의 얘기를 경청해주고 서로를 설득하려 애쓰며, 다른 견해를 좁힐 수 없다면 가능한 최대한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후에도 계속 이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코뮨의 우정을 실천하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여전히 이 공동체에 대한 염려와 걱정의 글을 올리고 있는 탈퇴자분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비록 ‘탈퇴’라는 의사표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 또한 헤아려보지만, 이 글에 표현한 고충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주십사고 조심스럽게 부탁드려 봅니다. 바라건대 공동체 활동을 통해 개인과 모두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던 마음을 떠올려,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와 코뮨의 우정을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세미나든, 강좌든, 토론회든 생각의 차이들을 확인하고 서로를 설득하려 노력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감응을 주고받는 관계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II. 탈퇴자 연명의 문제제기에 대한 연구실 회원들의 입장
1. “수정 전의 사건 관련 최종 공지문이 피해사실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게시하고, 선택적인 사건의 기술로 2차 가해를 유도한 것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십시오.”
-> 사건 관련 최종 공지문에서 피해사실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올린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사과문(2018.04.07. 작성자 ‘admin’)에서 밝혔다시피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피해자의 동의 받지 못한 채 임의로 게시한 것은 명백히 저희들의 잘못입니다. 다만 “선택적인 사건의 기술로 2차 가해를 유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게시한 실수는 명백히 우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최소한의 사실 적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에서 나온 단견이었을 뿐, 전혀 의도적인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2. “가해자의 ‘가해자성’에 대한 인정, 이번 사건이 ‘성폭력’ 사건이라는 인정 없이 가해자 피해자 의견의 절충으로 문제를 봉합하려고 한 점에 대한 해명과 사과문을 발표하십시오.”
-> 1차 회의 이후 가해자가 소명의사를 밝히고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사건에 대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찾으려고 한 것은 가해자의 가해성에 대한 확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위 “I. 해명”에 자세히 서술했듯 가해자의 가해자성이란 명확한 조사결과를 통해 드러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에 대해서 본래적인 가해자성을 전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의 가해자성이 인정되는 것은 모든 조사가 끝나고 그것이 입증되었을 때 비로소 분명히 확증되는 것입니다. 5차례에 걸친 회의(탈퇴자들의 경우 4차까지)는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확증하는 ‘과정’이었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입증하는데 실패하였고, 모두의 동의를 얻는 결론을 낼 수 없었으며, 결국 이 때문에 피해자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론의 반영이 “결과보고”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이 사건을 ‘절충’적으로 ‘봉합’하려고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 동안의 회의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I. 해명”을 참조해 주십시오.
3. “피해자와 지지자들이 요구했던 ‘징계기간 5년’이 단지 이번 사건뿐만이 아닌, 동일한 가해자에 의한 4건을 참작한 요구였음을 최종 공지문에 기술하십시오.”
-> 징계기간 5년이 동일한 가해자에 대한 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반영한 징계조치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결과보고”에 이 사실을 구태여 적지 않았던 이유는 이전의 4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을 당시 공개 여부에 대한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와 지지자들이 거듭 2차 가해성 발언에 노출되도록 한 점을 사과하고,더 이상 이런 발언들이 수유너머 홈페이지에 게시되거나 댓글로 달리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 우리 중 그 누구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성 게시물을 작성해서도 안 되고 작성할 수도 없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피해자를 또 한번 고통에 빠뜨리는 2차 가해성 게시물의 작성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피해자에 대한 그 어떤 종류의 2차 가해성 게시물에 대해 우리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5. “이번 사건이 수유너머의 위계적인 문화와 권력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것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회원제도 개선, 공동체 수칙 마련, 전체 회원 대상 젠더감수성 교육 이수 등)를 마련하여 공지하고 실행해 주십시오.”
-> 남녀 간, 직급 간 혹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 위계적 구조가 세워져 있고 그로 인해 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임은 우리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속의 공동체로서 수유너머104 또한 그러한 일상의 위계 관계로부터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음은 인정해야 할 사실입니다. 분명 여기에도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형태의 위계적 문화와 권력구조가 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이 수유너머의 위계적 문화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 구조로부터 발생했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5차에 걸친 회의록과 2차에 걸친 가해자, 피해자의 소명서, 진술서 등을 살펴볼 때 가해자가 수유너머의 위계문화나 권력구조를 사용해 피해자에게 폭력을 입혔다는 사실은 확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 점은 회의록과 소명서를 열람했던 분들이라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이 사건과 관련한 회의들이 권위, 위계에 의한 독단적 과정이었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위 “I. 해명” 4번 항목을 읽어주십시오.
6. “1차 회의에서 피해자에 대한 공동체 차원에서의 사과문을 발표하기로 한 결정을 실행에 옮겨 주십시오.”
-> 우리는 피해자가 좋은 뜻을 품고 수유너머104에 찾아와 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어 했던 선의를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 우리의 젠더감수성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공동체로 도약할 수 있도록 많은 염려와 배려를 해주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사건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되신데 대해 우리 모두 마음 아파하고 있고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의를 갖고 찾아온 공동체에서 받은 상처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과로도 보상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우리는 1차 회의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전체 그리고 이후로도 지속되는 피해자의 상처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언제고 다시 함께 공부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7. “해당 사건 관련글 및 공지사항을 더 이상 ‘소소한 일상’ 게시판이 아닌, 홈페이지 첫 화면의 단독 배너 혹은 팝업을 만들어 게시하여 공동체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해결과 개선의 의지를 보여주십시오.”
-> “결과보고”는 임시회의가 열렸던 04.07일 금요일 밤 12시경에 작성되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우리의 입장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 동안 사건의 논의가 진행되었던 ‘소소한 일상’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회의에서는 글과 동시에 배너 등으로도 공지하기로 결정했으나 작업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결과적으로 지체되었던 점 사과드립니다. 이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에는 십분 동의합니다. 그러한 지적에 따라 뒤늦게나마 배너를 통해 수유너머104의 공식적인 사과와 “결과보고”가 홈페이지 전면에 게시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질정에 대해서는 달가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결과보고”에서 밝힌 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유너머104는 젠더감수성의 향상과 올바르고 평등한 공동체 문화의 증진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페미니즘 및 소수자 관련 세미나와 토론회, 강좌 등의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신설할 것이며 회원들에 대한 젠더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현재 이와 관련된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근 시일 내에 페미니즘 관련 토론회와 강좌 등이 열릴 예정입니다. 단순히 연구실 활동이나 행사 차원이 아니라 연구실 자체의 젠더의식, 평등한 공동체 문화, 소수자에 대한 더 깊은 공감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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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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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님의 글에 눈도 마음도 환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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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회원 1인
수유너머는 지금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회원이 되면 매달 회비를 내고 전체 회의에 참석하며 운영에 의견을 보탤 수 있습니다.
정식 회원이 아닌 경우는 강의나 세미나, 그리고 식사나 뒷풀이 참석등만 가능한 것입니다.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실에 1년 이상 드나들어야 하며, 기존 회원 3명 이상의 추천이 필요하다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이건 어디에도 공지되어 있지 않고 따로 문의를 통해야만 알 수 있는 사항이구요, 이외에는 아무 조건이 없습니다.이런 구조이다보니 기존 회원들의 눈에 들지 않으면 가입하기가 힘들고, 또 누가 알려주기 전에는 이곳이 회원/비회원의 권한에 명백한 차등을 두고 운영된다는 것을 알기도 어렵지요.
쓰신 글을 보니 수유너머의 운영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고 본인이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던 거 같아서...안타까워 몇 자 적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강의나 세미나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고객 또는 손님일 뿐이지요...이런 회원제도에 대해서는 이번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도 몇 번 문제제기를 했고, 이번 성폭력 사건 자체도 이런 문제에서 완전히 동떨어져있다고 보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유너머 '회원' 분들은 입장문 4번 항목에서 본인들의 공동체에 위계관계가 없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계시지요.이유는 간단할 겁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는 '위계'가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본인들의 생각과 관점을 '보편'으로 여기는 태도에 너무 익숙해진 탓에, 본인에게 위계가 없고 평등한 것 같으면 그게 평등한 거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이번 성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태도도 딱 이 연장선상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이게 '폭력'이고 이게 '위계'에서 비롯된 거라 말해도 본인들 입장에서 아니라고 생각하면 결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편파적인 목소리로만 여기는..그래서 적당히 타협하려고만 하는 태도요. 그리고 이 입장문을 보니 아직도 이런 사고방식에 전혀 변화가 없는 것 같네요.
이건 수유너머에 하는 말이 아니라 비회원분의 댓글을 읽고 있자니 수유너머의 회원제도와 운영구조에 대해 너무 큰 오해?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 안타까워 알려드리기 위해 적는 글입니다. 이번 회의 과정과 입장문 발표 과정에서 이곳을 드나드는 비회원들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제가 있을 때까지는 단 한 번도 없었고, 이 입장문을 보아서 느끼셨을 테지만 아마 그 이후로도 없었을 것 같네요. 이곳에선 이번 성폭력 사건 대처시 회비를 내는 '정식회원'이외의 구성원들을 철저히 '외부인'으로만 생각하고 의견을 물어보려 하기는 커녕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이 사실을 감추려고 했다는 점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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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입자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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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아주 성실한 외면 의지가 만든 맹점 무엇을 위한 성실인가 누구의 의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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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생각한 후에 글을 쓰려다가, 위 '탈퇴회원1인'의 댓글이 사실을 잘 못 전달하는 것 같아서 우선 이것부터 바로잡습니다.
위 메뉴바를 보시면 <연구실소개> 게시판이 있습니다.
'회원제도Q&A' 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http://www.nomadist.org/s104/board_YQeO19/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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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콩쥐
안녕하세요. 탈퇴회원 심아정(큰콩쥐)입니다.
104의 입장문과 탈퇴회원들의 성명서가 연이어 올라와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 하실 것 같아 댓글을 달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그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에 탈퇴회원1인의 글은 짧게나마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그가 품었던 생각이니 그렇게 읽어주시고,
그러나 그의 글로는 충분히 담아낼 수 없는 사정들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댓글을 남깁니다.
탈퇴한 회원들이 각자 다른 계기와 생각들로 연구실을 나왔기 때문에,
탈퇴회원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연구실과 관계맺은 강도나 시간 등등에 따라 이 사안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위에 생강님이 언급하신 '회원제도 Q&A'는 회원 활동을 하던 시기에 제가 작성했고 간간이 수정한 것이 맞습니다.
혼자서 작성해서 올린 건 아니고,
수유너머N 해체 후, 새롭게 104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제가 초안을 쓰고, 많은 논의를 거쳐 올리게 된 공지문입니다.
'친구회원'이라는 아이디어도 제가 낸 게 맞습니다.
기존의 회원제의 울타리를 낮추고 뭔가 말랑말랑하고 느슨한 연대가 가능한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습니다.
전화 상담도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심지어 탈퇴 후에도 저에게 쏟아지는 문의전화를 어느 한쪽에 치우침없이 친절하게 받았고
자세한 것들은 차후에 입장문이나 공지글을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회원과 친구회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일년 간 끊임없는 논의가 오갔음을 밝혀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지문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따른 것도 아니고
그때그때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유동성있게 운영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규칙을 세워놓고 한 치 어긋남없이 딱 그 기준을 따르고...
적어도 그렇게 견고하고 딱딱하게 운영하는 것이 공동체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대부분의 동료들이 유연한 운영방식에 흔쾌히 동의해 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동의했고요.
그러나 회원과 친구회원 추천을 둘러싸고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생강님도 그걸 모르시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원'이 된다는 건, 어떤 특별한 자격이나 특권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운영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고,
사실 동료들과의 관계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회원이 되면 귀찮은 일이 더 많이 생기고 몸으로 일해야 하고 마음도 시간도 그 품을 많이 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여건상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지만 느슨하게나마 이어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친구회원 제도를 만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친구회원 제도에는 순기능도 역기능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남아 운영하시게 될테니 조금더 깊이 고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에 제가 친구회원으로 추천하려했던 동료가
자기는 친구회원이 아니라 회원으로 활동하고 싶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공부와 활동이 가능하다는 의사를 타진하길래
전체회의 자리에서 회원으로 그를 추천했다가,
회의가 끝나고 "친구회원으로 추천한다고 해놓고 왜 회원으로 추천하냐"고
동료회원에게 쓴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강좌팀회의에서 오랜만에 복귀하신 구회원(현 잔류회원)이 "회원은 아무나하나" 식의 발언을 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신 분들은 강의나 세미나를 주도하시는 분들이시죠.
저는 이런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지는 것, 게다가 아무도 회의 시간에 이에 대한 제지를 못하는 분위기야말로
회원과 친구회원을 둘러싼 위계의 문제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회원은 추천하면 곧바로 대부분의 동료들이 회의 자리에서 "좋아요~"라는 반응을 보이시지만,
회원으로 누군가 추천하는 것은 그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물론 회원이 되면 활동이나 공부의 강도가 세지고
회의와 토론회 참여 등의 의무사항이 생기기 때문에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향력 있는 핵심회원들이 누군가를 회원으로 추천하는 일은 있어도
그렇지 않은 분들이 회원 추천을 하는 것은 어려운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친구회원 추천은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회의시간에 제가 발언권이 많았는데, 생각해보면 저도 그러한 위계의 구조 위에 서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 또한 비판받아야 할 권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구분을 두는 것 자체에 대해서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회원 추천을 둘러싸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 너무 안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원이나 친구회원의 추천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권위의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님을 생강님도 아실 겁니다.
그간 우리가 겪었던 문제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단지 공지문이 저렇게 저기에 있으니,
게다가 "열심히 활동하셨지만 지금은 탈퇴하신 분"이 작성한 것이니 읽어보라는 식의 댓글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무성의하고 무책임해 보입니다.
저는 남아계신 분들 중에서 계속적으로 침묵하고 계신 분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침묵이 이러한 위계의 구조에 일조하는 것 아닐까,,,하는 말씀을 아프지만 꼭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두고 회의에서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처럼 말씀들을 하시던데,
적어도 저는 위계적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동의할 수 없다고 제 의견을 말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하실 때조차도요.
저는 7년동안 제 자신를 걸고 활동했던 장(場)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
'탈퇴'라는 형태로 끊어내고 난 후에 감내해야하는 커다란 상실감과 슬픔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듦은 저에게도 마땅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남은 여러분들도 손가락을 끊어내는 아픔을 감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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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제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아정 쌤이 직접 설명해주시니 감사합니다.
104로 새롭게 꾸릴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게된 저 역시, 회의 때마다 회원/비회원, 내부/외부에 대한 논의를 거듭했던 걸 기억합니다.
그만큼 수유너머N에서 104로 변화할 때 주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회원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회원/비회원의 경계를 없애자는 취지였지요.
그렇지만 누군가를 추천하고 받아들일 때 '회원'에 대해 생각하는 저마다의 기준 차이로 인해 때때로 이의제기가 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돌아보았던 것은 수유너머의 운영에 일정 정도 책임의식을 가져야 마땅한 '회원'이라는 것이 특별한 권력이나 위계 구조에 서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죠.
오히려 자발성에 기초한 의무만 더욱 많아지는 회원을 굳이 하려고 한다는 것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공동체의 이상을 함께 실천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댓글 형태로 길게 글을 쓰는 게 마땅치 않아 보여서...따로, 공동체에 대한 제 개인 생각을 밝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 점 양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아정쌤이 지적하신 문구가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픈 마음에 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삭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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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마음
저도 맨 위의 비회원님과 유사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궁금증이 있었으나, 수유너머를 접한지 얼마 안 된지라 잘 모르는 부분이 있겠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있는 곳에서 작은 공동체를 한번 꾸려보는게 소망인 사람인지라 수유너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공격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고, 제 글이 그렇게 읽히기도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내용적인 부분의 섣부른 비판은 안하겠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안 맞는 내용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기회에 이런 저런 생각들이 오가는게 모두에게 좋을것 같아서 용기내어 적어봅니다.
제 궁금증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제가 짧게 경험한 수유너머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단체의 성격이 아니었는데, 피해자들이 '수유너머'는 ~~~ 하라!라는 요구서를 내신걸 보고,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인 대책회의나 회원(?)들을 일컬어 '수유너머'라고 했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같은 사람은 그 요구서를 보는 순간 수유너머에 발을 들인 이상 나도 요구에 응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이 단체에 내가 발을 들이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준다는 의미일까? 그런 등등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폭력 자체에 대해 의견충돌이 있었다던데 이걸 왜 규정하고 해결하려고 하는걸까? 페미니즘 관련 세미나나 공부를 하면서 지금보다 더 나아지는 방향을 찾는 것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성인들간의 문제를 왜 해결해주려고 했던 걸까? 성폭력이라고 판정되었을 때, 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처분(?)할 수는 있지만,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왜 판정하려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 질문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서 대책회의를 하셨던 분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제 질문일 뿐입니다. 답변은 안하셔도 됩니다.다들 양식이 있는 분들이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유너머'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해명글에서는 요구조건을 들어주거나 들어주지 않거나의 방식이 아니라 해명을 하셨길래 아~ 단체는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은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회원 각자, 또는 두세사람씩 마음이 맞는 분들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공동체스럽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서로 물고뜯는 상황을 초래할터라 어쩔수 없었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수유너머라는 해명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저 같이 수유너머에 발을 들이는 사람은 이 해명의 내용에 얼마간 동의를 해야만 하는 건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디에 이야기를 해야 하는거지? 등등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경황이 없어서 탈퇴하신 분들이 남아있는 회원들을 '수유너머'라 부르고, 남아계신 분들도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으리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수유너머에서 만난 어떤 분은 '수유너머'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떤 답변을 내놓는지 내가 주시하겠어!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유체이탈 화법 같기도 하고,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수유너머'의 존재감 때문인가 봅니다.
수유너머가 공동체를 지향하며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분과, 문제를 해결해주고 사람들의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주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뒤섞여 있는것 같습니다. 이건 회원과 비회원을 막론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공동체인가 봅니다. 앞으로 제가 꾸려갈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아주 깊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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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유너머' 김충한 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수유너머'는 잔류회원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아, 저는 수학세미나, 시몽동세미나, 청년인문지능 튜터를 맡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사람들의 요구 조건을 만족시켜주는 단체는 아니기에, '성인들이니 알아서 해'라고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어쨌든 피해자와 가해지목자를 같은 공간에 있도록 할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엔 '분리기간'이라고 부른다지만 그 이후부터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를 '분리기간'으로 불러야 하는가, '징계기간'으로 불러야 하는가 여기에서 이 모든 것이 시작합니다.
정 입장을 내야겠다면, 이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분들(세미나 회원을 포함해서)의 의견도 들어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코뮨 아닌가. 허나 피해자가 이 사건을 회원 내부에서 다뤄주기를 원했었기에 이 방법도 여의치는 않습니다.
공동체내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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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회원1
결국 대체로 다 피해자때문이네요. 요구를 들어주다가 이렇게 되었다고 거칠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공허하기 짝이 없는 '수유너머104'라고 발표된 입장의 사유가 애초에 뿌리부터 몰반성적이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혐의가 강하게 들면서,
피해자를 위하는 시늉만으로 어떠한 더 나은 결과를 ㅡ가해자에게도 마찬가지고요 ㅡ 도출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도대체 처음부터 양측 입장을 꼼꼼히 다 따라 읽어보아도, '수유너머104'라는 이름의 글들은 결국, 그저 잔류회원들의 앞날(운영)에 대한 우려감에 깊게 뿌리를 둔 입장표명 일색이네요. 잔류회원님들의 이런 저런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결국에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말과 글들 뒤로 숨은 익명아닌 익명의 이름들은 (김충한님이 잔류회원 중 한 분이구나하는 것은 이제 잘 알겠습니다)
단지 이곳이, 허명의 '수유너머104' 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
대상이 불분명한 그것을 향해 아무리 떠들어 봤자, 존재불능의 존재에 대한 공허한 메아리로 전락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겠다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서 그랬겠구나. 탈퇴회원들의 입장에 절로 수긍이 갑니다. 정말이지 대화가 안되었겠다하는 심증만 명확해집니다.
좀더 발전적인 사회의식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과 자세가 필요했던 것 아니었을까요? 피해자 요구 때문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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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입자
수유너머에서 작년말부터 공부를 하고 있는 '비'회원입니다. 저 역시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발표하신 '수유너머'의 입장문에 공감하거나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비'회원이므로 '수유너머 입장문'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 되는 거겠죠. 만약 그게 불편하면 이 공간에서 공부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방법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발언권이 없는 사람과의 우정이 가능한가요. '코뮨의 우정'의 범위는 '회원'인가요. 우리는 발언권조차 빼앗긴 채 암묵적으로 동의하거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데 우정은 어느 지점에서 가능한가요.
앞서 다른 분이 '입자'라고 표현하셨듯, 그 댓글에 탈퇴회원 1인께서 친절하게도 "수익을 창출하는 고객 또는 손님"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주셨듯, '비'회원은 이 공간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고 그만 둬도 흔적도 남지 않는 존재들일 뿐인 거죠? 사실은 우정조차 논할 수 없는 거죠?
덧- 입장문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는, '수유너머' 뒤에 그 입장에 동의하는 분들의 이름이 포함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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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맞아요. 이 글에 동의한 수유너머104 회원이 누군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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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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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친구
수유너머 응원해요!!! 세상에는 완벽한 구조를 갖춘 조직, 생명체는 없어요.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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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104 친구
10년 가까운 시간동안 수유너머의 세미나,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실 수유104의 회원들께, 따뜻한 마음을 보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이유때문에, 겪어내야 할 일들이라는 생각에 아픕니다.
다른 곳이 아닌 수유104에서 사건화된 것은, 수유104가 공동체의 첨점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유104의 이 경험이 다른 공동체에도 여러 시사점과 새로운 물음-문제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결론으로 가져가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공동체를 긍정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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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
이번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수칙제정, 고충처리 위원 등을 신입회원에게 떠넘겼”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정말 당혹스런 비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입회원임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우리보다 낫다는 판단에서 그와 같이 위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페미니즘과 젠더문제, 성폭력에 대해 그 분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입회 이전이었음에도 연구실을 대표하는 발표를 기꺼이 맡겼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필경 앞으로도 많은 실패를 거듭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약속합니다.
(사견 아니고 회원들의 자기 고백적 글들에서 본 바) 따로 공부도 안하고 감수성도 떨어지면서, 페미니즘에 관심과 지식이 '우리'보다 나은 신입회원의 말을 경청했고 3차까지는 잘 합의도 했는데, 왜? 이렇게 엉망이 된 걸까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잔류회원들 글에 너나 할 것 없이 '나는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이상하고...제가 보기엔 다들 성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다수결을 했지? 라고 생각이 들 정도네요. 왜 이렇게 궁지에 몰린 사람들처럼 착하게, 불쌍하게 말하는 건지...전문성있는 회원이 나서서 사건을 진행하는 게 못 미더웠나요? 정말 이상한 사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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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2018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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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집단적 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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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힘내세요, 수유너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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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
할 말은 많지만 묵묵히 지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힘내세요, 수유너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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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실수 투성이고 무능하지만 내 개인의 문제는 아니고 공동체로 묶인다는 건 이런 거니까 적당히들 하고 이뻐해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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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수유너머
<<<적당히들 하고 이뻐해주셈~ >>>????
이런 공동체가 배제하고 차별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볼 생각도 없으신가보군요...
이런 '안온한' 생각이 공동체에 대한 오해를 가중시킵니다.
공동체 만들기를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막습니다.
정말 한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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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104 홈페이지 관리자입니다. 위의 첫 댓글에서 수유너머 104의 공식계정이 아님에도 수유너머라는 이름으로 댓글을 올리셨는데요. 이는 수유너머104의 입장이 아닐 뿐만 아니며 이로 인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삭제를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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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날래날래 화해하고 봉합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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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흰색을 흰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끼리의 갈등을 '불화 '라고 말한다
랑시에르는말했어요. 수유너머 불화 소식이 늦어늦어 제게도 전해졌어요
힁색을 흰색이라고 말하는 공동ㅊㅊㅊㅊㅊ체에 와서 즐겁고 재미났드랬죠.
내 친구들은 . '너이제 거기서 상당한 실세겠다' '
놀리는데 '나안 아직 회원두 못돼야 ' 깨갱합니다.흰색을 힁색이라 말하는 그래서 함께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큰 콩쥐 당신땜에 내가 운다 거짓ㄴ말은눈꼽만큼도 못핫고 활화산 같응 격ㅈㅈ정이 당신을 ㅌㅌ태울 까봐 겁난다. 아파보니 알겠어. 목숨보다 소둥한 거 엇더라 건강 ㅈ보다 소중한거 없더라 내친구 큰 콩쥐야.누 딱 감고 니 몸, 건강만 챙겨. 늘은 수강생 수수
긴 글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만, 읽는 사람도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군요.
많은 반론과 의혹과 궁금증에 정성을 다해 작성하시느라 이리도 길어진 것이라 이해하며
우선,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수유너머104'라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모인 하나의 입은 과연 현재 몇 명의 것이며, 정확하게는 누구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세미나를 하러 하루 이틀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제가 회원이 아니라는 것만 분명하지, 그 외에는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모든 세미나에 다 참여할 수도 없고, 누가 회원인지 아닌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여기가 무슨 점조직 비밀결사 단체도 아니고 말입니다.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으면서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 발생시, 나를 대의해 달라고 미리 부탁한 기억이 전혀 없을뿐더러, 다들 잠잠한데 곤혹스럽게도 난데없이 낯선 저항감이 일어나네요.
평소에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표방하지나 마시든가, 회원과 분리해서 비회원분들에게는 공동체성을 추호도 권유하거나 물들이지나 마시든가,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발언권은 없으니 잘 새겨들으라고 미리 경고를 하시든가,
아니면 철저하게 회원/비회원구분 이름표라도 만들어 평시에도 '국외자'로 지내는 훈련이라도 할 수 있도록, 건물 출입하는 순간부터 달고 지내게 배려해 주시든가 하시지, 말입니다.
공지문을 대표해 작성한 분은 누구신지, 최소한 잔류회원 몇 명 일동이라든지, 이 글이 작성된 현재 한 입으로 말하는 회원들은 대체 누구라는 건지,
이곳을 출입하는 비회원으로서 무언가 따라야 할 규범이라는 게 있다면, 또는 이처럼 '출입'이 곧, 하나의 일률적 입장으로 비회원을 몰아넣는 합의강제력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면, 대체 누가 내가 영향을 받는 이 시스템을 돌리고 있는지, 나를 배제한 그 윤환이 나는 괜찮은 건지, 이곳에 출입하는 순간 그러한 사항에 대해 정녕 나는 예속되기로 합의를 한 것인지,
내 삶의 일정부분이 겹쳐지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누가 나 말고 내 상위에서 불편한 결정을 하고 이끌어가도 순한 아이처럼 굴어야 하는지, 분별을 해볼 수는 있게, 누가 쓴 글이라고 명확한 경계내에서 알아볼 수 있도록 밝혀 적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만…. 그리고 바로 그러한 최소한의 흔적이,
회원/비회원을 막론하고 우리들(이 글을 작성하는데 전혀 관여한 바가 없으면서도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게 될 공동체 내에 잔류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공문을 표방한 장문의 글을 숙독한 끝에서나마, 겨우 만나게 될 일종의 (선명한) 서명에 준하는 최소한의 증표는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저처럼 동의하기 어려워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람들은 특히나요.
사건은 비회원/회원 구분할 것 없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이 공부하던 분들 사이에서 발생했고, 그들은 그래서 남이지만 남이 아니지요. 때때로 공부 동료(?), 선배(?), 선생(?)으로 자리를 바꿔가며 불과 며칠 전만해도 모두 즐거이 웃고 떠들던 학인이었는데, 사건의 성격도 성격이거니와 (어느 쪽 편이라기보다) 결코 냉담하게 대할 수 없는 노릇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 (회원분들만의 일이 아니기에 이 사태까지 온 것 아니겠습니까. 지키시려면 모두들 당당하고 떳떳하게, 쫓아내고 싶은 사람은 다 쫓아내고, 지키시길 바랍니다.)
누구는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그래서 가혹하다고 생각했다는 중론에서도 씁쓸하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고, 안타깝게도 이 공간에서 자기 뜻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어쩌면 영원히 이 공동체와 작별했을(?) 피해자가 떠올라, 하루하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부하고 있는 스스로가 순간순간 적잖이 복잡하고 미안한 마음인데,
이처럼 모든 이를 대변하는 듯한(대강 짐작만 할 따름인, 누군지도 모르는 회원사람들이, 그들의 뜻만이 아닌 그들 외의 회원아닌 모든사람들을 ‘대의한다는 식의 포지션'으로 쓴) 글에서, 작성자의(회원사람들 몇몇의) 입장표명만큼은 공들인 내용을 통해 잘 알겠지만...,
떡허니 ‘수유너머 104’라며 써올린 이 글로써 사태에 대해 마치 공식적 최종선고라도 내리듯이,
비회원/회원 할 것 없이, 여전히 잔류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람의, 이 망설임 많고 수행성 짙은 이 모든 의견을 대변한 단 하나의 결과라는 듯이,
더 이상의 다양성도 판단도 중지를 명하는 정당성이라도 부여되어 있다는 듯이
그렇게 공식적 마지막 절차를 공표한다는 듯이
이처럼, 다분히 과잉결정적 효과를 겨냥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수유너머 104’라는 공식입장(?)을 연출하는 궁극적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요?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영원성을 표방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간사수' 일까요?
아니면, 이 내용에 토를 달 일이 있거나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괜히 (몇몇 회원분들과) 세계관이 다르니 어쩌니 대화할 것 없이,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체(sieve)로 걸러내는 검증절차나 다름없으니, 불만이 있으면 '너만' 조용히 알아서 나가거라, 하는 무례한 요구일까요?
세미나 회원, 친구회원, 선물 회원(?)… 그냥 다 운영(경영)진보다 기여도(?) 떨어지니까,
이게 공론이다! 우리가 몇이 되었든 이게 공론이다. 뭐 그런 함의인가요?
공론이 아니어도 문제될 것은 없단다. 공표하고나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은 다 나갈 테고, 공론으로 구축될 터이니, 함의적으로 주인/손님 잘 가려놓았으니,
우리 회원들의 이런 공론화작업이 불만인 사람은 즉시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면 되겠습니다, 라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인가요?
이것은 우리가 그 흔히 듣보던, 이름만 권고인 바로 그 컴퍼니식 퇴출방침이 되는 것인가요? 뭐, 다 그렇게 되겠지요. 결국에는, 다요! 그런데 말입니다.
왜 1차, 2차…그리고 이 글이 올라오는 동안,
탈퇴회원들은 자폭하듯이 하나둘 명확해지며(아, 그 이름을 보고서야 회원이었음을 알기도 했으니까요) 자꾸만 늘어갔는데,
우리를 위해(?) 수유너머를 지켜주신다며 잔류해 계신 회원분들은 도대체 누구시며 몇 명이나 계시길래, 늘 ‘수유너머 104’ 간판 뒤에 숨어 있기만 하는 걸까요?
그동안은 뭐 그렇다치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드디어 이 글이, 그야말로 이제 ‘수유너머 104 간판’의 최종입장 아닌가요?
그렇다면 더욱더 공동체의 이 쓰리고 아픈 난국을 헤쳐 나와 이 시점에 이르렀는데, 이제는 이름을 밝히시든가, 최소한 아이디라도 밝혀 적을 때가 아니었던가요?
수개월째, 또는 여러 해, 어떤 분은 놀랍게도 십수 년을, 다양하고도 수많은 세미나에, 간헐적으로 혹은 지속적인 참여를 해 오면서 이 공동체와 마주하고 많은 시간을 공유해오고 있지만, (이전엔 어땠는지 모르나) 회원이 아닌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아는데,
또 놀랍게도 그분들 중 몇몇 분들에게서 세미나 시간을 통해 배운 바가 (회원이라는 분들에 못지않은 내공으로 인해, 솔직히 말하면 때때로 회원분들보다 더) 깊은 깨달음과 빈번한 학문적 자극으로 이어져 긍정적 상호영향을 교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잔류회원분도, 뭐 이렇게 공식의회결과 송달내지 하달 하듯이, 뭐 이렇게 높으신 분들인양 장막 뒤에서 공표하시는 것보다야,
탈퇴회원들처럼 대등하게 명단을 밝히시고, 이러한 최종(?) 입장문을 발표하심이 맞지 않나 싶네요.
최소한 ‘수유너머 104 운영진’ @명, 대표 작성자 누구누구, 라는 불완전 서명 형식으로라도 말이지요.
회원분들의 열정적인 수고가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만, 그 수고는 나가신 분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비회원분들도 일정 부분 늘 동참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마치 여기 출입하는 전체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옳지도 당치도 않은 이런 식의 표현은 많이 불편하네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요, 유령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아니고, 비회원도 버젓이 사람인데 말이지요.
‘수유너머 104’라고 하면서 여백 없이 공론화하려는 다양한 저의는 미루어 익히 알겠으나, 이것이 포용적 논리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고 철저히 배제적 논리에서 출발 귀착된 공론화작업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네요.
이렇게 비회원을 처분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을 해봤자 듣지도 않을 것 같긴 하고, 뒤집을 상황이어서 말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다만 '예방'을 위해 드리는 말이라는 것을 불쾌하고 무력하게 전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입 다물고, 고분고분 타협하는 것이 안전함을 보장 받고, 자~알 살길인데 말이지요,
다분히 무리가 있어 보이니,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편의대로 함부로 흡수해버리고 지울 때는,
그 표현에 있어서 더 없이 신중해야 된다는, 그 의도에 있어서 정당함에 대한 타당성을 숙고해야한다는 의견을 남기느라 말이 길어졌습니다.
어느 분은 말꼬리 잡는다고 타박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럴까봐 이렇게 길어졌다는 말 덧붙여 미리 전합니다.
'수유너머'가 시시각각 지원금 눈치 봐야 하는 공교육기관도 아니고, 공식적 기준에 따라 공인된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도 아니고, 드러내놓고 차라리 영리적 활동을 하는 시중학원도 아니고, 사주/사원으로 급여문제에 얽혀있는 회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원끼리끼리만 조용조용 마냥마냥 폐쇄적으로 꾸려가는 공부방도 아니지 않습니까.ㅠ
생각 없이 행하는, 이런 이현령비현령, 어딘가 어물쩡, 표리부동한 태도 속에,
이 공동체의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문제 전반이 들어있다고 보여서 죄송함을 무릅쓰고 말씀 올리게 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라도 상대적으로 윗분들께 공손하되, 엄격해야 할 때는 엄격함을 전해야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된다면, 반드시 질문하고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고, 이에 상대는 유연하게 숙고하고 응답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수유너머104'라는 공지글을 읽고 나서 당장 많은 말들이 제 속에서 미친 듯이 자라났지만,
그동안 지칠 대로 지쳐 좌절 상태로 있다가, 어쩌면 이렇게들 묵묵할까? 나만 이상한 건가?
나만 이 논의와 표방 방식에 대해 이렇게 저항감이 드는 걸까? 질문하고 또 질문해 보았습니다.
이번 수유너머 사태에서 그리고 그 진행 과정에서 받은 충격이 심해서, 거의 글 쓸 힘도 별로 남지 않아,
이제 더 이상의 논의를 중지하려다가, 이래서는 안되지, 하는 생각에 힘을 내서 결국 댓글을 올리고야 말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하신 분 계시더라도, 대충 뒤덮여버렸으나 마구 뒤엉켜 있기도 한, 헤쳐나가야 할 진실을 각자의 자리에서 들여다보자는,
상상의 타래는 한없이 굴욕적으로 뻗어나가더라도 사태를 잘 살펴보자는 마음에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음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로서는 이 글이 마지막으로 올리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불완전한 명분은 때로는 눈부시게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있지만, 불완전함에 단지 공적 허울을 뒤집어씌운다고해서 그 불완전성이 감추어지거나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이만. 꾸벅;)
- ‘수유너머104’의 입자 ‘비회원‘ 올림